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
반야(般若)는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냐(प्रज्ञा prajñā) 또는 팔리어 빤냐(paññā)를 가리키는 낱말인데, 뜻에 따라 지혜(智慧)로 번역하고, 간단히 지(智) 또는 혜(慧)라고도 한다.[1] 반야는 제법의 실상, 즉, 모든 유위법의 실제, 즉, 우주 만물의 본성이 괴로움(변하고 무너지는 것) · 무상(일시적인 것) · 무아(실체 없는 것) 즉 공(비어 있는 것, 인연따라 생기는 것)임을 아는 것 또는 보는 것[照見五蘊皆空 = 正見]으로, 나아가 이러한 앎과 봄의 극치[究竟覺 = 正見]에서 모든 번뇌가 소멸되어 열반을 증득함과 동시에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진여의 무분별지(無分別智 = 正見)를 뜻한다. 달리 말하면, 반야란 곧 정견이다. 요약하자면, 반야 즉 정견은 길이자 목표이다.[2][3]
개요
편집지혜 즉 반야는 그 기초 또는 출발이 인과 즉 업과 업의 과보의 법칙 즉 연기법[4][5]을 아는 것 또는 믿는 것에 있다.[6][7][8][9] 즉, 인과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사견(邪見)이 없는 것이 지혜의 출발이다. 달리 말해, 8정도의 정견의 시작이다.[10][11] 인과 · 연기법이라고 할 때 불교에서는 특히 고집멸도의 4성제와 무명에서 노사까지의 12연기를 가리킨다. 4성제는 괴로움(고)이라는 결과의 원인이 번뇌(집)이고 괴로움의 소멸 즉 참된 행복 즉 열반(멸)을 증득하게 하는 원인이 성도(聖道) 즉 8정도(도)라고 천명한다. 12연기는 무명 즉 무지라는 번뇌가 5취온의 삶 즉 윤회를 일으키는 궁극의 원인이며, 무지의 소멸 즉 지혜 즉 반야가 윤회를 벗어나게 하는 궁극의 원인이라고 천명한다. 반야는 선한 업 즉 유익한 업을 쌓아 현세와 미래에 마음에 드는 좋은 결과 즉 기뻐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는 뿌리 또는 원인인 무탐 · 무진 · 무치의 3선근 중 무치에 해당한다. 그리고 정견을 완전히 갖추는 것, 연기법을 완전히 아는 것, 인과를 완전히 아는 것이 반야의 완성이다. 즉 완전한 깨달음이다.[12][13]
완전한 깨달음 즉 열반의 증득과 관련하여, 충분한 수행력이 쌓였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좌선삼매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14][15]
- 마땅히 열반이라는 최선의 법 가운데 들어가서 머물러야 한다. 정진의 힘으로 깊은 선정에 들어 4념처 중 법념처에서 모든 존재의 실상을 관하건대 모든 것이 괴로움이어서 즐거움이 없으며 괴로움은 애착 등의 여러 가지 번뇌와 업에서 연유한다는 것을 알아 열반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이 괴로움은 일체가 남김없이 사라진다.
즉, 《반야심경》에서 설하고 있는 바처럼 제법을 관[照]하여 그 모두의 실상이 괴로움 즉 무상 즉 실체 없음 즉 공임을 정견[見]함으로써[照見五蘊皆空], 번뇌가 적멸하여 열반으로 들어가고, 그럼으로써 모든 괴로움이 남김없이 사라진다[度一切苦厄]고 말하고 있다. 정진 · 선정 · 반야바라밀에 의해 열반이 증득된다고 말하고 있다. 반야란 선정에 든 상태에서 제법의 실상이 고 · 무상 · 무아 즉 공임을 아는 것 또는 관하는 것, 즉, 연기를 보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무지를 비롯한 내부의 번뇌가 소멸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증득되는 열반의 무분별지라고 말하고 있다.
반야 즉 정견은 길이자 목표이다.[16][17] 인과를 믿는 것에서 출발하여 중도 연기를 보는 것이다. 선법(유익한 법)과 불선법(해로운 법)을 분별하고 식별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지켜나가는 진여의 분별지[依言眞如]에서 시작하여 중도 연기에 대한 깨달음의 극치인 진여의 무분별지[離言眞如]에 이르는 것이다.
불교 경전에서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냐 혹은 팔리어 빤냐를 '지혜'라고 번역하지 않고 음역인 '반야'를 사용한 것은 불경의 한역(漢譯) 시 적용했던 원칙인 5종불번(五種不翻: 5가지 번역하지 않는 원칙) 가운데 존중불번(尊重不翻)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즉, 반야를 지혜라 번역하면 그 본래의 뜻은 깊고 심대하나 번역함으로 인해 그 뜻이 얕아지고 가벼워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8] 하지만, 불교 논서들에서는 흔히 반야를 혜(慧)로 번역하고 있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반야(般若) 즉 혜(慧, prajñā, paññā)는 택법(擇法) 즉 간택(簡擇: 정확히 식별하여 판단함)[19][20][21] · 판단작용 · 판단력 또는 식별력으로, 5위 75법의 법체계에서 심소법(心所法)의 대지법(大地法: 마음이 일어날 때면 언제나 항상 함께 일어나는 마음작용들)에 속한다.[22][23][24]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의 교학에 따르면, 혜(慧)는 부파불교에서와 마찬가지로 택법[25][26] 즉 간택[27][28] · 판단작용 · 판단력 또는 식별력이지만 5위 100법의 법체계에서 심소법의 별경심소(別境心所: 특정 대상 또는 경계에 대해서만 일어나는 마음작용들)에 속한다.[29][30][31][32][33] 상좌부 불교의 교학에서는 8정도를 크게 계(戒) · 정(定) · 혜(慧)의 3학(三學)으로 분류하여 보는데, 정견(正見)과 정사유(正思惟)를 혜로 분류한다.[34][35] 이와 관련하여 《잡아합경》 제13권 제334경〈유인유연유박법경(有因有緣有縛法經)〉에서 고타마 붓다는 정사유(正思惟)의 반대인 부정사유(不正思惟: 바르지 않은 사유, 바르지 않은 생각)가 무명(無明)의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구사론》 등에 따르면, 지(智) · 견(見) · 명(明) · 각(覺) · 해(解) · 혜(慧) · 광(光) · 관(觀)을 통칭하여 혜의 8가지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36][37] 이 때문에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과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의 법체계에서 혜(慧)라는 명칭의 법은 있어도 지(智) · 견(見) · 명(明) · 각(覺) · 해(解) · 광(光) · 관(觀)이라는 명칭의 법은 없는데, 이들의 본질[自性, 自相]이 모두 혜(慧)와 동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서는 성자의 지혜, 즉 출세간의 지혜, 즉 번뇌를 단멸하는 힘을 가진 무루혜 또는 무루지를 크게 법지(法智)와 유지(類智)의 2가지로 구분한다. 법지는 욕계에 대해 4성제를 체득함으로써 증득되는 무루지이고, 유지는 색계와 무색계에 대해 4성제를 체득함으로써 증득되는 무루지이다. 또한, 무루지 즉 '법지와 유지를 합한 전체'를 4성제의 고 · 집 · 멸 · 도의 각각의 측면에서 보아서 각각 고지(苦智) · 집지(集智) · 멸지(滅智) · 도지(道智)라 한다. 그리고 무루지 즉 '법지와 유지를 합한 전체'를 깊이 또는 완전함의 측면에서 보아서 무학위의 아라한이 색계나 무색계의 선정에서 증득하는 무루지를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라 한다.[38][39][40][41][42]
