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권 최대 규모의 종합 게임 전시회 ‘게임스컴 2024’가 21~25일 독일 쾰른에서 열렸습니다.
올해는 특히 해외 시장에 힘주고 있는 국내 게임사들이 역대 최대 규모로 참여했습니다. 아시아 시장을 넘어 유럽, 북미 등 서구권 게이머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게임쇼를 무대로 삼은 것이죠.
과거 게임스컴, 도쿄 게임쇼와 함께 세계 3대 게임쇼로 불렸던 미국의 ‘E3’가 지난해 28년 만에 폐지되면서 게임스컴은 세계 최대 오프라인 게임쇼로 급부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 올해는 국내 게임업계 최고경영자(CEO)와 오너들이 잇따라 현장을 방문하며 눈길을 끌었습니다.
무엇보다 올해 선보인 신작 K게임이 글로벌 사용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것이 눈에 띄는 성과입니다. 그간 공략이 쉽지 않았던 북미·유럽시장에 존재감을 각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주 <더테크웨이브>에서는 게임스컴2024에서 나온 최신 게임업계 트렌드와 한국 게임사들의 움직임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인조이’는 플레이어가 신적인 존재가 돼 사람처럼 희로애락을 갖고 사회생활을 하는 다양한 ‘조이’ 캐릭터를 조종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게임입니다. 많은 독자분들에게 익숙한 일렉트로닉아츠(EA)의 ‘더 심즈’ 시리즈가 독식하고 있던 인생 시뮬레이션 장르에 도전장을 내민 셈인데요.
올해 게임스컴에서 공개된 유수의 대작들 사이에서도 ‘인조이’는 가장 주목받은 게임으로 남았습니다.
개막 첫날부터 인조이 시연 부스 앞에는 미리 게임을 체험하려는 전세계 게이머와 업계 관계자들로 긴 줄이 형성됐습니다. 직접 게임을 해보기 위해 최대 5시간(300분)까지 기다린 관람객들도 있었습니다.
크래프톤은 게임스컴 개막에 맞춰 게임 캐릭터를 미리 만들어볼 수 있는 도구 ‘인조이 캐릭터 스튜디오’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PC게임 플랫폼 스팀에 공개한 캐릭터 스튜디오에서는 이틀 만에 10만개가 넘는 이용자 창작물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용자들은 250개 이상의 커스터마이징 옵션을 통해 머리 스타일, 셔츠 소매 길이, 손톱, 나이, 체형 등을 원하는 대로 편집하고, 프롬프트 기반 이미지 생성 AI를 활용해 옷, 가구를 포함한 각종 사물의 패턴을 무궁무진하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시연 버전에서는 비활성화된 상태였지만, AI 챗봇도 게임에 적용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연내 얼리 액세스(앞서 해보기)로 PC 플랫폼에 출시될 예정입니다. 해당 장르에서 거의 독점적 위치를 지켜온 ‘심즈’의 아성을 K게임이 무너뜨릴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PC와 콘솔 플랫폼의 게임이 주류를 이루는 유럽 시장과 게임스컴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전례가 없는 성과로 평가됩니다.
특히 한국이 강점을 가진 모바일 게임이 유럽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편견을 깰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회사측은 게임 시연에 참여하고 미션을 완료한 관람객에게 마법사 모자와 망토를 비롯해 선술집 우드 머그, 다크앤다커 모바일을 테마로 한 한정판 보드게임 등 다양한 굿즈를 제공했습니다. 이에 따라 게임스컴 현장 곳곳에서 마법사 모자를 착용한 관람객들의 행렬이 눈에 띄었다는 후문입니다.
유명 인플루언서들의 발길도 이어졌습니다. ‘라라 로프트(Lara Loft)’, ‘지자란(Zizaran)’ 등 유럽 현지의 유명 인플루언서 10여 명이 다크앤다커 모바일의 부스를 방문하여 시연에 참가했는데요. 특히 일부는 현장에서 팬 미팅을 방불케 하는 장면을 연출하며 현지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이끌었습니다.
다크앤다커 모바일은 올 연말 글로벌 시장에 정식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을 진행 중입니다. 게임스컴에서 나온 분위기를 이어간다면, 글로벌 흥행이 불가능은 아닐겁니다.
맞은편 전시홀에 설치된 펄어비스 기대작 ‘붉은사막’ 시연 부스에서는 전시 시작과 동시에 게임을 먼저 체험해 보려는 전세계 게이머가 몰리며 오후 한때 3시간에 가까운 대기 줄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펄어비스는 올해 게임스컴에서 최초로 ‘붉은사막’을 일반 관람객을 대상으로 시연했습니다.
펄어비스는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이번 ‘붉은사막’ 게임스컴 시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게임 마케팅을 전개할 예정입니다. 구체적인 출시 시점은 아직 공표되지 않았는데, 업계에서는 내년 중순께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카카오게임즈는 개발 자회사 오션드라이브 스튜디오를 통해 B2C·B2B 부스를 열고 PC와 콘솔 기반 신작 3종을 선보였습니다. 하이브IM은 B2B 전시장에 단독 부스를 마련하고 현재 개발중인 게임 ‘던전 스토커즈’ 홍보에 나섰습니다.
