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부대원 무장공비로 속여 서울 한복판서 몰살시키려…” [인터뷰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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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8.23. 오전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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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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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53주년] 영화 원작소설 쓴 백동호 작가
실미도 부대원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2024년 8월23일은 실미도 사건이 발생한 지 53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 김일성 암살을 위해 극비리에 만든 특수부대의 공작원들은 섬을 빠져나와 시내버스를 탈취하고 서울 청와대로 진격하다 자폭했다. 반세기 만인 오는 9~10월께 국방부 장관은 이 사건과 관련 유족들에게 사과한다. 사과는 경기도 벽제리 공동묘지에서 열리는 사형집행자 유해발굴 개토제 때 ‘국방부 간부의 대독’ 방식으로 이뤄진다. 국방부 쪽은 사과 내용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라고만 밝혔지만, 모호하고 형식적인 수준일 가능성이 크다. 실미도 사건은 불법 모집에서부터 훈련 중 인권침해, 부식비 횡령, 사형집행 및 암매장 등 처음부터 끝까지 최악의 국가범죄였다. 만약 사망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모조리 사망한 것으로 발표했다면 이 역시 사과해야 할 범죄에 해당한다. 한겨레는 실미도 사건 53주년과 국방부 장관의 사과 발표를 앞두고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공작원(훈련병) 생존설’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실명 밝힐 수 없다” 생전의 굳은 약속
― 강인찬의 모델이 된 사람의 실명을 말해줄 수 있나.

“그건 안된다. 그의 실명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으면서도 발표하지 못한 것은 생전에 굳게 한 약속 때문이다. 정체를 철저히 숨겨주기로 했다. 사람들은 내가 사건 내부사정을 좀 알 수 있는 위치의 사람 이야기를 듣고 괜히 실미도 공작원을 만났다며 거짓으로 뻐기는 게 아니냐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런 비난에는 노심초사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실미도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더불어 돈도 좀 벌 목적으로 소설을 쓴 것뿐이다.”

― 그는 살아있는가.

“2006년 여름에 돌아가셨다. 1940년대생이니 60대 나이에 떠난 셈이다. 원래 고아였는데, 실미도를 탈출한 뒤 가정을 이뤄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다. 미국으로 혼자 건너가 살았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아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자녀들은 한국에서 살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동해에 뿌려달라’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자식들이 속초에서 어선을 빌려 바다로 나가 유골을 뿌린 것으로 안다. 묘지도 없고, 위패도 모시지 않았다. 나는 빈소에 가지는 않았다. 나중에 유족들이 찾아와 차 한잔 나눴다. 영원히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밝히지 말아 달라고 하더라.”

실미도 부대원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사건 발생 직후, 군 당국은 알았나 몰랐나
― 철저히 신분을 숨기고 살았다는 말인가.

“1970년대는 무호적자가 발길에 차일 정도로 많았다. 그때 전쟁고아가 얼마나 많았나. 교도소에서 출소해 갱생보호소에 가면 호적을 만들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알기로, 치안국에서 지문 담당하는 감식계 직원 숫자가 4~5명이었다. 본적과 현주소만 대면 전과가 탄로 나지 않을 수 있었다.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사는데 하나도 어렵지 않았을 거다.”

― 정부에서는 1971년 8월23일 사건 당일 현장을 탈출한 이들이 있다는 걸 몰랐을까.

“아예 추적을 안 했다. 공개 추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실미도에서 오전 6시30분부터 사건이 터졌을 때, 군 당국이 이걸 몰랐을까? 알았다. 알면서도 왜 바로 작전을 못 했을까. 드러나선 안 될 극비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인천에 오전 11시30분에 인천 송도에 상륙하는데(12시35분께 33사단 102연대 2대대6중대 605 해안초소 통과) 그때까지 정부가 몰랐다는 건 세 살 먹은 애도 웃을 일이다.”

1971년 8월23일 실미도에서 특수훈련을 받던 군인들이 탈취해 타고 오던 버스가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멈춘 뒤 군인들이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실미도와 공군정보부대의 교신 여부
― 정부가 일찍이 알았다는 근거가 뭔가.

