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아주 나빴다 [한주를 여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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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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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한주를 여는 시
이승하의 '내가 읽은 이 시를'
나혜석 시인이 남긴 시
'외로움과 싸우다 객사하다'
화가이자 시인 페미니스트


외로움과 싸우다 객사하다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 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 가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 공(空)인 나는 미래로 가자.


사남매 아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잘못된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후일, 외교관이 되어 파리 오거든
네 에미의 묘를 찾아 꽃 한 송이 꽂아다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아티초크, 2016에서.

나혜석(1896〜1948년)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고 뛰어난 시인이었다. 일본 유학을 하고 온 신여성이었고 여성의 권익을 부르짖은 페미니스트였다. 일본 유학 도중 방학이 돼 들른 서울 집에 오빠의 친구가 놀러 왔으니, 상처한 지 2년 되는 변호사 김우영이었다. 김우영의 청혼이 있자 오빠가 권유하기도 해 결혼을 한다. 

네 자녀를 낳고 평범하게 살던 나혜석은 유럽 여행에 나섰다가 운명이 바뀐다. 일본 정부의 외교관 대우를 받고 있었고 갑부인 김우영은 그 엄혹한 시대에 부부 동반 유럽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때마침 그 당시 세계 화단에 야수파 열풍이 불어 파리에 온 김에 그 화풍을 배우고 가겠다고 나혜석이 간청하자 김우영은 허락하고는 법률 공부를 하러 독일로 떠난다. 그때 유럽을 순방 중이던 최린은 천도교의 지도자로 역시 친일 귀족이었다. 최린은 나혜석에게 파리 시내 안내를 부탁했고 두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데이트를 한다.

나중에 조선에 온 김우영이 목격자의 증언을 제시하며 아내의 밀회를 추궁하자 그게 무슨 죄가 되느냐, 호감을 좀 갖고서 데이트 몇 번 한 정도였지 별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한다. 이 해명을 용납하지 않고 이혼을 요구한 김우영은 아이들도 못 만나게 하고 위자료도 주지 않고 이혼을 단행한다. 

[사진=아티초크 제공]


당시 사회는 나혜석을 '화냥년'이라며 낙인 찍는다. 나혜석은 최린에게 구명과 생활비를 부탁하지만 최린이 이를 거절해 소송을 건다. 그러자 사람들이 더욱더 그녀에게서 등을 돌린다. 그래서 쓴 것이 이 시다. 사남매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내용으로 쓴 시는 당시의 "사회제도와 잘못된 도덕과 법률과 인습"에 대항하는 격렬한 저항이다. 자신을 과도기의 선각자로, 또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로 간주했다. 

이혼 이후 아이들을 볼 수 없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암자를 전전하면서 연명하다가 서울 자혜병원 무연고자로 발견된 한 구의 시체가 바로 나혜석의 최후였다. 이 시는 사실 절규다. 나혜석이 죽은 지 76년이 됐는데 지금 이 땅에서는 여성 차별이 없는가.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는 국가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나를 포함한 남자들이 반성해야 한다.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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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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