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에서 독재자로, 다니엘 오르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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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8.30. 오후 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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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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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이 지난 4월24일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 동맹’(ALBA) 정상회의에 참석한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중부 아메리카의 니카라과에서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이 40년 넘게 이어오며 악명을 떨치던 소모사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지 올해로 꼭 45년이 된다. 사회주의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의 게릴라 반군은 1979년 7월19일 20여년에 걸친 투쟁 끝에 마침내 수도 마나과에 입성함으로써 미국의 지원을 받던 독재권력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새출발의 설렘과 기쁨은 길지 않았다. 니카라과는 곧바로 다시 잔혹한 내전에 휩싸였다. 소모사 정권 부역자 등을 중심으로 반혁명 세력이 ‘콘트라’라는 이름으로 모여 반격에 나선 것이다. 다시 불붙은 내전은 1980년대 말까지 살인과 납치, 고문, 폭행 등 온갖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키며 거의 10년을 끌었다. 그동안 목숨을 잃은 이만 3만~4만명에 이르렀다.

당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산디니스타의 혁명 정부에 맞선 이들 콘트라 반군에 무기와 돈은 물론 훈련까지 제공하는 등 적극 지원했다. 특히 미국은 당시 무기 교역금지 대상이던 이란에 몰래 무기를 판 뒤 그 수익금으로 이들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는 불법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내용의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1980년대 말 폭로되어 미국 정가에도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산디니스타 게릴라 사령관이었던 30대의 젊은 다니엘 오르테가는 이런 어려운 시기에 산디니스타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인물이다. 소모사 정권을 거꾸러뜨린 뒤 한동안 임시 혁명정부를 맡아 책임지다 1984년엔 니카라과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치러진 자유선거에 대통령 후보로 나서 당선된다.

그러나 그는 6년 뒤 미국의 경제제재와 내전 상황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는 반산디니스타 보수연합 세력에 밀려 낙선하고 만다. 당시 미국은 산디니스타가 재집권할 경우 경제제재를 풀지 않겠다는 뜻을 지속적으로 흘리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

이후 오르테가는 재기를 위해 절치부심하지만 1996년과 2001년 대선에서도 거푸 고배를 마신다. 그러다 마침내 2006년 대선에서 가까스로 당선되어 16년 만에 권좌에 복귀한다. 당시 오르테가는 산디니스타 내부 분열도 겪었지만, 화해의 메시지로 한때 숙적이었던 콘트라 출신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영입해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러곤 2011년과 2016년, 2021년 대선에서 잇따라 당선되며 지금까지 재임 중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는 젊은 시절 소모사 독재정권의 폭압과 맞서 싸우던 혁명가 오르테가가 아니다. 자유와 평등, 정의를 앞세우던 혁명 정신은 간곳없고 장기 독재체제를 구축하며 살인과 고문, 폭력 등으로 국제적 비난을 사고 있다.

2018년엔 연금개혁과 생활고에 항의하던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폭력 진압해 300명이 넘는 이들이 숨졌다. 지난해 3월 유엔은 인권 보고서에서 “오르테가 정권이 의회, 경찰, 사법부 등 국가기구를 이용해 야당 인사를 자의적으로 구금, 고문, 추방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런 오르테가 정권이 얼마 전엔 한꺼번에 민간 비영리단체 1500곳을 폐쇄해 다시 입길에 올랐다.

젊은 시절 꿈꿨던 푸른 이상을 저버리고 권력욕의 화신으로 바뀐 이들이 어디 한둘이랴. 도대체 오르테가의 노욕에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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