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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한국도 스테이블코인 상용화 대비할 때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나 원화 같은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된 디지털 화폐다. 비트코인처럼 가격 변동이 크지 않아 실제 화폐처럼 쓰일 수 있고, 블록체인 기반이라 국경을 쉽게 넘는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수요는 폭발적이며, 대표적 사례인 테더(USDT)는 발행량이 이미 1000억 달러를 넘었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지니어스(GENIUS)법을 통과시켜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시켰다. 미국은 왜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하였을까.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의 익명성을 이용하여 자금세탁에 악용될 수 있다. 금융제재를 피해 러시아 같은 적국에 송금 또한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를 제도권에 편입하려는 데에는 의도가 있다. ■ 「 미국 ‘지니어스법’으로 법제화 블록체인 생태계 발전에 필수적 법정화폐에 연동돼 사용 늘어나 」 김지윤 기자 미국의 실익은 크다. 수백 조 원 규모의 시장을 역외 기업인 테더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살바도르에 등록된 테더는 미국 법망 밖에서 영업하고 있다. 미국은 법제화를 통해 테더를 자국 규제 틀 안으로 끌어들이고, 지니어스법을 따르지 않으면 3년 내 퇴출당하도록 했다. 일종의 ‘야생동물 길들이기’다. 미국은 또 부채 문제 해소도 기대할 수 있다. 달러는 초과 수요가 존재하고, 자국 통화가 신뢰를 잃은 국가에서는 달러가 공공연히 쓰인다. 이들 국가에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특히 편리하다.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이 미국 국채로 운용되기에, 스테이블코인 수요 증가는 곧 국채 수요 확대를 의미한다.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해외에서 원화를 쓰려는 수요가 미미하다. 과거 해외 거래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시도했지만 수요 부족으로 실패했다. 제도화를 통해 미래 수요를 창출할 가능성은 있으나 현재로선 수요가 적다. 따라서 미국처럼 국채 수요 확대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생태계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전통 금융의 비효율을 줄여줄 수 있으며 블록체인 산업 성장에 필수적이다. 결제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는 여전히 1~2% 수준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비자 마스터카드 등 결제 네트워크 회사의 독과점 구조에 경쟁을 불어넣어 수수료를 낮출 수 있다. 미국과 다른 한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법제화 논의에서 중요한 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시장 과열에 따른 소비자 보호다. 아직 제도화되지도 않았지만 업체들의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승자독식이며 운영비는 적게 들지만 수익은 막대하기 때문이다. 테더가 100여 명 인력으로 연간 10조원 이상 버는 것이 그 예다. 국내는 초기 수요가 적어 과열 경쟁이 금융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적절한 발행자 규제가 필수적이다. 최소 자본금 요건뿐 아니라 은행과 유사하게 최소 자본비율 규정도 필요하다. 스테이블코인 사업은 본질적으로 레버리지에 의존하는 금융기관과 유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현재 발의된 법안들은 자본금 요건에만 치우쳐 있어 자본비율 규제를 통한 보완이 필요하다. 둘째는 수익의 공적 성격이다. 테더가 매년 수조 원을 버는 주된 원천은 화폐 발행에서 나오는 주조차익이다. 주조차익은 국가 통화의 독점적 발권력에 기인하는 공적 성격의 이익이다. 한국은행을 통해 국가에 귀속될 이익이 민간기업에 돌아가는 셈이다. 은행도 예대마진의 형태로 주조차익을 누리지만, 공공성을 전제로 규제를 받는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게 어떤 공적 역할을 요구할지 논의가 필요하다. 셋째는 외환거래 문제다. 앞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송금은 더 늘어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본국 송금에, 해외기업은 무역대금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선호할 수 있다. 이는 기존 외국환거래법을 피해 나간다. 더 큰 문제는 미국법 적용조차 받지 않는 테더와 같은 역외 스테이블코인이 국내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점이다. 법제화를 통해 해외 스테이블코인 규제도 병행해야 한다. 승자독식적 시장구조에서는 과열 경쟁이 금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발행자에 대한 적정 규제와 공적 역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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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정책 실패가 부른 자살 1위, 예방은 국가 책무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리셋코리아 불평등해소 분과 위원장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자살은 사회적 재난”이라며 자살예방 문제에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 관심을 표명한 것은 의미 있는 출발이다. 자살예방은 어느 한 부처나 전문가 집단의 몫이 아니다. 보건의료·복지·심리·교육·고용·주거·법률 등 사회 전 부문이 결합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다. 최고 정책결정자의 강력한 의지 없이는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포괄적 해법이 불가능하다. ■ 「 빈곤·고용불안 등 사회적 요인 커 개인 문제로 보면 정책 실패 반복 범정부 협력 체계로 대처 나서야 」 지난 20여 년간 대한민국은 다섯 차례의 국가 차원 자살예방 정책을 추진했지만, 단 한 번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제1차 계획은 2010년까지 자살률을 인구 10만 명당 18명으로 낮추겠다고 했으나 실제는 31.2명에 달했다. 제2차 계획 역시 2013년 목표 20명에 현실은 28.5명, 제3차 계획은 2020년 목표 20명에 결과는 25.7명에 그쳤다. ‘행동’이라는 이름을 붙여 기대를 모았던 국가행동계획은 2022년까지 17명을 목표로 했지만 실제 수치는 25.2명이었다. 다섯 번째 계획이 시작된 2023년에도 자살률은 오히려 27.3명으로 상승하며, 한국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정책 설계 자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필자는 2018년 런던에서 열린 OECD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자살예방정책을 발표했던 순간의 복잡한 심정을 또렷이 기억한다. 발표 직후 많은 외국 전문가들이 한국의 훌륭한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한국 특유의 서류상 완성도임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지난 20년은 바로 그 ‘종이 위의 완벽함’이 실행력 부재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시간이었다. 이처럼 목표 달성에 번번이 실패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목표 설정의 비과학성이다. 자살의 원인과 현실, 그리고 변화하는 맥락에 대한 정밀한 분석 없이 단순한 수치만 제시한 것은 공허한 주먹구구식 탁상공론에 불과했다. 둘째는 실행의 부실이다. 예산·인력·인프라·데이터 공유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상담 확대와 캠페인에 머물렀고, 자살을 부추기는 구조적 위험 요인에는 전혀 접근하지 못했다. 목표는 비현실적이었고, 실행은 무기력했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한 일시적 접근도 큰 문제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정부의 정신건강 예산 증액이다. 당시에는 3000억원 규모의 투입 계획설까지 거론됐고, 정부는 명목상 약 750억원을 증액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중장기적 전략 없이 단발적으로 늘린 예산은 오히려 정책의 신뢰성과 지속성을 위협할 수 있기에 필자는 우려를 표했다. 실행 전략과 집행 계획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무엇보다 인프라와 인력 확충 없이 예산만 늘린다고 해서 실질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심각했다. 나아가 사회적 비극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뒤따랐다. 자살예방정책은 단기적 성과 지표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중앙정부에서 지역사회에 이르기까지 촘촘히 연계된 안전망 구축, 장기간에 걸친 인프라 확충, 전문 인력 양성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자살률 감소는 공허한 약속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재작년 필자는 정부에 고용 불안, 주거 취약성, 정신건강 현황 등 자살과 직결된 지표들을 포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한 부처의 소관을 넘어선다”는 거절이었다. 바로 그 지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자살은 결코 한 부처의 과제가 아니며, 범정부적 협력과 전방위적 조정 없이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자살은 개인의 심리적 요인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경제·사회·문화적 맥락이 함께 고려될 때 비로소 근본적 해결이 시작될 것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하위의 사회적 지지 수준, 최고의 노인빈곤율, 높은 가계부채율 등 여러 지표에서 위험 신호를 보인다. 여기에 교육과 노동 전반을 지배하는 과도한 경쟁 구조와 취약한 사회안전망까지 겹쳐 있다. 이러한 조건이 함께 개선되지 않는 한 자살률만 낮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국민의 생명권과 행복권을 보장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헌법적 책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리셋코리아 불평등해소 분과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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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이제 서울·수도권에 주택 공급 대책 나와야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교수·리셋코리아 부동산분과 위원장 새 정부 들어 첫 부동산 대책이 나오기 직전 상황을 보자. 지난 6월 넷째 주(6월 23일 기준)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서울 주간 아파트 가격 변동률을 살펴보면 강북 지역의 성동구가 한 주간에 0.99%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서울에서 주간 단위로 가장 많이 상승했었다. 강남 지역에서도 송파구가 0.88% 상승하면서 서울 지역 대부분이 급등했다. 이에 정부는 급상승하고 있는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서울·수도권 지역에 주택담보대출과 전세금 대출 등을 전면 규제하는 6·27대책을 발표했다. ■ 「 6·27 대책, 가격 안정 효과 발휘 지속적 안정 위해 공급 계획 시급 3기 신도시·도심 정비 서둘러야 」 이번 6·27대책은 발표 다음 날부터 즉시 시행돼 부동산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그 결과 한 달 반이 지난 8월 2주(8월 11일 기준) 한국부동산원 발표 자료를 보면 강북의 성동구가 0.13%로 상승 폭이 대폭 하락하였으며 송파구 역시 0.31%로 상승 폭이 대폭 하락했다. 이번 정부의 6·27대책으로 대부분 서울 아파트 단지에서는 매수 관망세가 확산하면서 거래 또한 감소하는 등 가격 상승세가 대폭 축소됐다. 하지만 여전히 주요 관심 지역의 물건 일부가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으며 일부 신축단지와 역세권 주택단지에서 상승세가 지속하고 있다. 6·27대책은 매매시장에서 수요감소로 이어지고 있어 가격 안정에는 분명히 도움을 주고 있지만 매매 수요가 대기수요로 남으면서 전세 공급량은 늘지 않는 상태인데 전세금 대출 규제가 이사철을 앞두고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어 불안하다. 특히, 전세보증금을 구하지 못하는 세입자들은 향후 보증금 상승분만큼 월세로 지불하는 보증부월세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월세나 보증부월세가 증가하게 되면 무주택 세입자들의 내 집 마련은 더 어렵게 될 것이며 월세 지불이 늘어나면 가계 소득에서 지불해야 하는 월세만큼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 주거생활까지 힘들게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정부의 6·27대책은 서울지역에서 급등하던 아파트 가격을 진정시키는 정도의 대책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왜냐하면 주택공급 정책은 지속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정책인데 공급 정책이 빠졌기 때문이다. 특히, 주택 가격에 영향을 주는 것은 공급 정책 말고는 수요의 증감과 유동성 자금의 증감(대출 규제와 완화, 이자 등)인데 이는 변동성이 크고 심리적 요인까지 작용해 일관성 있는 정책을 내놓을 수 없다. 그래서 시장 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용될 수밖에 없어 예측 가능한 주택공급 정책이 함께 발표됐어야 했다. 이번 6·27대책의 효과가 얼마나 지속할지 의문이지만 대책의 효과가 끝나기 전에 정부는 하루빨리 서울·수도권에 주택공급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어디가 먼저인지, 어디가 더 시급한지 순서는 없지만 당장 시장이 불안한 곳부터 주택공급 대책이 본격화돼야 한다. 공급 대책으로는 아직 본격적으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3기 신도시의 조기 공급이 있다. 그리고 도심지의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사업)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 확대다. 역세권 개발이나 도심 복합개발은 너무 많은 공공기여를 요구해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사업이 마무리된 곳이 없다. 공급을 위해서는 적정한 공공기여를 해야 사업이 추진된다. 국·공유지 등 유휴부지의 개발과 더불어 서리풀 지구 등 택지개발예정지구도 차질 없이 추진돼야 한다. 더욱 시급한 것은 단기 주택공급이 가능한 비아파트 부분의 활성화 정책이다. 비아파트인 다세대·연립주택 등은 3~6개월이면 입주가 가능하다. 수요자들이 불안해하는 전세보증금을 보호받을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이 나오면 공급이 분명 늘어날 수 있다. 또한, 요즘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오피스텔은 주택법 적용이 아니고 건축법 적용이다. 그래서 소형 오피스텔은 주택 수에서 제외하는 방법도 고민해 봐야 한다. 주택시장은 정부의 규제정책도 필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요자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것이 힘들다면 이제는 서울 강남지역을 비롯하여 수요가 몰리는 지역에서 경기도 등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세제 혜택 등을 주고 수요를 분산하는 정책도 고민할 때가 되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교수·리셋코리아 부동산분과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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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한·미 관세 타결,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경제분과 위원장 한·미 관세 협상이 유예기간 종료 직전 극적으로 타결됐다. 