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12월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연설하는 사진으로 곤욕을 치렀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전시작전권 환수 필요성을 역설하다 "미국이 호주머니에 손 넣고 '그러면 우리 군대 뺍니다' 이렇게 나올 때…"라는 대목에서 순간적으로 나온 몸짓을 사진기자가 포착한 것이다. 이 사진은 당시 정부에 비우호적이던 대다수 언론의 적극적인 보도에 힘입어 확산했고, 사진 속 대통령에겐 '건방진' 또는 '위협적인', 심지어 '불량스러운'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대통령의 '사화(寫禍)'는 늘 있어 왔다. 조선시대 '사림의 화'가 아니라 '사진으로 인한 화', 사진 한 장 때문에 대통령이 구설에 오르고 국민적 비판까지 받는 당황스러운 상황 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경기를 응원하며 뒤집힌 태극기를 흔드는 사진으로 '나라 망신'이라는 비난을 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가뭄에 타들어가는 논에서 소방호스로 물 뿌리는 장면을 연출한 뒤 '물대기를 한 건지 물대포를 쏜 건지 모르겠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사화를 겪었다. 지난해 4월 6일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차 부산을 찾은 윤 대통령이 횟집에서 만찬을 하고 나오면서 도열한 참석자들과 인사 나누는 사진이 온라인에 퍼졌다. 이른바 '윤핵관'을 비롯해 산불 비상 속 골프∙술자리 의혹을 받는 단체장들의 모습까지 비치자 비판 여론이 일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날은 영부인의 사진까지 논란에 휩싸였다. 일주일 전 대통령실이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장을 둘러보는 김건희 여사 사진을 22장이나 공개한 것을 두고 ‘화보 찍냐’는 비판이 뒤늦게 쏟아진 것이다.
사실 김 여사의 사화는 그게 다가 아니다. 취임 초기 대통령 집무실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팬클럽에 유출한 것을 시작으로 캄보디아 오드리 헵번 코스프레, 순천만 화보, 리투아니아 명품 쇼핑 논란을 거쳐 마포대교 순시 논란까지 다양하다.
대통령실 입장에선 억울할 만도 하다. 최근 마포대교 자살예방 현장 방문 사례를 보면 지난해와 같은 곳을 찾은 김 여사가 더 열심히 현장을 둘러봤고 홍보 라인은 당연히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실 희망대로 '진정성'만 봐주기엔 자충수가 너무 컸다. 정장 차림으로 경찰관 설명을 듣는 모습을 주로 보여준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흰 셔츠에 머리를 묶은 김 여사가 경찰관들에게 무언가 지시하는 듯한 사진을 8장이나 공개한 것이다.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 직후 공식 행보를 재개한 점도 부적절했다.
그러니 김 여사의 사화가 이렇듯 잦은 원인으로 대통령실이 거론되는 건 자연스럽다. 사진에 공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전속 사진사의 역량부터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홍보 라인의 전문성 등 짚어 볼 문제도 적지 않을 테니. 그런데 과연 그들만의 책임일까? 해답은 역대 대통령의 사례 속에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이 전 대통령이 뒤집힌 태극기를 흔들 당시 두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의 물대포 사진 논란도 메르스 사태로 드러난 정부의 무능함에 대한 국민적 반감의 표출이었다. 한마디로 '괘씸죄'라고 할까, 마음이 떠난 국민들 눈엔 아무리 아름다운 장면도 곱게 보일 리 없다. 논문표절, 주가조작, 명품백 수수, 공천 개입 등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이 꼬리를 문다. 진심 어린 사과는 물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의혹 해소가 없다면 영부인 사진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계속 고까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