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박병선 박사가 서고서 찾아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앞섰다”
1973년 전시 이후 처음 선보여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인쇄 서적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직지)’의 실물이 50년 만에 프랑스 파리의 서고를 벗어나 일반 공개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6일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오는 4월 12일(현지 시각)부터 7월 16일까지 열리는 특별전에서 이 기관이 소장한 ‘직지’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특별전은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Imprimer! L’Europe de Gutenberg)’으로, 도서관 측은 홈페이지에서 ‘인쇄술의 발전 역사와 성공의 열쇠를 추적하는 전시’라고 밝혔다. 또 전시 유물 중 ‘금속활자로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인 직지(한국·1377)’를 소개했다.
‘직지’는 고려 우왕 3년인 1377년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한 책이다. 상·하 2권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하권만 남아 있다. 주(駐)조선 프랑스 대리공사(1888~1891)와 공사(1896~1905)를 지낸 외교관 빅토르 콜랭 드 프랭시(1853~1924)가 조선에서 구입해 프랑스로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골동품 수집가 앙리 베베르의 손을 거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 같은 도서관이 소장했다가 2011년 대여 형식으로 반환된 외규장각 의궤와는 달리 약탈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환수해야 하는 유물로 보기도 쉽지 않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한 차례 공개된 뒤 오래도록 도서관 서고에 묻혀 있던 ‘직지’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72년 이 도서관 특별 보조원으로 일하던 한국인 박병선(1928~2011) 박사가 재발견한 덕분이다. 그해 세계 도서의 해 기념 ‘책의 역사’ 특별전에 내놓을 만한 한국 책이 없어 서고를 뒤지던 중 구석에서 먼지 묻은 ‘직지’를 찾아냈다고 한다. 그때까지 직원들은 중국 책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박 박사는 2003년 본지 인터뷰에서 “책 뒤에 1377년 금속활자로 찍었다고 쓰여 있었지만 사람들이 믿지 않아 직접 고증 작업에 들어갔고, 중국·일본의 활자 전문 서적을 구해 밤새 공부했다”며 “결국 글자 가장자리의 금속 흔적인 ‘쇠똥’을 발견해 금속활자본임을 입증한 뒤 전시회에 내놓았다”고 말했다. 곧 이것이 구텐베르크 성서(1455)보다 78년 앞선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사실은 1972년 4월 28일자 조선일보에 특종 보도됐다. 신용석 파리 특파원이 쓴 이 기사는 세계적인 특종이 됐다.
‘직지’가 마지막으로 공개된 것은 발견 이듬해인 1973년 이 도서관의 ‘동양의 재보(財寶)’전에서였다. 당시 신용석 특파원은 조선일보 6월 23일자 5면 기사에서 “프랑스 국립도서관 측에서는… 또 한번 세계적으로 ‘직지심경’이 현존하는 (금속)활자본 중에서 최고임을 주지시키고 있다”고 썼다. 또 “프랑스의 동양 관계 학자들이 한국 문화의 고유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다행”이라는 박병선 박사의 말을 실었다.
한국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이번 ‘직지’ 전시를 위해 소장처인 프랑스 국립도서관 측과 협력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단은 지난해 대한불교조계종이 ‘직지’의 프랑스어 번역본을 발간하는 일을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