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도 없이 외롭던 날들에 서로를 따스히 채워준 단짝, 건강 악화돼 갑자기 떠날까 매일 걱정
"좋은 가족 찾아달라" 했다가도, 문득 몸 상태 나아진 날엔 "천천히 떠나보내고 싶어" 속내 비춰
그 문자엔 염려와 우정과 사랑이 다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우주인 두 존재 중 하나가 떠났을 때, 그게 할아버지였을 때. 홀로 남겨질 8살 진돗개 행운이가 새 가족을 만나 잘 살아갈 수 있게 바라는 거였다. 내용이 이랬다.
'지난해 8월에 담도암 4기 판정을 받고 현재까지 4개월을 힘들게 지내왔습니다. 이젠 기력이 많이 소진돼 하루가 다르게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네요. 살만 치 살았으니 내일 죽어도 아쉬움은 없습니다. 다만 끝까지 살펴주지 못할 '행운이'가 눈에 밟힙니다.'
할아버지가 문자를 보내 도움을 청한 이는, 장신재 핌피바이러스 대표였다. 그는 유기 동물의 '임시 보호'를 더 많이 알리고 늘리려 진심인 사람이었다.
이번엔 '말기암'이란 압도적인 질병이, 8년의 단짝을 정말 갈라놓으려 하는 거였다.
상자에서 꼬물거리던 행운이를…따스히 품고 왔었다
할아버지는 사람이 다 떠난 외로운 섬 같았다. 자식도, 가족도 없이 텅 빈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시장에 다다랐을 때 상자 안에서 꼬물거리는 강아지들을 마주했다. 그중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글쎄, 다섯 마리가 상자에 있었는데, 행운이 요놈이 제일 열심히 움직이는 거야. 가만히 바라보니 저절로 마음이 가더라고요. 그 길로 데려왔지요."
행운이는 더는 떨지 않았다. 둘도 없는 서로의 친구이자 좋은 가족이 되었다. 매년 행운이 생일이면 닭까지 삶아 먹였다. 태어난 날을 함께 기억하고 기뻐해 주었다. 할아버지에게도 행복한 일들이 함박눈처럼 소복소복 쌓였다.
할아버지도, 행운이도 죽을 뻔했다
심장 문제였다. 의사는 할아버지가 위험할 뻔했다며, 박동기를 다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웃집 할머니에게 행운이를 부탁하고 힘든 수술을 잘 마쳤다. 오랜만에 돌아온 그를, 행운이가 좋다고 꼬릴 세차게 흔들며 반겼다.
그 무렵부터 할아버지는 여생을 생각했다. 단짝 행운이와 할아버지가, 남은 시간이 서로 다르단 걸 알았다. 좋은 가족을 찾아주기로 결심했다가 밤새 행운이를 보며 울다 결국 포기했다.
그때 우연히 행운이와 할아버지를 처음 알게 됐다. 돕고 싶었다.
행운이가 다른 보호자를 만나도 잘 살 수 있도록 응원하는 이들이 모였다. 장신재 핌피바이러스 대표와 이규상 트레이너, 내가 한 팀이 됐다. 우린 매주 행운이와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 건강이 갑작스레 나빠질 경우에도, 행운이가 새 가족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화 훈련을 했다.
2023년 12월. 행운이를 응원하던 장 대표와 이 트레이너와 난,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돕기로 했다. 행운이와 할아버지의 애달픈 우정을 글로 담았고, 기사가 나간 지 30분 만에 수술비가 300만원 넘게 모였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행운이와 함께 열심히 살아볼게요."
해피엔딩 바랐으나…"담도암 4기랍니다"
지난해 12월에 단톡방 알림이 떴다. 장 대표가 보낸 메시지였다. 그가 사진으로 공유한 건 할아버지가 보낸 문자였다. 심장이 쿵,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담도암 4기이며 연세가 많아 수술을 포기했단다. 물끄러미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많은 게 담긴 행운이의 표정이 떠올라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얼굴이 새까매지고 눈이 노래지는 거예요. 앉아 있질 못했어요. 어떤 느낌이냐면 추운 날 빈속에 막 떨리는 것 같았지요. 심하게 어지러워서 병원에 갔더니 담도암 4기라고 하잖아요. 수술을 빨리 해야 한다고. 암이 다 퍼지는구나, 생각했지요. 아프니까, 죽게 생겼으니까 저 녀석 어떡하나 싶어서 빨리 보내야겠단 맘이 들더라고요."
행운이가 할아버지 다리 뒤에 앉아, 그 얘길 듣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이내 화초 내음만 킁킁 맡았다. 할아버지는 행운이가 가장 좋아하는 손길로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러자 행운이는 두 앞발을 할아버지 무릎에 올렸다. 밖에 나가 산책하자고 보챘다. 오래 보고픈 평범한 행복의 장면들.
"우리 행운이 가족…천천히 알아봐 주세요"
"한 열흘 전엔 죽을뻔했는데, 이튿날부터는 또 가라앉아서 아직까진 아무렇지도 않고 괜찮아요. 의사가 (암이) 전이가 안 됐대, 많이 좋아졌다고요. 운동을 많이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행운이랑 보라매공원 한 바퀴 돌고, 산책을 1시간씩 해요. 살만해요."
"지금은 반반이야. 조금 나아지니까 사람 마음이…행운이랑 눈이 마주치면, 안타까워서 저 녀석을 어떻게 보내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냉정해야 하는데 내가 그러질 못해. 그래도 누가 잘 키워준다고 하면 보내야지."
이리 애매하게 말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그러나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당부가 이랬다.
"정 좋은 사람이 있으면 보내야지. 근데 급하게 하지는 말고 천천히…여유 있게 알아봐 줄 수 있을까요. 바쁘실텐데 번거롭게 해드려서 정말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