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는 ‘취임일 하루는 독재를 하겠다’던 예고대로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100여 개의 무더기 행정명령과 함께 시작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국경에 대한 침략을 저지하고, 우리 발아래 있는 액체 금(석유)을 잠금 해제하겠다. 미국산으로 짓고, 미국산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겠다”고 했다. 1·6 의회 난입 연루자 사면과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정책 폐기도 공식화했다.
그렇게 개막하는 트럼프 2기는 전임 바이든 시절과는 완전히 딴판일 것이다. 나아가 그간 세계가 알던 미국과도 전혀 다른 초강대국의 시대를 예고한다. 트럼프호(號)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자유세계의 중심축으로 굳건히 서서 공산권과의 냉전에서 승리한 데 이어 세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이끌던 그 미국이 아니다. 오직 자국의 힘과 이익을 앞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민주주의 인권 같은 가치나 규범은 안중에 없다. 동맹에 대해서도 철저한 손익계산 아래 이뤄지는, 미국에 유리한 이기적 거래만 있을 뿐이다.
트럼프 2기는 그 예고편이었던 1기 때와도 사뭇 다를 것이다. 그 스스로 갈팡질팡하며 내부 반대와 사보타주에 부딪혀 삐걱거렸던 1기 때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충성파 일색으로 내각과 참모진을 구성했다. 앞으로 4년이면 임기가 끝나는 만큼 눈에 띄는 업적을 내기 위해 엄청난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그에 방해되는 안팎의 장애물이 어떤 것이든 거칠고 사납게 다루겠다는 경고도 보냈다.
실제로 트럼프 2기가 출범도 하기 전에 전 세계는 전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한다느니,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 통제권을 확보하겠다느니 주권 침해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영토 팽창 욕심을 드러냈다. 그 여파로 캐나다 총리가 사임해야 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지옥 문이 열릴 것”이라는 위협에 부랴부랴 휴전에 합의했다. 이처럼 급격한 지각 변동에 세계 각국은 초긴장 속에 안전벨트를 단단히 조이고 있다.
한반도 역시 당장의 우선순위에선 밀리지만 극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트럼프 2기 취약지대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직거래에 나서 핵 군축이나 동결에 기초한 ‘스몰딜’을 추진하거나 주한미군 감축을 무기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할 경우 한국은 난감한 처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지난해 역대 최고치에 달한 대미 무역흑자는 미국 관세 정책의 주요 표적이 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탄핵 정국의 리더십 공백 속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당장 트럼프 2기와의 소통 채널 구축부터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외교부를 중심으로 미국의 동향을 면밀히 분석하며 기민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명예회장은 동아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는 트럼프 2기와 ‘백지 상태(clean slate)’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완전히 새로운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