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대하여
임군홍, 타인의 상처 응시하며
죽음의 문턱에 빛을 새기다
우정수, 자기 고통과 마주하며
불면의 밤 악마들에게 고하다
“오 내 ‘고통’이여, 얌전히 좀 더 조용히 있거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 실린 ‘명상’ 속 한 구절이다. 예술의 현대성을 열어젖힌 보들레르는 타이르듯이 고통에게 청한다. 타인의 상처를 바라보던 근대의 작가 임군홍과 자신의 고통과 마주한 현대 작가 우정수의 그림 속 이야기를 쫓아가본다.
새로움 좇고 도전에 거침없던 열망
캔버스 속 남자는 누굴까. 무슨 병이기에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는 걸까. 새어나오는 아픔에 절절해진다. 임군홍의 ‘행려’에 대한 첫 느낌이다. 2019년 가을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전에서 임군홍을 알았다.
그림 속 남자는 중국인이다. 1940년대다. 그는 현재 우한으로 불리는 중국 내 한커우 거리를 헤매고 있다. 썩어가는 피부를 간신히 숨긴 채 비틀거린다. 지켜보는 이가 있다. 조선에서 건너온 젊은 화가 임군홍이다.
어렵게 자라났다. 임군홍은 주교보통학교 졸업이 학업의 전부다. 그곳에서 당시 관전이었던 조선미술전람회의 스타 작가인 김종태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재능을 보였던 소년에게는 생업이 먼저였다. 10대 시절부터 치과기공사로, 이후에는 상업미술과 관련한 디자인 사업에 종사했다. 지난한 날들이었으나 붓을 놓지 않았다. 20살인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을 시작으로 여러 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독학으로 이룬 성과다. 강한 열망은 소멸하지 않는다. 오직 전진한다.
“녹과전이 내포한 바 발랄한 패기, 견고한 저력, 약동적 정신, 이 모든 것은 앞날의 우리 화단에 원력소가 아닐 수 없을 것.” 1938년 열린 제3회 녹과전(綠果展)에 대한 화가 구본웅의 찬사다. 임군홍은 1936년 미술 단체 녹과회를 직접 창립했다. 새로움을 구했고 도전에 거침없었다. 우아함이 흐르는 인물화와 아카데미즘에 충실한 정물화, 광고 디자인과 도안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로질렀다.
임군홍은 1939년 중국으로 떠났다. 만주와 베이징을 여행했다. “나도 속히 집에 갈 작정으로 매일 그림을 그리나 (…) 여보당신하고 나하고 天津(천진)으로 가면 돈버리가 좃타 하는데 지금 집에서 어더케 하고 잇소” 임군홍이 여행 중 아내에게 쓴 편지다. 긴 역사의 흔적을 품은 고궁들과 드넓은 땅. 전통과 모더니즘의 기묘한 교차. 젊은 예술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 시기 그려낸 풍경화에는 들썩이는 마음이 담겼다. 진하고 밝은 색에 눈이 어지럽다. 임군홍은 이후 가족과 중국 한커우의 번화가인 화루가에 정착했다. 화려함은 그림자를 동반한다. 어둡고도 짙게. 그는 대도시의 활기 속 숨겨진 어둠을 발견했다.
피하고 싶었다. ‘행려’에 대한 나의 속내다. 임군홍은 정착한 곳에 맞닿아 있는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 ‘행려’는 물감을 두텁게 쌓아올렸다. 겹겹이 칠한 마티에르가 임군홍의 시간을 증명한다. 작품 속 나병 환자와 마주 보며 함께 보냈을. “아마 몇날 며칠을 이분과 만나 대화를 나누시며 그렸을 것이다.” 아들 임덕진의 말이다. 짓뭉개지듯 결을 살려 표현한 붓질이 고통을 증폭한다. 뜨지 못한 눈동자에 시선을 맞춘다. 눈이 따끔하다. 손목이 저려온다. 피부의 색을 잃어버린 채 펴지 못한 손을 보고 있으면.
당시 중일전쟁 중이었다. 안전지대는 없다. 전쟁의 폭력이 미치지 않는. ‘상처 입은 여인’(1940년대)의 피 맺힌 몸에서 전쟁의 광기를 본다. 피가 싸늘하게 식는다. ‘노점’(1941년) 속 간신히 걸려 있는 고깃덩어리가 위태로워 보인다. ‘행상’(1940년대) 속 상인의 뒷모습에서 가혹한 시절 속 하루를 살아낸 성실함을 발견한다. 이국에서 이웃의 고통에 눈감지 않은 임군홍에게서 인간을 향한 애정을 본다.
그는 알았을까. 자신의 존재가 고국에서 사라지게 되리라는 것을. 불행에는 예고편이 없다. 닥쳐온다. 귀국 뒤 임군홍은 옥고를 치른다. 1948년 운수부(교통부) 달력을 제작하며 월북 무용가 최승희의 사진을 활용했다는 이유다. 낙인이 찍혔다. 1950년 한국전쟁 중 임군홍은 월북한다.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의 작품을 다시 보기까지. 1985년 월북 작가의 해금 조치가 진행되었다.
