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분기 연속 ‘어닝 서프’에도 월가 ‘위스퍼 넘버’ 기대치엔 못 미쳐
블랙웰 출시 지연·추가 매출 기여 불명확 등 단기 투심에 악영향
NYT “2Q 어닝 서프, AI 열기 여전히 뜨겁다는 점 증명”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글로벌 인공지능(AI) 대장주 엔비디아에 대한 시장의 눈높이가 높아도 너무 높았다. 8분기 연속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미 월가 내부적으로 기대하고 있던 수익엔 미치지 못한 것이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의 높은 기대치가 선반영됐던 주가가 시간외 거래에서 큰 낙폭을 기록했다. 출하 시점 연기가 공식화된 차세대 AI칩이 가져올 추가적인 매출 확대폭까지 불명확하단 평가는 투자자들의 실망감을 키우는 재료로 활용됐다.
다만, 엔비디아의 어닝 서프라이즈 행진이 향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주요 빅테크(대형 기술주)의 강력한 AI 투자 수요가 견조한 만큼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한 AI 랠리도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는 모양새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28일(현지시간) 2025회계연도 2분기(2024년 5~7월) 300억4000만달러(약 40조1845억원) 규모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 월가 전문가들이 제시했던 예상치 288억5600만달러(약 38조6007억원)를 4.1% 웃도는 수준이다. 주당순이익(EPS)도 0.68달러로 예상치 0.64달러를 웃돌았고, 마진율까지도 전망치 컨센서스(평균) 75.5%보다 높은 75.7%를 기록했다.
특히, AI 관련 실적을 대표하는 데이터센터 매출도 263억달러(약 35조1920억원)로 시장 예상치(250억8000만달러, 약 33조5595억원)를 4.86% 상회했다.
이로써 엔비디아는 지난 2023회계연도 3분기(2022년 8~10월) 이후 8개 분기 연속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다만, 이날 엔비디아가 기록한 실적은 미 월가 전문가들이 내놓은 공식적인 전망치 외 실제 기대감을 담은 수치엔 못 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월가 큰손 투자자들에게 제공되는 실제 실적 기대치를 집계하는 어닝위스퍼에 따르면 2025회계연도 2분기 엔비디아 EPS ‘위스퍼 넘버(whisper number)’는 0.71달러로 엔비디아가 발표한 실제 EPS(0.68달러)보다 4.41%나 웃돌았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고위관계자는 “위스퍼 넘버는 기관 고객이나 큰손 개인 투자자 등 운용 자산이 많아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직접 상대해주는 고객에게만 속삭여주는 증권사 내부의 실제 실적 전망치”라며 “기업들 역시 공식적인 시장 전망치보다 위스퍼 넘버 기대치가 주식시장의 반응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을 잘 알고 이를 충족시키려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호실적에 대한 기대감이 강하게 선반영된 엔비디아 주가는 하락세로 이어졌다. 28일(현지시간) 미 뉴욕증시에서 전 거래일 대비 2.10% 하락한 125.61달러에 거래를 마친 엔비디아 주가는 시간외 거래가 한창이던 이날 오전 6시께 8% 넘게 추가 하락한 115달러 초반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 밖에도 엔비디아의 차세대 AI칩 ‘블랙웰’ 출하 시점이 기존 3분기에서 다소 늦춰진 4분기로 공식 확인된 점과 더불어, 실적 발표 후 이어진 어닝콜에서 엔비디아 경영진이 블랙웰 출하가 추가적인 매출 확대에 어느정도 수준으로 기여할 지 여부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점 등은 주가의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5회계연도 3분기(2024년 8~19월) 매출은 시장 예상치보다 3%가 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여기에 3분기 매출 총이익률이 75%로 시장 전망치(75.5%)보다 낮게 나타난 점도 주가를 끌어내린 요소로 작용했다.
블룸버그통신은 “3분기 매출 전망이 가장 낙관적이었던 예상치보다는 낮아 폭발적 성장세가 꺾이고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고 했고, 로이터 통신은 “월가가 목표를 더 높이도록 유도하면서 엔비디아는 점점 더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공개된 엔비디아의 실적은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AI 거품론’에 대한 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너무 높았던 시장 기대치에 따른 단기 조정 국면 이후엔 주가가 우상향 곡선을 다시 그릴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냈다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AI 기술 개발에 필요한 전 세계 AI 칩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 실적은 AI 열풍의 바로미터로 여겨진다.
앞서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은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자본 지출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혀 AI 열풍이 식지 않았음을 나타냈다. 이들 기업은 엔비디아 전체 매출의 약 40%를 차지하는데, 이날 엔비디아 실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엔비디아는 AI에 대한 열기가 여전히 뜨겁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이날 어닝콜에서 “대부분의 기업들이 차세대 기술(Next plateau) 경쟁에 따른 AI 개발 국면에서 뒤쳐질 수 없다는 생각 탓에 AI에 대한 강력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기존 AI칩 ‘호퍼’에 대한 수요 역시 여전히 높고, 4분기 출하 예정인 차세대 AI칩 ‘블랙웰’에 대한 수요 역시 공급을 확보하지 못할 정도로 굉장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AI 열풍은 한동안 지속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UBS 수석 반도체 티모시 아큐리 분석가는 “매 분기 주먹을 점점 더 꽉 쥐고, ‘이게(엔비디아 주가가)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며 “나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I 랠리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은 국내 주요 반도체주의 추가 상승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감도 동시에 키운다.
글로벌 고대역폭메모리(HBM) 1위 SK하이닉스와 HBM용 TC본더 생산사인 한미반도체는 엔비디아의 AI칩 밸류체인 내 핵심으로 자리잡아 올 한해 이어진 강세장을 엔비디아와 함께한 바 있다. 28일 종가 기준으로 엔비디아 주가가 올 해만 160.76% 오를 때 SK하이닉스, 한미반도체 주가도 각각 26.71%, 99.03%씩 오른 바 있다.
여기에 그동안 HBM 부문의 부진으로 인해 AI 랠리의 수혜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는 삼성전자까지도 엔비디아에 차세대 HBM 공급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도 엔비디아의 호실적 전망이 반가운 이유다. 최근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대한 HBM3E 8단 퀄테스트를 통과했고, 12단 제품의 경우 통과를 눈 앞에 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