대승불교에서는 특히 부처가 증득한, 번뇌장과 소지장을 단멸함으로써 드러나는 진여를 깨친 완전한 지혜 또는 진여의 지혜, 즉 부처의 무분별지(無分別智, 산스크리트어: nirvikalpa-jñāna, 니르비칼파 즈냐나)를 가리켜 반야(般若) 또는 마하반야(摩訶般若, 산스크리트어: mahāprajñā) · 대반야(大般若) · 대지(大智)라고도 하며, 보리(菩提, 산스크리트어: bodhi) · 대보리(大菩提) · 대원경지(大圓鏡智, 산스크리트어: ādarśa-jñāna) 또는 구경각(究竟覺)이라고도 한다. 대승불교에서는 진여의 무분별지가 모든 성자가 선정(禪定) 수행을 통해 증득하는,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갖가지 무루혜의 근본이라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대승불교의 각 종파는 진여의 무분별지에 근거하여 자신의 견해를 세운다. 대승불교의 중관학파에서는 반야 또는 마하반야의 입장에서 현상을 관하여 온갖 번뇌를 벗어나게 하는 방편으로서의 선정(禪定) 수행인 팔불중도(八不中道)의 공관(空觀)만을 세운다.[43]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에서는 진여의 무분별지를 본질의 입장에서는 근본지(根本智) 또는 근본무분별지(根本無分別智)라 하고 진여를 완전히 깨칠 때 비로소 드러난다는 증득의 입장에서는 후득지(後得智) 또는 후득무분별지(後得無分別智)라 하며, 가행(加行: 노력, 방편) 즉 선정 수행을 통해 증득하는, 진여의 무분별지의 일부로서의 갖가지 무루혜를 가행지(加行智) 또는 가행무분별지(加行無分別智)라 하며, 가행지는 근본지를 깨쳐 후득지가 드러나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44] 《대승기신론》등의 대승불교의 여래장사상 계열에서는 진여의 무분별지 또는 자성청정심(自性清淨心)을 본질의 입장에서 본각(本覺)이라 하고, 증득의 입장에서 범부가 최초로 증득하는 무루혜를 상사각(相似覺)이라고 하고, 성자가 선정 수행 즉 지관(止觀) 수행을 통해 증득하는 중간의 갖가지 무루혜를 수분각(隨分覺)이라 하고, 성자가 근본무명을 끊고 진여를 완전히 깨쳐 본각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을 구경각(究竟覺)이라 한다.[45][46]
반야의 뜻이 넓고 깊음
편집prajñā의 번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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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 반야, 혜 (로마자: banya) |
영어 | wisdom, understanding |
산스크리트어 | prajñā |
팔리어 | paññā |
버마어 | ပညာ (IPA: [pjɪ̀ɴɲà]) |
중국어 | 慧, 般若 (한어 병음: bōrě) |
일본어 | 般若 (로마자: hannya) |
몬어 | ပညာ ([[[:틀:IPA-mnw]]]) |
샨어 | ပိင်ႇၺႃႇ ([piŋ2 ɲaa2]) |
티베트어 | shes rab |
태국어 | ปัญญา or ปรัชญา (RTGS: panyaa or pratyaa) |
베트남어 | bát-nhã |
불교 용어 목록 |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 반야(般若), 혜(慧) 즉 판단작용은 그 범위가 아주 넓고 그 깊이도 차이가 큰데, 크게 대별하면 나쁜 지혜 또는 그릇된 지혜인 악혜(惡慧)와 선한 지혜 또는 바른 지혜인 선혜(善慧)로 나뉜다.[47][48][49] 예를 들어, 8정도의 정견(正見)은 선혜에 속하며 그 반대인 부정견(不正見) 또는 사견(邪見)은 악혜에 속한다.[50][51]
엄격히 말하자면 악혜 즉 그릇된 판단작용도 여전히 판단작용이므로 지혜라고 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지혜, 반야 또는 혜라고 할 때는 선혜만을 뜻한다. 이 경우, 즉 선혜로서의 판단작용 즉 식별력(識別力, 영어: power of discernment, discrimination[52])을 전통적인 불교 용어로는 택법(擇法, 산스크리트어: dharma-pravicaya, 팔리어: dhamma-vicaya, 영어: discrimination of dhammas,[53] discrimination of states[54])이라고 한다. 즉 모든 법(法)을 살펴서 참된 것[眞]과 거짓된 것[僞], 선한 것[善]과 악한 것[不善]을 판별하여, 참된 것과 선한 것을 취하고 거짓된 것과 악한 것을 버리는 것을 뜻한다.[55][56][57][58] 그리고, 인(忍, 산스크리트어: kṣānti)과 지(智, 산스크리트어: jñāna, 즈냐나)와 견(見, 산스크리트어: dṛṣṭi)은 모두 혜(慧) 즉 택법(擇法)의 일종이다.[59] 이들 중 인(忍)과 지(智)는 거의 반드시 선혜만을 의미하는 용법으로 사용되며, 견(見)은 선혜로서의 경우에는 정견이라 하고, 악혜로서의 경우에는 부정견 또는 사견이라 한다.
다시 선혜는 범부의 지혜인 문혜(聞慧) · 사혜(思慧) · 수혜(修慧)의 3가지 유루혜(有漏慧) 즉 3혜(三慧)와 성인의 지혜인 무루혜(無漏慧)로 나뉜다. 유루혜는 세간의 지혜 즉 세속적인 지혜이고 무루혜는 출세간의 지혜이다. 한편, 혜(慧) 즉 판단작용 중에서도 결택 또는 결단의 능력이 있는 것을 가리켜 특히 지(智, 산스크리트어: jñāna, 즈냐나)라고 하는데, 이 때의 결택 또는 결단은 의심 · 무명 등의 번뇌를 끊어내는 능력을 의미한다.[60][61] 한편, 지(智) · 견(見) · 명(明) · 각(覺) · 해(解) · 혜(慧) · 광(光) · 관(觀)을 통칭하여 혜의 8가지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36][37]
불교에 따르면, 번뇌를 끊어내는 능력은 오직 무루의 지혜 즉 무루지 또는 무루혜만이 가지고 있으며, 유루혜 즉 세속적인 지혜 즉 문혜(聞慧: 들어서 생겨난 지혜) · 사혜(思慧: 스스로 생각하여 생겨난 지혜) · 수혜(修慧: 수행을 통해 생겨난 지혜)의 3혜는 번뇌를 약화시킬 수는 있어도 끊어내지는 못한다.[62] 하지만 이들 3혜는 무루혜를 이끌어내는 또는 증득할 수 있게 하는 방편이 되며, 이 때문에 범부가 반드시 닦아야 하는 지혜이다.[63] 특히, 5계(五戒) · 10선(十善)의 계율을 지키면서 출세간을 지향하여 이들 3혜를 닦으면 반드시 어느 날 무루혜가 현전하게 되며 비로소 진정한 성도(聖道: 성인들의 길, 무루의 길, 출세간의 길, 즉 부처의 지위 즉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64][65][66])에 들어서게 된다고, 즉 성인만이 가지는 지혜인 무루혜를 완전히 증득해가는 실제적인 단계인 부파불교의 견도위(見道位) 또는 대승불교의 통달위(通達位)의 출발점에 서게 된다고 불교에서는 말하고 있다.[67][68][69][70][71] 이와 관련된 것으로, 상좌부 불교에서는 8정도를 크게 계(戒) · 정(定) · 혜(慧)의 3학(三學)으로 분류하여 보는데, 정견(正見) · 정사유(正思惟)가 혜에 속하며, 정어(正語) · 정업(正業) · 정명(正命)이 계에 속하며, 정정진(正精進) · 정념(正念) · 정정(正定)이 정에 속한 것으로 분류한다.[34][35]
대승불교에서는 성인의 지혜인 무루혜 중에서도 가장 궁극의 지혜로서, 부처가 가진 지혜를 가리켜 흔히 반야(般若)라고도 한다. 이러한 뜻에서의 반야는 모든 사물[事]이나 도리[理]를 명확하게 뚫어보는 깊은 통찰력을 말한다.[1] 이러한 뜻에서의 반야는 일반의 세속적인 지혜 또는 주관과 객관의 상(相)을 떠나지 못한 상태 또는 떠나지 않은 상태에서의 지혜인 유분별지(有分別智)가 아니며, 아직 부처의 상태에 이르지 못한 다른 성인들이 증득한 여러 무루혜 또는 무분별지보다도 더 뛰어난, 진여를 바르게 그리고 전면적으로 깨우친 지혜인 부처의 무분별지(無分別智)이다.[44][72] 무분별지(無分別智)는 주관과 객관의 상(相)을 떠난 평등한 지혜로서, 성인이 가지는 갖가지 무루혜의 근본이 되는 지혜이다.[73][74][75] 불교의 교의에 따르면, 진여는 언어나 문자로서는 어떻게 묘사할 수도 분별할 수도 없으므로 주관과 객관이 분리된 분별심의 상태에서는 진여를 알 수가 없으며, 모든 생각과 분별을 떠난 모양[相] 없는 참된 지혜의 상태에서만 진여를 완전히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진여를 전면적으로 깨우친 지혜, 또는, 진여의 완전한 지혜를 부처의 무분별지(無分別智)라 한다.[72] 이러한 의미에서, 불교에서는 반야를 얻어야만 성불하며 반야를 얻은 이는 곧 부처라고 말한다.[76]
대승불교의 중관학파에서는 단지 반야라는 말로써 부처가 가지는 무분별지를 가리키는데, 이에 비해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에서는 이 무분별지를 특히 보리(菩提), 대보리(大菩提) 또는 대원경지(大圓鏡智)라고 부른다.[77][78] 유식유가행파의 교학에 따르면 대원경지는 제8아뢰야식에 대해 전의(轉依: 식(識)이 지(智)로 변형되는 질적 전환)를 득할 때 증득되며, 이와 동시에 제7말나식에 대한 전의(轉依)도 완전히 성취되어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보며 대자대비심을 일으키는 무루지인 평등성지(平等性智)도 그 전체가 증득된다.[79][80] 마찬가지로 이와 동시에 제6의식에 대해 전의가 성취되어 묘관찰지(妙觀察智)가 증득되고, 전5식에 대해 전의가 성취되어 성소작지(成所作智)가 증득된다. 때문에 이들 4가지 지(智)를 불과4지(佛果四智: 성불할 때 증득되는 과보로서의 4가지 지혜)라 하고, 간단히 4지(四智)라고 한다.[81]