미국이 부과했던 25%의 상호관세는 일본·유럽연합(EU)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투자와 1000억 달러 에너지 수입 등의 대가로 15%로 일괄 인하되었다. 한국은 사상 유례없는 3500억 달러(약 470조원) 규모의 대미투자 약정이라는 ‘초대형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협상타결에는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라는 구호를 내세워 실효성이 큰 1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방안을 제시한 것이 주효했다. 일본·EU의 협상 결과를 참고해 차별화된 대미 투자 방안을 제시하고, 국내적으로 수용이 어려운 쌀과 소고기 수입 확대를 막아냈다. ■ 「 구체적 후속 방안 수립 지금부터 기술과 인력의 유출 가능성 커져 국내 투자 여건 획기적 개선 시급 」 정부도 ‘최선’의 결과는 아니지만,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불확실성을 줄여 어느 정도 시장접근 안정성을 확보한 ‘차선’의 결과를 얻은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에서 경쟁국보다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은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지만, 자동차 관세 우위가 사라지는 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실질적으로 무력화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CNBC와의 인터뷰에서 대미 투자는 ‘대출’이 아닌 ‘선물’이라고 발언하는 등 우리 정부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점도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관세율, 투자, 수입 규모 등에 대해 숫자를 중심으로 큰 틀의 합의는 이루어졌지만, 구두 합의에 그쳤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구체적인 조건과 후속 세부 협력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지금부터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위기가 될 수 있다.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우리 조선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고, 인공지능(AI)·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 원자력발전 등 주요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주도적 위치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SNS에 협상 타결을 전하면서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하는 투자’이고 ‘투자수익의 90%를 미국이 보유한다(retain)’고 밝힌 점은 투자 이행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을 시사한다. 미국이 원할 때마다 현지 고용, 기술 공개, 공급망 조정 등 추가 조건을 요구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투자 이행이 부진하면 언제든 ‘관세 인상’ 카드가 재등장할 수도 있다. 해외투자 확대는 제조업 공동화, 국내 고용·기술 유출, 산업생태계 단절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기회 포착’과 ‘리스크 관리’를 병행해야 한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은 단순한 시장이득 교환이 아니라, 국제통상 질서의 본질적 재편에 대응하는 출발점이다. 대미 투자가 ‘숫자 채우기’나 정부의 보여주기 실적으로만 귀결되지 않도록, 경제안보, 산업생태계, 국가 경쟁력 관점에서 실질적 성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대미 투자의 거래조건을 재설계하면서 동시에 국내 투자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대미 거래에 ‘이행 담보 장치’(스냅백, 조건부 상응 조치, 분쟁조정 패스트트랙 등)를 요구해야 한다. 현지화와 재투자 조건, 한국 내 제조·고용 효과, 핵심 원천기술 역내 잔존 등 ‘국가 경제 주권’ 담보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전략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내 기업활동 여건을 악화시키면서 대미 투자를 독려하는 것은 한국 제조업의 르네상스가 아니라 몰락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조만간 개최하기로 합의한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동맹이 공고해질 수 있다는 기대도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주한미군 전략 등 안보 분야의 청구서를 들이밀고 추가 투자와 시장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투자, 고용 기여, 전략산업 협력 등에서 한국의 ‘안보 역할’을 데이터에 기반한 ‘직관적이면서 간단한 수치’로 제시하고, 방위산업, 인공지능, 우주·사이버안보 등 미래 안보 분야에서 한·미 간 ‘융합형 분업’ 구조를 선제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 임기응변이 아닌 진정한 실용을 위한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늘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았다. 이번에도 그 길을 걸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경제분과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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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린치핀 기술’ 없으면 기술 주권도 없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명예교수·전 대통령 사이버특보 중국의 기술 굴기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상하이 외곽 축구장 225개 규모의 화웨이 R&D 센터, GPT-4에 필적하는 딥시크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중국 제조 2025’가 더는 청사진이 아님을 보여준다. 특히 화웨이의 AI 칩 ‘어센드(Ascend)’ 시리즈의 약진은 중국의 기술 자립 의지가 얼마나 전략적인지를 드러낸다. 더욱 주목할 점은 딥시크가 단순한 민간 기술이 아닌, 사실상 ‘국가 전략자산’으로 지정돼 핵심 개발자의 이직 제한과 여권 통제 등 기밀 수준의 관리 하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AI 기술을 자동차·통신·금융·국방 등 전 분야에 활용해 사회 시스템 전체를 지능화하려는 국가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의 야망은 지상에 머물지 않는다. ‘삼체 컴퓨팅 성좌’는 우주 공간에 수퍼컴퓨터를 설치하려는 시도다. 이는 단순한 기술 추격이 아니라, 기존 질서와는 다른 ‘평행 우주’를 창조하고 자신들만의 규칙으로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려는 선언이다. ■ 「 미·중 양쪽에서 압박당하는 한국 ‘전략적 불가결성’ 확보해야 생존 차세대 기술 위한 인재전략 필요 」 일러스트=김지윤 이 거대한 지각변동 속에서 우리는 미·중 양 진영의 ‘전략적 집게발’에 갇혀 있다. 한쪽에서는 중국의 기술 자립이 반도체·배터리·스마트폰 등 우리의 주력 산업을 잠식하고 있다. 화웨이는 어센드 칩, 하모니OS(운영시스템), 클라우드를 묶은 ‘레드테크’ 생태계를 통해 자립하고 있고, 한국 기업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삼성 스마트폰의 중국 점유율이 1% 이하로 떨어진 것은 변화의 서막일 뿐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 등을 통해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압박한다. 희토류·흑연 등 핵심 광물의 대중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산업의 숨통이 조여지는 형국이다. 요소수 사태에서 보듯, 중국이 공급망을 무기화할 수 있다는 리스크와 미국의 압박 사이에서 우리는 전략적 자율성까지 위협받고 있다. 이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낡은 외투는 벗어야 한다. 생존의 길은 단 하나, 누구도 한국을 배제할 수 없게 만드는 ‘전략적 불가결성’을 확보하는 것, 즉 기술 주권이다. 첫째, 초격차 전략을 전략적 린치핀(linchpin) 전략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단순한 기술 우위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 모두 대체 불가능한 핵심 기술의 독점적 공급자가 돼야 한다. 정부가 선정한 12대 전략기술에 분산 투자하기보다는 AI 반도체의 심장인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전고체 배터리 등 특정 린치핀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양쪽 생태계 모두에 필수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둘째, 시스템 아키텍처와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화웨이의 어센드는 개별 성능보다 클러스터 기술과 소프트웨어 최적화로 전체 성능을 극대화했다. 단일 부품의 초격차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메모리 반도체의 우위를 넘어, 이를 연결하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플랫폼 역량을 키워야 한다. 엔비디아의 진짜 힘은 하드웨어가 아닌 ‘쿠다(CUDA)’에 있고, 화웨이는 ‘칸(CANN)’을 키우고 있다. 한국형 AI 반도체나 차세대 통신 기술도 이를 뒷받침할 개방적이면서 강력한 소프트웨어 생태계 없이는 세계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셋째, 6세대 통신(6G), AI 윤리, 양자 암호통신 등 국제 표준이 미정인 신기술 분야에서 ‘규칙 제정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술 주권 전략은 정교한 인재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K테크 패스’ 같은 제도를 통해 해외 인재를 유치하는 인바운드 전략과 함께, 우리의 우수 인재를 중국 등 경쟁국으로 파견하는 아웃바운드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이는 인재들이 칭화대·베이징대·화웨이 등에서 직접 기술을 배우고 경험을 쌓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다. 이들은 중국 기술 생태계를 깊이 이해하고 미래 협력이나 갈등 완화의 ‘기술 브리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처럼 현지 언어·문화·기술에 정통한 네트워크는 어떤 외교 채널보다 강력한 자산이 된다. 향후 5년은 한국의 운명을 가를 골든타임이다. 중국은 기술 생태계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고, 미국은 기술 블록을 공고히 하고 있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우리는 양 진영 모두로부터 소외될 것이다. 정파를 뛰어넘는 국가적 합의와 담대한 실행, 기술 주권을 향한 결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명예교수·전 대통령 사이버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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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증세 유혹 버리고 세제 구조부터 개선해야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지난 6년간 누적된 재정수지 적자가 620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경제 둔화가 이어지며 재정 운용은 불가피하게 확장 기조로 전환됐다. 이로 인해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당할 손쉬운 수단은 증세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조세부담률이 10년 전 수준으로 후퇴한 역대 최악의 상황에서, 새 정부는 첫 세법 개정에서 재정난을 돌파하기 위한 해법으로 증세 기조를 선택한 것이다. 정책 무게중심을 세입 확충으로 기울이겠다는 새 정부의 방침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막상 세법 개정의 유력 대상으로 꼽히는 구체적 내용은 실망에 가깝다. 정부 출범 석 달도 못 돼 준비 없이 내놓는 졸속 정책이란 생각마저 든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이 무위로 끝났기에, 어떠한 형태든 세법개정에서 대안 과세가 나와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결론이 증권거래세를 인상하고 대주주 과세 기준을 확대하는 식의 기존 세제로 복귀라면, 우리나라 조세정책 미래는 참으로 어둡다. 불합리한 과거 세제로의 퇴행에서 얻는 것은 세수 보강이 아니라 시장 왜곡이며, 형평성 대신 표적과세란 비판이 나올 뿐이다. 어렵더라도 금융투자와 관련해서는 보편적인 소득 기반 과세를 확대하는 방향이 자본소득 과세가 취할 길이다. ■ 「 성장 중시라더니 증세 정책 봇물 감면 축소 통한 세원 확보가 먼저 국제기구도 단순 세수 증대 경계 」 새 정부가 엄중한 경제 여건마저 외면하고 손쉬운 증세 유혹에 빠져드는 모습은 법인세율 인상에서도 나타난다. 2년 전 103조원까지 늘어났던 법인세수가 62조원으로 줄어든 것은 기업 실적 변동성 때문이다. 지난해 처음 가시화된 3조원가량의 세율인하 효과가 주범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세율 조정으로 마치 세수 흐름이 바뀌기라도 할 듯 호도하는 것은 집권당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평상시 1%포인트 세율 변화가 경제에 주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집권당이 갖는 일종의 정책적 옵션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부가 출범 두 달여 만에 3년 전에 내린 법인세율부터 다시 올린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국내외 기업과 시장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명확하다. 10~20년을 내다보고 결정하는, 안 그래도 위험성 높은 대규모 투자가 국내에서 활성화되길 기대하기란 어렵다. 정권마다 법인세율이 널을 뛰는데 과감히 투자할 기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성장 중시 정부를 자처해도 임기 내내 따라다닐 것은 반기업 정서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뿐일 수 있다. 법인세 감면 축소를 통한 세원 확대가 먼저라는 정책의 본분을 지금이라도 지켜야 한다. 주주 친화 정책의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추진한다지만, 배당확대 가능성은 작다. 최종적으로 배당확대분만 저율과세될 것이기에, 유인이 크지 못하다. 현금이 많은 기업은 배당성향이 30%에 가까워 추가 확대 효과는 적다. 반면, 기업이익이 부족해 배당을 못 늘린 다수 기업이 약간의 세제 혜택으로 바뀔 것이란 생각은 순진에 가깝다. 만일, 법인세율 인상을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동시 시행하면, 코스피 5000 달성보다는 주가 하락 가능성이 더 크다. 정반대 조세정책 방향에 시장의 반응은 냉소에 가까울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최근 조세정책의 국제적 흐름은 세제의 구조개선을 통해 점진적으로 세입을 늘려가는 것을 최선의 정책으로 꼽는다. 일회적이고 단편적이며 세수 증대만을 목표로 하는 정책은 국제기구(IMF, OECD)들이 한결같이 경계하는 대상이다. 느린 속도지만 조세제도 구조를 조용히 변화시키며 중산층과 부유층, 기업의 세금 부담을 고르게 늘려가는 영국의 증세정책은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반면, 부자증세 프레임에 의존해 부유층·기업에서 큰 세수증가를 꾀하겠다는 프랑스의 지난해 대규모 증세정책은 헛된 구호로 그칠 가능성이 점쳐지며, 전형적인 포퓰리즘으로 치부되고 있다. 유럽연합(EU)으로부터 대규모 적자를 단기간에 해결하라는 압박을 받던 루마니아 정부가 낮은 소득세 부담은 젖혀두고 갑자기 부가가치세율을 올린 결과는 세수증가만 겨냥한 일회성 증세의 위험성을 웅변한다. 공무원들마저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헌법재판소가 위헌성을 판단해줘야 할 정도로 정책 수용성을 무시한 결과의 참혹함에서 새 정부 정책수립자들이 교훈을 얻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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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불평등 더 키울 실험적 노동정책 자제해야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새 정부는 노동자의 권익 강화를 주요 정책 방향으로 설정하고, 노조법 2, 3조 개정(일명 ‘노란봉투법’), 주 4.5일제, 정년 연장 등을 추진하고 있다. 