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콤플렉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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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9일 (월) 21:30 판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는 빨간색을 공산주의와 동일시하면서 빨간색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극단적인 반공주의를 가리킨다.
역사 속의 레드 콤플렉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이후 반공 교육에서 붉은색을 공산주의의 혁명성을 나타내는 색깔 또는 공산주의를 가리키는 색으로 삼고 북한과 공산주의자를 묘사할 때 ‘빨갱이’라고 비하해서 불렀다.
레드 콤플렉스라고 불리는 반공 이데올로기는 반공이라는 국시와 국가보안법이라는 강력한 반공법과 더불어, 분단 이후 한국 사회 모든 영역에 침투되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운동이 태동하던 당시, 정부와 자본가 등 지배 계층은 노동운동과 공산주의운동을 동일시하였으며, 그로 인해 국가보안법을 동원한 탄압이 횡행하였다. 또한 혁신을 주장하는 진보주의 정당의 활동도 좌파에 대한 사회 전반의 거부감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시민들이 참여한 민주화운동으로 대한민국은 1987년 이후 민주화되었고, 북조선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북조선의 경제의 위기로 레드 콤플렉스는 줄어들기 시작하였지만,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색깔론’[1][2][3] 논쟁이 벌어졌고 그때마다 각 당과 후보자들은 자신이 친북세력이 아님을 증명해야만 했다.
정치분야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빨간색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FIFA 월드컵 때 축구 응원단 붉은악마의 활약과 붉은악마의 빨간색 티를 응원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이 입고, 거리 응원 등을 함으로써, 레드 콤플렉스가 많이 완화되었다.
사례
- 경쟁관계에 있지 않은 당사자들끼리 겨루는 경기(특히 운동회)를 할 때 일본에서는 홍백전(紅白戰)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청백전(靑白戰)이라고 한다.[4]
- 한국논단의 발행자 이도형은 증권거래소에서 주가가 오르고 내린 것을 각각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구분하는 현상을 개탄하기도 했다.[출처 필요] 그의 주장에 따르면, 주가가 오른 것을 붉은색으로 표시하면 국민들이 무의식적으로 붉은색을 선호하게 되어 공산주의가 침투할 위험이 높아진다고 하였다.
- 대한민국 축구 서포터 붉은악마가 활약할 때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붉은악마를 백의천사로 바꾸자는 제안을 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5][6]
- 국가정상화추진위와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 회원들 사이에 친북 논쟁이 있었다.[7]
영화 속의 레드 콤플렉스
주석
- ↑ 〈6·2지방선거〉색깔론, MB공격…교육감 선거 맞나? 2010년 5월 4일 《뉴시스》
- ↑ ‘색깔론’ 과 성숙한 국민의식 2002년 4월 8일 《문화일보》
- ↑ 금품-폭력-색깔론 까지…막가는 공방 2002년 6월 10일 《동아일보》
- ↑ 일반적으로 일본에서는 운동회 때 홍팀과 백팀이 대결하며, 대한민국에서는 청팀과 백팀이 대결한다(광진구청 인터넷방송국).
- ↑ 12번째 대표 선수 ‘붉은 악마’, 《매경이코노미》 2002년 6월 14일자
- ↑ 개신교 ‘붉은 악마’ 논란… 이젠 잦아들만도 하건만, 《한겨레》 2005년 11월 15일자
- ↑ 대한민국 전설의 논객 두 분의 설전《딴지일보》2010.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