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북핵을 둘러싼 미묘한 분위기

입력
기사원문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최익재 국제선임기자
지난달 27일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발언이 국제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그로시 사무총장이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2006년 사실상 핵보유국(a de facto nuclear weapon possessor state)이 됐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핵무기의 확산을 막고 핵의 평화적 사용을 위해 설립된 유엔 산하 기관의 수장이 북한의 핵무기를 현실적으로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국제사회는 적잖이 당황했다.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용인하나
김정은 “시간은 우리편” 자신감

다음날 IAEA는 “그로시 사무총장의 발언은 유엔 안보리 결의가 가진 유효성을 강조하면서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우리 외교부도 그로시의 발언이 전해지자 “북한의 비핵화는 전 세계 평화·안정을 달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자 국제사회의 일치된 목표”라고 밝혔다. 그로시의 발언에 직접적인 반박을 피하면서 북한 비핵화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다. 파문은 서둘러 진화되는 듯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사실 IAEA 업무에 ‘핵보유국 인정’은 없다. IAEA가 지금까지 특정 국가를 공식적으로 새로운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단지 평화적 핵 사용을 위한 감시기구의 역할만을 해왔다. 공식적인 핵보유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의해 이미 명시돼 있다.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 등 5개국이다. 국제사회는 1969년 6월 유엔 총회를 열어 NPT를 채택하면서, 당시 공식적인 핵보유국을 5개 나라로 제한해 못 박았다.

하지만 NPT 미가입국인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등 3개국도 비공식적이지만 핵 보유를 용인받고 있다. 여기엔 국제 핵 질서를 좌우하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 미국이 용인한 3개국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미국에 적대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핵 미사일이 절대 미국을 겨누고 있지 않을 국가들에 대해서만 내키지는 않지만 핵 보유를 용인해준 것이다. 북한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공식 인정은커녕 미국의 용인조차 받기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인정 또는 용인을 받지 못하면서 핵무기를 지속적으로 보유한 나라는 없다. 우크라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한때 핵무기를 보유했지만 폐기 또는 반납했다. 리비아와 이라크의 경우 미국의 힘에 의해 핵 프로그램이 폐기됐다. 이란도 현재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강력한 제재로 인해 쉽지 않은 상황이다.

IAEA 사무총장의 발언 외에도 최근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달갑지 않은 소식은 또 있다. 지난 여름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이 대선을 앞두고 채택한 정강에 ‘북한의 비핵화’가 빠졌다는 것도 우려할 만한 일이다.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일부 측근들은 북한과의 핵 군축 회담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북한의 핵 문제가 비핵화에서 핵 군축 협상으로 조금씩 자리를 이동하려는 모양새다.

민주당에서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버락 오바마 정부(2009~2017년)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는 핵무기 고도화를 위한 시간만 벌어줬다는 비난을 받으며 결국 실패했다. 조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도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뛰고 있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내세운 북핵 정책도 오바마·바이든과의 차별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로썬 북핵 문제의 해결사로 나서야 할 미국의 차기 정부에서도 손쓸 방도가 없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나온 그로시 사무총장의 발언은 국제사회가 이젠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사안으로 보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낳게 한다.

최근 이런 분위기는 지난 2022년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강조했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