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드 메디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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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역사 היסטוריה של ישרא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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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후드 메디나타(아람어로 유다 속주)[1][2] 또는 단순히 예후드(Yehud)는 페르시아의 속주였다 아케메네스 제국 주로 유대인 통치자에 의해 지배. 그 영토는 전대의 유다 왕국 보다 훨씬 더 작고 인구가 훨씬 더 적었다. 예후드 메디나타 지역은 유다 왕국이 멸망한 후 신바빌로니아 제국(기원전 597년)에 형성되었던 이전 바빌로니아 지방(기원전 587년), 실패한 유대 반란을 진압한 후 다시 기원전 586년에 형성된 예후드 지방에 해당한다. 에베르나리의 페르시아 사트라피의 일부인 예후드 메디나타는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에 이어 헬레니즘 제국에 편입되기까지 2세기 동안 계속 존재했다.
역사
[편집]연도 |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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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 BCE | 바빌로니아인에 의한 예루살렘 정복, 두 번째 추방(597년 첫 추방), 미즈바에 총독으로 게달리아 임명. |
582? BCE | 게달리아 암살, 난민은 이집트로 피신, 세 번째 바빌론으로 추방 |
562 BCE | 597년 유다 왕 예호야킨이 바빌로니아로 추방되어 감옥에 갇혔고, 바빌로니아에 남아 있다. |
539 BCE | 키루스 대왕(Cyrus II, 기원전 550–530년)이 바빌론을 정복. |
538 BCE |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용하는 '키루스 선언' |
530 BCE | 캄비세스 2세(기원전 530년–522년)가 키루스의 뒤를 잇다. |
525 BCE | 캄비세스가 이집트를 정복 |
522 BCE |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2~486년)가 캄비세스의 뒤를 잇다. |
521 BCE | 다리우스와 추방된 유대인 사이의 바빌론에서의 협상 |
520 BCE[3] | 스룹바벨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후드의 총독으로, 여호수아가 대제사장으로서 임명. |
520–515 BCE | 제2 예루살렘 성전 건설 |
458? BCE | 에스라 예루살렘 도착 (아닥사스 1세 7년, 기원전 465~424년 왕) |
445/444 BCE |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도착 (아닥사스 1세 재위 20년) |
397? BCE (possible) |
에스라 예루살렘 도착 (아닥사스 2세 재위 7년, 기원전 404년–358년 왕) |
333/332 BCE |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의 지중해 지방을 정복: 헬레니즘 시대의 시작 |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Spolsky, Bernard (2014). 《The Languages of the Jews: A Sociolinguistic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39쪽. ISBN 978-1-107-05544-5. 2020년 5월 4일에 확인함.
- ↑ Philologos (2003년 3월 21일). “The Jews of Old-Time Medina”. 《Forward》 (The Forward Association). 2020년 5월 4일에 확인함.
...in the book of Esther,...the opening verse of the Hebrew text tells us that King Ahasuerus ruled over 127 medinas from India to Ethiopia — which the Targum, the canonical Jewish translation of the Bible into Aramaic, renders not as medinata, "cities," but as pilkhin, "provinces."
- ↑ Rainer Albertz, Israel in Exile: The History and Literature of the Sixth Century BCE, (2003) ISBN 1-58983-055-5, p.xx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