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전서 골반 다친 주정훈, 이 악물고 따낸 ‘눈물의 동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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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9.01. 오전 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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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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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패럴림픽 태권도
주정훈(오른쪽)이 1일(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패럴림픽 태권도 남자 K44 등급에서 동메달을 딴 뒤 김예선 감독과 기뻐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8강전부터 그의 왼쪽 골반은 아팠다. 상대 선수(세르비아) 무릎과 골반이 부딪쳤다. “뼈와 근육 사이가 너무 아려서” 4강전에는 왼쪽 다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원래 발등에는 실금이 가 있었다. 결국 7-1로 앞서다가 8-10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동메달 결정전을 포기할까도 했다. “(100번 중) 99번 정도는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곁에 있던 김예선 감독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나약한 소리 하지 말라”고,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니까 정신 차리라”고.

화장실에 혼자 앉아서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당당히 2024 파리패럴림픽 태권도 남자 K44 등급(한쪽 팔 장애 중 팔꿈치 아래 마비 또는 절단 장애가 있는 선수가 참가) 80㎏ 이하 동메달 결정전(31일)에 나서 눌란 돔바예프(카자흐스탄)를 7-1로 제압했다. 2021년 열린 도쿄패럴림픽(동메달)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메달을 딴 기쁨도 잠시. 다시금 골반은 아파왔고, 주정훈(30·SK에코플랜트)은 김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의 부축을 받고 다리를 절뚝이며 퇴장했다.

주정훈이 1일(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패럴림픽 태권도 남자 K44 등급에서 동메달을 딴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공동취재구역에서 주정훈은 땀범벅인 채로 울었다. 감정을 꾹꾹 눌렀지만 경기 결과가 너무 아쉬워서, 몸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주정훈은 “지난 8년 동안 항상 1등을 한다는 생각을 하고, 준비할 때도 항상 가장 높은 상태에 있는 상상을 많이 했었는데, 그 꿈을 못 이뤘다”면서도 “동메달이라는 값진 메달을 따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주정훈은 시상식 때 다른 선수들의 부축을 받고 시상식장에 입장하기도 했다.

주정훈은 두 살 때 오른손을 잃었다. 부모님이 가게 일을 하느라 바빠서 할머니 집에서 자랐는데 소여물 절단기에 그만 손이 잘렸다. 절단된 손을 찾지 못해 접합 수술을 받지 못했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할머니는 평생 주정훈에게 죄인처럼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에 대한 응어리도 있어서 몇 년간 “엄마”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던 그였다.

태권도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몸으로 놀 수 있는 게 좋아서” 시작했다. 고교 2학년 때까지 비장애인 선수들과 경기를 하다가 관뒀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싫었다. 이후 주변의 권유로 2017년 말부터 장애인 태권도 선수가 됐다. 주정훈은 “선수로서 부족한 것을 이번에 준비하면서 깨달았다. 엘에이(올림픽)까지는 4년이라는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조금 더 어른답게 행동하면서 잘 준비해 꼭 다음에는 금메달을 따겠다”고 했다.

비록 대회 전 할머니 묘를 찾아 “금메달과 고기 반찬 들고 다시 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으나 고기 반찬을 들고 할머니는 보러 갈 생각이다. “할머니가 더 이상 미안해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면서 “건강하셨을 때 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게 많이 아쉽다”는 그였다. 주정훈의 할머니는 2018년 치매 진단을 받았고, 2021년 겨울 돌아가셨다.

기자 프로필

스포츠 현장을 20년 넘게 취재했고 야구 만동화 <리틀 빅 야구왕>, 야구 입문서 <야구가 뭐라고>를 집필했습니다. 번역서로 <커맨더 인 치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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