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남북조 시대
위진 남북조 시대(魏晉南北朝時代, 220년 ~ 589년)는 중국의 역사에서 위진 시대와 남북조 시대를 통틀어 일컫는 단어이다.
위진 시대(魏晉時代, 220년 ~ 420년)는 삼국 시대의 위나라로부터 서진을 거쳐 동진에 이르기까지의 약 200년 간의 시기이다.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420년 ~ 589년)는 한족이 세운 남조와 한족을 장강 이남으로 밀어낸 유목민족이 세운 북조가 대립하다가 수나라에 의해 통일될 때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위진남북조 초반 후한은 황건적의 난으로 인해 매우 어지러웠다. 이에 이것을 진압하고자 지방호족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 위진남북조의 시작이다.
조조가 황제를 옹립하고, 원소와의 대전에서 승리해서 강력해지고, 동오의 손권에게 항복문서를 보내고 장강으로 내려오자 동오는 유비와 동맹해 적벽대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그 후 유비는 사천으로 들어가게 되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삼국지의 틀이 잡히기 시작한다. 220년 조비가 한의 황제인 헌제를 끌어내리고, 위나라를 건국하면서 본격적으로 위진남북조시대가 시작된다.
249년 위나라 권문세족 사마의가 고평릉의 정변을 일으켜, 황족을 숙청하고 사마의가 권력을 장악하고, 그의 아들 사마사, 사마소로 권력이 계승된다. 263년 상국 사마소의 명을 받은 위군의 대공세에 촉한이 항복하고 사마소가 죽고 진왕(晉王)의 자리를 이어받은 아들 사마염이 조환의 선양을 받아 진(晉)의 황제가 된다. 진나라가 오를 침공하면서 진이 삼국을 통일한다. 사마염은 위나라의 멸망이 황족들을 견제하고자 권문세족을 지나치게 키운데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각 지방에 황족들을 파견해 봉국을 주고 그곳을 다스리게 하는데 동생 사마유만이 황족들의 내분 위협이 있으므로 이에 반대한다. 사마염의 아들 사마충은 어리석은 자였기에, 사마염은 사마소의 아들이자 사마사의 양자인 동생 사마유에게 권좌를 물려줄까 고민했지만 사마충의 아들 사마휼이 총명했기에 사마충이 태자가 되었고, 290년 사마염이 붕어하자 사마충이 황제에 즉위하니 진혜제이다. 혜제의 부인 가남풍은 위나라 권신이자 고귀향공 시해를 주도한 가충의 딸로 성격이 악랄하고 권력을 탐하는 자였다. 혜제 즉위 후 외척 양준과 가남풍의 관계가 틀어지게 되었고, 가남풍은 초은왕 사마위와 동안공 사마요를 불러들여 양준 일파를 제거하고, 사마위에게 여남문성왕 사마량을 제거하게 시킨다. 사마량은 진나라의 시조인 사마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가남풍은 이를 명분으로 사마위까지 죽이고, 진나라의 권력을 장악한다. 가남풍은 혜제의 아들이자, 사마염의 총애를 받은 사마휼을 견제하고, 결국 죽였는데, 이에 조왕 사마륜을 필두로 한 지방의 왕들이 가남풍에 반발해 봉기한다. 조왕 사마륜과 제왕 사마경은 낙양을 점령하고 가남풍 일파를 멸하고 정권을 장악했는데, 사마륜은 반대하는 회남왕 사마윤을 죽이고 혜제를 폐위시켜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5호16국 이 후 북중국은 유목민족이 남중국은 한족이 정권을 세우고 분열의 시기를 맞으니 이게 남북조 시대이다. 북주 대승상이였던 양견이 수나라의 황제가 되고 남조를 침공하여 멸망시킴으로써 수나라는 남북조시대를 통일하게 된다. 후한이 멸망하고부터 수나라가 통일하기까지를 합친 것을 위진남북조시대라고 한다. 여기까지가 위진남북조의 내용이다.
중국 철학사적 사조
편집중국 철학사에서 위진 시대는 노장학(老莊學)과 현학(玄學)이 주류를 이루었던 시대였다.[1]
남북조 시대는 불교가 중국 철학의 주류를 이룬 시대로, 이러한 경향은 남북조 시대 이후의 수나라를 거쳐 당나라 시대까지 이어졌다.[1]
육조 시대와의 구분
편집위진 남북조 시대는 시기적으로 삼국 시대의 오나라, 동진, 그리고 남조의 유송, 남제, 양나라, 진나라가 존속했던 기간들을 통틀어 지칭하는 육조 시대와 시간과 공간이 거의 일치한다. 육조 시대는 한나라의 귀족문화인 궁중문학, 서도와 회화 등이 국가들을 달리하면서도 통일성을 지니고 이어져 왔다.
각주
편집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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