모두가 정의롭고 바람직한 가치로 보이고, 많은 이들에게 ‘당연한 진보’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정책은 그 명분이나 도입 취지보다 실제로 어떤 구조적 결과를 낳는지에 따라 평가받아야 한다. 의도가 선하더라도 그 결과가 또 다른 불평등을 초래한다면 실용적 관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 「 노조법 개정, 중소기업 부담 가중 4.5일제는 영세기업 궁지로 몰아 의도와 다른 결과 초래할 가능성 」 경제 6단체 및 경제단체협의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8월 1일 노조법 개정을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법 2, 3조 개정안의 핵심은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완화하고, 교섭 대상을 원청까지 확대하는 데 있다. 겉보기에 이는 하청 및 특수고용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대다수 하청기업의 원청은 중소·중견기업이며, 이들 원청의 재정적 여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또 대다수의 사업장은 노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노사 간 체계적인 대화 채널조차 있지도 않다. 실제로 2023년 기준, 전체 노동조합 조직률은 13%에 불과하고, 30인 미만 사업장의 조직률은 고작 0.1%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교섭 대상을 넓힌다고 해도 실질적인 혜택이 ‘현장’까지 도달하기는 어렵다. 근로시간 단축 역시 정책 추진의 배경에는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명분이 있다. 주 4.5일제는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근로자의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동일한 업무량과 납기를 유지하려면 인력 충원이나 생산성 향상이 병행되어야 한다. 대기업은 기술 투자나 인력 확충이 가능하지만, 영세·중소기업은 인건비 부담과 생산성 저하에 직면하게 된다. 제조업 생산성이 낮은 국내 현실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이 곧바로 납기 지연과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AI와 로봇 기반의 기술혁신을 근로시간 단축의 해법으로 제시하지만, 이는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바뀐 접근이다. 기술혁신이 선행되어야 단축이 가능한 것이지, 근로시간을 줄인다고 혁신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논의는 정년이 실질적으로 보장된 13%의 정규직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도 많은 민간기업은 정년 도래 이후 숙련자를 계약직으로 재고용하거나 필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법으로 정년을 연장하게 되면 혜택은 이미 안정된 고용 구조에 있는 대기업·공공기관 정규직에 집중된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를 유지한 채 정년이 늘어나면 고임금·저생산성 구조의 고착화가 발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업은 청년 등 신규채용을 줄이고, 비용 절감을 위해 하청·비정규직의 비중을 더 높일 수밖에 없다. 정년 연장은 일부의 권익 확대가 아니라, 전체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공정성을 함께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정책은 실험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일단 도입하고, 문제는 나중에 보완하자”는 논리를 제시한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한번 도입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특히 구조적 문제가 있는 노동시장의 개혁을 위한 제도 설계에서 현실성이 부족하면 오히려 회복할 수 없는 장기적 부작용만 초래한다. 우리는 지금 AI와 자동화, 보호무역, 기후위기 등 복합적 구조 변화 속에 놓여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정책은 신중하고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하며, 실험이 아닌 현장 기반의 전략이어야 한다. 격차는 한국 노동시장의 본질적 구조 문제다. 이를 완화하려면 상징적 법 개정보다 실질적인 구조개선 방안이 필요하다. 정년 연장을 논하기 전에, 일자리를 찾는 대다수를 위한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하고,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기보다 불안한 미래를 함께 극복하도록 기업 내 다각적 차원의 대화 채널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 정책은 명분보다 결과로 말한다. 현행 법안들이 의도와 달리 또 다른 이중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지, 그 방향을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진짜 개혁은, 가장 약한 곳에 닿는 구조를 만드는 것에서 출발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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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코스피 5000 바란다면 과감한 혁신 해야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사장 대선 이후 긍정적 주가 평가가 부쩍 늘었다. 특히 국내보다 해외 쪽 견해가 더 긍정적이다. 모닝스타웰스의 마크 프레스켓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향후 10년간 한국 주식의 연평균 수익률을 11~12%로 예상했다. JP모간도 향후 2년 내 코스피 지수 5000 가능성을 거론했다. 긍정 평가는 상법 개정에서 시작되었다. 실로 상법 개정과 배당 분리과세 추진은 사채(私債) 양성화를 꾀한 자본시장육성법(1973년 1월)이래 가장 획기적 증권 관련 사안이라 하겠다. 물론 이번 제도 개편엔 기업 경영자들로선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대주주의 전횡을 억제해 기업을 튼실하게 만들 것 같다. 또 투자자 보호도 강화된다. 이러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상당히 줄어들 듯하다. 또 개정된 제도는 세계 성장률의 상향 예상(올해 2.8%, 내년 3.0%. IMF)과 맞물려 자산 선택에서 주식 선호를 높일 것 같다. 주가는 통상 경기수준보다 경기방향에서 영향받기 때문이다. ■ 「 독·프·브라질 개혁으로 증시 살려 주가 상승 원동력은 경제 활성화 상법 개정만으론 상승 지속 못해 」 김지윤 기자 새 정부는 이번 주가 상승을 경기 활성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부연하면 주가 상승이 개인 부(富)의 축적·내수 활성화, 기업의 원활한 자본조달·기업의 투자 확대로 이어졌으면 한다. 증권제도는 단기적 주가 등락 폭 관련 사안일 뿐이지 기업 가치의 추세적 상승과는 연관성이 크지 않다. 그래서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 등 여러 부담을 안고 있는 기업을 위해 경기 활성화 관련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슈뢰더 전 총리 재임 시기의 독일, 룰라 첫 대통령 재임 시절의 브라질, 마크롱 집권 초의 프랑스 개혁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독일 성장률은 1990년 통일 이후 2003년까지 대체로 2%를 하회했다. 낮은 성장률, 높은 실업률, 많은 실업수당은 국가 경제를 피폐시켰다. 그래서 당시 독일 총리 슈뢰더는 좌파였지만 2002년 8월부터 하르츠 법안을 네 단계에 걸쳐 시행했다. 특히 하르츠 법안 3, 4단계는 실업급여를 제한하고, 적법하게 알선된 일자리를 거부하면 실업급여를 삭감했다. 비인기정책이어서 슈뢰더는 다음 선거에서 패했다. 그러나 독일 경제는 부흥했고, 정권을 인수한 메르켈도 하르츠 개혁을 유지했다. 파격적 4단계 하르츠 법안이 2005년 1월부터 시행되자 독일 주가는 영국과 프랑스와 차별되었다. 그 결과 2025년 6월 현재 독일 주가는 2005년 1월과 대비할 때 영국과 프랑스보다 각각 378%, 358% 더 상승했다. 2003년 1월 브라질에서 좌파의 룰라 정부가 출범했다. 그는 노동, 사회보장제도, 세제, 농지 등 네 부문의 개혁과 중앙은행 독립을 추진했다. 노동개혁의 경우 임금의 과도한 상승을 자제하도록 하고 복지 관련 비용 등 노동비용을 줄여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였다. 노동자의 노조기부금 폐지와 과다한 노동조합 수도 줄였다. 사회보장제도 개혁 목표는 공무원연금의 특혜 폐지, 민간과 공공으로 구분된 연기금의 일원화에 두었다. 또 세제 단순화와 세금 감면으로 생산을 촉진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 중앙은행이 고유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그 결과, 룰라 대통령의 첫 임기종료 전인 2010년 9월 브라질 주가는 취임 당시보다 546%, 달러 기준으로 1215%나 상승했다. 유럽의 병자로 비하되던 프랑스가 2017년 5월 마크롱 대통령 취임 이후 크게 변했다. 마크롱이 노동 개혁에 나섰기 때문이다. 핵심은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해, 기업의 비용과 책임을 줄이는 것이다. 해고가 쉬워지자 기업들은 고용을 늘렸다. 실제로 2016년에 10%였던 실업률이 2022~2024년에는 7.3%로 낮아졌다. 7.3%는 1983년 이후 가장 낮다. 또 고용증가 과정에서 일자리 질이 좋아졌다. 경쟁적으로 채용하니 취업조건이 좋아진 것이다. 이렇게 되자 프랑스 증시도 활달해졌는데, 2019년 5월 이후 프랑스 주가 상승률은 독일보다는 낮지만 영국보다 50%가량 더 올랐다. 오직 개혁만이 경제 활성화와 주가 상승에 강력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새 정부도 과감한 혁신을 추구하고, 진보를 표방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사구시도 참고했으면 한다. 실용적 자본주의의 실천이 기대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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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40조 벤처 투자 수도권 집중 벗어나야
김영태 KAIST 기업가정신연구센터 교수 이재명 정부의 1호 공약에 포함된 연간 40조원 규모 벤처투자시장 조성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낼 도전적인 정책이다. 2024년 말 현재 11조9000억원 수준인 벤처 투자를 4배 가까이 늘리는 야심 찬 목표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단순히 투자재원 증액을 넘어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편, 현재 국내 벤처투자의 70%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인재와 인프라가 수도권에 몰려있기 때문이지만, 협소한 국내 시장의 한계와 글로벌 진출의 어려움을 동시에 보여주는 현상으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벤처창업 생태계를 소금물 탱크에 비유하면, 스타트업은 소금이고 성장자금은 물이다. 물만 갑자기 늘리면 소금물이 희석되거나 탱크가 넘칠 위험이 있다. 탱크 용적을 전국으로 넓히고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혁신 스타트업을 키워내면서 출구(Exit)도 확대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 「 5개 광역권별로 4조씩 지원해 강점 살리고 해외 연계 꾀하는 자율적 벤처 생태계 구축해야 」 해법은 행정구역이 아닌 500만 명 규모 인구를 기준으로 한 5개 광역권별 특화 벤처창업 생태계 구축이다. 5개 광역경제권별로 축적된 제조 역량에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을 접목하고 휴머노이드 로봇, 생명과학·바이오테크, 에너지·기후대응, 첨단 소재·부품·장비, 우주항공·식품 등 글로벌 수요를 충족하는 클러스터로 육성해야 한다. 이들 생태계는 글로벌 시장 개척을 위한 테스트 베드 역할을 담당하며, 각 권역의 특화 산업과 글로벌 밸류체인을 연결하는 스타트업들의 해외 진출 전 검증과 성장의 발판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수도권 벤처투자 규모는 현재 10조원 규모에서 20조원으로 확대하되, 나머지 20조원으로 광역 단위별로 평균 4조원 내외의 벤처투자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형평성 차원의 자원배분이 아니다. 각 권역이 보유한 산업적 강점과 글로벌 밸류체인을 연결하여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혁신 거점을 만드는 전략적 선택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이라도 글로벌 진출의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넉넉히 잡아도 투자유치 초기(Series A) 단계에서는 해외 진출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자원과 경험이 가장 부족한 창업 초기에 글로벌 비전을 심어주고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새로운 혁신 모델(‘Double-TIPS’)을 제안한다. 과학기술원 등 우수 인재들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스타트업을 창업할 때, 지원금의 20%는 한국에서 기반을 다지는 데 사용하고 80%는 미국 등 해외 현지에서 시장 진출과 네트워크 구축에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단순히 해외 벤처캐피털에 모태펀드를 출자하는 방식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뒷받침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각 광역권의 벤처투자 전문기관은 ‘지역 투자’와 ‘글로벌 투자’를 동시에 수행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권역 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은 물론, 해외 스타트업을 발굴해 해당 권역의 제조업체와 인프라를 테스트 베드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국내외 스타트업은 검증된 테스트 베드를 얻고, 이 과정에서 지역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학·연구기관이 함께 협업하도록 한다. 미국의 지역 제조 네트워크 같은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할 수 있다. 이런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광역 단위의 모태펀드 운용 기구를 별도로 설치하고 벤처펀드 출자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해야 한다. 아울러 창업 특별비자 제도를 활성화해 우수한 외국인 유학생들이 지역 벤처 현장과 연결되도록 하고, 지역 대학의 기술지주회사가 독립채산제로 운영되어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벤처창업은 본질적으로 통제가 아닌 자율과 확률의 게임이다. 따라서 정부는 기계공이 아닌 정원사의 관점으로 생태계를 바라봐야 한다. 불합리한 규제를 과감히 개혁하고, 각 권역의 특화산업과 글로벌 밸류체인을 연결하는 혁신 허브를 구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민관이 협력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혁신한 TIPS(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 사례처럼, 새로운 협력 모델을 통해 지역 균형발전과 글로벌 경쟁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벤처창업 생태계로 거듭나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태 KAIST 기업가정신연구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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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미·중 넘어 다중 균형 국가전략 펼쳐야