“매일 아침 실미도 부대는 서울 오류동에 있는 공군정보부대와 교신하게 돼 있다. 교신이 안 되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1968년 4월 실미도 창설 이후 아침 교신이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실미도 사건이 발생한 1971년 8월23일만 교신이 없었던 거다. 당연히 공군참모총장, 중앙정보부까지 이야기가 들어갔을 거다. 이건 1998년 소설 준비하면서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김두만씨와 인터뷰하면서 얻은 내용이다. 오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얘기했다.

또 하나는 실미도 건너편 무의도 해수욕장의 땅콩밭 주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물이 빠지면 실미도와 무의도는 걸어갈 수 있는 곳 아닌가. 이 사람 말이, 아침부터 요란한 총소리가 나서 실미도를 보니 연기가 나더란다. 훈련이 아니라고 직감하고 무의도에 딱 하나 있는 이장 집 전화기로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이 뿐인가. 무의도에서 실미도 공작원들을 내려준 배 선장, 첫 번째 탈취한 버스에서 내린 승객 등도 ‘청와대로 간다’는 이들의 말을 들었다. 신고를 안 했을 리 없잖은가.”

(아침 교신 문제와 관련해, 국방부 과거사위 조사관으로 김두만씨를 만났던 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는 “‘버려진 부대’라 교신 따위에 신경 안 썼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아침에 발생한 사건을 공군정보부대에서도 인지하지 못했을 거라며 백 작가와는 정반대 이야기를 했다. 김두만씨의 증언에 대해서는 ‘과장’이라고 봤다. 그는 “나중에 통신 관련자들이 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다. 그 이유는 통신시설의 열악함 때문이었다”고 했다.)

인천 무의도에서 바라본 실미도의 모습. 물이 빠지면 무의도와 실미도는 걸어갈 수 있다. 고경태 기자

한강다리에서 기다리다 몰살시키려 했다?
― 그런데 왜 인천 송도에서 서울로 가는 도로를 차단하지 않고 그냥 둔 것인가.

“국회에서 당시 신민당 김상현 의원이 물었다. 버스로 도로만 차단해도 실미도 공작원들이 들어올 수 없는데, 왜 그렇게 안 했냐고 말이다. 군은 한강대교(당시 서울제1교) 북단에서 장갑차를 대기시켜놓고 진을 치고 있었다. 실미도 공작원들이 남단에서 진입하면 남쪽을 봉쇄하고 중간에서 다 죽여버릴 계획이었으리라 추정한다. 왜 미리 인천이나 영등포에서부터 막지를 않고 인명피해를 감수하면서 한강대교에서 기다렸을까. 이들을 무장공비로 속이고 서울 한복판에서 무장공비 몰살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다린 건 아닐까. 김두만 전 공군참모총장을 만나 이렇게 물으니까 껄껄껄 웃으면서 ‘하나도 틀린 말 없다’고 했다.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입장에서는 이들의 존재가 절대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되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 전가의 보도가 무장공비 출현을 알리고 정국을 경색시켜 독재정권을 강화시키는 거였다. 이후락 입맛에 딱 맞았을 것이다. 한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유한양행 앞에서 차가 가로수를 들이받은 거지. 이건 순전히 우발적으로 발생한 일이었다. 당일 김포공항도 저녁까지 폐쇄됐다. 왜 그랬겠나. 공작원들이 해외로 나갈까 봐 막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신문을 보면 한강대교에 장갑차와 함께 무장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는 중앙정보부의 ‘몰살 기획설 또는 음모론’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국방부 과거사위 조사관으로 면담 조사했던 대간첩대책본부장 김재명(중장)도 ‘까맣게 몰랐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당시 중정을 비롯해 군과 경찰이 우왕좌왕했던 정황이 뚜렷하며 공군 2325부대도 오후 2시께 대방동 유한양행 앞 수류탄 자폭 한참 이후서야 “우리 부대 같습니다”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무의도 주민들의 신고도 위에서 적당히 뭉개고 일상사였던 간첩신고 건 정도로 치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했다.)


4회(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54987.html)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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