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성씨)
홍(洪)은 중국과 한국의 성씨이다. 홍(洪)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558,853명으로 조사되어, 한국의 성씨 인구 순위 21위이다. 본관은 남양(南陽), 풍산(豊山), 홍주(洪州), 부계(缶溪), 의성(義城), 회인(懷仁) 등이 있다. 나머지도 많다
기원
[편집]중국 감숙성(甘肅省)에 있는 돈황(敦煌)의 공공씨(共工氏) 후손이 공(共)에 수(水)자를 붙여 홍(洪)이라는 성이 생겼다.[1]
남양 홍씨
[편집]남양 홍씨(南陽 洪氏)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487,488명으로 조사되었다. 남양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일대의 옛 지명이다.
남양 홍씨 당홍계
[편집]남양 홍씨 당홍계(唐洪系) 시조 홍천하(洪天河)가 당나라 8학사의 일원으로 영류왕 때 고구려에 동래하여 유학(儒學)을 가르치다가 연개소문의 난이 일어나자 신라로 피신하여 선덕여왕 때 유학 발전에 공을 세워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선계를 고증할 수 없어 고려 개국공신으로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를 지낸 홍은열(洪殷悅)을 1세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당홍은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93명, 상신(相臣) 8명, 문형 2명, 청백리 3명, 왕비 1명, 부마 4명을 배출하였다. 2000년 인구는 117,638가구, 379,708명이다.
남양 홍씨 토홍계
[편집]남양 홍씨 토홍계(土洪系) 시조 홍선행(洪先幸)은 고려 고종 때 금오위별장(金吾衛別將)을 지냈다. 토홍은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42명, 상신 2명, 문형 1명, 청백리 3명, 부마 1명, 공신 3명을 배출하였다. 홍언필(洪彦弼)이 조선 중종 때 영의정을 지냈고, 그의 아들 홍섬(洪暹)도 선조 때 영의정을 지냈다. 2000년 인구는 9,250가구, 30,662명이다.
홍주 홍씨
[편집]홍주 홍씨(洪州 洪氏) 시조 홍규(洪規)는 홍주(洪州) 사람으로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할 때 고려 개국에 공을 세우고 삼중대광(三重大匡)을 역임하였다. 홍규의 딸은 고려 태조의 제12비인 흥복원부인(興福院夫人) 홍씨(洪氏)이다. 흥복원부인은 태자(太子) 왕직(王稷)과 공주(公主) 한 명을 낳았다.[2]
사학계는 927년(태조 10년) 왕건이 후백제의 운주(運州)를 격파하였을 때 운주(運州)의 성주(城主)였던 긍준(兢俊)을 홍규와 동일인으로 해석한다.[3] 운주(運州)는 1012년(현종 3) 홍주(洪州)로 개칭되었다. 홍주 홍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4명을 배출하였다. 2000년 인구는 302가구, 935명이다.
의성 홍씨
[편집]의성 홍씨(義城 洪氏) 시조 홍유(洪儒)는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태사를 지냈으며, 처음 이름이 홍술(弘述)이나 고려 태조 왕건으로부터 홍(洪)이라는 성과 이름을 하사받았고, 사후 태조묘정에 배향되었다. 태조의 제26비 의성부원부인(義城府院夫人) 홍씨(洪氏)의 아버지이다. 2000년 인구는 68가구, 206명이다.
풍산 홍씨
[편집]풍산 홍씨(豊山 洪氏) 시조 홍지경(洪之慶)은 1242년(고려 고종 29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국학직학(國學直學)을 지냈다. 시조의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면 신성포 오산당에 있다. 풍산 홍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30명, 상신 5명을 배출하였다.
홍주원(洪柱元)이 선조의 부마가 되었고, 홍주원의 아들 홍만용(洪萬容)은 숙종 때 예조판서를 지냈으며, 홍만용의 손자 홍현보(洪鉉輔)도 영조 때 예조판서를 지냈다. 홍현보의 아들 홍봉한(洪鳳漢)은 사도세자의 비인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로서 영조 때 영의정에 올랐고, 홍봉한의 동생 홍인한(洪麟漢)은 좌의정에 올랐으며, 홍봉한의 5촌인 홍낙성(洪樂性)은 정조 때 영의정에 올랐다. 홍주원의 6대손인 홍국영(洪國榮)은 정조 때 세도정치로 권세를 잡았다. 2015년 인구는 44,594명이다.
부계 홍씨
[편집]부계 홍씨(缶溪 洪氏) 또는 부림 홍씨(缶林 洪氏)는 홍란(洪鸞)을 시조로 하고 고려 중엽 직장(直長)을 지낸 홍좌(洪佐)를 기세조로 한다. 홍좌의 10세손 홍귀달(洪貴達)이 좌참찬에 이르렀고, 홍귀달의 현손 홍호(洪鎬)가 대사간에 이르렀다. 2015년 인구는 15,301명이다.
회인 홍씨
[편집]회인 홍씨(懷仁 洪氏) 시조 홍연보(洪延甫)의 증손자 홍윤성(洪允成)이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와 정난공신 2등이 되고, 예종 때에는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으며, 인산부원군(仁山府院君)에 봉해졌다.[4]
기타 본관
[편집]기타 홍씨
[편집]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홍(烘)씨 57명, 홍(䜤)씨 38명, 홍(弘)씨 18명, 홍(㤨)씨 10명, 홍(哄)씨 9명, 홍(紅)씨 9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