반야 바라밀
편집초기 불교에서도 제행무상 · 일체개고 · 제법무아를 반야에 의해서 안다고 주장하지만, 반야는 대승불교에서 특히 중요시되었다. 반야는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이 수행하는 보시(布施) · 지계(持戒) · 인욕(忍辱) · 정진(精進) · 선정(禪定) · 지혜(智慧)의 6바라밀(六派羅蜜) 중 반야 바라밀(산스크리트어: प्रज्ञापारमिता prajñāpāramitā) 또는 지혜 바라밀로 설법되고 있으며, 나머지 다섯 바라밀을 성립시키는 근거로 여겨져 중요시되고 있다.[1] 역으로, 선정 바라밀은 반야 바라밀이 발현되게 하는 직접적인 수단 또는 원인이다.[82]
또한 반야는 "모든 부처(諸佛)의 어머니(즉, 성불의 원인)"라 불리며, 이러한 교의는 많은 《반야경》을 비롯한 대승경전이나 논서에서 널리 강조되고 있다.[1][76] 예를 들어, 대승불교의 논서인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육안(肉眼) · 천안(天眼) · 혜안(慧眼) · 법안(法眼) · 불안(佛眼)의 오안(五眼)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 바라밀을 닦아야 한다는 불교 경전의 진술을 인용해 이를 해설하고 있다.[83]
《인왕경》에서 고타마 붓다는 반야 바라밀을 닦는 것이란 복인(伏忍) · 신인(信忍) · 순인(順忍) · 무생인(無生忍) · 적멸인(寂滅忍)의 5인(五忍)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84][85][86][87] 5인은 10신 · 10주 · 10행 · 10회향 · 10지 · 등각 · 묘각의 52위의 보살 수행계위에서 최초의 10신을 제외한 나머지 상위의 42위 즉 42현성(四十二賢聖)을 인(忍) 즉 지혜의 측면에서 다음의 5가지 그룹으로 재분류한 것이다.[84][85][88][89] 따라서, 《인왕경》에 따르면 반야 바라밀이란 현성(賢聖), 즉 10신의 계위를 벗어난 수행자, 즉 실제로 불교의 길에 들어선 수행자의 모든 대승불교적 수행과 그 수행의 과보로서 증득된 지혜 등의 모든 공덕을 통칭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살바야해(薩婆若海) 즉 일체지(一切智) 즉 불지(佛智)를 의미한다.[90][91][92]
반야의 다른 이름
편집불교의 교의에서 반야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반야라고만 하지 않고 흔히 마하반야(摩訶般若) · 대반야(大般若) · 대지(大智) · 대지혜(大智慧) 등으로 불린다. 이러한 명칭들은 불교 경전이나 논서의 제목에 흔히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経)》·《대지도론(大智度論)》 등과 같은 것이 있다. 또한 금강과 같은 수식어를 붙여 금강반야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예로는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금강경》의 원래 명칭인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이 있다. 당나라의 승려 현장은 자신이 번역한 《금강경》의 제목을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이라고 하여,[93] 반야, 즉 무분별지혜가 능히 모든 것을 끊어내는[斷滅] 금강(金剛; 다이아몬드)과 같이 근본 무명을 끊어내어[斷滅] 성불을 이루게 한다는 의미를 부각시켰다.
유식유가행파에서는 반야 또는 마하반야 대신에 대보리(大菩提)라는 명칭을 사용한다.[주해 1] 유식유가행파의 소의 논서인 《성유식론》에 따르면, 법공(法空)의 경지에 다다르면 법집(法執)인 소지장(所知障)이 소멸되어 대보리(大菩提: 대지혜 · 완전한 깨달음)가 성취되고 그러면 부처가 된다.[77][78]
한편, 《열반경》에서는 반야바라밀의 다른 이름으로는 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 금강삼매(金剛三昧), 사자후삼매(獅子吼三昧), 불성(佛性)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같이 보기
편집참고 문헌
편집- 권오민 (2003). 《아비달마불교》. 민족사.
- 구마라습 한역, 번역자 미상 (K.19, T.246).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19(5-1021), T.245(8-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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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불공 한역, 번역자 미상 (K.1340, T.245).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1340(37-52), T.246(8-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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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Gethin, R.M.L. (1992). 《The Buddhist Path to Awakening: A Study of the Bodhi-Pakkhiyā Dhammā》. Leiden: E.J. Brill. ISBN 90-04-094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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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불공 한역 (T.246).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 대정신수대장경. T8, No. 246,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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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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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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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한역 (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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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T.1613).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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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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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
편집각주
편집- ↑ 가 나 다 라 세계사상 > 사 상 용 어 > 동양사상 관계 > 불교 관계 > 반야,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 세친 조, 현장 한역(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제25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T29n1558_p0132c29║八中正見是道亦道支。餘是道支而非道。
T29n1558_p0133a01║七中擇法是覺亦覺支。餘是覺支而非覺。毘
T29n1558_p0133a02║婆沙師所說如是。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5권:
그리고 8도지 중의 정견은 바로 도(道)이자 역시 도지(道支)이지만, 그 밖의 나머지는 도지일 뿐 도는 아니다. 또한 7각지 중 택법은 바로 각(覺)이자 역시 각지(覺支)이지만, 그 밖의 나머지는 각지일 뿐 각은 아니다.81) 비바사사(毘婆沙師)의 설은 이상과 같다.
