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병수발 10년…그 방에만 가면 날파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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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28. 오후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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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사이

부담감·죄책감 벗어나고픈 심리
돌봄 방해하는 ‘환시’ 증상 보여
때로는 간병인에 맡기고 재충전
클립아트코리아

미영(가명)씨는 65살 여성입니다. 자녀들은 모두 출가하고 남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10년 전부터 꼼짝하지 않고 방에 누워 있습니다. 남편은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 흔히 ‘루게릭병’이라고 알려진 병을 앓고 있습니다.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루 게릭이 앓던 병으로 뇌와 척수의 운동 세포가 점점 파괴되면서 팔다리의 운동 기능이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도 이 병을 앓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3천여명의 환자가 있습니다.

미영씨의 남편은 키가 185㎝나 되는 건장한 체격을 갖고 있습니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합니다. 눈동자의 움직임을 통해 미영씨와 소통을 합니다. 미영씨는 남편이 몸을 전혀 쓸 수는 없지만 정신은 매우 또렷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미영씨는 남편에게 하루에 세번, 콧줄을 통해서 영양을 공급하고 가래를 뽑아내줍니다. 욕창을 막기 위해 몸을 좌우로 굴리고, 그때 대소변을 받아내서 처리합니다. 간병인도 오지만 남편의 눈빛을 보면 간병인에게만 맡기기는 어렵습니다. 벌써 10년, 그 긴 세월 동안 거의 외출도 안 하고 집에서 남편을 돌보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요양병원에 보내기를 바라지만 남편의 눈빛을 보면 미영씨는 차마 그런 결정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안쓰럽기도 무섭기도
그런데 3개월 전부터 남편이 있는 그 방에 들어가면 날파리들이 날아다니고 자신의 얼굴에 달라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간병인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데 한마리도 아니고 날파리 여러마리가 미영씨의 얼굴에 달라붙어, 남편 방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방을 나오면 날파리가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영씨는 날파리 때문에 그 방에 들어가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졌습니다. 남편 방에 모기장도 설치하고 살충제 스프레이도 뿌려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명절 때 집을 방문한 자녀들은 날파리와 싸우고 있는 미영씨의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녀들 눈에는 날파리가 보이지 않는데도 미영씨는 계속 손으로 허공을 휘젓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미영씨를 데리고 먼저 동네 안과를 방문해 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안과 전문의도 미영씨가 ‘비문증’이 아닐지 의심했습니다. 비문증이란 검은 실타래, 거미줄, 그림자, 또는 검은 구름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안구 내 출혈이 유리체 박리로 인해 자유롭게 눈 안에 떠다니고 환자가 이를 자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영씨의 안구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문증은 눈을 좌우로 움직이면 검은 실타래가 함께 좌우로 움직이는데 미영씨에게 보이는 날파리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미영씨는 안과 전문의의 의뢰로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검사를 통해 오랜 간병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 불안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간병에 대한 모든 책임을 혼자 견뎌야 하는 사실이 심각한 우울증의 원인이 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담 결과 미영씨는 남편의 방에 들어가면 자신을 쳐다보는 남편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무섭게도 느껴졌다고 합니다. 미영씨는 자신이 더 이상 남편을 간병하기 힘든 상태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날파리가 자신이 방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죄책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뇌 자기공명영상이나 인지기능 검사에서도 모두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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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병에 효자 없다고…
미영씨는 남편이 건강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운동을 좋아했던 남편이 조금도 자신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남편과의 추억을 생각하면 자신이 간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도 늙고 힘이 부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요양병원에도 보내려고 했지만 이런 희귀질환 환자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고 합니다.

담당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미영씨가 지금처럼 자신의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간병만 한다면 정신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영씨는 정신병적 증상이 동반된 우울증으로 날파리를 보는 환시가 동반되고 있었습니다.

미영씨는 이틀에 한번 간병인이 오는 시간을 소중히 잘 활용해야 합니다. 간병인이 있을 땐 미영씨가 옆에서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간병인이 남편을 돌보는 동안 외출해 친구도 만나고 운동도 하면서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날파리는 환시이기도 하지만 미영씨에게 이제는 더 이상 현재 상태로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신호입니다. 미영씨도 오랜 간병에 지쳐서 우울증뿐 아니라 혈압, 당뇨 등의 만성질환이 생겼습니다. 집안에 오랜 질병을 앓는 환자가 있으면 가정이 침울해지지만 하루 종일 그런 분위기에 빠져 있는 건 좋지 않습니다.

희귀 난치병 환자와 가족을 돕기 위해서는 국가와 민간의 관심과 경제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환자 가족들만의 부담으로 하기에는 너무 긴 세월 동안 자신을 갈아 넣어야 하고 끝도 없이 희생해야 합니다. 결국 가족들도 지치게 됩니다. 처음에는 환자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지만 ‘긴병에 효자가 없다’고 결국 가족들 간에 간병 부담을 두고 사이가 벌어지는 일도 발생합니다. 대개 환자의 아내나 가장 마음이 착한 보호자가 도맡아서 간병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영씨는 남편을 간병하다 보니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데 소홀했습니다. 건강검진을 받고 우울증, 고혈압, 당뇨에 대한 치료를 받았습니다. 환시 증상에 대해서도 약물치료를 받았습니다. 건강이 호전되면서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증상도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담당 의사의 조언에 따라 미영씨는 일주일에 사흘은 남편을 간병하는 일을 쉬고 친구를 만나고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미영씨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고 다시 자신의 삶을 찾아갈 수 있게 되자 그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동자도 편안해졌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를 썼습니다. 글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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