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70만 교민 활용 캐나다 반중 정치인 낙선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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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전선 정보전쟁] 중국의 선거 정보전
2021년 캐나다 총선에서 중국 정보기관의 집중 공격을 받아 낙선한 보수당(CPC)의 케니 치우(Kenny Chiu) 전 의원. [중앙포토]
중국의 캐나다 선거 개입 논란으로 캐나다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2019년과 2021년 캐나다 총선 때 중국 정보당국이 개입한 의혹이 캐나다 정부의 공식 조사를 통해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조사위원장을 맡은 퀘벡주 마리-조제 호그 판사는 지난 5월 3일 “1차 조사결과 중국의 개입이 사실로 확인됐으며, 올해 말 최종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중국의 외국 선거개입이 공식 조사를 통해 처음 확인된 것으로,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이 현대 정보전의 새로운 추세가 되고 있음을 재차 확인해 주었다. 특히 조사과정에서 밝혀진 중국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 배경과 실상, 그리고 캐나다의 대응 과정도 흥미롭고 교훈적이다.

중국의 캐나다 선거 개입은 2018년 양국 관계가 비틀어지기 시작하면서 구체화됐다. 그해 12월 캐나다는 중국 최대통신사인 화웨이의 멍완저우(孟晚舟) 부회장을 밴쿠버 공항에서 전격 체포했다. 당시 이란 수출금지 규정 위반으로 미국에 의해 지명수배된 상태이던 멍 부회장을 미국의 요청에 따라 캐나다 당국이 체포한 것이다. 이에 중국은 캐나다산 식품 수입 대폭 축소, 중국에 체류 중인 캐나다인 2명의 스파이 혐의 체포 등 즉각 보복에 나섰다. 양국 관계는 급냉됐다.

토론토·밴쿠버 영사관이 작전 지휘소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19년 캐나다 총선이 치러졌다. 보수당(CPC)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철수, 대중 수입 축소, 화웨이 통신장비 사용 금지 등 반중(反中) 정책을 선거 캠페인으로 삼았다. 그러자 중국 정보기관이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수당의 반중 정치인을 낙선시키고 진보세력인 자유당의 승리를 돕기 위해서다. 우선 밑그림부터 그렸다. 무엇보다 170만 명에 이르는 캐나다의 중국 교민사회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중국계가 캐나다 전체 인구의 4.7%에 이르기 때문에 박빙의 선거 판세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다. 비밀 지원 활동을 정상적인 교민권익 보호로 위장하기 위해 교민업무를 담당하는 토론토와 밴쿠버 영사관을 작전지휘소로 활용하기로 했다. 선거 캠페인 개입 방법은 오프라인 지원이 제한될 경우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특정 방식이 캐나다 당국에 탐지되면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유연하게 기획했다.

이 같은 밑그림을 토대로 친중 정치인 지원부터 나섰다. 이를 위해 10만 명에 달하는 중국 유학생들을 주로 동원했는데, 자원봉사 형태로 도왔기 때문에 큰 의심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선거자금도 친중 교민인사들이 자유당 후보들에게 후원금을 기부하고 나중에 보전받는 형태로 지원해 외관상 문제없게 처리했다. 친중 정치인 지원은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반중 정치인 낙선 운동은 심각한 내정간섭에 해당하므로 신중하고 은밀하게 전개했다. 먼저 중국의 개입이 드러나지 않게 선거 분위기가 보수당에 불리하게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주로 평론가나 언론을 통해 대중 관계 악화는 캐나다 경제에 치명적이며, 특히 캐나다가 미국 압력에 못 이겨 대만을 지지하면 중국과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선전했다. 이를 통해 캐나다 유권자들의 경제·안보 불안 심리를 유발했다.