최창용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그간 국내 정치는 탄핵과 새 정부 출범으로 요동쳤지만, 주요국들은 대전환 시대에 걸맞게 자국의 국가전략을 수정해 나가고 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4월에 발표한 보고서(‘100일간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트럼프 행정부 첫 100일간 전개한 외교정책의 성과와 전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우선 외교정책’, ‘공정한 경제와 무역 관계 구축’ 등 6개 주제로 구성된 보고서는 “미국이 지출하는 모든 달러, 지원 프로그램, 대외 정책은 다음 셋 중 하나의 질문-보다 안전하고, 보다 강하고, 보다 풍요로운 미국을 위한 정책인가-에 답해야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미국 제일주의와 국익 우선주의의 정점이라 할 것이다. ■ 「 미국, 이해관계 좇아 다각적 협력 중국, 중화패권 부활에 전력 쏟아 한국도 중동·남미로 외연 넓혀야 」 김지윤 기자 한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중국-라틴 아메리카 공동의 미래’ 및 ‘기후·환경 리더스’ 국제행사에서 밝힌 연설 내용은, 중국의 대외 전략이 트럼프 행정부와 뚜렷이 대비됨을 보여준다. 미국이 축소한 해외 원조와 개발 협력을 확대하고, 기후·환경·에너지전환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연대(Solidarity), 개발, 문명화, 평화, 인적 연결 등 5개 프로그램을 축으로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대한 협력 관계를 깊이 있게 구축할 것이며, 기후·환경 등 글로벌 공공재에 대해서는 다자주의, 국제협력, ‘정의로운’ 전환을 기조로 해결해 나갈 것을 선언했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과 제도 영역으로 진입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트럼프 2기 첫 조치로 주목받았던 국제개발처(USAID) 예산의 85%(800억 달러) 삭감과 기존 원조 사업들의 축소를 들어 미국의 리더십과 소프트파워가 약화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러한 시각은 일면 타당하나 미국의 국가 전략과 향후 지향점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원조 예산 삭감 그 자체만으로 미국의 영향력 쇠퇴의 징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보고서에 담긴 국가만도 40여 개국 이상으로 중국·러시아·북한·이란에 대해서는 위협 및 적성국으로 분류해 선제적 억제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파나마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에 대해서는 중국 일대일로 사업 철회, 이라크와는 이란 견제를 위해 30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협력 추진,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는 천연광물 공급망 확보 등, 대외 원조와 국제기구 분담금 축소로 발생한 가용 재원을 양자 중심의 선택적 경제·안보협력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당국이 발표하는 공식 문건들만 보면 마치 미국의 민주당 정부가 지향했던 자유주의 기반 다자주의와 해외 원조를 활용한 글로벌 책무성의 실천이라고 보일 만큼 유사성이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행간의 의미를 들여다보면, (중국 중심) 다자주의, (중국 국익) 국제개발 협력, (중국 문화 확산) 문명화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국제 정세 속에서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다’는 ‘안미경중’과 같은 이분적 접근은 다중 균형 전략이 요구되는 현실에 더는 부합하지 않는다. 이상에 치우친 균형자론 역시 달성 불가한 전략이다. ‘한반도 천동설’(『우리는 미국을 모른다』 김동현 저)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정 담론과 일방의 시각에 치우쳐 우리의 전략적 공간을 스스로 축소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의 위협에 최적의 대응 태세를 유지하되, 아·태 전략과 인·태 전략에 호응하는 국가전략의 지평을 확장해야 한다. 동남아시아는 물론 남미·동유럽·중동을 아우르는 ‘안보와 평화를 위한 해양 국제협력’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AI 시대 디지털 전환, 친환경 에너지, 분쟁 지역의 복구와 재건은 모두 한국이 경험과 역량을 축적해온 분야로, 국제사회에서 기대와 요청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개발 협력이 국내 자원을 소진한다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국내 산업과 경제 활성화를 촉진하는 경제-외교-국방 융합 전략 수단임을 인식해야 한다. 올해는 마침 국제개발 협력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제4차 국제개발 협력 기본계획과 중점협력국 선정이 이루어지는 해이다. 국제사회의 거대한 흐름을 읽어내고, 우리의 국격을 높일 수 있는 중장기 대응 전략을 수립할 좋은 기회가 오고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창용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리셋코리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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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코리아 피크,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윤덕민 전 주일대사·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해방 이후 80년간 대한민국은 기적의 역사였다.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은 식민지배를 했던 일본의 국민소득을 앞지르고 일본과 맞먹는 수출 규모를 가진 선진국으로 부상했다. 인구 절반 이상인 2860만명이 지난해 해외여행에 나섰다. 지난 80년간 한국은 지속해서 성장했다. 그러나 지금이 부(富)의 절정이고 성장은커녕 추락할 것이라는 ‘코리아 피크(Korea Peak)’의 경고가 나온다. 우리 아이들이 부모보다 못 살게 될 희망 없는 나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 「 중국 위협에 직면한 한국 제조업 미국의 중국 견제가 기회 될 수도 북한 억제도 한·미동맹으로 가능 」 일러스트=김지윤 계엄과 스캔들로 점철된 대선 기간,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이래 최악의 대외환경에 직면했다. 우리의 번영과 평화를 지켜온 국제사회의 작동 원리가 근본부터 바뀌고 있다. 일본은 현 대외환경을 국난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위기감이 없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위협적인 이웃 강대국의 존재를 잊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게 한 것은 전후 미국이 만든 자유주의 국제질서다. 세계 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하면서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질서를 만든 장본인이 관세 폭탄으로 자유무역의 국제질서를 붕괴시키려 한다. 현 질서의 최대 수혜자인 중국은 대대적인 군비 확장과 함께 중화질서 부활을 노리는 패권 경쟁에 나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패권을 지키기 위한 혈전에 나섰다. 러시아도 제국의 부활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트럼프는 이를 규탄하는 유엔(UN) 결의안조차 찬성하지 않았다. 강대국의 자국 우선주의 앞에 정의와 국제법은 작동하지 않고 약소국은 전전긍긍이다. 우리가 국권을 상실했던 구한말과 같은 약육강식의 강대국 정치가 부활하고 있다. ‘코리아 피크’ 경고는 제조업과 기술에 있어 경쟁력 상실에도 기인한다. 우리 제조업은 중국의 강력한 위협에 직면했다. 2015년 중국 리커창 총리가 10년 내 세계 선진 공업국으로 부상하겠다는 ‘중국제조 2025’를 발표했을 때 우리는 반신반의했다. 10개 분야 중 4개 분야에서 세계 1위로 부상했고 사실상 반도체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우리 제조업을 추월했다. 중국이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이기는커녕 세계시장은 물론 우리 시장에도 과잉생산된 중국 제품이 덤핑으로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다. 미래를 좌우할 첨단기술은 더 암울하다.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터, 로봇, 배터리 모두 중국에 밀리고 있다. ‘안보는 미국이지만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은 과거의 말이다. 코리아 피크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은 우리에게 위기지만, 첨단기술을 차단하고 공급망을 재편하는 그의 대중 강경 정책은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주력산업은 세계시장에서 중국의 물량 공세에 밀리고 있었다. 미국의 대중 산업 견제는 우리 기업이 잃고 있는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천금과 같은 시간을 제공한다. 첨단기술에서 초격차를 만들기 위해 초당적인 협력과 함께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트럼프가 만든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코리아 피크에서 중화질서의 변방으로 전락할 것이다. 트럼프가 꿈꾸는 미국의 부활은 반도체와 조선, 원자력, 에너지 등에서 동맹국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관세 등 현안을 조속히 매듭지어 한·미 간 불확실성을 없애고 긴밀한 협력체제를 가동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시작된 전쟁은 중동에서 타오르고 미·중 대결하에 대만과 한반도로 비화할 수 있다. 북한은 북·러 군사동맹을 부활하고 실전 경험과 함께 첨단 군사장비를 얻어내고 있다. 핵무장한 북한을 억제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굳건한 한·미동맹 외에 없다. 지정학 격변기에 다시 균형외교와 중재자를 운운한다면 우리는 철저히 외톨이가 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안보 공약대로 포괄적 한·미전략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굳건히 해야 하며,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유럽·호주 등 민주진영과의 연대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민주 진영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가 돼야만, 중국이 우리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다소 껄끄럽더라도 이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 참석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덕민 전 주일대사·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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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대법관 증원, 공수처 전철 밟지 말아야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법관 증원의 필요성은 학계·법조계에서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다. 대법원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상고 제한 강화보다는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관 증원의 필요성에 대한 원칙적 공감대와 그 시기 및 방법 등 디테일의 문제는 구별해야 한다. 원칙적 정당성만을 앞세우고 디테일을 소홀히 해서 실패한 사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충분하지 않은가. 대법관 증원 문제를 졸속으로 처리해 대법원의 기능 자체가 심각하게 훼손되거나 왜곡될 경우의 문제는 공수처 실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대법원은 전체 법원의 무게 중심인 최고법원이며, 대법관은 그 핵심 인력이다. 대법관의 자격, 임명 절차와 방식은 재판의 공정성, 그 전제로서 사법부의 독립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확보 등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그래서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에는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 「 정당성 앞세워 졸속 증원 나서면 대법원 기능 훼손·왜곡할 가능성 사법부 장악용 코드인사 우려도 」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으니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에 문제가 없다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삼권분립의 기본 정신을 망각한 것이며, 통제 없는 권력 집중의 위험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시 국무회의가 통제 기능을 못 했다고 비판하면서 여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내로남불 아닌가. 대법관을 중장기적으로 30명까지 증원하겠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1년에 4명씩, 4년 동안 16명 전원을 이재명 정부에서 모두 임명하겠다는 것은 대법원을 장악하려는 것이다. 이는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크게 훼손하고 삼권분립을 형해화하는 위험한 방식이다. 그 위험성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 있다. 첫째, 현재 14명 정원의 대법관은 해마다 평균 2.3명이 교체되는데, 그때마다 인물난이 적지 않다. 그런데 4년간 4명씩 더해서 평균 6.3명을 임명한다면 인물난은 훨씬 가중될 것이다. 특히 김명수 사법부에서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를 폐지한 이후 대법관 후보군으로 꼽을 수 있는 법관 인재풀이 많이 줄어든 것도 문제다. 둘째, 30명으로 대법관을 증원할 경우 대법원 전원합의체 운영이 매우 힘들게 된다. 민사부와 형사부를 나눠 2개의 전원합의체를 두자는 말도 있지만, 민사와 형사에 해당하지 않는 분야도 많다. 더욱이 대법원 전원합의체만 민사와 형사로 나눈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법원 조직 전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런 사전 준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일단 증원부터 하자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이다. 셋째, 이번 정부에서 4명, 그다음 정부에서 각기 4명씩 순차적으로 증원한다면 모를까, 이재명 정부에서 16명 모두를 증원하는 안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사법부 코드 인사와 대법원 장악 의도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지난 5월 1일 대법원의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뒤집으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자아낸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9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며, 우리 헌법재판소 기능까지 일부 수행하는 최고법원이다. 주(州) 법원과 연방법원에서 충분히 심리한 사건 중 연방대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소수의 사건만을 선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입하기 어려운 제도다. 독일의 대법원은 전문분야별로 5개의 연방대법원, 즉 (민·형사사건 담당의) 연방통상법원, 연방행정법원, 연방재정법원, 연방노동법원, 연방사회법원을 두는 전문법원 시스템으로, 대법관 수도 많을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에서 논의되는 대법관 증원은 굳이 따지자면 베네수엘라식이다. 전문성에 따른 법원 조직의 분화 없이 1개의 대법원에 대법관 30명을 두고 1개의 전원합의체를 운영하는 것은 비효율의 극치다. 오히려 현재보다 재판지연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또한 대법관 코드 인사와 결합한 대법관 증원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베네수엘라의 예가 잘 보여준다. 대법관 증원은 이런 모든 문제를 충분히 숙고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희대 대법원장이 말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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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정부 지원, 영세기업·저소득층에 집중을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차기 한국경제학회장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를 제시했다. “유연한 실용정부”와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를 강조하며, 첫 번째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한 것도 이러한 의지를 반영한다. 