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고시엔(일본고교야구대회) 얘기로 한참 뜨거웠다. 재일 한국계 민족학교, 교토국제고가 우승하면서 일본 야구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고시엔 구장에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지금 국내에서도 한참 고교 전국대회가 이어지고 있다. 31일 끝나는 봉황대기가 그것이다. 봉황대기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신인드래프트(9월11일) 전에 열리는 마지막 대회다. 올해 신인드래프트는 애초 9월9일 열리기로 했었으나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일정(9월2일~9월8일·대만 타이베이) 탓에 이틀 늦춰졌다.
봉황대기를 일찍 마친 선수 학부모들의 마음은 타들어 간다. 이미 드래프트 신청은 끝냈고, 대학 원서 등을 알아보며 초조한 마음으로 드래프트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도 경쟁률은 10대 1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는 1083명이 드래프트에 지원해 110명(10.16%)이 프로 지명을 받았다. 나머지 973명은 신고 선수 입단, 대학 진학, 혹은 중도 포기 등을 선택해야만 했다. 참고로 2010년에는 749명이 신인드래프트에 지원해 76명(10.1%)이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8개 구단일 때나, 10개 구단일 때나 경쟁률은 비슷하다.
올해는 공이 빠르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ㄱ 구단 스카우트 팀장은 “이번 드래프트에 나오는 선수 중 올해 한 번이라도 시속 150㎞ 이상을 던진 선수가 15명 즈음 된다”면서 “야구 클리닉이나 드라이브라인 등을 거쳐 급속하게 구속을 높인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경우는 걸러내려고 한다. 경험으로 보면 구속이 빠른데 제구가 안 되는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 와서 제구가 잡힐 확률이 떨어진다. 스피드가 4~5㎞ 떨어져도 제구가 되는 선수를 먼저 보게 된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야구 클리닉의 족집게 과외 영향으로 최고 구속이 시속 145㎞가 넘는 선수가 올해 전국적으로 70~80명은 된다고 한다. ‘강속구 선수가 드래프트에서 유리하다’는 속설에 누구나 빠른 볼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구단 스카우트는 “요즘은 어릴 적 야구하면 전부 투수를 하려고 한다. 투구수 제한 때문에 각 팀에 에이스가 없어지며 던질 기회가 많이 생기고 있고, 대학 가기도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한 전국 대회 16강 때는 평균 구속이 시속 100㎞ 정도밖에 되지 않는 투수가 등판하기도 했다.
ㄴ 스카우트는 “투수의 경우 평균 140㎞ 이상 던져야만 지명 가능성이 생긴다. 불리한 카운트에서 변화구를 던질 수 있느냐도 따져본다. 고유의 무기가 있느냐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ㄷ 스카우트 또한 “속구 구속이 어느 정도 나오는 상황에서 체인지업 등 승부구가 정립돼 있다면 상위 라운드에서 선택될 가능성이 크다”고 귀띔했다.
ㄹ 구단 스카우트 팀장은 “올해 전 구단에서 필요한 자원이 좌완 투수와 내야수다. 괜찮은 왼손 투수 6명이 1~3라운드에 다 뽑힐 것 같은데, 지명 순서에 따라 패닉 픽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는 더불어 “오른손 투수 중에도 구종은 단순한데 구속, 구위는 갖추고 있어서 중간 계투로 힘으로 압도할 수 있는 선수들이 꽤 있다”고 했다.
야수의 경우는 타격이 제일 우선시되지만 수비력도 무시할 수 없다. ㄱ 구단 스카우트 팀장은 “요즘은 멀리 치기 능력도 많이 본다. 공의 밑부분을 치는 선수들을 유심히 본다”고 했다. 변화구 대처 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ㄹ 구단 스카우트 팀장은 “타자의 경우 동체시력에서 나오는 대처 능력, 일관성 있는 타격 포인트, 타석에서 구질 파악 능력을 본다”고 했다.
지역별 주말리그 개인 성적은 크게 참고하지 않는 추세다. “지역별로 편차가 심해져서 B, C급 투수들을 상대로 내는 거품 성적은 거두어내야 하기 때문”(ㄱ구단 스카우트 팀장)이다. ㄹ구단 스카우트 팀장은 “전국대회 성적은 멘탈, 배짱 등이 있어야 하니까 참고자료는 된다”고 했다. 소위 고3 때 성적이 나지 않는 ‘고3병’이 걸려도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1, 2학년 때 봤던 선수들은 운동 능력을 보여줬었기 때문에 부상으로 인한 ‘고3병’만 아니라면 괜찮다”고 한다.
복수의 스카우트는 전체적으로 아마추어 선수들의 타격 능력, 투수 구속 수준이 괜찮아졌다고 평했다. 하지만 훈련 시간 부족으로 스태미나의 문제가 있어 신인 선수가 풀타임을 뛸 체력을 갖추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구속 증가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내는 스카우트도 있었다. “근력이 채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속만 늘리는 게 과연 나을까”하는 의구심이다.
한 스카우트는 “단기 습득해서 구속만 상승시켰을 때 메카닉적인 것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유의미한 체격 변화 없이 단시간에 구속이 늘어난 선수는 안팎의 전후 사정을 더 살펴보게 된다고 했다. 프로 입단 뒤 구속이 저하됐다는 얘기가 꽤 나오는데, 이는 육성의 문제가 아닌 단기 속성 과외의 폐해가 뒤늦게 나타나서일 수도 있다.
학교폭력(학폭) 이슈는 여전히 골머리다. 문서상 드러난 학폭도 있지만, 피해자와 가해자만 아는 은밀한 학폭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올해도 상위픽이 아주 유력한 한 선수에게 학폭을 당한 피해자가 드래프트 이후 폭로를 벼르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학폭 이슈가 불거질 경우 모기업의 이미지 때문에 최악의 경우 계약을 포기해야만 할 수도 있다.
ㄱ 구단 스카우트팀장은 “예전보다는 학폭이나 불법 스포츠 도박 등의 이슈가 있는 선수를 걸러내기는 쉬워졌다”면서 “저학년 선수들에게 물어보거나 지역에 있는 상대 감독들, 그리고 심판들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학폭이 아닌데 학폭이 되어버린 케이스도 있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구단들은 즉시 전력감과 발전 가능성이 있는 미래 지향적 선수를 골고루 뽑는 게 어렵다는 말을 한다. 아마추어 경기의 경우 목동야구장을 제외하고 ABS(볼스트라이크 기계 판정)가 설치돼 있지 않기 때문에 투수의 제구력을 100% 신뢰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긁어보지 못한 복권이 있을 수도 있어 중하위픽 선정 때 대기만성형 선수를 두고 고민을 많이 한다. 신인드래프트 때 기록이 많지 않은 아주 의외의 선수가 선택되는 이유다. ㄱ 구단 스카우트 팀장은 “고등학교 선수의 경우 완성형이 아니라 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보고 판단한다. 프로에서 2~3년 다듬으면 안정감을 줄 수 있는지, 게임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 본다”고 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이제 졸업 뒤 다음의 야구 인생이 어찌 펼쳐질지 기다림의 시간이 남았을 뿐이다. 선택받지 못했다고 좌절할 이유는 없다. 황영묵(한화 이글스)처럼 대학에 진학했다가 중퇴하고 독립리그에서 뛰다가 고교 졸업 6년 만에 프로 무대를 밟은 이도 있기 때문이다. 그저 첫번째 성공과, 첫번째 실패가 있을 뿐이다. 두번째는 다를지 누가 알겠는가. 함부로 재단하지는 말자. 나도, 남도.
김양희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