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 이후 많은 영화감독이 한 사건에 대한 엇갈리는 증언 속에서 진실을 찾아 나가는 작품을 찍어 왔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유주얼 서스펙트’ ‘나를 찾아줘’ 등이 그렇다. 사실 ‘라쇼몽’의 영향을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는 게 인간이 일상에서 아주 빈번히 직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친한 친구가 했던 인상적인 말을 기억해서 그에게 언급해보라. 매번은 아닐지라도 ‘내가 말한 것과 미묘하게 다르다’거나 ‘그런 말 한 적 없다’는 반응이 종종 돌아올 것이다.
산드라는 양성애자였던 것이다. 남편이 죽는 날도 다른 여성과의 관계가 문제가 됐다. 유명작가인 산드라를 한 여학생이 인터뷰하러 집에 찾아왔고, 산드라가 인터뷰보다는 학생에게 관심을 보이자 남편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와 같은 정황은 학생의 인터뷰 녹음 파일에 담겼다.
그래서 마치 속죄하듯 자기 삶을 아들에게 쏟아부었지만 본인의 못 이룬 꿈을 향한 아쉬움도 그대로였다. 남편은 늘 좋은 소설을 쓰고 싶어 했는데 그의 아이디어는 늘 완성되지 못한 채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었다. 남편은 공중에 수증기처럼 떠다니는 자기 구상을 온전한 글의 형태로 포집할 수 있을 만한 안식년을 허락해달라고 간청했으나 아내는 들어주지 않았다.
게다가 아내는 남편의 가장 좋은 아이디어를 자기 글로 출판한 적도 있었다. 검사는 이를 표절이라고 규정지었다. 남편은 글이 안 써지는 날마다, 다시 말해 매일매일 그 ‘표절 사건’을 언급했다. 최상의 구상을 빼앗겼기 때문에 본인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남편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추락사 또한 사실 자기 의지에 따른 것이었을지 모른다고 추측하게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산드라는 무죄로 풀려나는데, 그건 아버지와의 기억을 털어놓은 아들 덕분이다. 아들은 사실 법정에서의 진실 싸움을 듣는 동안 어머니에게 실망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느꼈듯, 어머니는 가족을 향한 애정이 그렇게 크지 않음을 아들도 감지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어머니는 자기 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고, 계속해서 관계의 확장을 욕망하는 인물이다. 가족은 어머니가 중시하는 여러 영역 중 ‘하나’다.
아들은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것이 아버지가 개가 아닌 스스로에 대해 한 이야기임을 이제는 알 것 같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이것은 산드라에게 유리한 증거로 채택된다. 이 집의 남편은 아이에게 자기 삶의 의지가 꺾였음을 털어놓을 만큼, 어느 정도는 인생을 정리한 상태였다고 받아들여진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가 진짜 아버지를 죽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진실은 지금까지의 법정 공방 양상을 봤을 때, 결코 아들에겐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들로선 선택을 해야 한다. 아내와 아들이 옆에 있는데도 천천히 인생의 의지를 꺼뜨리고 있었던 아버지, 그리고 가족에 헌신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삶을 전반적으로 잘 끌어가고 싶은 열망이 뚜렷한 어머니 중 누구의 손을 들지 말이다.
그러나 산드라는 삶의 ‘전반적 양태’를 유지하는 걸 더 중시하는 사람이다. 인생에 고정된 우선순위를 두기보다는 흘러가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 아들은 술 마신 엄마가 늦게 자신에게 돌아와도 원망하지 않는다. 반겨준다. 그것이 자신이 받아들이고 가기로 선택한 인생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여러 진실을 놓고 고민하는 동안, 11살 아들은 어떤 의미에서 어른이 돼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