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밴드 잔나비 “쿨한 건 싫다. 음악은 뜨겁게”

고희진 기자

밴드 잔나비는 올해 겨울 2집 앨범을 낼 예정이었다. 한 장에 5~6곡이 담긴 EP 앨범이 대세인 시대에 20여곡을 꽉 채워 낼 욕심이었다. 밤새워 작업했지만, 수정을 거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내년으로 정규 앨범 계획을 미뤘다. “쿨한 건 싫다. 한 번 한다면 뜨겁게”라고 말하는 이들의 음악 활동 신조를 생각한다면 지난한 작업 과정이 이해간다. 사랑이건 꿈이건 절실하지 않은 게 멋있어 보이는 시대에 이들의 음악적 지향은 조금 특이해 보인다. 노래 제목처럼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더라도 현재를 불태울 작정이라는 밴드를 이달 3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멤버 최정훈(보컬), 유영현(키보드), 김도형(기타), 장경준(베이스), 윤결(드럼) 다섯 사람이 함께했다.

록밴드 ‘잔나비’가 3일 경향신문사와 인터뷰한 뒤 서울 정동 본사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했다. 최근 인디신에서 가장 주목받는 밴드로 복고적인 감성으로 청춘과 세상을 노래한다. 왼쪽부터 유영현, 장경준, 최정훈, 김도형, 윤결. /강윤중 기자

록밴드 ‘잔나비’가 3일 경향신문사와 인터뷰한 뒤 서울 정동 본사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했다. 최근 인디신에서 가장 주목받는 밴드로 복고적인 감성으로 청춘과 세상을 노래한다. 왼쪽부터 유영현, 장경준, 최정훈, 김도형, 윤결. /강윤중 기자

록밴드 ‘잔나비’. 왼쪽부터 유영현, 장경준, 최정훈, 김도형, 윤결. /강윤중 기자

록밴드 ‘잔나비’. 왼쪽부터 유영현, 장경준, 최정훈, 김도형, 윤결. /강윤중 기자

잔나비는 2014년 4월 싱글 ‘로켓트’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이후 몇 곡의 싱글을 더 낸 뒤, 2016년 정규 1집 <몽키 호텔>을 냈다. 타이틀곡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은 보컬 최정훈의 감성이 돋보였다. 민요 가락을 떠올리게 하는 ‘홍콩’이나 동요 같은 ‘꿈나라 별나라’ 등 수록곡 다수가 인디 음악계에서 주목받았다. 밴드 인기의 척도인 여름 음악 페스티벌에는 단골이 된 지 오래다.

올해 8월 싱글 ‘굿 보이 트위스트(Good Boy Twist)’를 발표하며 새 앨범을 예고했지만, 미뤄졌다. 최정훈은 “거의 마무리 된 상태다. 곡도 잘 나와서 좋았는데, 욕심이 커서인지 후반 작업이 생각보다 길어졌다”고 말했다. 처음엔 20곡 가까이 넣으려다 줄이는 상태다. 음원이 주가 된 음악 시장에서 ‘앨범’이라는 형태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건 이들 역시 안다. 하지만 “그동안 써 놓은 곡이 많았고”(김도형), “앨범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밴드로서의 고리타분한 자존심”(최정훈)이 이들을 움직였다. 음악을 다 들으면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앨범을 구상 중이다.

데뷔 이후 수록곡은 이들이 전곡 작사·작곡·편곡했다. 주로 최정훈이 작사를 맡고, 유영현, 김도형, 최정훈이 곡을 쓴다. 이후 다섯 명이 모여 각각의 악기가 음악에 어떻게 어울릴지 상의한다.

