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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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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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 |||
생년월일 | 1949년 11월 28일 | |||
출신지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 |||
사망일 | 1991년 9월 17일 | |||
선수 정보 | ||||
투구·타석 | 좌투좌타 | |||
수비 위치 | 투수, 외야수 | |||
프로 입단 연도 | 1982년 | |||
획득 타이틀 | 1967년 대통령배 우승 1969년 한국실업야구 신인상 1970년 한국실업야구 승률왕 1972년 한국실업야구 다승왕 & 승률왕 | |||
경력 | ||||
선수 경력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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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근(1949년 11월 28일 ~ 1991년 9월 17일)은 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 야구선수였다. 1991년 9월 17일 OB와의 경기를 앞두고[1] 선수들의 타격 훈련을 지도하던 도중 심장 마비로 만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야구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야구 시작
[편집]남선전기 야구단(현재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에서 선수생활을 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2]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편집]경상중 2학년 때부터 마운드에 본격적으로 섰다[3] .
고등학교 시절
[편집]1967년 경북고 2학년 때 1회 대통령배 우승을 이끌었다.
실업야구 시절
[편집]1969년 실업야구 데뷔 첫 해 신인상을 받았다. 한일은행 야구단과 해병대 야구단에서 맹활약했는데 해병대 시절인 1972년부터 체중이 늘면서 투수로서의 페이스를 찾지 못하자[4] 1976년과 1977년에는 한국 실업 야구 사상 처음으로 타자로 전향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편집]1982년 플레잉코치로 뛰었다. 통산 성적은 2경기 5타석 3타수 무안타 2볼넷 1삼진이다.[5]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구경백의 프로야구 산책>죽음부르는 감독의 敵 `스트레스`”. 문화일보. 2004년 12월 27일. 2022년 8월 10일에 확인함.
- ↑ 김응숙 (1976년 6월 10일). “青竜旗(청룡기)의 스타들 高校野球(고교야구) 31년…白球(백구)의 主役(주역)을 찾아 ⑧ 青龍(청룡)2連覇(연패)로 野球(야구)의名門(명문) 새전통세워 한햇동안 52戰(전)48勝(승)2無(무)의 화려한戰績(전적)”. 조선일보. 2021년 6월 11일에 확인함.
- ↑ “球歷(구력)8年(연)의 左腕投手(좌완투수) 打力(타력)교란하는게 戰法(전법)”. 조선일보. 1967년 6월 29일. 2021년 6월 11일에 확인함.
- ↑ 김응숙 (1976년 6월 10일). “青竜旗(청룡기)의 스타들 高校野球(고교야구) 31년…白球(백구)의 主役(주역)을 찾아 ⑧ 青龍(청룡)2連覇(연패)로 野球(야구)의名門(명문) 새전통세워 한햇동안 52戰(전)48勝(승)2無(무)의 화려한戰績(전적)”. 조선일보. 2021년 6월 11일에 확인함.
- ↑ 1967년 경북고 2학년 때 1회 대통령배 우승을 이끌었다. 경북고 야구부의 첫 전국대회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