81) 즉 8성도지 중 정견은 바로 견도인 동시에 견도위에서 닦는 8성도지 한 갈래[支]이며, 7각지 중 택법은 깨달음인 동시에 깨달음에 이르는 한 갈래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T31n1613_p0853a06║云何邪見。謂謗因果。或謗作用。或壞善事。染
T31n1613_p0853a07║慧為性。謗因者。因謂業煩惱性。合有五支。煩
T31n1613_p0853a08║惱有三種。謂無明愛取。業有二種謂行及有。
T31n1613_p0853a09║有者。謂依阿賴耶識諸業種子此亦名業。如
T31n1613_p0853a10║世尊說。阿難。若業能與未來果彼亦名有。如
T31n1613_p0853a11║是等。此謗名為謗因。謗果者。果有七支。謂識
T31n1613_p0853a12║名色六處觸受生老死。此謗為謗果。或復謗
T31n1613_p0853a13║無善行惡行。名為謗因。謗無善行惡行果報。
T31n1613_p0853a14║名為謗果。謗無此世他世。無父無母。無化生
T31n1613_p0853a15║眾生。此謗為謗作用。謂從此世往他世作用。
T31n1613_p0853a16║種子任持作用。結生相續作用等。謗無世間
T31n1613_p0853a17║阿羅漢等。為壞善事。斷善根為業。不善根堅
T31n1613_p0853a18║固所依為業。又生不善。不生善為業。
T31n1613_p0853a19║云何見取。謂於三見。及所依蘊。隨計為最為
T31n1613_p0853a20║上為勝為極。染慧為性。三見者。謂薩迦耶。
T31n1613_p0853a21║邊執。邪見。所依蘊者。即彼諸見所依之蘊。業
T31n1613_p0853a22║如邪見說。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무엇을 사견이라고 하는가? 인과를 비방하고, 혹은 작용(作用)을 비방하고, 흑은 선한 일을 파괴하는 오염된 지혜를 성질로 한다. 인(因)을 비방한다란 무슨 뜻인가? 인온 업의 번뇌성을 말한다. 합해서 다섯 가지가 있다. 번뇌에는 무명ㆍ애(愛)ㆍ취(取)의 세 가지가 있다. 업에는 행(行) 및 유(有)의 두 가지가 있다. 유란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의지하는 모든 업의 종자를 말한다. 이는 또한 업이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아난아, 만약 업이 능히 미래의 과보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또한 유라고도 말한다.……”
이를 비방하는 것을 인을 비방한다고 안다. 과보를 비방한다란 무슨 뜻인가? 과보는 식(識)ㆍ명색(名色)ㆍ6처(處)ㆍ촉(觸)ㆍ수(受)ㆍ생(生)ㆍ노사(老死)의 일곱 가지가 있다. 이를 비방함이 과보를 비방하는 것이다.
또한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인을 비방함이고, 선행과 악행의 과보가 없다고 비방하는 것은 과보를 비방함이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없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화생(化生)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없다고 비방한다. 이러한 비방은 작용을 비방하는 것이다. 이 세상으로부터 저 세상으로 왕생하는 작용, 종자를 지니고 있는 작용, 생을 맺어 상속하는 작용 등을 말한다. 세간과 아라한 등이 없다고 비방하는 것은 선한 일을 파괴함이다. 선근을 끊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하고, 불선근(不善根)이 견고해지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또한 불선을 낳고, 선을 낳지 않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 ↑ Mehm Tin Mon (2015). 《The Essence of Buddha Abhidhamma. Third edition. Mehm Tay Zar Mon, Mya Mon Yadanar Literature. p.42.
The above eight cittas can be translated in the same way as we have translated the eight lobha-mūla cittas; the only change necessary is to replace ‘diṭṭhi — wrong view’ with ‘ñāṇa — knowledge’. This knowledge basically means the knowledge of knowing kamma and kamma-result. - ↑ Bhikkhu Bodhi & Allan R. Bomhard (2007).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Charleston Buddhist Fellowship. p.40.
Associated with knowledge (ñāṇasampayutta): Knowledge comprehends things as they are (yathāsabhāvaṁ). In the consciousness associated with knowledge, the word ñāṇa refers to the mental factor of wisdom (paññā-cetasika), which represents the root non-delusion (amoha). Consciousness dissociated from knowledge (ñāṇavippayutta) lacks this factor of wisdom, but it does not involve ignorance (avijjā) or delusion (moha), which pertains only to unwholesome consciousness. - ↑ 세친 조, 현장 한역(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제25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T29n1558_p0132c13║信等何
T29n1558_p0132c14║緣次第如是。謂於因果先起信心為果修
T29n1558_p0132c15║因。次起精進由精進故念住所緣。由念
T29n1558_p0132c16║力持心便得定。心得定故能如實知。是故
T29n1558_p0132c17║信等如是次第。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5권:
‘신’ 등은 어떠한 연유에서 이와 같은 순서로 설해진 것인가? 이를테면 인과에 대해 먼저 신심(信心)을 일으킨 이는 결과를 얻기 위해 원인을 닦아야 하므로 다음으로 정진을 일으킨다. 정진으로 말미암아 염(念)은 소연에 머물게 되고, 염의 힘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바로 선정을 획득하게 되며, 마음이 선정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능히 참답게 아는 것이니, 그렇기 때문에 ‘신’ 등의 순서가 이와 같은 것이다. - ↑ 용수 조, 구마라집 한역(T.1509).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9권. 대정신수대장경. T25, No. 1509, CBETA:
T25n1509_p0203a09║ 正見是智慧,如四念處、
T25n1509_p0203a10║ 慧根、慧力、擇法覺中說。 - ↑ 용수 지음,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K.549, T.1558). 《대지도론》 제19권:
정견(正見)이 곧 지혜[慧]이다. 이는 4념처와 혜근(慧根)과 혜력(慧力)과 택법각분(擇法覺分)에서 말한 바와 같다.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K.650, T.99 《잡아합경》 제12권 [제301경 〈가전연경〉(迦旃延經). CBETA.
T02n0099_p0085c17║如是我聞: 一時,佛住那梨聚落深林
T02n0099_p0085c18║中待賓舍。 爾時,尊者[跳-兆+散]陀迦旃延詣佛所,
T02n0099_p0085c19║稽首佛足,退住一面,白佛言:「世尊!如世尊
T02n0099_p0085c20║說正見。云何正見?云何世尊施設正見?」 佛
T02n0099_p0085c21║告[跳-兆+散]陀迦旃延:「世間有二種依,若有、若無,
T02n0099_p0085c22║為取所觸;取所觸故,或依有、或依無。若
T02n0099_p0085c23║無此取者,心境繫著使不取、不住、不計我
T02n0099_p0085c24║苦生而生,苦滅而滅,於彼不疑、不惑,不由
T02n0099_p0085c25║於他而自知,是名正見,是名如來所施設
T02n0099_p0085c26║正見。所以者何?世間集如實正知見,若世間
T02n0099_p0085c27║無者不有,世間滅如實正知見,若世間有
T02n0099_p0085c28║者無有,是名離於二邊說於中道,所謂此
T02n0099_p0085c29║有故彼有,此起故彼起,謂緣無明行,乃至
T02n0099_p0086a01║純大苦聚集,無明滅故行滅,乃至純大苦聚
T02n0099_p0086a02║滅。」 佛說此經已,尊者[跳-兆+散]陀迦旃延聞佛所
T02n0099_p0086a03║說,不起諸漏,心得解脫,成阿羅漢。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K.650, T.99 《잡아합경》 제12권 [제301경 〈https://kabc.dongguk.edu/m/content/view?itemId=ABC_IT&cate=bookName&depth=3&upPath=I&dataId=ABC_IT_K0650_T_012 가전연경]〉(迦旃延經).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리(那梨)라고 하는 마을 깊은 숲 속에 있는 대빈사(待賓舍)에 계셨다.
그때 존자 산타가전연(跚陁迦旃延)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바른 소견[正見]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을 바른 소견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세존께서 시설하신 바른 소견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산타가전연에게 말씀하셨다.
“세간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유(有)와 혹은 무(無)이다. 취함[取]에 부딪히고, 취함에 부딪히기 때문에 혹은 유에 의지하고 혹은 무에 의지한다. 만일 이 취함이 없다면 마음과 경계를 얽어매는 번뇌를 취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으며, 헤아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괴로움이 생기면 생겼다고 보고, 괴로움이 소멸하면 소멸했다고 보아 그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미혹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래가 시설한 바른 소견이니라.
왜냐하면 세간의 발생을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고 본다면 세간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세간의 소멸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본다면 세간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이것을 두 극단을 떠나 중도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며,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하고 ……(내지)……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산타가전연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 ↑ 구마라집 한역(T.614). 《좌선삼매경》(坐禪三昧經) 하권. 대정신수대장경. T15, No. 614, CBETA:
T15n0614_p0279a23║若行者得法念止,厭世間空老病
T15n0614_p0279a24║死法,都無少許常樂我淨,我於此空法復何
T15n0614_p0279a25║所求?應當入涅槃最善法中住。建精進力,得
T15n0614_p0279a26║深舍摩陀故(深舍摩陀者,住心一處名也,此土無是名)。是時得深舍摩
T15n0614_p0279a27║陀,住第四法念止中,觀諸法相,皆苦無樂,無
T15n0614_p0279a28║樂是實,餘者妄語。苦因愛等諸煩惱及業,
T15n0614_p0279a29║是非天、非時、非塵等種種妄語中生,是煩惱
T15n0614_p0279b01║及業出生,此苦是苦。入涅槃時一切滅盡 - ↑ 구마라집 한역, 차차석 번역 (K.991, T.614). 《좌선삼매경》 하권:
만일 수행자가 법념지를 얻는다면 세간의 공(空)ㆍ늙음ㆍ병듦ㆍ죽음의 법을 싫어하여 도무지 조금도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이 공한 법에서 다시 무엇을 구하는가?
