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제조사를 공개해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최근 전기차 화재가 잇따르면서 열폭주(배터리의 연쇄적 폭발)로 인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자,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7일 국토교통부 측은 본지에 “차량의 다른 제원처럼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도록 관련 법령을 고칠 예정”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선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법 개정이 아니라, 현행 자동차관리법의 시행령이나 규칙을 고치면 된다고 국토부 관계자는 덧붙였다. 현재 자동차 회사들은 차량을 출시할 때 차량의 크기, 무게, 출력, 연비 등 다양한 정보를 공개한다. 그러나 주행거리 등 전기차 성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배터리의 경우, 용량 등만 공개할 뿐 제조사 정보는 밝히지 않았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디자인, 출력 등으로 차를 고르는 것처럼 배터리 제조사를 따져 차량을 선택하는 이가 앞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국토부가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기로 방침을 정한 건 전기차 핵심 부품의 정보를 깜깜이로 둘 경우 부작용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자동차 업체들은 차량을 출시할 때 공식적인 안내문 등에 배터리 제조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자동차관리법은 자동차의 다양한 제원을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배터리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와 배터리사 역시 기업 간 계약이라는 이유로 제조사 공개를 꺼려왔다. 이 때문에 전기차 화재가 날 때마다 배터리 탑재와 관련해 잘못된 정보가 온라인, 전기차 커뮤니티 등에 떠도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지난 1일 화재가 발생한 벤츠 전기차엔 세계 10위 업체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됐지만 세계 1위 CATL 배터리가 탑재됐다고 잘못 전해졌다. 국토부 측은 배터리 정보가 차량의 안전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품이어서 제조사를 공개하는 게 맞는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이와 함께 내년 2월부터 ‘배터리 인증’ 제도도 시행한다. 현재는 자동차 회사가 배터리를 단 차량을 만들어 판매하고 정부는 사후 점검을 하는 체계다. 그러나 내년부턴 차량 등록 시부터 배터리마다 식별 번호를 부여해 별도 등록한 뒤, 안전 성능 시험도 사전에 거치게 하겠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자동차 등록원부에 배터리 정보가 등록돼 운행부터 폐차까지 이력이 관리된다”고 했다.
이와 별도로 매년 하반기 진행하는 ‘자동차 안전도 평가’에도 배터리 안전 기능 관련 항목을 추가한다. 배터리 이상 작동을 감지할 경우 통신망과 인터넷을 활용해 차주와 소방 당국 등에 자동으로 알림을 발송하는지 여부 등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올해 말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전기차 배터리 관련 정보 공개 강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유럽연합(EU)은 ‘디지털 배터리 여권(DBP)’ 제도를 만들어 2027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배터리의 예상 수명, 제조별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량 등 상세 정보를 디지털화해 이를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국내 배터리 3사의 배터리 제품이 저가 중국산보다 품질 등에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배터리 제조사 등이 공개되면 국내 3사가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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