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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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리아의 고대 왕국 프리기아 (Φρυγία) | |
위치 | 중앙 아나톨리아 |
발생 시기: | 기원전 12~7세기경 |
언어 | 프리기아어 |
가장 큰 도시 | 고르디온 |
로마 속주 | 갈라티아 속주, 아시아 속주 |
튀르키예의 역사 Türkiye tarih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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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기아(그리스어: Φρυγία, Phrygia)는 아나톨리아의 중앙부에 있었던 왕국이다.
역사
[편집]프리기아인들은 초기 역사에 브루게스(브리게스)라는 이름으로 마케도니아 지방에 살았다. 그들은 그리스어를 민족어로 채용하기 전에 프루게스로 진화했다. 마케도니아에서는 여러 민족이 비그리스어계 또는 그리스어 이전의 인도 유럽어에서 나온 발칸어를 사용하거나 초기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트로이아 번영 시대에 브루게스의 일부가 트로이아의 보호 아래 트로이아 연맹이 있는 아나톨리아로 이동했다. 트로이어는 사멸해 프리기아어와의 정확한 관계나 프리기아 사회와 친화도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트로이아 왕국이 멸망한 이후, 그 복속국이었던 프리기아는 서서히 힘을 키운 후, 그리스 세력을 피해 아나톨리아 동쪽으로 진출했다.[1] 히타이트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프리기아인이 히타이트 영역으로 이동한 시기 및 프리기아와 히타이트의 관계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3200년 전에 히타이트 제국이 소멸했다. 프리기아는 현재 앙카라가 있는 할리스 강이 있는 곳에 있었고, 히타이트 소속이었던 것은 분명하나 히타이트 권력의 중심은 아니었다.
프리기아 왕국은 2800년 전 고르디움을 수도로 역사의 전면으로 떠올랐다. 이 시기에 프리기아인은 동쪽으로 팽창해 후르리인의 후손이며 히타이트의 경쟁 상대였던 우라르투와 부딪혔다.
2690년 전 프리기아 왕국은 이란 지역에서 발흥한 킴메르의 침입자들로 넘쳐났고, 그후 이웃 리디아에게 잠시 점령됐다. 프리키아 왕국이 키루스의 페르시아 제국으로 성공적으로 넘어가기 전, 알렉산더와 그 계승자의 제국은 페르가몬의 왕에게 점령당했고 결국 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프리기아어는 6세기까지 남아 있었다. 발칸 반도에서 브루게스는 그리스 마케도니아에 흡수되기 전에 오래 버티었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이희수 (2022). 《인류본사》. 휴머니스트. 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