마땅히 열반의 최선의 법 가운데 들어가서 머물러야 하며, 정진의 힘을 세워서 깊은 사마타(舍摩陀)를 얻는다.깊은 사마타라는 것은 마음이 한 곳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이곳에서는 적절히 표현할 이름이 없다. 이때 깊은 사마타를 얻어서 제4의 법념지 가운데 머문다.
모든 존재[諸法]의 모습을 관하건대 모든 것이 괴로움이어서 즐거움이 없으며, 즐거움이 없는 것이 진실이요 나머지는 거짓말이니, 괴로움은 애착 등의 여러 가지 번뇌와 업에서 연유한다. 이것은 하늘이 아니며, 시간이 아니고 티끌 등이 아니다.{티끌이 아니라는 등의} 이와 같은 갖가지 거짓말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갖가지 거짓말 속에서 생기니,} 이 번뇌와 업이 이 괴로움을 발생시킨다. 이 괴로움은 열반에 들어갔을 때 일체가 남김없이 사라진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제25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T29n1558_p0132c29║八中正見是道亦道支。餘是道支而非道。
T29n1558_p0133a01║七中擇法是覺亦覺支。餘是覺支而非覺。毘
T29n1558_p0133a02║婆沙師所說如是。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5권:
그리고 8도지 중의 정견은 바로 도(道)이자 역시 도지(道支)이지만, 그 밖의 나머지는 도지일 뿐 도는 아니다. 또한 7각지 중 택법은 바로 각(覺)이자 역시 각지(覺支)이지만, 그 밖의 나머지는 각지일 뿐 각은 아니다.81) 비바사사(毘婆沙師)의 설은 이상과 같다.
81) 즉 8성도지 중 정견은 바로 견도인 동시에 견도위에서 닦는 8성도지 한 갈래[支]이며, 7각지 중 택법은 깨달음인 동시에 깨달음에 이르는 한 갈래이다. - ↑ 운허, "五種不翻(오종불번)". 2013년 2월 4일에 확인
"五種不翻(오종불번): 경을 한역(漢譯)할 때에 음(音)으로만 쓰고 뜻을 번역하지 않은 데 5종의 유례가 있음. (1) 비밀고(秘密故). 다라니의 말과 같이 미묘하고 깊어서 생각할 수 없는 비밀어. (2) 다함고(多含故). 바가범(薄伽梵)과 같이 한 말에 많은 뜻을 가진 말. (3) 차방무고(此方無故). 염부수 이름과 같이 이 땅에는 상당한 물건이 없는 경우. (4) 순고고(順古故).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같이 옛날부터 흔히 음만을 쓰고 번역하지 아니하여도 여러 사람이 알 수 있는 말. (5) 존중고(尊重故). 반야를 지혜라 번역하는 경우와 같이, 그 참뜻은 깊고 존중한 것이나, 번역하면 도리어 그 뜻이 가벼워지는 경우." - ↑ 佛門網, "簡擇". 2013년 2월 22일에 확인
"簡擇:
出處: 佛光電子大辭典
解釋: 即選擇。指依智慧力作正確之判斷,以捨偽取真。「簡」與「擇」,均為選擇、分別之意。以智慧來簡擇一切諸法之力,即稱為擇力。又由簡擇力而得滅諦涅槃,即稱為擇滅。此外,為師者從眾弟子中選擇、分別何人堪受教法、何人不堪受教法,則稱為簡器。器,即根器、根機之意。〔雜阿含經卷二十八、俱舍論卷一〕
頁數: p6587
出處: 佛教漢梵大辭典
解釋: pravicaya, pra-vi-√ci, pratisaṃkhy, parīkṣ(√īkṣ); upanidhyāna, nidhyāna, parīkṣaṇa, parī=kṣā, parīkṣita, pra-√jñā, ratisaṃkhyāna, manasi-√kṛ, vicārayati, vi-√ci, vi√cint, vitakṣita, viniścaya, vibhāga, vibhāvita, vedha, saṃ-√hṛ
頁數: p.2761-2773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瑜伽八十三卷十頁云:言簡擇者:總取一切苦法各類為苦聖諦故。又云:簡擇者:謂審定解了。"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20. 혜(慧)
"慧謂於法能有簡擇。"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혜(慧)
"혜(慧)란 이를테면 법에 대해 능히 간택(簡擇)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18)
18) 혜(prajñā)란 소연이 되는 대상에 대해 능히 판단·간택(簡擇)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86 / 1397쪽.
- ↑ 권오민 2003, 69–81쪽.
- ↑ 星雲, "慧". 2012년 9월 11일에 확인.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2, p. T31n1612_p0848c18 - T31n1612_p0848c20. 혜(慧)
"云何為慧。謂即於彼擇法為性。或如理所引。或不如理所引。或俱非所引。"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618, T.1612, p. 3 / 12. 혜(慧)
"어떤 것이 혜(慧)인가. 저것에 대해 (자상과 공상 등의) 법을 간택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니, 혹 이치에 맞게 이끌어내기도 하고, 혹 이치에 맞지 않게 이끌어내기도 하고, 혹 두 가지가 아니게 이끌어내기도 한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2, 제1권. p. T31n1602_p0481b18 - T31n1602_p0481b21. 혜(慧)
"慧者。謂即於所觀境簡擇為體。如理不如理非如理非不如理悟入所知為業。如經說簡擇諸法最極簡擇極簡擇法遍了近了黠了通達審察聰叡覺明慧行毘缽舍那。"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 K.571, T.1602, 제1권. p. 16 / 293. 혜(慧)
"혜(慧)81) 심소는 곧 관찰되는 대상에 대해서 간택(簡擇)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진리에 계합함, 진리에 계합하지 않음, 진리에 계합함도 아니고 계합하지 않음도 아닌 것으로써 소지(所知)82)에 깨달아 들어감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온갖 법을 간택(簡擇)하되, 아주 잘 간택하고, 법을 지극히 간택하며, 두루 알고, 가까이 알며, 지혜롭게 알고, 통달하고 자세히 살피며, 총명하고 슬기롭게 깨달아 밝은 지혜로써 비발사나(毗鉢舍那)83)를 행한다”고 말한 바와 같다.
81) 혜(慧, mati) 심소는 ‘이해 · 분별 작용’ 즉 대상에 대하여 득실시비(得失是非)를 판단하는 심리작용이다. 이로써 의(疑) 번뇌가 단절된다.
82) 소지(所知, jñeya)는 ‘알아야 할 대상’이란 뜻으로서 응지(應知) · 경계 · 이염(爾焰) · 지모(智母) · 지경(智境) 등으로도 번역된다. 일체의 경계, 즉 지혜로 관조할 대상[所照之境]을 가리킨다. 5명(明) 등의 법이 능히 지혜를 내는 경계가 되므로 이렇게 말한다.
83) 범어 vipaśyana의 번역으로서 관(觀)이라 한역 함. 보는 것. 관찰. 조용한 마음에 대상의 영상을 뚜렷이 비추어 나타내는 것." - ↑ 星雲, "別境". 2012년 10월 20일에 확인.
- ↑ 운허, "五別境(오별경)". 2012년 10월 20일에 확인.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5권. p. T31n1585_p0028c11 - T31n1585_p0028c14. 혜(慧)심소
"云何為慧。於所觀境簡擇為性。斷疑為業。謂觀德失俱非境中。由慧推求得決定故。於非觀境愚昧心中無簡擇故非遍行攝。"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5권. p. 276 / 583. 혜(慧)심소
"무엇을 ‘혜(慧)심소’251)라고 하는가? 관찰되는 대상을 간택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의심을 끊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덕 · 과실, 덕도 아니고 과실도 아닌 대상을 관찰하는 가운데 혜(慧)심소가 추구함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닌, 우매한 마음속에서는 간택하는 것이 없다. 따라서 변행심소에 포함되지 않는다.
