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안동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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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 오백년]]》 - [[MBC]] 드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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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도 (드라마)|상도]]》 - [[MBC]] 드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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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두꽃 (드라마)]]》 - [[SBS]] 드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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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덤 (2019년 드라마)|킹덤]]》 - [[넷플릭스|Netflix]] 드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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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9일 (월) 19:37 판
관향 | 경상북도 안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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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김선평(金宣平) |
중시조 | 김습돈(金習敦) |
집성촌 |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상북도 안동시, 경상북도 의성군, 경상북도 예천군, 경상북도 청송군, 충청남도 논산군, 충청북도 청원군, 충청북도 괴산군, 충청북도 음성군, 충청남도 부여군, 충청남도 연기군, 경기도 고양시, 경기도 광주군, 경기도 포천군, 경기도 양평군, 전라북도 정읍시 |
주요 인물 | 김삼근, 김계권, 김계행, 김번, 김원효, 김극효, 김상용, 김상준, 김상관, 김상헌, 김광욱, 김광찬, 김광혁, 김광현, 김시현, 김수흥, 김수항,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 영빈 김씨, 김이소, 김이교, 김온순, 김달순, 김희순, 김조순, 김수근, 김홍근, 김흥근, 김좌근, 김병연, 김병학, 김병덕, 김병국, 김병시, 김옥균, 김호규, 김덕규, 김창규, 김충환, 김성락, 김복진, 김영진, 김성진, 김석진, 김익진, 김좌진, 김가진, 김기진, 김광림, 김상년, 김종한, 김증한, 김성근, 김익기, 김인기, 김무연, 김두한, 김수한, 김세현, 김모임, 김범일, 김병관, 김명동, 김을동, 김성동, 김형동, 김익동, 김복동, 김옥숙, 학조대사, 순원왕후, 효현왕후, 철인왕후, 영빈 김씨 |
인구(2020년) | 30,030명 (인구의 0.006%) |
비고 | 신라의 왕족 가문, 고려의 귀족 가문, 조선의 세도 가문, 근대의 귀족 가문 |
신 안동 김씨(新 安東 金氏)는 경상북도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
시조 김선평(金宣平, 930. 고려 태조 13년)은 경순왕(敬順王, 897. ~ 978.)의 재종질로 진골이며, 신라 말 고창군(古昌郡. 안동)의 성주로서, 930년(고려 태조 13년) 권행·장길과 함께 고려 태조를 도와 후백제군을 격파한 공으로 대광에 임명되었고, 삼한벽상공신에 책록되고 태사(太師)의 작위를 받았다. 이후 고창군이 안동부로 승격되었다.[1] 공수부정 김습돈(金習敦)을 중시조로 한다.
조선조에 들어와 후손 비안현감 김삼근(金三近, 1390. ~ 1465.)이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 부근에 살다가 소산리으로 옮겨 정착한 이래 높게 번성하였다. 장자 김계권(金係權, 1410. ~ 1458.)은 한성판관이고, 차자 김계행(金係行, 1413. ~ 1517.)은 대사헌으로 재임하였다.
김계권(金係權, 1410. ~ 1458.)은 5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세조의 국사를 지낸 명승 학조대사(學組大師)이고, 둘째 김영전(金永詮, 1837.)은 사헌부감찰, 셋째 김영균(金永勻, 1822. ~ 1872.)은 진사, 넷째 김영추(金永錘, 1443.)는 수원부사, 다섯째 김영수(金永銖, 1716. ~ 1786.)는 사헌부장령으로 재임하였다.
다섯째 사헌장령 김영수는 3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 김영(金瑛, 1475. ~ 1582.)은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의으로 재임하였고, 둘째 김번(金璠, 1479. ~ 1544.)도 문과에 급제하여 평양서윤으로 재임하였고, 셋째 김순(金珣, ~ 1623.)은 진사시에 합격하여 형조좌랑으로 재임하였다.
평양서윤을 역임한 김번(金璠, 1479. ~ 1544.)의 후손들이 장동 김씨 서윤공파로 분파하였는데, 왕비 3명, 후궁 1명, 부마도위 2명, 종묘공신 6명, 판서 35명, 당상관(정3품 이상) 140여 명 등 조선 후기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고관대작을 배출하였다. 본관을 사칭하는 백성들을 능지처사(凌遲處死)에 처하여 대명성(大名聲)에 비하여 인구가 극소수가 되었다.
손자 동지돈녕부사 김극효(金克孝, 1542. ~ 1618.)와 그의 아들 김상용(金尙容, 1561. ~ 1637.), 김상헌(金尙憲, 1570. ~ 1652.) 형제가 크게 현달하여 인조 때 상신에 올랐다. 김상헌(金尙憲, 1570. ~ 1652.)의 손자 김수항(金壽恒, 1629. ~ 1689.) 영의정의 자제들인 김창집(金昌集, 1648. ~ 1722.) 영의정, 김창협(金昌協, 1651. ~ 1708.) 대제학, 김창흡(金昌翕, 1653. ~ 1722.) 사헌부집의, 김창업(金昌業, 1658. ~ 1722.) 이조참의, 김창즙(金昌緝, 1662. ~ 1713.) 왕자사부, 김창립(金昌立, 1666. ~ 1683.) 형제는 덕망과 명망으로 높게 현달하고 당대를 지배하였던 인물들로 서인 노론 세력의 중추가 되었다.
김창집(金昌集, 1648. ~ 1722.) 영의정의 현손 김조순(金祖淳, 1765. ~ 1832.) 부원군의 딸이 순조의 왕비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 ~ 1857.)가 되면서 김조순(金祖淳, 1765. ~ 1832.)은 국구로서 영안부원군에 봉해졌고, 헌종의 왕비 효현왕후(孝顯王后, 1828. ~ 1843.),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哲仁王后, 1837. ~ 1878.)에 이르기까지 세도 가문이 되었다. 이들 후손들은 한양 백악산 아래 장의동에 세거하여 장동 김씨(壯洞 金氏) 장김(壯金)이라 하였다.
대대로 벼슬한 양반 가문이라 하여 “금관자(金貫子)가 서 말인 집안”이라고 말하며, 17세기 이후 명실공히 국반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인물
중세
성함 | 출생 | 종파 | 관직 | 신분 |
---|---|---|---|---|
김선평(金宣平) | 10세기 | 김부 신라 국왕의 재종질 | 삼중 대광 태사 | 왕족 |
근세
근현대
항렬자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
□순(淳) | □근(根) | 병
(炳) |
□규(圭) □균(均) |
□진(鎭) | □한(漢) | □동(東) | □현(顯) | □년(年) □기(基) |
□일(鎰) □종(鍾) |
□구(求) | □모(模) | 연(然) | □배(培) | □선(銑) | 원(源) | □영(榮) | 사(思) | □준(浚) | 선(善) | □택(澤) | □식(植) | □환(煥) | 철(喆) | 용(鏞) |
인구
- 1985년 15,606명
- 2020년 30,03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