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실수인가 실력인가, 무서워해야 할 중국 기술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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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10.05. 오전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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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의 차이나 워치] 중국 경제의 두 얼굴
중국 관련 최근 두 갈래 보도가 눈에 띈다. 하나는 중국 위기론이다. 침체의 중국 경제에 집중한다. 중국이 망하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중국 굴기론이다. 중국의 기술 약진에 초점을 맞춘다. 머지않아 미국을 제치고 세계의 패권을 움켜쥘 무서운 기세다. 뭐가 맞는 말인가? 중국의 실제는 어느 쪽에 가까운 걸까? 먼저 중국의 어두운 면을 보자.

올해 ‘역사의 쓰레기 시간’ 신조어 유행
9월 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4'의 중국 업체 하이센스 부스. '세계 최초''세계 최소'수식어가 붙은 중국 신제품들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신화=연합뉴스]
8월 중순 중국 인터넷 공간에 짠한 글 하나가 올랐다. 집주인이 적은 세입자의 죽음이다. 집주인은 산시성 시안 근교의 30층 아파트를 한 여성에게 세를 놓았는데 지난 6월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세입자가 죽은 지 오래돼 사체 식별이 곤란할 정도란 것이었다. 경찰 조사를 통해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집주인은 이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먹먹한 심정에서 글을 올린다고 밝혔다.

세입자는 서부 빈곤지역 닝샤 출신이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21세기 중국 상위 100개 대학을 뜻하는 베이징의 211 대학 중 하나를 나왔다. 졸업 후 줄곧 공무원시험 준비를 했고 고향에서 치러진 여러 시험에서 필기성적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어진 면접에선 거듭 고배를 마셨다. 명문대를 나왔으면서도 가족의 기대에 부응할 일자리를 찾지 못한 그는 결국 33세를 일기로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가족과의 마지막 연락은 4월 중순으로 생활비 부탁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그의 하루 지출은 5위안(약 938원)을 넘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의 딸이라는 집안 배경 탓에 그가 면접에서 거듭 낙방했을 것이라며 탄식했다. 지난 8월 중국의 청년 실업률이 18.8%로 중국 정부가 통계 방식을 새롭게 변경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3년 전 중국에선 분투한들 헛수고라며 그냥 편안히 누워 내 한 몸 건사하자는 탕핑(躺平)이란 말이 유행했다. 개인적 체념 차원이다. 그러나 올해는 ‘역사의 쓰레기 시간’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실패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체제 저항적 뜻이 담겼다. 중국 경제의 부진은 여러 요인에 기인한다. 부동산 침체와 내수 부진, 천문학적 지방 부채, 높은 청년 실업률, 인구 감소와 고령화, 민영기업 위축, 미국의 견제 등 하나 둘이 아니다.

이 중 부동산 문제는 성장통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부동산 투자를 통한 경기 부양 대신 새로운 3대 성장 동력이라 불리는 ‘신3양(新三樣. 태양광, 전기차, 배터리)’을 통해 경제 발전을 꾀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년 들어 중국 경제가 어려워진 데는 현 중국 정부의 통치 철학이 적지 않은 작용을 했다는 지적이 있다. 국유기업 중시가 마윈의 몰락으로 상징되는 민영기업 퇴조를 부른 게 대표적이다.

공동부유 구호에 불안감을 느낀 중국 부호들의 자산이 해외로 이탈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 아이들의 사상 교육은 강화하고 숙제와 사교육 등 두 가지 부담을 덜어준다는 쌍감(雙減) 정책으로 중국 사교육 업체가 줄도산하기도 했다. 중국 성장을 견인하던 외국인 직접투자도 급격히 줄었다. 올해 1~8월의 경우 전년 동기보다 31.5%나 감소했다. 2021년 미 국내총생산의 75.2%까지 추격했던 중국은 2023년엔 65%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국의 성장이 한계에 달한 게 아니냐는 ‘피크 차이나’론 나아가 중국 위기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중국의 약진을 보여주는 모습 또한 많다. 9월 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4’ 상황이 그렇다. ‘세계 최초’ ‘세계 최소’ 등 수식어가 붙은 중국의 신제품 염탐을 위해 우리 기업 관계자들이 자까지 들고 줄을 섰다고 한다.