저작권은 ‘잔나비’로 표기할 때도, 작업한 멤버 이름을 각각 넣을 때도 있다. 멤버들은 “저작권 명기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최정훈은 “퀸은 보통 밴드 이름으로 넣고 비틀즈는 각자 이름을 넣더라. 각자 이름을 넣는 건 팬들에게 ‘아, 이 멤버가 이런 노래도 쓰는구나’라는 걸 알려 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각자의 개성이 묻어난 곡을 추천해 달라니 서로 거들었다. “‘뜨거운 여름밤’과 ‘달’은 정훈이의 개성이 잘 느껴지는 노래다. 정훈이가 예전부터 수필 쓰는 걸 좋아했다”(유영현), “‘달’ 가사는 정훈이가 고등학생 때 쓴 거다”(장경준), “영현이는 ‘몽키 호텔’”(윤결), “영현은 피아노를 주로 치는데, 작곡은 기타로 많이 한다. 영현을 조용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오히려 시끄러운 걸 잘 쓴다”(최정훈) “도형이는 ‘쉬(She)’. 멜로디가 도형이가 좋아하는 비치보이스의 색깔이 묻어난다”(유영현).

록밴드 ‘잔나비’. 왼쪽 위에서부터  장경준, 윤결,  유영현, 최정훈, 김도형. /강윤중 기자

록밴드 ‘잔나비’. 왼쪽 위에서부터 장경준, 윤결, 유영현, 최정훈, 김도형. /강윤중 기자

밴드의 음악이 하나의 색깔로 치우치지 않게 장경준과 윤결이 중재자 역할을 하는 편이라고 했다. 최정훈은 “경준이가 퀸의 존 디콘과 머리 스타일이 똑같다. 성격도 비슷해서 앞으로 ‘어나더 원 바이츠 더 더스트(Another one bites the dust)’ 같은 노래 쓰지 않을까 기대한다”며 웃었다.

‘퀸’의 골수팬답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개봉일 다섯 명이 함께 관람했다. 최정훈은 “퀸이 당시 평론가들에게 철저하게 무시당했다고 알고 있다. 그럼에도 무대에서 발레복을 입고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오페라 같은 음악을 만들었다는 게 대단하다”고 말했다.

잔나비 음악 역시 세련되고 쿨한 음악이 인기를 얻는 지금의 유행과는 조금 결을 달리한다. 서정성이 강한 음악에 옷이나 머리 스타일 역시 복고적인 색채가 강하다. 최정훈은 “다섯 명이 다 쿨한 걸 치를 떨도록 싫어한다. 세상에 초연하고 모든 것에 쿨해 보이는 음악은 이미 많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한다. 그래서 옷도 그냥 좋은 대로 입고 다닌다”고 말했다.

생활에서도 ‘열심히’가 신조다. 최정훈은 “요즘엔 서점에도 ‘조금 더 내려놓고 편하게 살자’는게 트렌드인 것 같다. 노력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도 많은데, 우리는 뜨겁게 음악하고 싶다”고 말했다.

작업 시간을 묻는 말에 “하루 종일. 물론 잠은 잘 잔다”(유영현)고 말한 이들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작업실에 거의 매일 모인다. 대형 기획사에 소속된 것도 아니고 좋아서 모인 사람들끼리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것에 불안감은 없을까.

장경준은 “친구들끼리 노는 느낌이 강해 재미있다”, 윤결은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라 걱정이 없다”, 최정훈은 “우리가 스스로 일궈냈다는 성취감이 좋다. 다섯 명이 더 뭉치는 기분이 들어서 기쁘다. 우리는 ‘뇌’ 하나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김도형 역시 “정말 재밌고 좋은데 남들이 몰라줘서 서운하고 아쉬울 정도”라고 말했다.

잔나비는 그간 계단 오르듯 조금씩 목표를 향해 걸어왔다. 내년은 데뷔 5주년이다.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올해 쌓아 놓은 공력을 다 풀어낼 생각이다. 최정훈은 “올해는 폭탄을 제조하는 느낌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앨범 작업을 했고 공연 아이디어도 많이 축적해 놨다”며 “2집엔 잔나비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음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뿌리가 담겼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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