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방이 집값 만드는 시대 ‘정보 전염병’ 경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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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9.21. 오전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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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인사이트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한 아파트 단지 전경. [뉴시스]
지난 추석에 귀향한 수도권 직장인 황영수(가명·56)씨는 고향에서 만난 사람이 별로 없다. 추석 전날 고향을 찾아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낸 뒤 서둘러 집으로 올라왔다. 10년 전만 해도 삼촌과 고모를 찾아 문안을 드렸다. 지금은 두 분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없어 사촌에게 가끔 카카오톡 메시지나 전화로 인사를 나눈다. 황씨는 “과거 명절에는 친인척끼리 만나 안부를 전하고 세상 이야기도 나눴지만, 요즘은 만남 자체가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핵가족 시대를 넘어 ‘핵개인’ 시대라고 하니 이런 모습은 황씨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도 옛말이 되었다. 일단 사촌을 만날 일이 별로 없고, 심지어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는 일면식이 없어 누군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명절 때 TV 화면에서는 친인척끼리 모여 놀이나 이야기꽃을 피우는 풍경보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인천공항의 인파를 더 비춘다.

그동안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은 부동산 시장에 분수령이 돼 왔다. 친인척이 모처럼 만나 나누는 대화에서 부동산은 단골 메뉴였다. 친인척끼리 오가는 이야기는 바이러스처럼 다양하게 전염된다. 정보가 오가는 일이 빈번하기 마련인 명절은 부동산 시장 분위기나 방향을 결정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친인척 간 만남의 빈도가 줄어 명절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고 보니 명절 이후 부동산 시장 흐름을 묻는 언론사의 전문가 설문 조사도 눈에 띄게 감소한 것 같다. 세상 풍속도가 달라지면서 부동산 시장도 달라진 셈이다.

무엇보다 부동산 정보를 취득하는 채널이 친인척보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바뀌었다. 2003년 대구 지역에서 아파트 구매 경험이 있는 60세 미만 주부 1103명을 대상으로 벌인 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자. 이에 따르면 아파트를 구매할 때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묻는 항목에서 가족이나 친지가 54.5%로 절반을 넘었다. 이런 조사 결과는 친인척의 주관적인 경험과 정보·소문 등에 의존해 아파트 구매 여부를 결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요즘은 그 역할을 디지털 미디어나 SNS가 대신한다. 피데스개발이 최근 13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52%)이 부동산 정보를 수집하는 채널로 웹사이트와 검색 포털을 꼽았다. 사람들이 부동산을 비롯한 세상의 많은 일을 디지털 공간을 통해 듣는다. 한 지인은 “요즘 SNS는 부동산 정보의 보물창고이자 총집결지”라고 말했다. SNS가 그만큼 부동산 수요자에게 막강 힘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에 사는 김혜진(가명·41)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의 밴드나 카페, 유튜브, 블로그 같은 SNS에 들어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가 가입한 디지털 소통 채널은 부동산 분야에서만 6~7개가 된다. 그는 그날 나온 뉴스나 정책, 세금, 시장 동향 등을 꼼꼼히 읽는다. 회원 수가 많은 카페에는 하루에도 수백 개씩 글이 올라오기 때문에 수시로 들어가 확인한다. 그는 시시각각 변하는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을 수 없다.

시장이 급등락을 오가는 불안한 장세일수록 카페나 밴드를 주목한다. 바닥 흐름을 읽는 풍향계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각종 빅데이터를 활용, 전문가를 뺨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글이 수없이 올라온다. 글을 보면 감이 잡힌다. 여러 답글까지 읽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중지가 모인다. 김씨는 “무엇보다 집을 살까 말까 결정하지 못할 때 SNS에 물어보면 금세 답이 나온다”라고 했다. 그러니 개인 입장에서 SNS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부동산 핫이슈가 생기면 한두 시간 뒤면 다 알게 된다. 모바일 혁명으로 정보 유통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투자자 간 실시간 소통, 그리고 강력한 유통 파워로 정보의 확산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오죽하면 ‘부동산 시장을 분석하는 순간 구버전이 된다’, ‘단톡방이 아파트 시세를 만든다’라는 말까지 나돌까. 심지어 속자생존(速者生存)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온다. 변화하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이제는 아파트 시장 자체가 ‘효율적 시장’(efficient market)에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유진 파마의 ‘효율적 시장이론’에 따르면 효율적 시장은 새로운 정보가 지체없이 가치에 반영되는 시장이다. ‘어느 지역 아파트값이 싸다고 하더라’, ‘집값이 바닥을 찍었다고 하더라’ 등의 정보가 나돌아 공감대가 형성되면 투자자들이 일제히 움직인다. 그래서 무리 지어 움직이는 ‘군집행동’이 쉽게 나타난다. 정보를 동시다발적으로 수용하면서 시장 참여자들의 생각은 비슷해지기 마련이고, 이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군집행동이다.

군집행동은 스스로 판단해 독자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집단의 일원으로서 함께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군집행동은 나의 독립적인 판단 기준은 버리고 다른 사람을 따라 의사결정과 행동을 함께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고, 모방의 무한 연쇄작용 끝에 거대한 무리 짓기가 만들어진다. 부동산 시장이 잠잠하다가 어느 순간 돌변해서 달아오르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최근 서울 아파트 거래가 폭발하면서 단기 과열권으로 접어든 것은 불안 심리에 따른 군집행동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정보가 난무하는 SNS 시대에서 슬기롭게 대처하려면 실수요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정보를 걸러낼 수 있는 ‘지적 능력’이 필요하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는 사실이 아니라 괴담이 될 수 있다. ‘정보 전염병’(infodemic)을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군집행동으로 비이성적 과열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도 필수다.

또 SNS에서 성공 투자 이야기를 들었다면 일단 주의해야 한다. 실제보다 과장된 자화자찬 성공담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성공담을 듣고 투자에 나서기는 요즘 같은 광속의 시대에는 너무 늦다. 자칫 내가 거품을 마지막으로 떠안는 ‘최후의 바보’가 될 수 있다. 이제는 친인척의 입소문보다 디지털 입소문을 더 무서워할 때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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