251) 혜(慧, mati)심소는 ‘이해 분별하는 작용’이다. 대상에 대하여 득실시비(得失是非)를 판단하며, 이로써 의(疑) 번뇌가 단절된다." - ↑ 황욱 1999, 53. 혜(慧)심소쪽
"‘慧’는 所觀境에 대하여 簡擇하는 것으로써 體를 삼고, 如理와 不知理 및 非如理와 非不如理에 悟入하여 아는 것으로써 그 業을 삼는다. 즉 所觀境上에 得失과 是非를 間去取擇하는 것을 그 性用으로 삼고, 이 慧의 推求力에 의하여 결정의 勝解를 生하면 猶豫不定의 疑煩惱가 단절되는 작용이 그 業用이다.171) 한편 《대승아비달마집론》에서는 사물을 觀함에 있어서 擇法하는 것을 體로 하고, 의심을 끊는 것을 業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172)
171) ‘慧’의 性用은 所觀境에 대하여 簡擇하는 작용을 의미하며, 業用은 의심을 끊고 결정하는 작용을 가리킨다. 곧, 慧는 판단하는 심리작용으로써, 事理를 분별하여 결정하며 疑念을 斷除하여 事理에 통달하는 작용을 말한다.
172) 《大乘阿毘達磨集論》 1(《大正藏》 31, p. 664中). “何等為慧。謂於所觀事擇法為體。斷疑為業。”" - ↑ 가 나 “Culavedalla Sutta: The Shorter Set of Questions-and-Answers (MN 44)”.
- ↑ 가 나 Bhikkhu Bodhi. “The Noble Eightfold Path: The Way to the End of Suffering”. Access to Insight. 2013년 2월 4일에 확인함.
"The eight factors of the Noble Eightfold Path are not steps to be followed in sequence, one after another. They can be more aptly described as components rather than as steps, comparable to the intertwining strands of a single cable that requires the contributions of all the strands for maximum strength. With a certain degree of progress all eight factors can be present simultaneously, each supporting the others. However, until that point is reached, some sequence in the unfolding of the path is inevitable. Considered from the standpoint of practical training, the eight path factors divide into three groups: (i) the moral discipline group (silakkhandha), made up of right speech, right action, and right livelihood; (ii) the concentration group (samadhikkhandha), made up of right effort, right mindfulness, and right concentration; and (iii) the wisdom group (paññakkhandha), made up of right view and right intention. These three groups represent three stages of training: the training in the higher moral discipline, the training in the higher consciousness, and the training in the higher wisdom." - ↑ 가 나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6권. p. T29n1558_p0135a20 - T29n1558_p0135a28.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
"盡無生智二相何別。頌曰。
智於四聖諦 知我已知等
不應更知等 如次盡無生
論曰。如本論說。云何盡智。謂無學位若正自知我已知苦。我已斷集。我已證滅。我已修道。由此所有智見明覺解慧光觀是名盡智。云何無生智。謂正自知我已知苦不應更知。廣說乃至。我已修道不應更修。由此所有廣說乃至。是名無生智。" - ↑ 가 나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 1178 / 1397.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
"진지와 무생지의 두 지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4성제에 대한 지(智)로서
'나는 이미 알았다'는 등으로 아는 것과
'더 이상 알 것이 없다'는 등으로 아는 것이
차례대로 진지와 무생지이다.
智於四聖諦 知我已知等
不應更知等 如次盡無生
논하여 말하겠다. 본론(本論)에서 설한 바와 같다.19) "무엇을 일컬어 진지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무학위에서 '나는 이미 고(苦)를 알았다', '나는 이미 집(集)을 끊었다', '나는 이미 멸(滅)을 작증하였다', '나는 이미 도(道)를 닦았다'고 스스로 바로 알며, 이에 따라 소유하게 된 지(智)와 견(見)과 명(明)과 각(覺)과 해(解)와 혜(慧)와 광(光)과 관(觀)을 바로 진지라고 이름한다.20) 무엇을 일컬어 무생지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나는 이미 고를 알았으므로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나는 이미 도를 닦았으므로 더 이상 닦아야 할 것이 없다'고 스스로 바로 알며, 이에 따라 소유하게 된……(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따위를 바로 무생지라고 이름한다."
19) 『품류족론』 권제1(한글대장경117, p.24).
20) 여기서 '지'는 결단(決斷) 혹은 거듭하여 아는 것을 말하며, '견'은 추구(推求) 혹은 현조(現照)를, '명'은 명랑(明朗)을, '각'은 각오(覺悟)를, '해'는 달해(達解)를, '혜'는 간택(簡擇)을, '광'은 혜광(慧光)을, '관'은 관찰을 말하는 것으로, 이 여덟 가지는 모두 혜의 다른 이름이다." - ↑ 星雲, "無漏智". 2013년 2월 6일에 확인
"無漏智: 梵語 anāsrava-jñāna。指證見真理,遠離一切煩惱過非之智慧。為「有漏智」之對稱。於小乘,證見四諦理之智,稱為無漏智。有法智、類智之分別。證得欲界四諦法理之智,稱為法智。證得色、無色等二界四諦法之智,稱為類智;蓋其境智與法智相似,故稱類智。若由境之差別則分為苦、集、滅、道等四智。於無學位又分盡智、無生智,此二智皆證見四諦之法理。小乘謂無漏智於見道始生起,而漸次修習。
於大乘唯識宗則分無漏智為根本、後得二智,根本智為唯識之性,即證得真如理性之無分別智;後得智由根本智所出,為唯識之相,即了知因緣現起之萬象。大乘謂無漏智於初地見道始生起,而漸次修習,遂證佛果。〔法華經方便品、大毘婆沙論卷九十七、俱舍論卷二十六、順正理論卷七十三〕(參閱「十智」 472)" - ↑ 星雲, "十智". 2012년 12월 29일에 확인.