1차 조사 결과 보고서. 중국뿐 아니라 인도, 러시아의 개입 가능성도 점검한 내용도 담고 있다. [사진 FIC 홈페이지]
골수 반중 정치인 공격은 더 집요했다. 눈에 가시인 보수당 케니 치우 의원이 대표적 예다. 홍콩 태생 이민자인 치우는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면서 자연스럽게 반중 인사가 됐다. 특히 2021년에는 외국을 위해 일하는 로비스트들은 의무적으로 정부에 등록하도록 하는 해외영향력등록법(FIRA)을 발의했다. 잘 알려진 미국의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을 답습한 것으로 주목적은 중국 견제였다. 중국 정보당국은 그를 낙선시키기 위해 악의적인 반중 인사로 낙인찍어 중국계 유권자들의 반감을 확산시켰다. 가령 치우가 발의한 해외영향력등록법이 통과되면 중국계 캐나다인들은 자동적으로 외국 로비스트로 등록돼 감시대상이 된다고 왜곡했다. 또한 교육에 민감한 학부모 단체를 통해 치우가 당선되면 캐나다내 중국어 학교가 모두 문을 닫을 수 있다고 입소문을 퍼뜨렸다. 이처럼 그가 당선되면 중국 교민사회 전체가 피해를 입는다고 흑색선전했다. 결국 치우는 자신의 지지 기반인 중국 교민사회의 지지를 잃고 2021년 선거에서 낙선했다. 치우 한 사람을 집중 공격해 반중 정치인 전체에게 겁을 준 효과도 있었다.

한편 캐나다 정치권은 이 같은 중국의 선거 개입에 대해 처음에는 극도로 신중했다. 확실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캐나다 맥길대, 앨버타대 등 유수 대학들이 선거판의 허위정보 연구를 통해 중국의 개입을 확인하자 정치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이즈음 중국 밴쿠버 총영사 퉁샤오링이 2021년 캐나다 총선에서 두 명의 보수당 의원을 낙선시키는데 기여했다고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닌 게 방아쇠 역할을 했다. 이를 계기로 언론이 집중 취재하는 과정에서 캐나다 정보기관이 중국의 선거 개입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총리에게 ‘정부대응이 너무 느리다’고 보고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캐나다 외국 선거개입조사위원회 위원장 마리-조제 호그. [중앙포토]
이 쯤 되자 트뤼도 총리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데이비드 존스턴 전 총독을 특별조사관으로 임명해 관련 조사를 진행하도록 위임했다. 그런데 2023년 5월 존스턴 특별조사관이 “언론 보도는 부정확하며 총리가 선거 정보를 무시했거나 당파적으로 이용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발표하자, 언론·시민단체·보수당이 사건을 덮으려는 시도라며 강력 반발했다. 존스턴이 오히려 화를 키운 격이 됐다. 트뤼도 총리는 “국민들에게 진실을 숨길 수 없다”며 2023년 9월 중국의 선거 개입을 공개 조사할 ‘외국의 선거개입조사위원회(Foreign Interference Commission)’를 구성하고 위원장으로 마리-조제 호그 판사를 전격 임명했다. 더 이상 불신 논란이 확산되지 않게 캐나다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사법부 인사를 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결단을 내렸다.

위원장에 취임한 호그 판사는 공개청문회, 비공개 증언, 정보당국의 관련 정보 등을 토대로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중국이 2019년·2021년 캐나다 총선에 개입한 것은 사실이며, 비록 전체선거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중국계 교민들이 많은 선거구에는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또한 중국의 선거 개입을 알고 있었던 캐나다 정보당국이 국가지도자들에게 얼마나 책임감 있게 보고했는지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평가했다.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개방적 선거제도, 외부세력 개입에 취약
정보전쟁
결론적으로 중국의 캐나다 선거 개입은 캐나다 정부의 공식 조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됐으며, 중국이 일정 부분 정치적 효과를 본 것도 확인됐다. 하지만 정보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의 선거 개입은 새로운 것도, 놀랄 것도 아니다.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은 냉전 시대부터 존재해온 영향력 정보전의 한 형태로 새로운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9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왈튼 박사가 〈스파이, 선거 개입, 허위정보 : 과거와 현재〉라는 연구를 통해 이를 체계적으로 밝혔다. 카네기 멜론대의 레빈 교수는 2016년 〈강대국의 선거 개입〉이라는 논문에서 1946년에서 2000년까지 전세계 937회 선거 중 알려진 것 만도 미국이 81회, 러시아(소련 포함)가 36회 개입했다고 구체적인 숫자까지 밝혔다.

정치 안보의 관점에서 보면 외국의 선거 개입은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정보전이다. 외부의 선거 개입은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제도에 불신을 낳게 하고 이는 곧 민주주의 위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마리-조제 호그 판사가 중국의 선거 개입에 대해 “캐나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것이 가장 심각한 폐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캐나다의 사례에서 또다시 확인된 것처럼 개방적인 민주주의 선거제도는 여론 왜곡 등 외부세력의 개입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개방적인 선거제도를 취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최성규 고려대 연구교수. 국가정보원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국제안보 분야에 종사했다. 퇴직 후 국내 최초로 비밀 정보활동의 법적 규범을 규명한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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