이는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경기 침체는 과거 동아시아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양상이 다르다. 한국 경제는 외부 충격보다 내부 체력 약화로 인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국내 소비 여력은 크게 줄었고, 주요 산업의 국제 경쟁력도 하락했다. 동시에 분배와 성장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복합적 상황에 놓였다. 여기에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경제안보 중심의 신국제 질서가 또 다른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 「 민생회복 내세운 기본소득 예고 재정 여건상 전면 실시 어려워 상법 등 충분한 사회적 합의 필요 」 김지윤 기자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정부는 민생 회복과 내수 진작을 위한 정책으로 기본소득제도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복지를 통합한 전면적 기본소득은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실용적 기본소득 개념은 검토할 만하다. 이는 특히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과 영세 자영업자에게 소득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다. 지역 화폐도 저소득층 중심으로 지급해 소비 진작 효과를 높일 필요가 있다. 주거 안정 역시 중요한 과제다. 분양 중심의 주택정책에서 벗어나, 정부 주도의 영구임대형 주택 공급을 확대해 저소득층이 투기 우려 없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경기회복과 장기적 성장동력 산업의 육성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고, 네거티브 규제 중심의 환경을 조성해 기업들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이 대통령은 유세 과정에서 인공지능(AI)을 핵심 성장산업으로 지목하고, 민간투자 100조원을 이끌어내 세계 각국의 AI 인재들이 한국에 몰려들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취임사에서 경기 회복을 위한 정책 방향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지만, 자금과 기술 경쟁력이 충분한 대기업은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에 맡기면 된다. 중소 영세기업에 대해선 정부 지원을 강화하고, 부채 탕감보다는 대출이자 부담 경감이나 원금상환 연기 등 정책적 지원을 우선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 목표를 실현할 충분한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고금리와 가계 부채 누적으로 국민의 소비 여력은 이미 바닥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주요국 중 가장 높다. 여기에 재정 여건도 녹록지 않다. 올해 재정지출 증가율은 다소 줄었지만,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여전히 77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2019년 54조4000억원이던 재정적자는 이후 급격히 늘어, 지난해에는 104조8000억원까지 확대됐다. 올해 전망치를 포함하면 국가채무(D1)는 1277조원에 달하며, GDP 대비 48.3%로 2017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국회에서 취임 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부는 민생을 살리고 경기를 회복시켜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정 여력도 고려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경기침체로 조세수입 전망도 어두운데 국회는 보다 강력한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노란봉투법과 주 4.5일제 정책도 임기 초부터 속도감 있게 추진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제도가 당장의 경기회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지금처럼 경제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새로운 제도의 추진에 앞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대통령이 밝힌 정부 주도의 강력한 경기 활성화 정책은 재정 여력이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 현재 논의 중인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제안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상당한 규모의 재정적자가 누적된 상황에서, 국가채무를 더 늘리지 않고도 정책을 실현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제한된 재정과 시장 활력을 조화시켜 민생 회복과 경기 활성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솔로몬의 지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차기 한국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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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새 정부 국민통합 의지, 인사 통해 입증해야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로 6·3 조기 대선을 통해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최근 국무총리 후보자와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대통령 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정책실장, 경제수석, 사회수석 등 고위 정무직 인사를 단행했다. 앞으로 내각 장관에 대한 후속 인선도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재명 정부는 장차관급을 포함한 고위 정무직 인선에서 ‘국민에 대한 충직함’과 ‘성과로 증명된 유능함’을 인사의 핵심원칙으로 천명하고 있다. 특히 조기 대선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즉시 업무 가능한 능력’과 ‘현장 전문성’을 중시하는 실사구시적 인재 등용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앞으로 이어질 고위 정무직 인사를 추진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항에 특히 유념해야 한다. ■ 「 새 정부 신속한 인사 불가피해도 인연 중시하면 탕평책 소홀해져 광범위한 인재풀 활용 노력해야 」 첫째, 행정부의 인사통제력 강화 가능성이다. 이재명 정부는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기능을 법무부에서 대통령실로 사실상 이관하게 된다. 어제 민정수석이 임명된 만큼 공직인사 검증이 본격화하게 됐다. 고위 정무직 인사권에 대한 대통령실 중앙집중화는 국정운영에 대한 행정부의 통제력을 높이고 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한다. 또한 정책의 결정과 집행 과정의 속도를 신속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러한 검증시스템이 독립적인 외부감시를 담보하지 못한다면 인사가 역량이나 능력보다는 정파성 등 인연을 중시하는 정실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커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증폭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중앙인사위원회 같은 독립 기관의 활용이나 의회 인준 청문회, 그리고 ‘채용과정에 대한 외부 감독’ 과정을 강화하여 인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둘째, 조기 대선이라는 특수한 맥락에서 고위 정무직 인사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인선 속도와 투명성 간의 균형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상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없이 ‘즉시 업무에 투입 가능한 역량’을 갖춘 자원을 신속하게 배치해야 하는 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상황은 기존의 검증된 인물이나 대통령과의 인간관계를 통해 신뢰가 형성된 인물에게 의존할 가능성을 높인다. 이는 인선 과정의 투명성을 저해하고, 광범위한 인재풀의 탐색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사를 기획하는 데 한계를 가진다. 이를테면, 신속한 국정 운영과 독립적인 인사 검증이라는 두 가지 가치 간 잠재적인 충돌 가능성이 제기되어, 장기적으로 공정한 인사행정에 대한 국민 신뢰를 훼손한다. OECD 국가들의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전환 기간을 거치는 인사시스템과 대비되는 점이다. 셋째, 능력 혹은 역량을 중시하는 인사의 지속 가능성 여부이다. 특히 ‘국민에 대한 충직함’의 인사 원칙은 현실적으로 행정부의 특정 정치적 의제나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으로 변질할 수 있다.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인재풀에 대한 객관적인 성과평가 및 전문성 검증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행정의 전문성과 생산성을 지속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끝으로 통합의 실질적인 구현이라는 의제이다. ‘국민통합’이나 ‘반대 혹은 이견 세력의 포용’이라는 목표를 어떻게 인사에 반영할 것인가이다. 지금과 같은 초기 인선의 경우 특정 진영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인사 편중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점차 시정해 나가야 한다. 다양한 시각과 배경을 지닌 인재를 탕평책 차원에서 폭넓게 발탁하여,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국정운영의 폭넓은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최근 대선 후보 시절 유세에서 “좌측이든 우측이든, 빨강이든 파랑이든, 진영이나 이념이 뭐가 중요한가”라며 설파하지 않았던가. 이재명 정부는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실용적이고 성과 지향적인 인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책임성의 확보와 행정의 효율성이라는 공공가치 실현을 통해 국민의 폭넓은 신뢰와 지지를 얻기 위해 인사검증 시스템의 재정비 과정에서 독립적인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 인선 기준과 과정, 결과에 대한 대국민 소통 강화 등을 통해 고위 정무직 인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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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청년 위한 새로운 노동 생태계 만들어야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울산의 한 대기업 공장에서 일하는 고졸 아버지는 연봉 1억원에 가까운 소득을 올린다. 회사는 자녀의 대학 학자금까지 지원해주니 아들은 별다른 경제적 부담 없이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문제는 졸업 이후부터다.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아들이 마주한 현실은 연봉 4000만원 수준의 중소기업 일자리였다. 아버지는 차라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아들에게 권한다. 아들은 울산의 중소기업에 다니기엔 아버지에게 부끄럽고, 공무원 시험 준비는 고통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지역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간 지도 어느덧 5년. 이제 아들은 30대 후반이 되었다. 이제 아버지는 정년을 60세에서 62세, 63세까지 늘려가며 일한다. 이 부자지간의 모습은 특별하지 않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이중노동시장 구조이다. ■ 「 기존 제도로 미래세대 행복 추락 법·제도·판결 모두 기성세대 중심 새 제도로 청년 일자리 창출해야 」 기존 연구를 살펴보면 이중노동시장의 원인은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된다. 첫째는 산업구조다. 대기업은 높은 이윤을 바탕으로 정규직 중심의 안정적 고용이 가능했지만, 중소기업은 낮은 채산성으로 인해 저임금 고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산업 구조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났고, 플랫폼 노동 확대는 이중구조를 더 고착화했다. 최근 나타나는 ‘성장 없는 고용’도 이를 반영한다. 둘째는 대기업 노동조합과 경영계의 책임이다. 대기업 강성 노조는 표면적으로는 청년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권익을 주장하지만, 실상은 기득권 보호에 집중해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받는다. 일부 경영계 역시 원칙을 지키기보다는 파업을 무마하기 위한 ‘퍼주기식 노무관리’에 의존하여 노동시장 내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킨다. 셋째는 정부 정책과 법·제도는 이중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이를 기준으로 교섭한 대기업의 각종 수당은 배수 단위로 상승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진다. 근로시간 규제 역시 마찬가지다. 대기업은 단체협약 등을 통해 연중 150일 가까운 유급휴일을 확보하지만, 많은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여전히 포괄임금제 아래 과로를 강요당한다. 최근 대선 공약으로 등장한 ‘주 4.5일제’는 대기업 근로자의 특권처럼 다가온다. 필자는 여기에 한 가지 신종 원인을 덧붙이고자 한다. 바로 최근 사법부의 노동 판례들이다. 법원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확장하거나 퇴직금 산정 시 초과이익분까지 포함하는 판결을 연달아 내리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판결이 단지 한 개인과 기업 간의 분쟁을 다루는 것을 넘어서 전체 노동시장에 구조적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다양한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며 임금을 상승시키지만, 중소기업은 수당 체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판결이 반복될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복지 격차는 곱셈효과(multiplying effect)를 일으키며 더욱 커진다. 이중노동시장 문제는 세대 간, 기업 간, 지역 간 불균형이 겹쳐진 복합적인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사법부 또한 노동 판결의 거시적 영향을 인식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불균형을 심화하는 판결은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기에 노동 판례를 세울 때는 시장 전반에 미치는 구조적·경제적 파급력을 고려하는 균형적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사회적 대화에서도 이제는 솔직해지자. 청년과 노동 약자를 위한다면서 기성세대 강자들만 이익을 취하는 표리부동한 자세를 이제는 내려놓자. 노동정책과 법제도 결정에 이중노동시장에 미치는 효과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기성세대를 위한 노동법과 노사관계로부터 절연된 새로운 일자리 오아시스가 조성되도록 기존 법과 관행에 예외를 두어 새롭고 괜찮은 청년 일자리들이 왕성하게 창출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청년층이 중소기업을 기피하지 않도록 중소기업의 일자리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청년들이 자존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근로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누구나 당당하게 자기 계발하고 일터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직무능력 중심의 공정한 노동시장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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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창업에도 개방적 경험 공유 늘려야
