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피지컬'이라는 노래로 유명했던 호주의 가수 올리비아 뉴튼존을 기억할 것이다. 1981년 발표한 ’피지컬'은 빌보드 핫100에서 10주 동안 1위에 올랐다. 미국의 그래미상도 4차례나 수상한 뉴튼존의 외할아버지가 바로 막스 보른이다. 괴팅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보른은 이후 그 대학의 이론물리학연구소장을 역임했다.
보른은 1926년 슈뢰딩거 방정식의 파동함수에 대해 아주 파격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보통 그리스 문자 로 표기하는 파동함수의 복소제곱은 그 파동함수가 기술하는 입자를 어떤 공간의 영역에서 발견할 확률에 비례한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파동함수는 확률에 관한 정보만 줄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보른 규칙이라 한다. 보른의 이른바 확률파동 개념은 파동함수가 물리적인 실재라 여겼던 슈뢰딩거의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다. 반면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보른의 해석을 적극 받아들였고 이를 바탕으로 양자이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일련의 해석법을 정립해 나갔다. 이를 ‘코펜하겐 해석’이라 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과학이론에 ‘해석’이라는 것이 붙은 사실 자체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사실 양자이론에는 그런 ‘해석’이라는 말이 붙어야 할 정도로 우리가 아직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구석이 있다. 시중에는 양자역학에 대해 여러 개의 ‘해석’이 있다. 그 중에서 코펜하겐 해석은 가장 정통하면서도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해석이다. 그러나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말 자체가 보어나 하이젠베르크의 작명은 아니며 이들이 모든 면에서 일치된 의견을 가지지도 않았다. 또한 무엇이 코펜하겐 해석인지 명확한 명제들이 정리돼 있는 것도 아니다. 하이젠베르크가 ‘코펜하겐 정신’이라 부르기는 했다.
그럼에도, 널리 받아들여지는 코펜하겐 해석에 기초해서 양자역학에 접근하는 것이 정통적으로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 내용을 도식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양자역학에서 물리계는 파동함수로 기술되며 그 계의 모든 물리적 정보를 갖고 있다. 이 물리계에서 우리가 직접 관측할 수 있는 물리량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고유상태라는 것이 있다. 어떤 계의 파동함수가 특정한 고유상태에 있으면 그 계는 그 고유상태에 상응하는 물리량의 특정한 값만 취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고유상태란 어떤 물리량에 대해 그 계가 취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값 각각에 상응하는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임의의 파동함수는 어떤 물리량(예컨대 에너지)의 고유상태들의 합으로 풀어서 쓸 수 있다. 물론 똑같은 파동함수를 다른 물리량의 고유상태들로 다르게 풀어서 쓸 수도 있다. 이처럼 가능한 고유상태들의 합으로 표현된 것을 중첩상태라 부른다. 여기서 양자역학의 중요한 가정이 들어간다. 어떤 형태로든 그 계에 대한 관측(또는 측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파동함수는 고유상태들의 중첩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다가 특정한 물리량(에너지)을 관측하면 그 물리량의 특정값(예컨대 7주울)에 상응하는 고유상태 하나만 남고 다른 모든 상태는 사라져 중첩이 깨진다. 간단히 말해 관측 전에는 가능한 모든 고유상태의 중첩상태로 존재하다가 관측이 이루어지면 하나의 고유상태만 남게 된다. 이때 그 물리량의 어떤 값이 관측될지는 사전에 알 수가 없다. 여기서 보른의 규칙이 들어간다. 파동함수가 어떤 고유상태로 귀착될 것인지는 오로지 확률로서만 정해진다. 그리고 그 확률은 파동함수를 고유상태로 전개했을 때 각 고유상태의 계수의 복소제곱으로 주어진다. 그러니까, 파동함수가 고유상태로 전개돼 있으면 각 고유상태 앞에 곱해진 계수는 그 고유상태가 발현될 일종의 가중치라 할 수 있고 따라서 중첩상태 자체가 일종의 확률분포인 셈이다.
간단히 다시 요약하자면, 파동함수는 관측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가능한 모든 상태의 확률분포로만 존재한다. 그러다 관측이 이루어지면 확률분포에서 제시하는 확률로 어떤 결과를 얻게 된다. 일단 관측이 이루어지면 파동함수는 그 관측값(예컨대 7주울)에 해당하는 고유상태에 고착된다.
이를 고전역학과 비교해 어떻게 다른지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기말고사를 앞둔 학생이 있다. 뉴턴역학에 따르면 시험을 앞둔 이 학생의 초기상태를 모두 정확하게 알 수 있고 그 모든 조건을 뉴턴역학의 체계 안에 입력하면 최종적으로 이 학생이 몇 점을 받을 것인지를 시험 결과가 나오기 전에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뉴턴역학 또는 고전물리학은 결정론적이다. 우리가 흔히 ‘과학’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심상은 대략 이런 것이다.
반면 코펜하겐 해석에 기초한 양자역학은 전혀 다르게 말한다. 우선 슈뢰딩거 방정식 등을 풀어보면 이번 시험에서 받을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점수(고유상태)를 알 수 있다. 시험을 앞둔 학생의 상태는 일반적으로 가능한 모든 점수상태들의 합(선형결합)으로 표현된다. 이때 각 점수상태들의 계수는 해당 상태에 대한 일종의 가중치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시험을 치고 그 결과가 적힌 점수지를 보기 전까지는 학생의 상태가 가능한 모든 점수상태의 중첩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다 점수지를 펼쳐서 확인하는 순간 중첩상태가 깨지고 점수지의 점수에 조응하는 하나의 점수상태만 남는다. 과학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특정 점수가 나올 확률만 알 수 있다.