앞서 펄어비스의 ‘붉은사막’은 ‘베스트 비주얼(Best Visuals)’, ‘모스트 에픽(Most Epic)’ 등 2개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
또 넥슨의 ‘퍼스트 버서커: 카잔’은 ‘베스트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부문 크래프톤의 ‘인조이’는 ‘가장 재미있는 게임(Most Entertaining)’ 후보작에 이름을 올리며 수상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K게임은 각 어워드에서 해외 경쟁작 ‘몬스터 헌터 와일즈’(4관왕)와 ‘리틀 나이트메어 3’(3관왕)에 밀려 고배를 마셨어요. 해외 경쟁작들이 워낙 막강했다는 평가입니다.
수상엔 실패했지만, 후보작에 오른 게임들이 글로벌 게임 사용자들의 관심을 끌고, 팬덤을 만들어낸 것은 성과로 꼽힙니다.
박병무 엔씨소프트 공동대표는 홍원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비롯한 경영진 및 사업 담당자들과 함께 독일 쾰른을 비공개로 방문했습니다. 박 대표는 “최근 엔씨소프트가 많은 변화를 준비하는 만큼 게임스컴을 통해 글로벌 시장 동향을 파악하려고 찾아왔다”면서 “스웨덴 게임사 문로버 게임즈에 투자한 것처럼 유럽 시장에 진출할 다양한 기회를 모색하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시리즈를 잇는 신규 지식재산권(IP) 확보를 위해 인수·합병(M&A), 외부 지분투자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죠.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도 현장을 찾아 부스를 둘러보고 여러 관계자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김 대표는 “게임스컴은 글로벌 팬들에게 새로운 게임의 경험을 주고, 건강한 피드백을 받는 뜻깊고 중요한 자리라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찾기 위한 노력을 더욱 가속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스마일게이트 그룹 창업자인 권혁빈 희망스튜디오 이사장도 올해 게임스컴을 방문했습니다. 이는 해외 게임기업 투자와 게임 IP 확보를 위한 협력 논의 차원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밖에 올해 초 카카오게임즈 CEO로 새롭게 취임한 한상우 대표, 강신철 한국게임산업협회장, 정우용 하이브IM 대표, 네오플 윤명진 대표 등도 올해 게임스컴을 찾았습니다.
해외 IP 투자를 위해서는 전 세계 게임업계 관계자들과의 교류가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K게임 리더들의 해외 행보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행사 전야제격인 ‘오프닝 나이트 라이브(ONL)’의 서막은 기어박스 소프트웨어가 개발하고 2K가 2025년 출시 예정인 ‘보더랜드 4’가 장식했습니다. 보더랜드는 현재 게임업계의 주류 장르 중 하나로 떠오른 루트슈터(아이템 수집이 강조된 슈팅 게임)의 문법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시리즈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자회사 액티비전이 배급하는 글로벌 인기 슈팅게임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최신작 ‘블랙 옵스 6’의 싱글플레이 미션 플레이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중국 ‘게임공룡’ 텐센트는 노르웨이 소재 자회사 펀컴이 개발한 ‘듄: 어웨이크닝’을 공개하고 게임을 내년 PC 플랫폼으로 출시한다고 밝혔고요.
글로벌 게임업계 거물들의 발걸음도 이어졌습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수장으로 취임한 요한나 파리스 최고경영자(CEO)는 직접 ONL에 나와 8월 27일 출시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신규 확장팩 ‘내부 전쟁’을 홍보했습니다.
인류 역사를 소재로 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문명’ 시리즈를 만든 파이락시스 게임즈의 시드 마이어도 ONL 행사에 등장해 트레일러를 통해 ‘문명 7’ 출시일을 내년 2월 11일로 확정했습니다.
게임산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고 적극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움직임도 눈에 띕니다.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보유한 국영 게임사 ‘새비 게임즈 그룹’은 게임스컴 게임스컴 B2B(기업간거래) 관에 부스를 내고 자회사로 보유한 게임 개발사 스코플리, e스포츠 기업 ‘ESL 페이스잇’ 등을 홍보했습니다.
B2B 부스 크기는 같은 공간에 있는 전세계 게임업계의 큰손 중국 텐센트나 한국 크래프톤에 버금갈 정도였다는 전언입니다.
앞서 넥슨, 엔씨소프트, 펄어비스, 네오위즈 등은 올해 ‘차이나조이’에서도 현지 퍼블리셔를 통해 게임을 선보이거나 어워드에 출품하는 형태로 행사에 참여습니다.
국내 게임사들이 과거와 달리 해외 게임쇼에서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선 것은 그만큼 해외 시장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성장 정체에 빠진 한국시장에서 벗어나 미국, 유럽 등 해외 무대로 발을 넓히려면 최신 트렌드와 현지 분위기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죠. 국내 게임사 상당수가 한국 외에도 출시국을 다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외 인지도가 높은 게임쇼를 통해 해외 팬심을 잡겠다는 의도도 큰 것으로 분석됩니다.
실제로 한국 게임산업을 대표하는 ‘3N(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이 올 상반기 해외 시장에서 2조원이 훌쩍 넘는 매출을 합작했어요. 국내 게임 시장 성장이 정체된 사이 게임산업의 본산인 북미와 최대 시장 중국을 겨냥해 신작을 쏟아낸 게임사들의 전략이 올해부터 본격적인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게임사들이 해외 공략에 자본과 인재를 대거 투입하면서 국내 게임 산업 수출도 늘어날 전망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 산업의 수출액은 83억 450만 달러(약 11조 3530억원))로 전체 콘텐츠 산업 수출액(129억 6300만달러)의 64.1%를 차지했습니다. K팝(8.1%), K드라마·예능(6.4%)과 비교하면 열 배 수준의 성과입니다.
하반기 K게임의 진격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