김형석 건국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우리 사회의 변화에 따라 교육 현장에서 목표로 하는 중점 역량도 변화하고 있다. 기업은 대규모 공채보다는 직무 경력을 갖춘 인재를 원하고 있고, 대학에서 배출되는 인력에는 전문지식 중심에서 문제 해결 역량, 그리고 문제 정의 및 평가 역량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창업에 대한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지인의 창업 지원을 처음 도왔을 때 목표는 ‘의지와 열정이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 아이템과 자금, 경영 지원을 하는 것이었다. 멘토링의 주된 주제는 시장 분석과 마케팅, 기술적 차별성과 보호, 경영 기법 등이었다. 여러 성과를 얻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독립된 창업 팀이 갖는 여건의 제한으로 완성도의 아쉬움이 있었고, 장기간 지속하는 기업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도 그 당시 이뤄지던 창업 지원의 한계였다. ■ 「 공채 줄며 창업 중요성 커졌지만 폐쇄적 구조로 창업 생태계 취약 경험 공유하는 리빙랩 확 늘려야 」 김지윤 기자 이후 대학에서의 창업 교육을 고민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네덜란드의 창업 액셀러레이터를 방문했을 때였다. 마침 사업모델을 설명하는 데모데이에 방문하게 되어 10여 개 창업 팀의 발표를 들을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 다국적 기업과의 매출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 과정에서 성공적 창업 지원의 가장 큰 요소로 다가온 것은, 개방된 공간과 집중된 주제였다. 이들 창업 기업은, 완전히 개방된 공간에서 서로가 섞여 6개월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해 완성도 높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각자의 아이템을 기밀로 생각하고 보호에 집중하던 당시의 주변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당시 주제는 스마트 팜이었다. 이 프로그램엔 이와 관련한 창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접근방법을 갖춘 팀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 담당자의 설명으로는 집중된 주제로 진행한 결과 관련 분야의 구매 기업 담당자들이 직접 참석하고 그 자리에서 매출 계약이나 협력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진다고 했다. 백화점식으로 모든 분야의 창업팀을 지원해야 하던 환경과 비교해 보았을 때 전문가의 확보와 멘토링의 질, 무엇보다 구매할 상대 기업의 관심도에서 큰 차이가 있고 저비용으로 큰 효과를 내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문제 해결’을 위한 창업으로 다가왔고, 몇 년 뒤 베트남의 창업 환경을 둘러보았을 때도 목격했다. 방문했던 주요 시중은행은 본사의 2개 층을 터서 ‘핀테크’ 관련 창업 팀 30여 개만을 모아 지원을 하고 있었다. 각각의 기술 수준은 당시의 국내 기술과 큰 차이가 없었고, 유사한 기술에 대해 입주 기업 간의 토론과 경쟁이 이루어지는 모습에 약간의 부러움과 위기감을 함께 느꼈다. 그때부터 문제 해결을 위한 경험 제공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지금의 창업, 특히 대학에서의 창업 지원은 어떤 형태가 필요한가? 현실적으로는 갓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갖기 어려운 ‘경력’이라는 경험을 제공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조만간 창업을 통한 경험이 직무 역량 확보에 주요한 경로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성 있는 창업과 장기간 모든 열정을 쏟아 넣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와 함께 창업은 ‘문제의 정의와 해결’을 위한 자신만의 방법을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실제 많은 경우 하나의 아이디어에만 집중하여 ‘문제의 해결’과는 동떨어진 경우를 목격하곤 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소속 대학의 혁신융합대학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과정에 리빙랩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한 학기 동안 실제 수요자를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가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며, 결과 평가 및 개선을 경험하면서 필요한 역량을 키울 수 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우리 산업의 역동성을 높이고 새로운 사회가 요구하는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키우기 위하여 창업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중요성을 갖고 있다. 이제 이를 위한 사회적 역량을 키워 나가는 것이 큰 숙제이고, 변화에 맞춘 고민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다시 한번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형석 건국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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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재원도 없이 선심 공약 되풀이하는 대선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한국납세자연합회 명예회장 대통령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익숙한 장면이 있다. 후보들은 ‘화려한 공약’을 위해 국가예산을 마치 본인의 개인 돈인 것처럼 여기며, 수백조 원 규모의 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낸다. 아동수당 확대, 지역사랑상품권 의무발행, 소상공인 빚 탕감, GTX 노선 확충, 복지 확대 등 국민의 기대감을 자극하는 약속이 줄줄이 쏟아지지만, 정작 유권자가 진정으로 궁금해하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 “그 많은 재원은 얼마이며, 대체 어디서 조달하는가?” ■ 「 대선 때마다 포퓰리즘 공약 넘쳐 나랏빚만 부풀려 청년에게 전가 민간부문 생산성 회복이 더 중요 」 김지윤 기자 선거관리위원회는 각 후보의 대표 10대 공약을 공개하고 있으나,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공약의 내실을 담보할 수 없다. 실제로 이번 21대 대선에 제출된 공약자료를 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공약마다 “정부 재정 지출 구조 조정분 및 총수입 증가분 등으로 충당”이라는 한 줄의 문장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역시 “세제 개편과 규제 완화를 통한 세수 증대”라는 선언적 문구만 나열하는 수준이다. 실행 로드맵도, 단계별 재정 확보 전략도, 구체적인 수치도 없다. 요컨대, 공약은 넘치지만 실행 근거는 빈약하다. ‘재원 없는 공약’만 열거하고 있어서 이로 인한 국가 재정의 위기 가능성은 실질적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2012년, 2017년, 2022년 대선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지적되었지만 개선된 바 없다. 당시에도 후보들은 수백조 원 단위의 공약을 남발했으나, 구체적 재원 조달 방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도 최소한 그때는 공약 이행에 필요한 총재원 규모라도 언론 등을 통해 별도로 제시되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그마저 실종된 상태다. 예를 들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이재명 후보의 대표 공약인 ‘18세까지 아동수당 확대’에서 월 20만원을 지급한다면 연간 약 16조 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는 현재 약 2조 원 규모인 아동수당 예산의 8배에 해당한다. 김문수 후보가 주장한 전국 GTX 구축 공약도 수십조 원의 재원이 필요한 초대형 프로젝트다. 그러나 양측 모두 재정 투입의 규모나 확보 방안에 대한 실질적 설명은 전무하다. 이는 결국 국가 재정의 구조적 불균형을 야기하고, 후세대에 부채를 고스란히 전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기준으로 총예산은 400조 원, 국세 수입은 242조 원, 국가채무는 682조 원(GDP 대비 40.4%)이었다. 그러나 2025년 현재 총예산은 673조 원으로 확대되고, 국세 수입은 382조 원으로 증가했으나, 국가채무는 1273조 원(GDP 대비 48.1%)에 달한다. 8년간 국세 수입은 140조 원 증가한 반면, 국가채무는 무려 591조 원이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국가채무 중심의 기형적 재정 확대의 배후에는 결국 무분별한 공약 남발이 자리하고 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16일 앞으로 다가온 18일 오후 대전의 한 아파트 우편함에 대선 후보자들의 공약 등이 담긴 선거공보물이 도착해 한 유권자가 확인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가계라면 자녀가 아버지 채무를 상속 포기할 수 있지만 국가는 그럴 수 없다. 차세대는 국민으로서 국가채무를 거부할 수 없으므로 그대로 떠안게 된다. 이는 세대 간 형평성 문제는 물론 조세 저항과 사회적 불안정까지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투자보다는 단기적인 소비 중심의 포퓰리즘 공약이 반복된다면 국가 재정은 지속 가능성을 상실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이번 대선 후보자들의 공약은 조세와 규제라는 국가 정책의 두 축은 거의 도외시하고 재정 지출 경쟁에만 치우쳐 있다. 즉 규제를 완화하고 조세를 개편하여 성장 인센티브를 유도하려는 전략보다는 복지 지출과 현금성 지원에 치중된 지출 중심 공약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이야말로 선심성 공약의 경쟁이라 할 수 있다. 국가의 미래는 화려한 공약의 나열이 아니라 재정 운영의 지속 가능성과 민간부문의 생산성 회복을 통한 국가 경쟁력의 강화에 달려 있다. 지금 대선 후보에게 필요한 것은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하는 장밋빛 구호가 아니라 정교한 재원 확보 방안을 제시하여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선거의 국민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며, 진정한 리더십이고 국가를 위한 최소한의 책무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한국납세자연합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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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정년연장 실마리, 임금체계 개편에서 찾아야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전환기 한국경제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일할 의욕이 있으면 적합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어 먹고 사는데 걱정 없는 나라, 일할 사람을 잘 찾을 수 있어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그 목표가 실현되기 위한 조건인 노동시장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임금이 합리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공정하고 일의 가치에 적합하며 성과에 대한 보상이 있어 일할 마음이 나게 하는 임금체계가 작동해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 ■ 「 연공급은 대기업도 한계 드러내 직무·성과 중심으로 합리화하면 누구나 차별 없이 장기근속 가능 」 셔터스톡 보상은 공정해야 한다. 여성이라서, 청년이라서, 고령자라서, 장애인이라서, 비정규직이라서 동일한 일을 하고도 임금을 적게 받는 것은 차별이다. 자유시장은 차별하는 기업을 도태시킨다. 일과 실력으로 인정받기보다는 줄을 잘 서는데 더 관심 있는 직원으로 채워진 기업이 경쟁력을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임금은 일의 가치에 적합해야 한다. 일의 난이도와 내용이 변하지 않아도 매년 임금이 상승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 근속에 비례하여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전제가 있으면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 연공형 임금은 근속 기간이 짧지만 능력 있는 청년, 장기근속이 어려운 비정규직, 경력단절이 발생하는 직원에게 불리한 방식이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방식이 아니다. 지불 여력이 있는 대기업 정규직에도 한계가 온 지 오래다. 하는 일은 변함없는데 호봉만 높고 새로운 일을 배우지 않는 고령자는 기업에 부담을 준다. 연공급은 장기근속한 고령자도 결국 보호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임금체계 개편에 실기한 경험이 있다. 2013년에 시행된 정년 60세 연장 당시 여야 간 정치적 타협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의무가 아닌 노력 조항으로 만든 것이다. 노동시장의 활력을 정체시킨 원인이 그때 제공됐다는 혐의를 부인하기 어렵다. 나이만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라는 방식이 그 무렵 태어났다. 하는 일의 가치와 직무역량만큼 급여를 받는 임금체계 아래에서는 나이를 이유로 임금을 삭감할 이유가 없다. 지난 3월 28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린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을 찾은 어르신들이 채용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정년연장 논의가 재개되는 지금 임금체계를 개편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왔다. 정년 후 연금 수급시점까지의 소득 공백 문제, 기업 규모와 성별 및 고용형태에 따른 임금 격차 등이 겹겹이 얽힌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고령자 일자리 문제 등을 푸는 단초를 임금체계 개편에서 찾을 수 있다. 임금체계 개편 문제를 도외시하면 성장도 소득도 얻을 수 없다. 직무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는 노동자의 적이 아니라 친구이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장치이고 자기 계발 노력을 자극하여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게 한다. 기업은 일 잘하는 사람을 많이 보유할 수 있는 제도이다.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강소기업을 일으킨 나라이다. 유사한 직무를 수행하면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수준에 차이가 별로 없어 중소기업의 구인이 용이하고, 직무 전문성을 기르도록 동기부여하는 임금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종신고용과 연공급으로 상징되던 일본은 수십년간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 변화를 차분히 진행하여 결국 65세 정년연장과 그 이후의 계속고용까지 가능하게 만든 사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금 성장의 기지개를 다시 켜고 있다. 중국 역시 70년대 개혁개방 이후 직무-성과-보상을 연계한다는 원칙 하에 효율화와 경쟁력 향상을 도모했고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다. 고령자의 경륜은 존중해야 하고 장기근속과 고용안정은 권장해야 한다. 직무가치에 부합하는 임금체계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다. 청년도 고령자도 희망을 가져야 하고, 여성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비정규직 양산도 막아야 한다.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의 강고한 연공서열주의는 수명이 다했고 오히려 고용불안과 불만을 야기하고 있다. 임금을 결정하는 기준과 체계는 중소기업의 구인난, 청년들의 일자리 미스매치, 정년연장, 비정규직 증가, 고령층 빈곤 등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 핵심적인 기반 역할을 하는 제도적 인프라이다. 일의 가치에 합당한 처우를 하자는 것을 거부할 명분도 실익도 없다. 임금체계의 의미에 대해 장기적 안목을 갖고 노사가 합심하여 변화에 나서야 할 때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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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국회 특위 만들어 개헌 추진하자
