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돈, 더 큰 돈…미국 의료 실패 한발 앞까지 온 한국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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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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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비 면제받은 뉴욕대 전공의
필수진료 선택 거의 하지 않아
전공별 연봉 격차 여전히 크고
사모펀드 20년간 1조 달러 투입
펀드 평균 수익률 이상 높이려면
앞으로도 필수진료 부족 이어질 듯
영국보다 미국 닮은 한국 의료계
미국에서는 올해 들어 두명이나 의과대학에 10억 달러를 기부했다. 하지만 필수진료 의사 수를 늘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국 의대 졸업생은 학비를 면제받아도 필수진료과로 가지 않았다. 악명 높은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어떻게 구축됐는지 알아봤다. 우리나라와의 공통점도 짚어봤다. 

의료공백 장기화로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사진=뉴시스]


올해 미국에서는 의과대학에 10억 달러(약 1조3800억원)를 기부한 인물이 두명이나 나왔다. 지난 2월(현지시간)엔 루스 고테스먼 전 교수가 자신의 모교인 뉴욕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에 10억 달러를 기부했다. 7월 8일에는 언론 재벌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이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에 10억 달러를 기부했다. 

■ 쟁점➊ 기부금 경제학=이로써 미국에서 기부금으로 학비를 면제받는 의과대학은 3곳이 됐다. 뉴욕대는 2018년 인테리어 전문업체 홈디포 공동창업자인 케네스 랭곤이 10억 달러를 기부하는 등 45억 달러를 모금해 의대생들의 학비를 모두 면제해줬다. 미국의과대학협회(AAMC)에 따르면 미국 의대 평균 학비는 올해 기준으로 연간 23만5827달러(약 3억2702만1300원)다. 

의대 기부자들의 공통적 목적은 의사 지망생들이 학비가 없어서 공부할 수 없는 일을 방지하고, 미국의 열악한 필수진료(primary care) 접근성을 개선하려는 것이다. 미국에서 필수진료란 가정의학과·내과·소아과·산부인과 등을 말하기도 하고, 거점 병원에 가기에 앞서 진료하는 1차 진료기관을 뜻하기도 한다. 

미국 의대에 기부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난 건 악명 높은 미국의 의료 시스템 때문이다. 영국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0월 '미국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버는 이유'라는 기사에서 "미국 의사 교육 시스템의 문제는 의사 공급이 인위적인 방해로 줄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사협회(AMA)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필수진료 의사 비중은 전체의 30%에 불과하고, 미국인 8300만명이 필수진료가 어려운 지역에 살고 있으며, 소아과 의사가 없는 카운티(동)가 전체의 90%에 달한다. 

■ 쟁점➋ 기부금과 전공의 역학=그렇다면 모든 미국 의대생의 학비를 면제해주면 악명 높은 미국 의료 시스템과 필수진료 부족 상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학비를 전액 면제받은 뉴욕대 의대생들이 처음으로 전공의(레지던트) 세부 전공을 선택한 것을 보면 충분치 않아 보인다.

[자료 | 한국고용정보원 2021년, 미국 노동통계국 2023년, 영국 통계청 2023년]


뉴욕대 의대가 올해 3월 18일 발표한 2024년 졸업생 107명의 전공 선택 비중을 보자. 내과·산부인과·소아과 등 필수진료 과목을 선택한 졸업생은 14.0%로 전미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내과는 1%대(2명), 소아과는 6.5%에 불과했다. 75% 이상이 의사가 부족한 지역이 아닌 대도시 대형병원에서 수련 과정을 밟기로 했다.

학비를 면제받은 뉴욕대의 첫 전공의들은 기부자의 의도와 달리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 전공의를 무조건 비판하기보단 의료 시스템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미국 전문의 간 연봉 격차라는 '더 큰 돈', 민영화 의료 시스템에서 사모펀드가 투자한 '더욱더 큰 돈'이 그 이유여서다. 4년 총액 100만 달러 남짓한 학비 면제는 '작은 돈'에 불과했던 거다. 

'더 큰 돈'인 미국 의사 간 연봉 격차는 어느 정도일까. 미국 노동통계국의 2023년 조사를 보면 미국의 연봉 상위 15위는 모두 의사다. 에지키엘 이매뉴엘(Ezekiel Emanuel) 펜실베이니아 의대 교수는 올해 4월 보건 전문매체 스탯뉴스(STAT news)에 기고한 '의대 학비 면제로는 필수진료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글에서 더 큰 돈의 액수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필수진료 과목 의사 연봉 평균은 25만~27만5000달러인데, 심장전문의 연봉은 50만7000달러, 정형외과 전문의는 57만3000달러다. 의사 생활을 30년 동안 한다면 필수진료 과목 의사와 심장전문의 급여 차이는 750만 달러에 달한다." 면제받은 학비 100만 달러의 대략 7.5배다. 

'더욱더 큰 돈'은 의료계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로부터 나온다. 의료 민영화의 당연한 결과다. 사모펀드는 2021년 기준으로 최근 10년간 의료 부문에 1조 달러를 쏟아부었다. 2021년 투자금만 2000억 달러다. 비영리단체인 미국반독점연구소(American Antitrust Institute·AAI)에 따르면 사모펀드의 미국 의료시장 점유율은 이미 50%를 넘겼다. 미국 전체 외과 의사의 30% 이상이 사모펀드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민영화된 의료 시스템은 오직 자본의 논리로 움직인다. 사모펀드가 미국 의료시장에 투입한 1조 달러의 돈은 연평균 최소 10% 이상의 수익을 내야 한다. 케임브리지 어소시에이츠에 따르면 미국 사모펀드의 2000~2020년 연평균 수익률이 10.48%이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S&P500 지수의 연평균 수익률도 5.91%에 불과하다. 사모펀드의 영향력 아래 있는 병원의 초점은 돈이 되는 진료과목, 돈이 되는 지역에 편중될 수밖에 없다. 

경제매체 블룸버그 창업자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지난 7월 8일 존스홉킨스대학 의대에 10억 달러를 기부했다. [사진=뉴시스]


■ 의료체계 같은 점 다른 점=미국 의사들은 공급을 줄여서 가격을 높이는 경제학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 고연봉이라는 보상을 얻어냈다. 미국 내과전문의협회가 전공의 숫자를 결정하는 졸업후교육인증위원회(Accreditation Council for Graduate Medical Education·ACGME)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데, 그 비용은 미국의 노인의료보험인 메디케어에서 나온다. 

ACGME가 전공의 수를 늘리지 않는 한 미국 의사 수는 증가하지 않는다. 2021년 기준 미국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7명으로 3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OECD 평균 의사 수는 1000명당 3.7명이다. 그 결과, 2023년 기준 미국 연봉 상위 15위 직업은 모두 의사였다(미국 노동통계국). 

우리나라의 의료체제는 무상의료 체제인 영국보다 민영화 체제로 악명 높은 미국과 오히려 비슷하다. 영국의 2023년 연봉 상위 15개 직업 중 의사는 3개에 불과했고, 의사는 13위에 처음 등장한다(영국 통계청).

우리나라의 통계도 미국과 비슷하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21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봉 상위 15개 직업 중에서 11개가 의사였다. 필수진료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미국과 같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미국보다도 적다. 미국보다 1000명당 의사 수가 적은 OECD 회원국은 4개국인데, 한국이 2.56명으로 그중 하나다. 우리나라 의사 수도 미국과 유사하게 의대 정원이 결정한다. 최근 사태에서 알 수 있듯 정부조차 사실상 그 숫자를 함부로 늘릴 수 없다는 것도 미국과 비슷하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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