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 (앵주)
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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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 | |
오베르뉴론알프 레지옹 내 위치 | |
정보 | |
국가 | 프랑스 |
시간대 | CET(GMT+01) |
레지옹 | 오베르뉴론알프 |
데파르트망 | 앵주 |
아롱디스망 | 부르캉브레스 아롱디스망 |
캉통 | 보나 캉통 |
INSEE 번호 | 01042 |
우편번호 | 01290 |
시장 임기 | 미셸 장틸 2014–2020 |
복합공동체 | 벨 |
해발고도 | 245m - 605m |
면적 | 3.37km2 (ha) |
인구 | 265명 (2014) |
인구밀도 | 96명/km2 (2014) |
베(프랑스어: Bey)는 프랑스 동부 오베르뉴론알프 앵주에 있는 코뮌이다.
지리
[편집]베는 앵 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브레스 지역의 손강과 마코네 강의 강둑 사이에 위치해 있다. 론주와 손에루아르주와 맞닿아 있으며 동브 지역과 접한다. 18세기 통계자료에서는 가르네랑동브 (Garnerans Dombes)와 베앙브레스 (Bey-en-Bresse)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마콩에서는 남동쪽으로 12km, 부르캉브레스에서 서쪽으로 37km, 리옹에서 북쪽으로 62km, 그리고 파리에서 남쪽으로 4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코뮌 내에는 총 여덟 곳의 마을이 분포해 있는데 그 중 몇 곳은 바로 옆동네와 마찬가지로 가깝다.[1] 남부에는 라발레 (La Vallée), 르소제(Le Sausey), 르바송 (Le Basson), 레보데 (Les Baudets) 마을이 있다. 가장 큰 번화가인 크로테 (Cottet)에는 코뮌 행정청이 자리해 있다. 교회와 성 부근에는 르부르 (Le Bourg) 마을과 코미세르 (Commissaire) 마을이 서로 붙어있다시피 자리해 있다. 마지막으로 고원 부근에 다른 마을과는 동떨어진 몽페 (Monspey) 마을이 있으며 이곳에는 농가가 한 곳 뿐이다.
인구
[편집]연도 | 인구 | ±% |
---|---|---|
2006 | 236 | — |
2007 | 241 | +2.1% |
2008 | 242 | +0.4% |
2009 | 244 | +0.8% |
2010 | 245 | +0.4% |
2011 | 247 | +0.8% |
2012 | 260 | +5.3% |
2013 | 260 | +0.0% |
2014 | 265 | +1.9% |
2015 | 271 | +2.3% |
2016 | 276 | +1.8% |
유래
[편집]이름
[편집]마을 이름인 '베' (Bey)는 샘을 뜻하는 갈리아어 단어인 '베가' (Bega)에서 유래하였다.[1].
문헌상에서 처음 언급되는 것은 서기 96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2] 클뤼니 헌장에 '베토' (Beto)라는 지명이 여러번 등장한다. 그로부터 30년 뒤인 998년 생뱅상 드 마콩의 특허장에서 '벡스' (Bex)라는 지명이 언급된다. 또 같은 문서에서 이 지역이 1023년경에는 '베티스' (Betis)로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13세기 중반에는 리옹 교구의 토지대장에서 브레스 시 일대를 '베이' (Bei)라 불렀고, 1287년 론 지방의 기록에서는 '베' (Beys)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여기서는 '베예' (Beyes)라는 이름도 쓰고 있다.
1492년 앵 지역 문서에서 처음으로 '베' (Bey)라는 지명이 등장하나, 1563년 코트도르 지역문서에서는 '베' (Bees)라는 이름으로 언급된다. 1793년에 와서야 베 시에 코뮌이 설치되었으나, 1796년에 코르모랑슈 코뮌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1817년에 다시 분할되어 베라는 지명도 다시 되찾게 되었다.
역사
[편집]1601년 프랑스-사보이 전쟁이 끝나고 리옹 조약을 체결하면서, 브레스, 뷔제, 발로메, 젝스 지방이 프랑스로 귀속됨에 따라 베 시도 자연스레 프랑스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부르고뉴 지방에 통합되었다.
1790년부터 1795년까지 베는 퐁드벨 캉통에 속했으며 샤티용레동브 구를 이루었다. 1796년 코르모랑슈 코뮌과 통합되면서 코르모랑슈-베 (Cormoranche-Bey)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후 1817년 두 지역이 분리되었다.
명소
[편집]- 이 마을을 상징하는 건물로 베 교회가 있으며, 1945년 3월 7일부터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698년까지는 가르네랑 교구에 속했던 교회였다.
- 교회 바로 옆에는 교구관이 위치해 있으며 이 지역의 마지막 교구사제였던 조프레 사제가 1941년까지 쓰던 건물이다.[3] 교구관 벽면에 있는 예수상은 16세기에 만든 것으로, 그 뒷편에는 마리아상이 있다. 남쪽 벽면에도 두 상이 똑같이 작게 세워져 있다.
- 같은 동네에 위치한 중세 시대 성은 루이 알퐁스 드 발브뢰즈 시장 대에 이르러 다시 재건한 것이다.[4] 건물 자체는 시청과 학교 건물로 쓰였으며 별채는 1940년대까지 도서관 건물로 쓰였다.
- 1876년에 세워진 코뮌 시청은 건축가 팽샤르가 주변 벽을 세운 건물로, 1970년까지는 학교로도 쓰였다.[5] 다른 코뮌과는 달리 이 건물은 마을 번화가에 위치하고 있지 않다.
- 코뮌 내에 비둘기장이 두 곳 있다. 하나는 몽페 농장에, 다른 하나는 소제 저택에 세워져 있다.[1].
- 라망티예르 (La Mantillère)라는 동네에는 이 코뮌 유일의 급수탑이 서 있다.
- 마을 곳곳에 길가 십자가가 산재해 있다.
-
생마르탱 교회
-
교구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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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상
-
성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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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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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수탑
자매 도시
[편집]각주
[편집]- ↑ 가 나 다 Sentier Eaux & Patrimoine - Panneau n°1 : Le village de Bey
- ↑ “Dictionnaire topographique de l'Ain, (p.41)” (PDF). 2021년 4월 22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7월 9일에 확인함.
- ↑ Sentier Eaux & Patrimoine - Panneau n°11 : La cure
- ↑ Sentier découverte Eaux & Patrimoine - Panneau n°10} : Le château et son hameau
- ↑ Sentier découverte Eaux & Patrimoine - Panneau n°2 : La Mairie - École
같이 보기
[편집]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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