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대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
존 플랜태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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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트의 존 | |
랭커스터 공작, 아키텐 공작 | |
이름 | |
휘 | 존 플랜태저넷 |
신상정보 | |
출생일 | 1340년 3월 6일 |
출생지 | 벨기에 곤트 |
사망일 | 1399년 2월 3일 |
사망지 | 영국 레스터셔 래스터 성 |
가문 | 플랜태저넷 왕가(출생) 랭커스터 왕가창립자 |
배우자 | 랭커스터의 블랑쉬 카스티아 왕녀 콘스탄스 캐서린 스윈포드 |
자녀 | 포르투갈 왕비 필리파 엑서터 공작부인 엘리자베스 볼링브로크의 헨리(후의 헨리 4세) 카스티아 왕비 캐서린 서머셋 초대 백작 존 뷰포트 추기경 헨리 뷰포트 엑서터 공작 토머스 뷰포트 웨스트몰랜드 백작부인 조안 뷰포트 뷰포트는 그의 정부였던 캐서린 스윈포드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들에게 내려준 작위 |
묘소 | 영국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 |
제1대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John of Gaunt, 1st Duke of Lancaster, 1340년 3월 6일 ~ 1399년 2월 3일)은 잉글랜드의 왕족이자 랭커스터 공작이었다. 헨트(Ghent) 출신으로 헨트(Ghent)의 변형인 곤트(Gaunt) 출신 존 으로 불리게 되었다.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3세와 에노 출신 필리파의 넷째 아들로, 흑태자 에드워드, 라이오넬 플랜태저넷의 동생이자 요크의 에드먼드 1세의 형이다. 먼 친척이자 에드먼드의 증손녀 블랑쉬와 결혼하여 랭커스터 가의 상속권을 획득하였다. 내연녀인 캐서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뷰포트 백작위를 내려 뷰포트 가문을 형성하게 했다.
랭커스터 왕가의 시조였으나, 혼인관계를 통해 요크 왕가와 튜더 왕가에게도 조상이 되는 복잡한 인척관계를 형성하였다.
1367년부터 1374년까지 그는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에 참전하여 지휘관으로 복무했고, 귀국 후에는 처가인 랭커스터 왕가의 영지를 상속했다. 조카인 리처드 2세가 즉위한 뒤에는 섭정 겸 왕의 유력한 조언자로 활약하였으나, 리처드 2세와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1399년 리처드 2세는 그의 영지를 몰수하려다가 실패했다.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4세는 그의 아들이었고, 헨리 5세, 헨리 6세, 에드워드 랭커스터는 각각 그의 손자, 증손, 고손이 된다.
요크 왕가와의 관계
요크 왕가는 곤트의 존의 동생이었던 요크의 에드먼드 1세의 후손이었다. 코니스버러의 리처드는 요크의 에드먼드 1세의 아들로 그의 조카였으나, 곤트의 존의 형이었던 라이오넬 플랜태저넷의 유일한 상속자인 필리파 플랜태저넷의 손녀 앤 모티머와 결혼했다. 이 결혼으로 곤트의 존보다 서열이 낮았던 요크의 에드먼드 1세의 후손들은 모계를 통해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여 랭커스터 왕가와 갈등했다.
캐서린 스윈포드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는 그의 둘째 부인이 사망하자 정식으로 결혼하면서 적자가 되었다. 존은 그들에게 보퍼트 백작위를 내렸고 이들은 보퍼트 가를 형성하였다. 곤트의 존의 딸 조앤 보퍼트는 랄프 네빌과 결혼했는데, 이 결혼으로 태어난 외손자 리처드 네빌의 딸 세실리 네빌은 요크 왕가의 요크의 리처드와 결혼했다. 요크의 리처드는 그의 동생 요크의 에드먼드 1세의 손자이며 코니스버러의 리처드의 아들이었다.
요크 왕가의 에드워드 4세와 리처드 3세는 그의 동생 에드먼드의 증손자이면서, 곤트의 존에게는 외증손녀 세실리 네빌과 요크의 리처드(존의 종손자)의 아들이므로 그의 고손자가 된다.
헨리 7세와의 관계
곤트의 존은 헨리 7세에게도 선조가 되는데, 헨리 7세로 즉위하는 헨리 튜더는 그의 증손녀 마거릿 보퍼트의 아들이었다.
헨리 5세의 미망인인 프랑스의 카트린은 그의 총신이었던 오언 튜더와 재혼한다. 이들 사이에서는 에드먼드 튜더가 태어난다. 헨리 6세는 자신의 씨다른 동생을 배려하여 그에게 리치먼드 백작위를 수여함과 동시에 보퍼트 가문의 마거릿 보퍼트와 결혼시킨다. 마거릿 보퍼트는 서머싯 백작 존 보퍼트 1세의 손녀이자 서머싯 백작인 존 보퍼트 2세의 딸이었다. 서머싯 백작 존 보퍼트 1세는 곤트의 존과 캐서린 스윈포드의 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