- ↑ 星雲, "[1]". 2012년 12월 30일에 확인
"無生智: 梵語 anutpādajñāna,巴利語 anuppāda-ññāna。二智之一,十智之一。指了知一切法無生之智。亦即滅盡一切煩惱,遠離生滅變化之究極智慧;於四諦已自知苦、斷集、修道、證滅,復更遍知無「知、斷、修、證」之無漏智。又已遍知斷盡欲、有、無明之三漏及結縛、隨眠等不再生起,故稱無生智。阿毘達磨集異門足論卷三(大二六‧三七六上):「無生智云何?謂如實知我已知苦,不復當知;我已斷集,不復當斷;我已證滅,不復當證;我已修道,不復當修。此所從生智、見、明、覺、解、慧、光、觀,是名無生智。」
蓋此智於無學位圓滿完成,獲得「盡智」後,更以一切之聖道為因,圓滿無學果,故為與非擇滅之「得」俱生之無漏正智,此唯利根之聖者能成就。除欲界及有頂地之外,以其他之四根本定、未至定、中間定、下三無色定等九地為依地。〔摩訶般若波羅蜜經卷五廣乘品、大毘婆沙論卷二十九、俱舍論卷二十四、卷二十六、辯中邊論辯無上乘品、異部宗輪論、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十五、品類足論卷一、顯揚聖教論卷二〕(參閱「二智」、「十智」)"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6권. p. T29n1558_p0134c18 - T29n1558_p0134c21. 진지(盡智)·무생지(無生智)와 유정지(有頂地)
"法智類智由境差別分為苦集滅道四智。如是六智若無學攝。非見性者名盡無生。此二初生唯苦集類。以緣苦集六種行相觀有頂蘊為境界故。"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6권. pp. 1174-1175 / 1397. 진지(盡智)·무생지(無生智)와 유정지(有頂地)
"법지와 유지는 경계의 차별에 따라 고·집·멸·도의 네 가지 지로 나뉜다.9) 그리고 이와 같은 여섯 가지 지(법지·유지와 4諦智)로서 만약 무학에 포섭되고 '견'의 성질이 아니라면, 이를 일컬어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라고 한다. 이러한 진·무생의 두 가지 지로서 처음으로 생겨나는 것은 오로지 고류지와 집류지이니, 고제·집제를 소연으로 하는 여섯 종류의 행상으로써 유정(有頂)의 온을 경계로 하여 관찰하기 때문이다.10)
9) 세속지의 경우도 고제(苦諦) 등의 행상을 소연으로 삼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을 즐거움[樂] 등이라고 인정하기도 하며, 이와 같은 세속지를 획득하고 난 후 4제를 소연으로 하는 의심[疑]이 일어나기 때문에 고지 (苦智) 등으로 나누지 않는 것이다.(『현종론』 권제35, 한글대장경201, p.461)
10) 진지와 무생지는 4제에 대한 지(智)이기 때문에 그 자체는 다름 아닌 법지와 유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지와 무생지는 유정지의 4제를 관찰할 때 생겨나는 것으로, 처음에 고제하의 비상(非常)과 고(苦)의 행상, 집제하의 인(因)·집(集)·생(生)·연(緣)의 네 행상으로써 유정지의 5온을 관찰하고 나서 생겨나기 때문에 최초로 생겨나는 것은 오로지 고류지·집류지라고 한 것이다. 참고로 고제의 공·비아의 행상을 짓지 않는 것은 출관(出觀) 후 '(나)는 이미 생을 다하였다'는 등의 세속심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 ↑ 운허, "中道觀(중도관)". 2013년 2월 5일에 확인
"中道觀(중도관): 중도는 편벽되고 그릇된 미망(迷妄)을 여읜 법의 실리(實理)인 절대이성(絶對理性)을 이름하는 것. 유식종에서는 유식을, 삼론종은 팔불(八不)을, 천태종은 실상을, 화엄종은 법계를 중도라 하는 등 종파에 따라 다르다. 이 중도를 직접 체험하기 위한 실천 수행을 중도관이라 함." - ↑ 가 나 星雲, "無分別智". 2013년 2월 4일에 확인
"無分別智: 梵語 nir-vikalpa-jñāna。又作無分別心。指捨離主觀、客觀之相,而達平等之真實智慧。即菩薩於初地入見道時,緣一切法之真如,斷離能取與所取之差別,境智冥合,平等而無分別之智。亦即遠離名想概念等虛妄分別之世俗認識,唯對真如之認識能如實而無分別。此智屬於出世間智與無漏智,為佛智之相應心品。此智有加行、根本、後得等三種之別:(一)尋思之慧,稱為加行無分別智,又作加行智,乃道之「因」。(二)正證之慧,稱為根本無分別智,又作出世無分別智、根本智,乃道之「體」。(三) 出觀起用之慧,稱為後得無分別智,又稱後得智,乃道之「果」。另據成唯識論卷十之說,根本無分別智與後得無分別智屬同一種智,惟作用不同,後得智依根本智方能掌握佛教真理,根本智則靠後得智方可於世俗世界之認識中發揮功能。
又據唐譯攝大乘論釋卷八謂,無分別智遠離五種相以為自性,即:(一)離睡眠等之無作意,(二)離二禪以上之過有尋有伺地,(三)離無心定之想受滅寂靜,(四)離色,(五)於真實義離有分別之計度。又無分別智以修慧為體,菩薩於十地之位數數修習,至第八地以後即可相續任運。梁譯攝大乘論釋卷十二亦謂,無分別與菩薩無異,無分別之自性即菩薩之自性,菩薩以無分別智為體。〔梁譯攝大乘論釋卷八、卷九、卷十一、大乘莊嚴經論卷三、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十四、成唯識論卷九〕" - ↑ 星雲, "四覺". 2013년 2월 5일에 확인
"四覺: 為大乘起信論所說四種不同覺知之證悟階段。即:(一)本覺,謂一切眾生之自性清淨心體遠離妄念,同於虛空界而無所不遍,諸法界皆等同一相,此即如來平等法身。(二)相似覺,謂二乘及三賢位(十住位、十行位、十迴向位)之菩薩既覺知見惑、思惑而斷之,捨離粗分別的執著之相,得類似之覺悟,為始覺之初;然尚餘無明細惑未斷,故未得真覺,稱為相似覺,意謂與真覺類似。(三)隨分覺,謂初地以上之菩薩逐地斷除無明,而於各地中逐一得真覺;隨分,謂隨證悟階段之轉昇而於各地一一斷除無明,一一證得真覺。(四)究竟覺,謂既已斷盡根本無明;本覺之體全彰,徹見心性,了知心即常住之理,而得究竟至極之真覺,此即入於如來地。" - ↑ 운허, "四覺(사각)". 2013년 2월 5일에 확인
"四覺(사각): 시각(始覺)의 내용을 4위(位)로 구분한 것. (1) 불각(不覺). 시각의 제 1보(步)로 이미 업인과보(業因果報)의 이치를 깨달은 지위, 아직 혹(惑)을 끊는 지혜가 생기지 않은 자리. (2) 상사각(相似覺). 아집(我執)을 여의고, 아공(我空)의 이치를 깨달은 지위, 아직 진각(眞覺)을 얻지 못한 자리. (3) 수분각(隨分覺). 초지(初地)인 정심지(淨心地)에 들어가 일체 모든 법은 다 유식(唯識)의 소현(所現)임을 깨닫고, 법집(法執)을 끊고 진여 법신을 일분일분(一分一分)씩 깨달아 가는 지위. (4) 구경각(究竟覺). 근본 무명(無明)을 끊고, 절대의 진각(眞覺)을 얻어 본각(本覺) 자신이 나타난 자리." - ↑ 佛門網, "惡慧". 2013년 2월 3일에 확인
"惡慧:
出處: 漢譯阿含經辭典,莊春江編(1.4版)
解釋: 沒有智慧。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瑜伽六十二卷二頁云:云何惡慧?謂住自見取,執不平等難捨言論。"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6권. p. T31n1585_p0030a21 - T31n1585_p0030a23. 불선근(不善根)
"以貪瞋癡六識相應。正煩惱攝起惡勝故立不善根。斷彼必由通別對治。通唯善慧。別即三根。"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6권. p. 291 / 583. 불선근(不善根)
"탐 · 진 · 치 심소는 6식과 상응하고, 바로 번뇌에 포함되며, 악을 일으키는 것이 뛰어나기 때문에 불선근(不善根)으로 건립한다. 그것을 단멸하려면 반드시 공통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의 다스림에 의한다. 공통적이라는 것은 오직 선(善)의 혜(慧)이다. 개별적인 것이라는 것은 세 가지 근(根)48)이다.
48) 무탐(無貪) · 무진(無瞋) · 무치(無癡)의 심소를 말한다."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6권. p. T31n1585_p0030c23 - T31n1585_p0030c24. 기타의 경우: 정견(正見)과 정지(正知)
"正見正知俱善慧攝。"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6권. pp. 298-299 / 583. 기타의 경우: 정견(正見)과 정지(正知)
"바른 견해[正見]와 바르게 아는 것[正知]은 모두 착한 성품의 혜(慧)에 포함된다." - ↑ "식별력", 《네이버 영어사전》. 2013년 2월 4일에 확인.
"식별력 識別力: power of discernment, discrimination" - ↑ Gethin (1992), pp. 146 ff. In regards to his leaving dhamma untranslated, Gethin summarizes (p. 151):
- The point I wish to make, however, is that the usage of the word dhamma (in the plural) remains in the Nikāyas, canonical Abhidhamma, and even to some extent in the commentarial tradition, a somewhat ambiguous and multivalent term. Its precise understanding continues to be elusive and defies rigid or fixed definition. Possibly this is no accident and the texts delight in the very fluidity of the term.
- In Buddhist thought to take dhamma apart is, I think, to be left with dhammas. Dhamma-vicaya means, then, either the 'discrimination of dhammas' or the 'discernment of dhamma'; to discriminate dhammas is precisely to discern dhamma.
