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도 석방도 못하는 네타냐후, 그 뒤엔 '연립정부 극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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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9.07. 오전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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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 사망에 폭발한 이스라엘 민심
5일(현지시간) 텔아비브의 이스라엘 국방부 앞에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이 네타냐후 총리 사진을 페인트로 훼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강경파인 베냐민 네타냐후(74) 이스라엘 총리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역대 최장수 총리로 세 차례에 걸쳐 17년 동안 총리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정치인인 그가 지난달 31일 이스라엘 인질 6명이 하마스에 의해 사망하자 안팎으로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이번 인질 희생이 네타냐후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하마스와의 휴전협상을 무산시킨 결과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내외에서 성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 시위, 최대 노조 참여하며 확산
이스라엘 일간지 예디오트 하로노트는 4일 “사망한 인질 6명 중 3명은 지난 5월 작성된 휴전협상 초안에 등장하는 석방자 명단에 포함된 인물”이라고 전했다. 휴전 협상이 이뤄졌으면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지난 1일 이스라엘 전역에서 70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그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시위대는 인질 석방과 휴전을 위해 네타냐후 정부의 빠른 협상을 촉구하면서 그 책임을 묻고 있다. 특히 이번 시위에는 조합원 80만 명을 보유한 이스라엘 최대 노조인 히스타드루트(이스라엘노동자총연맹)가 동참해 총파업을 선언하기도 했다. 히스타드루트의 총파업은 가자전쟁 장기화에 따른 이스라엘 국민의 ‘전쟁 피로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조 조합원을 포함해 30만 명 규모의 예비군이 동원돼 산업현장을 비롯한 이스라엘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CNN 등 외신들은 이스라엘 소식통을 인용해 하마스와의 휴전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은 네타냐후가 지난 7월 말 내건 추가적인 휴전 조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이집트와 가자지구 국경지대인 ‘필라델피 회랑’의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병력 철수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타결에 근접했던 협상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이에 따라 가지지구 주민과 인질 희생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네타냐후
일부 이스라엘 전문가들은 네타냐후가 이처럼 휴전 협상에 소극적인 이유를 국내 정치에서 찾고 있다. 그러면서 네타냐후 정부를 지탱하는 한 축인 연립정부 내 극우파를 지목했다. 이들은 그간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을 끝내는 합의를 수용할 경우 연립정부를 무너뜨리겠다”고 경고하면서 하마스에 대한 강경한 응징을 고집해왔다. 극우파의 이탈로 연정이 무너질 경우 네타냐후는 실각이 불가피하고 그의 나이를 감안할 때 정치적 재기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부 외신들은 “네타냐후의 정치적 욕심이 휴전의 걸림돌로 작용해 가자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치 구조도 이런 네타냐후의 행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총선에서 한 번도 과반을 차지하는 정당을 배출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줄곧 연립정부를 구성해 국가를 운영해왔다. 이는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고, 그만큼 정치적으로 불안 요소가 많다는 의미다. 2022년 11월 총선에서도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6개 정당이 결집했다. 하지만 크네세트(의회) 120석 중 차지한 의석은 겨우 절반이 넘는 64석에 불과했다. 정당 한 두 곳만 이탈해도 연정이 붕괴되는 구조다. 네타냐후가 당 대표를 맡고 있는 보수강경파 우익정당 리쿠드당(의석 32)을 비롯해 샤스(11), 종교적 시오니즘(7), 유대교 토라연합(7), 오츠마 예후디트(6), 노암(1) 등이 참여했다. 특히 이번 연립정부는 구성 당시부터 극우·종교 정당들의 집합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만큼 국정에서 온건파들의 목소리가 수용될 수 있는 여지는 크게 줄었다. 이중 리쿠드당이 오히려 유연한 정당이라는 평가다. 네타냐후의 역할은 이들 6개 정당의 강경한 목소리를 조율하고 대표해야 하기에 총리 자리를 유지하려는 네타냐후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네타냐후는 뇌물수수와 사기 등 개인 비리 혐의로 사법 처리 위기에 몰려있기도 하다. 일부 언론과 이스라엘 시위대는 네타냐후가 자신에게 걸린 부패 혐의의 수사와 재판을 피하기 위해 고의로 협상을 늦추거나 무산시키려고 하면서 전쟁을 질질 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연립정부, 초기부터 극우·종교 집합 지적
국제사회도 휴전협상 타결이 번번이 무산되자 네타냐후의 속셈을 의심하고 있다. 극우파로 이뤄진 네타냐후 정부의 이념과 정책이 중동의 안정을 원하는 미국과 서구의 이익과 충돌한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지만, 이슬람권·아랍권에 대한 명분이 필요한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국가들을 머뭇거리게 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브레이크 없는 탱크’인 네타냐후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에 수많은 사람의 목숨과 운명이 달렸다. 이는 중동의 지역 안정과 미국의 대외 정책, 그리고 올해 11월 5일 미 대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유엔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9월 4일까지 가자지구의 사망자는 4만861명에 이르며, 230만 인구 중 피란민이 190만 명을 넘었다. 네타냐후의 고집이 언제까지 갈지 두고 볼 일이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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