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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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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우(郭承祐, ? ~ 1431년)는 조선의 무신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도총제(都摠制) 곽충보(郭忠輔)의 아들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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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 곽충보(郭忠輔)의 아들로서 음보(蔭補)로 별장(別將)을 지내다가 1399년(정종 1) 아버지와 함께 사적인 감정으로 황문(黃文)과 김환(金桓) 등을 처벌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청주(淸州)로 유배되었다.[1]

1404년(태종 4) 호군(護軍)으로 승진하였고, 1408년 상호군(上護軍)으로서 풍해도조전첨절제사(豊海道助戰僉節制使)가 되었다.[2]

1410년 첨총제(僉摠制)로 경원부병마절도사(慶源府兵馬節度使)가 되었을 때[3] 야인이 침입해오자 패전하여 1411년 사간원(司諫院)에서 곽승우를 면직(免職)시키도록 청하였으나,[4] 동지총제(同知摠制)에 임명되었다.[5]

1412년 내금위 절제사(內禁衛節制使)와[6] 중군총제(中軍摠制)를 역임하였다.[7]

1413년 동지총제(同知摠制)를 거쳐 내시위(內侍衛) 중군 절제사(中軍節制使)가 되었다.[8]

1418년 세종이 즉위하자 이번절제사(二番節制使)가 되었다.[9]

1420년 6월, 세종이 모후 원경왕후를 모시고 곽승우의 집에서 모후의 병을 요양하였다.

1421년 자헌대부로 강계 절제사(江界節制使)가 되었다.

1430년(세종 12) 중군총제를 거쳐 전라도처치사(全羅道處置使)로 재직 중 1431년 8월 11일 졸(卒)하였다.[10]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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