납북이었을까, 자발적 선택이었을까. 한 사람의 마음을 다 읽을 수 없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행려’ 속 남자의 문드러진 두 손에 내 손을 뻗어본다. 짓이겨진 손에 빛을 새겨 넣었다. 타인의 상처를 보듬던 다정했던 예술가. 임군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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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듯 깨어 있고 자유로운
‘불면과 우울에 고통받기보다 이를 탐구하기로 결정.’ 작가가 직접 소개한 한 전시의 기획 의도다. 고백하겠다. 바라는 바가 있었다. 지난 6월 ‘우정수: 머리맡에 세 악마’전을 보러 간 목적은 분명했다. 기획 의도에 끌려서다. 고민을 해결해 보고 싶었다. 맞다. 불면증에 관해서다.
소리들이 들려온다. 들어서자마자 뒤돌고 싶다. 뚜렷한 색들이 몰려온다. 등장인물들이 쏟아진다.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연작의 존재감이 부담스러워 방향을 튼다. 고야의 검은 그림 연작에 등장하는 사람을 물어뜯는 신이다. 익숙한 이미지다. ‘머리맡에 세 악마 #6’와 마주쳤다. 악마들과 대화를 해보고 싶어졌다. 이제부터.
묻고 싶었다. 우정수에게. ‘그래서 불면증이 나았나요?’ 마음이 급해졌다. 답을 찾고 싶었기에. 집어삼키고 있다. 동공에는 광기가 담겼다. 희번덕대며. 고야의 그림 속 도상을 옮겨왔다. 원작에서는 아들을 삼키나 대상은 인형으로 바뀌었다. 공포 아닌 호기심이 앞선다. 두렵기보다 흥미롭다. 왜일까. 삼켜지는 것이 곰돌이 인형이어서일까. 방긋 웃고 있다. 문득 나의 마음을 알고 싶어졌다.
“소풍 갈 때도 시험 날에도 밤 꼴딱 새우고 오곤 했잖아.” 중학교 친구가 가볍게 말한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자리였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죄여 있던 속마음이 풀린다. 스르륵스르륵. 최근 몇년 동안 헤매는 문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실타래가 풀리기는커녕 엉키어간다. 수면 리듬은 더욱 흐트러졌다. 모임 후 집으로 돌아왔다. 누워본다. 잠을 청한다. 툭 던져내듯 날아든 친구의 말을 떠올려본다. 잠이 들었다. 깨지 않는 숙면이었다.
두려움은 미지에 기인한다. ‘머리맡에 세 악마 #6’의 괴물의 도상을 이미 알고 있기에 무섭지 않았다. 스스로 찾은 답이다. 의도적 공포는 힘을 잃었다. 한 남자가 보인다. 빵모자를 썼다. 예감했다. ‘이 사람은 화가 본인이다’라고. 그는 왼쪽 위편에서 잠들어 있다. 둘러싼 유령들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편안함이 전해져온다. 오늘 밤을 맞이할 용기가 생긴다.
“‘미스터 페인터’는 다양한 사건에 일희일비하며 때로 자조하고 때론 기뻐한다.” 우정수의 말이다. 페인터는 바쁘다. 잠들더니 또 깨어 있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꺾일 듯 젖혀진 고개가 힘겨워 보인다. 지금은 지고 있다. 악마들이 속삭임을 키워 마침내 뒤엎는다. 깨어 있는 밤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이겼고 다음날은 진다. 그림 속에서 나의 사연을 발견했다. ‘머리맡에 세 악마’ 연작은 이처럼 고통을 변주한다. 복잡한 듯 자유롭다. 이 어지러운 서사에 개입하고 싶다. 기꺼이.
아픔이 쉬이 사라지지 않을지라도
우정수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사와 전문사를 마쳤다 . ‘ 이야기의 확장 ’ 과 ‘ 선에서 시작된 회화 ’. 그의 작업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 중세의 성서 속 아이콘들이 등장한다 . 거대함에 압도당한다 . 처음에는 . 만화 속 캐릭터들이 숨어 있다 . 긴장이 풀어진다 . 경쾌함이 느껴지는 붓질과 다채로운 색이 뒤섞인다 . 인물들에 숨결이 붙는다 . 생생하게 .
우정수의 도상들은 속삭인다. ‘어둠이 몰려와도 나아갈 수 있다’고. 맥주잔을 든 채 방긋 웃는 캐릭터가 보인다. 가벼워진다. 마음이란 이토록 복잡하다가도 단순하다. ‘자책’이 버릇인 나의 고통들에게 말을 건다, ‘나는 스스로를 구하겠어’라고. 오늘은 잘 자고 싶다. 악마들과 함께 잠드는 우정수 회화의 주인공들처럼.
고통은 흐르지 않는다. 겪어낼 뿐이다. 가혹하다. 다만 시간이라는 마법에 기대기를. 당신이 만약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날을 지나고 있다면. 여름의 끝자락이다. 계절은 흘러간다.
우진영 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