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행시 합격 사무관, 왜 로스쿨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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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12.31. 오후 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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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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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사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조기(弔旗)가 걸려 있다. /뉴스1

2020년 행정고시 수석을 차지한 A씨는 합격 수기에 “국민에게 봉사하는 참된 공직자가 되겠다”고 썼다. 하지만 그는 불과 3년 만에 공직을 그만뒀다. 지난 1월 근무하던 기획재정부에 사표를 내고 로스쿨에 재학 중이다.

A씨처럼 행정고시를 거쳐 청운의 꿈을 안고 공직에 입문한 청년들이 줄줄이 퇴직하고 로스쿨에 진학하고 있다. 2022년 기재부에 배치된 초임 사무관 25명 중 5명이 로스쿨에 가거나 유학을 떠나겠다며 일찌감치 공직을 떠났다. 조만간 2025년 로스쿨에 합격한 사무관들도 줄줄이 사표를 던질 예정이라고 한다. 일부 상위권 로스쿨에서는 “사무관 출신 재학생끼리 동문회를 만들어도 되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앙 부처 인재들이 공직을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근무 강도에 비해 급여가 넉넉하다고 보기 어렵다. 옛 선배들처럼 퇴직 이후 ‘낙하산’ 기관장으로 가는 경우도 크게 줄었다. 행정고시를 붙어도 실속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세종시에 거주해야 하는 것과 경직적인 조직 문화도 부담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은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들이다. 공직에 막상 입문하고 난 이후에는 비대해진 국회 권력 앞에서 젊은 사무관들이 좌절감을 느낀다는 이야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툭하면 국회로 공무원들을 호출하고 하급자 부리듯 닦달하는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의 횡포에 시달리면 일할 맛이 뚝 떨어진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야근도 결국 전화를 걸고 공문을 보내 사무관들을 ‘콜센터 직원’처럼 대하는 의원실 때문에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워라밸이 낮은 이유도 세종시에 사는 사무관들을 툭하면 여의도로 불러대는 게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사무관들 중에서는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에 불려간 장차관이 젊은 국회의원들로부터 호통을 듣는 모습을 보고 “이런 꼴 보려고 행정고시 봤는지 자괴감이 든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후일 바늘구멍을 비집고 들어가 장차관이 된다고 한들 ‘커리어의 말로’가 저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거 정부 주도의 개발 시대 때는 행정부 권력이 강했지만 요즘은 입법부의 힘이 행정부를 압도하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행정부 수반을 탄핵한 힘을 실제로 보여준 다음 국회는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이와 연동해 국회가 행정부 공직자들을 압박하는 강도가 훨씬 높아졌다.

중앙 부처 사무관들은 훗날 국가를 위해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 훈련 중인 인재들이다. 공들여 키워야 할 국가의 자산이다. 어려운 관문을 거쳐 공직에 입문한 젊은이들이 로스쿨로 떠나게 만드는 주범이 다름 아닌 국회라는 현실을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국회는 스스로 “국회가 국민이고, 국민이 국회”라고 한다. 국회가 공직 사회를 위기로 몰아넣지 않도록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아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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