지난해만 해도 한국은 우리 부스를 찾는 중국인들이 ‘제품 베끼기’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데 공을 들였다. 한데 1년만에 그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중국 전기차 공습에 밀린 독일의 자존심 폭스바겐은 창사 87년만에 처음으로 독일 내 공장 폐쇄를 검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중국 전기차의 선두주자 비야디는 지난해 302만대를 세계에 팔아 전년 대비 62%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화웨이의 선전도 눈에 띈다. 화웨이는 미국의 집중 견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8월 7나노 고성능 반도체를 탑재한 스마트폰 ‘메이트 60’ 시리즈를 내놓은 데 이어 지난달엔 세계 최초로 두 번 접는(트리플 폴드) 스마트폰을 선보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견제가 능사인가 하는 회의를 자아내게 한다. 8월 초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과 유럽의 제재와 관세 부과로 중국 기업들이 진정으로 글로벌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방의 채찍이 중국 발전의 자극제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4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2015년 설립한 ‘중국 제조 2025’의 목표 대부분을 달성했다. 당시 주요 제조업의 자립 및 혁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야심 찬 10개년 계획을 시작했는데 미국의 관세 부과와 제재에도 불구하고 260여개 목표 중 약 86% 이상을 이뤘다는 것이다.

중국 업체 공습에 온라인 쇼핑몰 초토화
올해 6월 세계 최초로 달 뒷면 착륙에 성공한 중국 무인 달탐사선 '창어 6호'. [신화=연합뉴스]
중국의 기술 굴기는 세계가 인정한다. 8월 말 호주 싱크탱크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가 발표한 ‘20년간 핵심기술 추적지표’에 따르면 중국은 핵심기술 64개 부문 중 레이더와 위성 위치추적, 드론, 첨단 데이터 분석 등 무려 57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은 양자 컴퓨팅과 유전자 기술, 백신 등 7개 부문에서만 선두를 지켰다. 중국의 기술은 우주로 뻗는다.

중국은 세계 최초로 달의 앞면과 뒷면 모두에 착륙하는 데 성공한 국가다. 달에서 1억 2000만년 전에 화산 활동이 있었다는 사실도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 5호가 4년전 달에서 갖고 온 시료를 분석한 결과로 최근 알려진 것이다. 중국의 우주 굴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중국 인민일보는 중국이 처음으로 지구에 근접하는 소행성에 대한 방어 계획을 내놓았다고 전했다. 중국이 2026년 발사 예정인 창어 7호의 임무 중 하나가 소행성 방어 모델 구상이라며 이는 인류 전체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만큼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바란다고 밝혔다. 지구를 지키는데 중국이 앞장서는 모양새다. 이쯤 되면 중국 견제가 아니라 중국 뒤로 헤쳐 모여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중국 경제 침체와 중국 기술 약진 중 어떤 게 진짜 중국의 모습인가?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둘 다 오늘의 중국 현실을 반영한다. 관건은 우리가 중점을 두고 봐야 할 건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중국의 그늘진 면만 보며 사드 보복으로 당한 서운한 감정을 배출하는 데 쓸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중국의 침체는 우리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신경을 써야 한다. 중국 정부 또한 지난 8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 이후 정책 조정에 들어간 모양새다. 알리바바에 대한 3년 여의 반독점 조사를 끝냈다고 선언한 게 대표적이다.

민영기업에 대한 군기잡기가 일단락을 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중의 요구에 맞춰 사교육의 서비스 품질 향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사교육 제한 조치가 완화될 것이란 기대도 낳는다. 또 제조업 부문에서의 외국인 투자 제한을 전면 철폐하기로 하는 등 경제 살리기에 안간힘이다. 이제 우리의 보다 큰 관심은 마땅히 중국의 기술 굴기에 놓여야 한다. “중국의 가전업체는 이제 폄하할 대상이 아니라 무서워해야 할 대상이다.” 지난달 유럽 가전 전시회에 참석해 중국 부스를 둘러본 조주완 LG전자 사장의 말이다. 과거 가성비 좋은 중국 제품이 나오자 우리는 이를 ‘대륙의 실수’로 불렀다. 대략 2015년께 유행한 말로 중국이 ‘중국제조 2025’를 시작할 때다. 한데 채 10년이 안된 사이 우리 안방 시장은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쉬인 등 이른바 알테쉬라 불리는 중국 온라인 쇼핑몰의 무차별 공습에 점령당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가 70%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무색하다. 대륙의 실수가 아닌 대륙의 실력이 대륙의 공포를 자아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자칫 중국 위기론에 빠져 중국의 굴기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실 중국보다 앞선 기술이 반도체밖에 없다 하지 않는가? 한데 앞으로 또 10년이 지나면 이마저 상실할까 두렵다. 중국의 그늘이 아닌 양지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며 대책을 마련할 때다.

◆생생한 중국의 최신 동향과 깊이 있는 분석을 전해주는 차이나 워치는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소장과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가 번갈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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