관측 또는 측정을 하는 순간 중첩이 깨지고 하나의 상태로 고착된다는 이른바 ‘측정가설’은 양자역학의 가장 기묘하면서도 난해한 부분이다. 이는 양자역학의 ‘가정’이기 때문에 양자역학 내부의 어떤 동역학적인 과정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의 주인공인 슈뢰딩거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양자역학의 이런 대목을 극히 싫어했고 1935년 ‘슈뢰딩거 고양이’라는 사고실험을 통해 정통 양자역학의 모순을 드러내 보이려고 했다. 슈뢰딩거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기묘함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고실험으로서 양자역학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명하다. 지난 2017년 대선 국면에서 어느 일간지의 만화에는 슈뢰딩거 고양이 실험을 패러디한 컷이 실리기도 했었다.
이제는 시사만화를 이해하기 위해서조차 슈뢰딩거 고양이를 알아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사고실험은 이렇게 진행된다. 밖에서 보이지 않는 상자 안에 방사성물질을 넣는다. 이 물질은 1시간 뒤에 붕괴할 확률이 50%이다. 1시간 뒤 만약 방사성물질이 붕괴하면 그때 방사선이 방출된다. 상자 안에 함께 있는 방사선 검출기가 방사선을 감지하면 이와 연결된 기계장치를 작동시켜 망치를 움직인다. 망치 아래에는 독병이 놓여 있다. 망치가 움직여 독병이 깨지면 그 안의 생명체는 즉시 죽는다. 이렇게 다소 복잡한 장치를 해 놓고 상자 안에 살아 있는 고양이를 넣고 뚜껑을 덮는다. 1시간 뒤에 상자 속 고양이는 살아 있을까, 죽어 있을까?
고전물리학에서는 모든 게 결정론적으로 정해진다. 상자를 세팅하고 고양이를 집어넣는 순간 1시간 뒤에 방사성물질이 붕괴할지 안 할지가 결정된다. 1시간 뒤 뚜껑을 열어보지 않아도 고양이는 살아 있거나 죽은 상태 둘 중 하나인데 어느 쪽일지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이 고전물리학의 정신이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과학’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심상과 대체로 일치한다.
반면 양자역학에서는 스토리가 전혀 다르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 즉 관측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방사성물질이 붕괴와 미붕괴의 중첩상태에 있게 된다. 붕괴와 미붕괴의 확률이 모두 50%이므로 각 상태의 계수의 절댓값은 똑같다. 고양이의 생사는 방사성물질의 붕괴여부에 달려 있으니까, 그렇다면 고양이는 뚜껑을 열기 전에 살아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의 중첩상태로 존재한다는 말인가? 이것이 슈뢰딩거의 반론의 요지이다.
자연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이 중첩된 고양이를 본 적이 없다. 슈뢰딩거 고양이의 교묘한 점은 방사성물질의 붕괴라는 미시세계의 현상과 고양이의 생사라는 거시세계의 현상이 서로 결부돼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관측' 또는 '측정'이라는 말이 좀 더 엄밀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좁은 의미로는 관측이 인간 같은 지적 존재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지만 범위를 좀 더 넓히면 방사선검출기 같은 장치에도 적용이 된다. 범위를 더 넓히면 어떤 대상이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모든 것을 관측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고양이라는 거시적인 생명체는 어떻게든 주변과 상호작용을 할 수밖에 없으므로 애초에 고양이의 중첩상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 내내 수많은 실험을 통해 분명히 미시세계에는 중첩상태가 존재함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가르는 기준은 어디인가? 어디서부터 양자적 성질이 사라지고 고전적 성질만 남게 되는가? 이는 쉽지 않은 문제이고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도 않았다. 다만 기술이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최근에는 수천 개의 원자들의 집합에서도 중첩상태를 관측하고 있다.
코펜하겐 해석의 유력한 대안 중 하나로 ‘다세계 해석(MWI)’이 있다. 이는 1957년 휴 에버렛이 제시한 해석으로 관측에 의한 급작스런 파동함수의 붕괴라는 개념이 없다. 그 대신 관측의 순간 양자역학적으로 가능한 세상들이 각자 자신의 우주로 진화한다. 이렇게 갈라진 상태들은 물리적으로 서로 소통할 수 없다. 슈뢰딩거 고양이 실험에 다세계 해석을 적용하면, 상자를 여는 순간 살아있는 고양이와 그 고양이를 바라보는 관측자가 결부된 상태가 하나의 우주를 형성하고 죽은 고양이와 그 고양이를 바라보는 관측자가 결부된 상태가 또 다른 우주로 갈라져 나간다. 간단히 말해 고양이가 살아있는 평행우주와 죽은 평행우주가 갈라져 나간다. 그러니까 다세계 해석은 필연적으로 '다중우주'를 염두에 두고 있다. 다중우주는 수많은 평행우주의 집합체이다. 실제로 21세기 들어 더욱 주목을 받게 된 다중우주의 물리적인 근거로 다세계 해석을 다시 소환하는 경우가 많다.
불행히도 아직까지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양자역학의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양자역학이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인 물리이론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수긍할만한 ‘해석’이 없다는 사실은 꽤나 당혹스럽긴 하다. 그런 까닭에 20세기가 끝날 무렵 몇몇 물리학의 석학들은 21세기 물리학의 중요 과제로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꼽기도 했었다. 21세기가 이미 20년 넘게 지났음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는 계속 사실일 것 같다.
※참고자료
-Born, M. (1926). "Zur Quantenmechanik der Stoßvorgänge". Zeitschrift für Physik. 37 (12): 863–867.
-권범철, 4월4일 한겨레그림판, 한겨레신문, 2017.4.3.;https://www.hani.co.kr/arti/cartoon/hanicartoon/789167.html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