우윤근 전 주러시아 대사·법무법인 광장 고문 변호사 우리는 지난해 말 그리고 올해 초 극심한 정치혼란, 사회혼란을 경험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의 정의보다는 내 편만이 옳다는 주장이 광장에 횡행하였다. 거의 모든 국민이 이로 인해 마음속 깊이 너무도 큰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다시 평정을 되찾게 되었고, 모든 게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정말 위대한 국민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정치를 제외한 경제·사회·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세계 톱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의 정치 수준은 수십 년 동안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우스갯소리지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 중 하나가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라고 하겠는가. ■ 「 현행 헌법은 갈등 유발 정치체제 OECD 주요국처럼 권력분산 필요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해야 」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들이 있겠지만, 여의도 정치를 경험한 필자의 경험으론 그 첫째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치 지도자들 탓이요, 둘째는 낡은 정치구조 탓이라는 생각이다. 그 첫째 이유 때문에 매번 선거를 통해 최고 수준의 물갈이(최근 19, 20, 21대 총선 교체율은 거의 50% 수준)를 해왔지만, 여야 간 극한 대립 정치는 좀처럼 나아지질 않고 오히려 더 심해진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그간 ‘87년 체제’ 아래 매번 선거를 통해 수많은 인적 교체를 이뤄왔지만, 그것은 중증 암 환자에게 그저 일시적인 진통제 처방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이유, 즉 정치구조에 대한 심각한 구조적 결함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그 점에서 40여년 동안 계속된 소위 ‘87년 체제’의 한계를 이제 넘어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87년 체제’는 과거 권위주의적 체제를 일거에 무너뜨리고 직선 대통령제라는 쾌거를 이룩한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5년 단임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유감없이 드러낸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현행 5년 단임 제왕적 대통령제는 여야가 대통령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국회는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베이스 캠프가 되고, 선거의 승자는 전리품을 챙기듯 권력을 독점하려 하고, 패자는 내내 다음 선거를 위한 투쟁에 나선다. 당선된 대통령은 때론 ‘선출된 군주’로 군림하며 승자독식 구조와 맞물려 제도적으로 보장된 권한 이상의 초월적 권력을 행사하는 속성 때문에 각종 이권이 모이고 결국 권력형 부정부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비교법적 측면으로 살펴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한국·미국·칠레·멕시코·콜롬비아 등 불과 대여섯 나라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가 분권형(이원집정제) 또는 내각책임제를 실시하고 있다. 대통령제를 취하는 나라 중 연방 국가로 권력 분산이 철저한 미국을 제외하면 성공한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 미국도 요즘은 대통령 선거 때마다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OECD 국가 중 최고의 갈등 국가라는 점이다. 남북 분단도 모자라 보수·진보, 여야, 동서, 노사 등 곳곳에서 진영 싸움이 죽기 살기로 일어나고 있다. 화합과 포용, 통합은 요원하기만 하다. 화합과 통합으로 이끌 수 있는 제도 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그 출발은 ‘87년 체제’의 극복이다. 우리는 민주화 열망을 담아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를 1987년 도입했지만, 그 이후 정치·경제·사회 환경의 격변에도 불구하고 38년 된 헌법을 사용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최고의 갈등 국가인 대한민국은 87년 체제로 불리는 ‘낡은 갈등 유발형 정치 체제’에서 협치가 가능한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다. 아울러 현행 소선구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문제가 많은 공천제도도 반드시 바꾸어야 할 것이다. 구체적 개헌 내용, 절차와 시기는 시급히 국회가 개헌특위를 구성하여 4년 중임제, 분권형, 또는 내각제 등에 관해 충분한 논의를 한 다음 여야 합의를 거쳐 내년 지방선거일에 국민투표로 확정하고 이번 조기 대선에 선출된 대통령은 그 임기를 보장해야 현실적인 개헌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윤근 전 주러시아 대사·법무법인 광장 고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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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미·중 디커플링 충격 대비에 사활 걸어야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동아시아연구원 원장 국가 간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하자 과잉 의존의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상호의존이 비대칭적으로 이루어지면 경제적 취약성과 불평등을 초래하고 지정학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략적 경쟁 관계에 있는 국가들은 이 문제에 특별히 민감하다. 현재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트럼프 상호관세는 유독 중국에 집중되어 145%에 달하는 관세 폭탄을 예정하고 있다. 무지막지한 관세전쟁 선포 이면에는 미국이 중국에 대해 안고 있는 과잉 의존의 리스크를 해소한다는 사연이 있다. ■ 「 미국의 중국 과잉 의존 해소 추구 타협해도 상호의존 축소 불가피 한국 적정한 상호의존 확보해야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가입한 후 개도국 지위를 악용해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촉진해 미국 내 제조업 기반을 약화하고 불평등과 실업을 양산했다고 비판해 왔다. 실제로 미국의 대중 수입 의존도는 꾸준히 증가해 왔지만, 중국의 대미수출 의존도는 감소해 상호의존의 비대칭성에 따른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핵심 광물 수입 다변화, 무역적자 시정, 중국의 850억 달러 규모 미 국채 보유액 축소 등 대중 과잉 의존을 해소하기 위해 디리스킹(de-risking) 개념을 동원했다. 상호의존이 주는 혜택을 향유하면서도 과잉 의존이 초래하는 국가안보 리스크를 감축하기 위해서 대외 의존의 다변화를 꾀하고 우호국과 공급망을 재편하여 회복력을 향상하는 한편, 안보 관련 기술의 차단을 추진했다. 반면 현 트럼프 행정부는 의존의 다변화보다는 공급망의 국내 이전으로 의존의 축소를 꾀하고 있다. 상호관세로 중국뿐 아니라 우호국인 멕시코·캐나다·베트남의 수출을 틀어막은 이유는 중국이 이들을 우회 수출기지로 삼아 수출을 늘리고 있다는 점, 결과적으로 미국의 중국 의존이 지속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동맹국 한국과 일본이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고 중국이 최종재를 미국에 수출하는 경로도 차단되고 있다. 문제는 과잉 의존 리스크 해소를 위한 관세 조치가 미·중 상호불신에 따른 보복의 상승작용을 일으켜 관세율이 수입을 금지하는 수준으로 상향된 것이다. 사실상 전반적인 디커플링은 과잉 의존이나 불공정 행위 해소 등 상대 행위에 대한 조치가 아니라 상대국의 약화와 도전의 저지를 목적으로 실행되는 것이다. 총성 없는 전쟁, 경제전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양국이 디커플링으로 이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양국 경제는 여전히 촘촘한 상호의존의 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타협을 시사했듯이 머지않아 협상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미 치솟은 관세율, 이미 설정한 여러 수출 및 수입규제 조치를 원위치로 돌리기는 어렵다. 외교적으로도 중국은 트럼프 관세 대항 연대 구축에 나서고 있으며, 미국은 주요 교역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중국과 거래 제한을 압박하여 중국 고립을 추구하고 있다. 그 결과 양국 간 상호의존의 수준은 현격히 하락할 수 있다. 국가 간 경제적 과잉 의존도 문제지만 과소 의존은 더 큰 지정학적 문제를 야기시킨다. 긴밀한 상호의존의 망은 지정학적 안정 효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1979년 중국의 베트남 침공 이후 단 한 차례 전면전이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주요국들이 지역을 단위로 촘촘히 짜인 초국적 공급망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일간 영토문제를 둘러싼 대립, 남중국해의 긴장 상태에서 국가 간 군사적 갈등을 피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은 풍전등화 신세다. 미·중 양대 시장에 대한 과잉 의존 리스크에 노출되어 전략적으로 다변화의 과제를 안고 있다. 더욱이 미·중 디커플링 리스크가 상승하면서 양자택일의 리스크, 즉 어느 한쪽과 상호의존의 대폭 축소를 감수하는 상황, 나아가 안보 관계의 약화 상황도 마주할 수 있다. 목전의 대미 관세 협상도 중차대한 과제이지만 미·중 디커플링 움직임을 대비하여 과잉 의존을 축소하되 적정한 상호의존이 보장될 수 있도록 외교·산업·통상 삼면의 전략적 조정이 필요하다. 나아가 유사한 상황에 처한 국가들과의 협력과 연대를 통해 새로운 국제질서를 찾아야 하는 사활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동아시아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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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새 정부, 일본 정책 협력 말고 대안 없다
유현석 게이오대 법학부 방문교수·전 말레이시아 대사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등장의 여파가 그 끝을 모를 정도로 위협적이다. 두 달 후면 새 정부가 들어서는 한국은 안팎으로의 변화로 인해 불확실성이 더더욱 크다. 연구년을 위해 도쿄에 와 있으면서 일본의 정책전문가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두 달 후 등장할 한국의 새 정부 아래에서의 한·일 관계가 걱정된다”라는 것이다. 새 정부의 대일정책에 대해 미리 예단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제 국제환경은 180도 달라졌다. 한·일관계 개선을 독려하던 미국은 이제 없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미국이 있을 뿐이다. 누가 새로운 정부를 이끌더라도 현재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한·일의 협력 강화가 한·일 양국의 국익 그리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에 핵심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왜 지금 협력적인 한·일관계가 중요한지 몇 가지만 강조하고자 한다. ■ 「 미 군사적 역할 줄이고 관세 압박 중 대만 침공 때 북 도발 가능성 양국 협력이 국익·안보의 핵심 」 김지윤 기자 첫째, 트럼프의 미국이 만들어가는 국제질서에서 한국과 일본은 같은 배를 탄 동병상련의 파트너로서 협력이 필요한 사안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우선 한·일은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에 있어서 역할을 유지하도록 설득·압박해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동맹 파트너로서 미국의 군사적 역할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안보 전략의 선택지는 크게 좁아지게 된다. 여기에 한·일 관계까지 적절히 관리되지 못해 악화하는 경우 한·미·일 안보협력이 흔들리게 되며 한국의 안보 전략에는 또 다른 구멍이 생기게 된다. 한·일 안보협력이 더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통상관계에서도 미국의 무차별적 관세전쟁에 한국과 일본은 공동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 둘째, 현재 대만해협의 상황은 한·일 두 나라 모두에게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중국은 최근 대만을 상대로 한 공세적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있으며 중화권 언론들은 ‘2025년 10월 중국의 대만침공설’을 보도하고 있다. 이미 일본은 “대만의 위기는 일본의 위기”라고 공식 천명한 바 있고 오키나와 주변 섬들을 잇는 서남제도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한국이 아무리 대만 문제와 선을 그으려고 해도 한국이 대만해협의 위기에서 홀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대만해협은 석유를 비롯한 한국의 무역 물동량의 42.7%가량이 통과하는 수송로이고, 따라서 대만해협의 위기는 한국 경제에 즉각적 악영향을 미친다. 또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중국은 미국 동맹국의 군사적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을 통해 한국 그리고 일본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대만해협의 위기가 한반도의 위기, 동북아의 위기가 되는 것이다. 현재 대만해협의 위기 상황을 볼 때 한·일 양국은 양안 관계의 위험에 대비한 군사·기술·경제 분야의 공조를 준비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셋째, 트럼프의 미국에 당황하고 대응을 모색하고 있는 세계의 주요 국가들은 한국과 일본을 포함하는 새로운 경제적 협력 틀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한국과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보호무역으로 돌아선 미국에 대한 공동 대응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동아시아의 경제적 강국인 한·일의 참여가 있어야만 미국의 새로운 통상정책과 그로 인한 세계 경제의 위기에 대응하는 의미 있는 틀의 모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일 양국의 갈등과 반목은 새로운 협력 메커니즘의 구축과 한국의 참여에 중대한 장애가 될 것이다. 최근 양국 정부의 노력으로 인해 에너지·신기술·사이버안보 등 기술 및 경제 안보적 측면에서 현재 많은 협력 사업들이 논의 중이고 또 진행될 예정이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생존 그리고 미래 먹거리를 위한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새 정부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안정된 한·일 관계는 어느 한쪽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의 국제질서 변화는 양국이 공통의 이익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손을 잡아야 하는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양국의 정치인들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한·일 관계를 선순환 구조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를 위해 양국은 한·일 관계를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는 유혹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작금의 상황에 다른 대안은 없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현석 게이오대 법학부 방문교수·전 말레이시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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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퇴직연금의 벤처 투자 허용 검토해야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한국 경제는 현재 잠재성장률이 1~2%대로 하락해 미래 성장 동력 확보와 이를 위한 벤처산업의 육성이 시급하다. 