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실과 96실의 간극… 영등포 쪽방촌 재개발 '제길' 갈까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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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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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2020년 시작된 공공주택사업
2024년에야 이주 단계 돌입
원주민 재정착 위한 순환식 도입
이를 위한 임시주거시설 확보 필요
현재 계획은 고가 밑 96실 조성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와
시설 증가시 공사 기간 줄겠지만
쪽방촌 주민 흩어질 우려도 있어
영등포 쪽방촌이 '재개발 절차'에 들어간다. 사업주체는 영등포구, LH 등 공공이다. 개발 방식은 독특하다. 재개발이 끝난 후에도 쪽방촌 주민을 이곳에 '재정착'시키기 위해 선순환 방식을 택했다. 쪽방촌 주민을 임시주거시설로 옮긴 다음, 재개발이 끝나면 재입주시키겠다는 거다. 문제는 영등포 쪽방촌 주민을 모두 임시주거시설로 옮길 수 있느냐다. 자칫하면 첫단추부터 잘못 끼우게 생겼다.

영등포역 쪽방촌은 2020년 정비 계획이 세워졌다.[사진=뉴시스]


영등포역 쪽방촌 재개발이 4년 만에 '이주 절차'로 접어들었다. 2020년 국토교통부는 영등포역 일대 쪽방촌을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해 재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원래 살고 있던 주민들이 재정착하는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도 내걸었다. 쪽방촌을 재개발하는 동안 원주민을 임시주거시설로 이주시킨 다음 재개발이 끝나면 재정착시키겠다는 거였다. 

재개발 과정에서 원주민은 통상 '임시로 살 곳'을 구한다. 일반적으로 재개발 조합원이나 기존 주민은 알아서 살 곳을 찾아 나간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민간 임대주택에서 거주하는 식이다. 영등포역 쪽방촌 사업은 다르다. 민간 도시정비사업의 조합원이나 일반 주민과 달리 쪽방촌 사람들은 공사 중에 잠시 머무를 곳이 없다. 이들이 쪽방촌에 사는 이유가 '가장 저렴한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어서다. 쪽방촌만큼의 임대료를 내고 살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그래서 재개발을 맡은 영등포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도시주택공사(SH)는 공공주택개발 지역인 쪽방촌을 3블록으로 나누기로 했다. 블록별로 철거·공사 등을 진행해 쪽방촌 주민들의 임시주거시설을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3블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영등포역과 가장 가까운 부지는 M-1블록(민간개발), 중간에 있는 부지는 S-1블록(SH), 영등포역 고가와 가장 가까운 부지는 A-1블록(LH)이다(그림➊). M-1블록과 A-1블록의 주민들을 먼저 임시주거시설로 옮기고(그림➋) 해당 블록에 있는 쪽방 건물들을 철거한다. 

사업을 마치고 A-1블록에 공공임대주택을 만들면 임시주거시설에 있었던 주민들과 S-1블록 주민들이 그곳으로 이동하고 S-1블록의 철거를 추진(그림➌)한다. 이후 S-1블록의 공공주택까지 모두 준공하면 사업이 끝난다. 이를 위해 SH는 10월 보상 협의를 진행한다. 이후 쪽방촌 주민들이 임시주거시설로 이동하면 2025년 말 LH가 담당하는 A-1블록에서 첫 공사를 시작한다. 



이같은 순환식 개발은 한번에 철거하고 공사하는 일반적인 공사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게 분명하다. 그러면 공사비가 더 들어갈 공산도 크다. 그렇다면 왜 순환식 개발을 해야 하는 걸까. 이는 "우리가 왜 쪽방촌 주민들이 서울에 계속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보건복지부가 2021년 발표한 '노숙자 등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쪽방촌 주민들이 가장 많이 기대고 있는 수입원은 주거급여나 생계급여 같은 공공부조다. 그다음 주 수입원은 공공근로인데, 서울에서 공공근로 일자리를 구하려면 서울에서 거주해야 한다. 공공근로가 아닌 민간 일용직을 구하기 위해 인력 사무소에 가더라도 대부분의 일감은 서울과 수도권에 있다.

이 때문에 서울에 있는 쪽방촌 거주민의 30%가량은 쪽방촌에 머물길 원한다. '노숙자 등 실태조사'에서 "떠나길 원한다"고 답변한 사람 중 80.0%도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임대로 이사하길 바랐다. 그 이유는 모두 저렴한 주거비였다. 영등포역 쪽방촌 공공주택지구 사업은 이 요구를 충족할 가능성이 높다.

LH가 제시한 공공임대 평면은 원룸형이다. 70% 이상이 6.6㎡(약 2평) 이하인 데다 싱크대·세면대가 없는 쪽방과 달리 크기는 최저주거기준(14㎡ 이상)을 충족한다. 발코니, 욕실, 주방도 모두 갖추고 있다. 쪽방보단 당연히 좋은 주거 시설이다.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쪽방촌에 사는 주민들은 통합임대주택에서 최저 시세 30% 수준의 임대료만 내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영등포 쪽방촌의 재개발이 진통 없이 진행될 수 있을진 지켜봐야 한다. 무엇보다 임시주거시설의 규모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재개발 계획을 발표했던 2020년 당시 국토교통부는 영등포역 쪽방촌 주민의 수를 360여명이라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서울시는 임시주거시설의 규모를 300실가량으로 예정했다. 하지만 직접 임시주거시설을 만드는 LH는 300실이 아닌 96실로 계획을 세웠다. 

서울시 쪽방 재개발 사업 담당자는 "임시주거시설이 96실이라면 사업을 진행할 때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LH의 주장은 다르다. 96실은 계획했던 물량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LH 관계자는 "300실은 검토한 적도 없다"면서 말을 이었다. "서울시와 협의를 통해 쪽방 상담소에 등록된 인원을 제공받았고, 이를 근거로 임시주거시설 규모를 확정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왜 이런 간극이 발생한 걸까. 국토부와 서울시, LH 등 사업주체들이 '공론의 장'을 열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확한 쪽방촌 주민수, 임시주거시설 규모와 위치 등을 사전에 협의했다면, 이제 와서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할 이유가 없다. 쪽방촌 주민이 임시주거시설 96실에 들어가 순환식 개발을 지체하지 않고 진행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공사가 늦어진다면 '영등포 쪽방촌 재개발' 사업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해답은 쉽게 찾기 힘들 듯하다. LH는 "96실이면 순환식 재개발에 문제가 없다"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서울시는 "300실 규모가 아니면 공사가 늦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영등포역 고가 아래 300실 규모의 임시 주거시설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면 대체 부지를 마련해야 하는데, 주민들이 흩어질 수 있는 데다 그 또한 쉬운 과정이 아니다. 공공이 순환식으로 재개발하는 첫번째 쪽방촌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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