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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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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력 3742 ~ 3743

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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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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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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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한 왕이 죽자, 신라의 신하들이 마한을 정벌할 것을 권하나 혁거세 거서간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요행으로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한 일이다.” 하여 사신을 보내 조문하였다.[1]
  • 전설에 따르면 석탈해진한에서 발견되다.
  • 고구려, 건국 시조 동명성왕(주몽), 장자 유리에게 왕의 자리 물려주고 죽었다. 그의 나이는 40이었다. 장자 유리, 유리명왕으로 왕의 자리에 오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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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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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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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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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부식 (1145) 혁거세 거서간 조(條) “三十九年 馬韓王薨 或說上曰 西韓王前辱我使 今當其喪 征之其國 不足平也 上曰 幸人之災 不仁也 不從 乃遣使弔慰 ” (39년 (서기전 19년) 마한 왕이 죽었다. 어떤 사람이 임금을 달래어 말하였다. "서한의 왕이 지난번에 우리의 사신을 욕보였는데 지금 상을 당하였으니 그 나라를 치면 쉽게 평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임금이 말하기를 "다른 사람의 재난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한 일이다." 하고는 따르지 않고, 사신을 보내 조문하였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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