또한 지난해 12월 65세를 넘긴 사람이 총인구의 20%(1000만 명)까지 늘어나, 고령화 시대 퇴직연금 운용의 효율화도 이슈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이들 이슈를 연결해 보자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반대 의견부터 살펴보자. 퇴직연금은 수익보다 안전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사람들은 손사래를 친다. 이유를 보면 우선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노후 자산이어서 무엇보다 ‘안정적 운용’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게 첫째 논리다. 벤처투자는 본질적으로 고위험 자산이기 때문에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 특성상 실패 가능성이 높고 투자금 회수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게 투자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이유다. ■ 「 ‘5년 수익률’ 국민연금의 4분의 1 안정성 갖추되 수익성도 높여야 근로자 및 운용자에 선택권 줘야 」 일러스트=김지윤 둘째, 투명성 부족과 검증의 어려움이다. 벤처투자는 정보 비대칭의 기술과 비상장 기업 수익모델에 투자하는 구조여서 투명성이 부족하고 논리적·객관적 검증이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퇴직연금의 안전한 운용 원칙과 충돌한다는 우려다. 셋째, 퇴직연금은 수익률보다 무손실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현행 퇴직연금 감독규정이 비상장 주식 투자를 금지하는 것도 퇴직연금의 벤처투자를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벤처투자 허용’ 또는 ‘적어도 벤처투자 선택권’은 줘야 한다는 의견도 강하다. 이들의 주장 이유는 첫째,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다. 예컨대 2023년은 5.26%로 다소 호전됐지만, 지난 10년간 연 환산 수익률은 2.07%에 그친다. 2017~2021년의 5년간 수익률의 경우 국민연금은 연평균 7.63%, 퇴직연금은 그 4분의 1(1.94%)에 그쳤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현재 1000만원이 20년 후엔 500만원으로 반토막이고, 부동산가격 상승까지 포함하면 거의 3분의 1로 줄어든다. 구매력으로 보면 전혀 안전하지 않다. 둘째, 벤처투자의 수익률에 대한 평가다. 벤처펀드 기준 벤처투자의 성과는 고위험 투자라는 인식과 달리, 벤처투자조합을 제도화한 1987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무려 연평균 8.7%였다. 이는 그동안 청산된 1107개 펀드를 전수 분석한 결과로, 특히 전체 펀드의 3분의 2가 연평균 15.7%의 수익률을 올렸다는 점에서 적절한 펀드 선택에 따라선 위험도 상당히 줄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창업 초기 등 공공성이 높은 분야에 투자하는 한국벤처투자(주)의 모태펀드도 청산 펀드 277개를 기준으로 보면, 원금의 1.5배를 회수하고 연평균 9.0%의 수익을 실현했다. 같은 기간 국고채 금리의 약 2배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수익률이다. 특히 다른 연기금들의 벤처투자 성과는 훨씬 좋다. 연기금 벤처투자가 시작된 2014년부터 2023년까지 국민연금의 벤처투자 수익률은 연 13.9%, 사학연금은 10.1%, 공무원 연금 9.2%였고, 과학기술공제회와 고용보험 기금은 각각 11.9%와 17.2%에 달했다. 이들 연기금의 자금력과 신용도가 좋아서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탈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높은 수익률의 배경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31일 서울 한 증권사 영업점에서 퇴직연금 상품 관계자가 관련 홍보물을 부착하는 모습. 연합뉴스 셋째, 이론적 배경도 있다. 미국의 마코비츠 교수는 현대 포트폴리오이론에서 주식·채권 등 전통 자산뿐 아니라 벤처 등 대체투자를 포함한 분산투자로 동일한 위험 대비 기대 투자수익률을 올릴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또한 이 이론은 1970년대 미국 퇴직금 제도 개혁과 자본시장 발전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넷째 국내 벤처산업은 벤처기업 대비 투자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투자 자금이 부족한 ‘매수자 우위 시장’인 점도 퇴직연금의 벤처투자를 뒷받침하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벤처투자 금액은 2023년 기준 0.26배로 미국(1.09%)보다 훨씬 낮고, 이스라엘(1.72%) 대비로는 거의 7분의 1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볼 때 퇴직연금의 벤처투자는 검토할 필요성이 커졌다. 손실 위험이 걱정되면 성과를 봐서 조금씩 투자를 늘리도록 하면 된다. 적어도 근로자 또는 운용자에게 벤처투자의 선택권은 줘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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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조기 대선, 개헌의 기회로 삼아야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리셋코리아 개헌분과 위원 지난 4일 탄핵심판이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헌법재판소장 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주문을 선언하는 순간, 많은 국민은 환호했고, 또 다른 많은 국민은 비탄의 한숨을 쉬었다. 전자의 국민과 후자의 국민은 독일의 헌법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카를 슈미트가 말하는 적과 동지로 구분되는 관계가 아니다. 모두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애국적 국민이다. 미래를 위하여 모두 서로를 포용해야 한다. 이번 탄핵 심판을 계기로 정치권은 정치적 대립은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헌재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헌재의 탄핵 결정은 찬탄과 반탄으로 갈라져 대립하는 양 진영을 다시 통합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 「 헌재, 쟁점에 숙의 노력 보여줘 탄핵심판 불복은 국가 위기 의미 민주당도 개헌에 적극 참여해야 」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가운데)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헌재의 탄핵 결정은 주요 쟁점에 대해서 일반인도 알기 쉽고, 국민통합을 위한 숙의의 흔적이 보인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헌재는 탄핵 소추 과정의 절차적 적법성에 대한 심리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국회 탄핵 소추의 핵심 사유인 내란죄 철회 등의 논란이 있었기 때문인데, 사안의 긴급성과 중대성을 고려해 헌법재판관 8명 모두 절차적 쟁점에 대해 따로 문제로 삼지 않는다고 했다. 사안의 내용상 소추의 동일성은 그대로 유지됐다고 해석한 것이다.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은 단심으로 종결되었고 불가역적인 기정사실이 되었다. 헌재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당사자와 국민도 이제는 국가의 통합과 미래를 위해 애국심으로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는 인내와 용기를 발휘해야 하고, 그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탄핵심판에 대한 불복은 곧 국가적 위기를 의미한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법원의 판결로 2000년 대선에 패배하고 다음과 같은 연설로 존경과 갈채를 받았다. “나는 법원의 판결에 전혀 동의하지는 않지만, 국민 통합과 민주주의의 견고함을 위하여 승복한다.” 지금의 정치위기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정치적 갈등과 양극화로 불행한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헌법을 개정하여 권력구조를 개편하고 정치개혁을 통해 협치의 기반을 재정립하는 일이다. 헌법 개정은 무엇보다도 권력 집중으로 인한 승자독식과 권력남용, 무능과 부패, 무책임, 기능 마비 등을 극복하기 위한 분권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국가에 독점된 권력을 지방정부와 공유하는 수직적 분권을 일차적으로 추진하고, 국가와 지방정부에서 어떤 기관과 어떤 사람에게도 권력을 집중시키지 않고 협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수평적 분권을 해야 한다. 또한 국가나 지방정부가 권력을 남용하는 경우에 주권자인 국민이 나서서 통제할 수 있도록 국민발안과 국민투표, 국민소환과 같은 국민 분권도 해야 한다. 헌법개정 절차도 연성화해야 한다. 국회나 대통령이 필요한 헌법개정을 회피하는 경우에는 국민이 나서서 헌법을 개정할 수 있도록 헌법개정 국민발안제를 도입해야 한다. 승자독식과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중대선거구제의 도입과 같은 선거제도의 개혁과 정당의 신뢰 제고와 민주화를 위한 정당법 개정과 같은 정치개혁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미 사실상 시작된 차기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의 정치병을 치유하고, 국민을 통합시키고, 제7공화국의 미래를 여는 개헌과 정치개혁의 실천적 무대가 되어야 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마침 우원식 국회의장은 어제 “이번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지난 대선 때마다 주요 후보 대부분이 개헌을 공약했지만, 각자의 정치 셈법에 따라 번번이 개헌 노력이 좌초됐다. 이번에는 달라져야 한다. 민주당은 탄핵에 집중하기 위해 개헌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탄핵 결정이 나온 만큼 민주당도 개헌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탄핵 이후 60일 내 치르는 조기 대선이지만 정치권에서 의지만 확고하면 실행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개헌과 정치개혁이 지금까지처럼 대선 후보자의 공허한 구두 약속으로 그치지 않게 하려면 대선 후보자들이 개헌을 실현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로 확정 지어 낡은 헌법을 고쳐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리셋코리아 개헌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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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1년 내 개헌하고 물러나는 과도정부 만들자
김황식 전 국무총리 요즈음 하루하루가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의 연속이다. 나라 걱정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와 이어진 탄핵 정국 속에서 국가 위신은 추락하고, 국론은 분열되어 가히 내전 상태이다. 민생은 어려움에 빠지고 국가의 장래에 대한 국민의 자신감이 흔들린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는 정당이나 정치 지도자에게는 정권 유지나 쟁취가 최우선 목표일 뿐 국가의 이익이나 장래는 뒷전이다. 그 과정에서 아전인수식 상황 판단이나 법 해석으로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 「 국론분열 ‘내전 상태’에 빠진 한국 개헌 통해 구조 고쳐야 혼란 극복 헌재 판결 후 거국 중립내각 필요 」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결정을 하고, 설혹 조기 대통령선거가 치러져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우리 사회가 불안정의 매듭을 풀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혼란한 상태로 빠져들 것이 틀림없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 원인을 성찰하고 반성하여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헌법 개정이다. 현행 헌법은 1987년 당시 국민의 염원이었던 대통령 직선과 장기 집권에 의한 독재를 막기 위한 임기 5년 단임제를 핵심으로 한 것으로, 나름대로 긍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많은 폐해를 양산하여, 38년이 지난 지금 그 역사적 수명을 다하였다. 단임제이다 보니, 임기 초반의 강력한 권한에 비해 임기 후반에 찾아오는 레임덕으로 국정의 안정적 지속적 추진이 어려워지고, 장기적 비전을 갖고 국정을 수행하기보다는 임기 중 성과를 얻기 위한 조급한 국정 운영에 매달렸다. 정권이 교체되면, 심지어 정권 재창출의 경우에도, 전 정부의 정책을 계승·발전시키는 대신 쓸어버리고 달리 새롭게 시작하기도 하였다. 이는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국제관계에서 신뢰를 손상해 국력의 낭비를 가져왔다. 특히 근소한 차이에 의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승자 독식의 독점적 권한 행사와 편가르기로 갈등과 대립이 증폭되어 국력을 결집할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정치력이 미흡한 대통령과 투쟁 일변도 거대 야당의 타협 없는 대립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이제는 이러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헌법 개정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면 어떤 방향으로 개헌을 할 것인가? 우선, 정부와 의회의 지배를 일치시켜 책임정치를 구현하고, 특정 개인의 인기보다는 정당의 정책 대결을 통해 정권을 담당하는 내각책임제를 생각할 수 있다. 선거제도를 개편해 정당에 대한 지지 비율이 정확히 의회 의석수에 반영되도록 한다. 한 개 정당이 50%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면 두세 개의 정당이 연립하여 정부를 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대화와 타협을 하게 된다. 능력 있는 총리는 10년 이상이라도 장기 봉직할 수 있고, 능력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퇴진시킨다. 현재의 정당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 때문에 내각책임제 채택이 어렵다면,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견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둔 대통령제 내지는 이원집정부제를 생각할 수 있다. 국무총리가 책임 있게 대통령을 보좌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현재와 같은 대통령의 총리 임면권을 대통령에게서 떼어내어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거나 선출하도록 한다.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권한을 적절히 분배해 독점적 권한 행사를 막고 복잡다기한 국정 과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한다. 대통령과 총리의 조합에 따라서는 지역·세대·이념을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 기여할 것이다. 개헌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지금 개헌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된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이 복귀한다면 이미 천명한 대로 임기를 단축하고 개헌에 착수하여야 한다.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후보자들은 개헌을 최우선 과제의 공약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그 공약이 공약(空約)에 그칠 위험이 크다. 그렇기에 거국적 중립 내각을 구성해 모범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1년 내 개헌을 완료하고 퇴임하는 과도정부형 대통령에 의한 통치 시기를 거칠 수는 없을까? 지금 같은 죽기 살기식 대권 경쟁이 불러올 혼란이 뻔히 보이고 그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