- ↑ Bodhi (2000), SN 46 passim, pp. 1567 ff.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권. p. T29n1558_p0001a28 - T29n1558_p0001b11. 혜(慧)와 택법(擇法
"不由威力與願神通。禮如理師欲何所作。對法藏論我當說者。教誡學徒故稱為論。其論者何。謂對法藏。何謂對法。頌曰。
淨慧隨行名對法 及能得此諸慧論
論曰。慧謂擇法。淨謂無漏。淨慧眷屬名曰隨行。如是總說無漏五蘊名為對法。此則勝義阿毘達磨。若說世俗阿毘達磨即能得此。諸慧及論。慧謂得此有漏修慧思聞生得慧及隨行。論謂傳生無漏慧教。此諸慧論。是彼資糧故亦得名阿毘達磨。釋此名者能持自相。故名為法。若勝義法唯是涅槃。若法相法通四聖諦。此能對向或能對觀。故稱對法。"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권. pp. 3-4 / 1397. 혜(慧)와 택법(擇法
"참다운 스승께 예배하고서 무엇을 하고자 함인가? '나는 이제 마땅히 대법장론(對法藏論)을 설하리라.' 이는 즉 학도들을 가르치고 타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논(論, astra)'이라고 칭한 것이다. 그러한 논은 어떠한 것인가? 말하자면 대법장(對法藏)이다.5) 무엇을 일컬어 대법장이라고 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정혜(淨慧)와 이에 따르는 행[隨行]을 대법이라 이름하며
아울러 능히 이를 획득하게 하는 온갖 혜와 논을 대법이라 한다.
淨慧隨行名對法 及能得此諸慧論
논하여 말하겠다. '혜(慧)'란 택법(擇法)을 말하며, '정(淨)'이란 무루(無漏)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혜의 권속을 일컬어 '이에 따르는 행, 즉 수행(隨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전체적으로 말하면 무루의 5온(蘊)을 설하여 '대법'이라 이름하니, 이는 즉 승의(勝義)의 아비달마(阿毘達磨)이다.
그리고 세속(世俗)의 아비달마에 대해 설하자면 능히 이러한 무루의 5온을 획득하게 하는 온갖 혜와 논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혜'란 이를테면 이를 획득하게 하는 유루(有漏)의 문(聞)·사(思)·수혜(修慧)와 생득혜(生得慧), 그리고 이에 따르는 행(行)을 말하며, '논'이란 전(傳)하는 바에 따르면 무루의 혜를 낳게 하는 가르침[敎]을 말한다.6) 즉 이러한 온갖 혜와 논도 바로 그것(무루 정혜)을 낳게 하는 것의 자량(資量)이 되기 때문에 역시 아비달마라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아비달마의] 명칭을 해석함에 있어 능히 자상(自相)을 보지(保持)하는 것,7) 그것을 법(法)이라 이름하니, 만약 그것이 승의의 법이라면 오로지 열반(涅槃)을 말하지만 법상(法相)의 법일 경우 그것은 4성제(聖諦)와 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8) 즉 [승의의 법인 열반에] 대향(對向)하고 [법상의 법인 4성제를] 대관(對觀)하기 때문에 '대법'이라 일컫게 된 것이다.
5) 대법장(對法藏)은 아비달마구사(阿毘達磨俱舍, Abhidharma-ko a)의 의역어(意譯語).
6) 이하 『구사론』 상에서는 '전(傳)하는 바에 따르면', '전설(傳說, kila)에 의하면', '∼하였다고 전한다' 혹은 '∼라고 인정한다'거나 혹은 '허락[許]한다'는 등의 말이 종종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논주(論主) 세친 자신은 찬동하지 않는 내용이지만 전통적인 케시미르의 비바사사(毘婆沙師)들의 정설을 소개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상투적인 용어이다.
7) 법(法, dharma)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여기서 말하고 있는 자상(自相) 혹은 자성(自性) 즉 다른 어떤 것과도 관계하지 않는 자기만의 특상을 지닌 것[任持自性]이고, 다른 하나는 사물에 대한 인식을 낳게 하는 것[軌生物解]이다. 즉 자기만의 자상을 지녀 인식의 궤범이 됨으로써 사물에 대한 종합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법'인 것이다.
8) 여기서 '이것'이란 보광(普光)에 의하면 무루혜·유루혜 및 제론(諸論)을 말하며, 법보(法寶)의 경우 오로지 무루혜라고 하였다." - ↑ 星雲, "擇法覺支". 2012년 9월 12일에 확인.
- ↑ 운허, "七覺分(칠각분)". 2012년 9월 12일에 확인.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1171-1172 / 1397쪽.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6권. p. T29n1558_p0134b20 - T29n1558_p0134c15. 지(智)
"前品初說諸忍諸智。於後復說正見正智。為有忍非智耶。為有智非見耶。頌曰。
聖慧忍非智 盡無生非見
餘二有漏慧 皆智六見性
論曰。慧有二種。有漏無漏。唯無漏慧立以聖名。此聖慧中八忍非智性。自所斷疑未已斷故。可見性攝。推度性故。盡與無生二智。非見性。已息求心不推度故。所餘皆通智見二性。已斷自疑推度性故。諸有漏慧皆智性攝。於中唯六亦是見性。謂五染污見世正見為六。如是所說聖有漏慧皆擇法故並慧性攝。智有幾種。相別云何。頌曰。
智十總有二 有漏無漏別
有漏稱世俗 無漏名法類
世俗遍為境 法智及類智
如次欲上界 苦等諦為境
論曰。智有十種攝一切智。一世俗智。二法智。三類智。四苦智。五集智。六滅智。七道智。八他心智。九盡智。十無生智。如是十智總唯二種。有漏無漏性差別故。如是二智相別有三。謂世俗智法智類智。前有漏智總名世俗。多取瓶等世俗境故。後無漏智分法類別。三中世俗遍以一切有為無為為所緣境。法類二種如其次第以欲上界四諦為境。"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6권. pp. 1171-1174 / 1397. 지(智)
"앞의 「현성품」 앞부분에서 온갖 인(忍)과 온갖 지(智)에 대해 논설하였으며, 뒷부분에서 다시 정견(正見)과 정지(正智)에 대해 논설하였다.
그렇다면 인(忍)이면서 지(智)가 아닌 것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지'이면서 견(見)이 아닌 것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2)
게송으로 말하겠다.
성혜(聖慧)의 인(忍)은 '지'가 아니고,
진지와 무생지는 '견'이 아니며,
그 밖의 혜는 두 가지와 통하고, 유루혜는
모두 '지'이나 여섯 가지는 '견'의 성질이다.
聖慧忍非智 盡無生非見
餘二有漏慧 皆智六見性
논하여 말하겠다. 혜(慧)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유루혜와 무루혜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오로지 무루혜에만 '성(聖)'이라는 명칭을 설정하는데, 이러한 성혜 중에서 8인(忍)은 지(智)의 성질이 아니니, 끊어야 할 스스로의 의심[疑]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3) 그러나 '견'의 성질에는 포섭될 수 있으니, 추리 판단[推度]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진지와 무생지의 두 가지는 '견'의 성질이 아니니, 이미 추구하려고 하는 마음이 종식되어 추리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밖의 성혜는 모두 '지'와 '견'의 두 가지 성질과 통하니, 이미 스스로의 의심을 끊었으며, 추리 판단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4) 온갖 유루혜는 모두 '지'의 성질에 포섭되지만, 그 중에서 오로지 여섯 가지만은 역시 또한 '견'의 성질이기도 하니, 이를테면 다섯 가지의 염오견과 세속정견의 여섯 가지가 바로 그것이다.5)
그리고 이상에서 설한 성혜와 유루혜는 모두 다 택법(擇法)이기 때문에 아울러 '혜'의 성질에 포섭된다.
지(智)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으며, 그 상의 차별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지는 열 가지이나 총괄하면 두 가지로
유루와 무루의 차별이 바로 그것인데
유루지는 세속지를 말하고
무루지는 법지와 유지를 말한다.
智十總有二 有漏無漏別
有漏稱世俗 無漏名法類
세속지는 두루 경계로 하며
법지와 유지는
순서대로 욕계와 상계의
고제 등을 경계로 삼는다.
世俗遍爲境 法智及類智
如次欲上界 苦等諦爲境
논하여 말하겠다. 지(智)에는 열 가지의 종류가 있어 일체의 지를 포섭하니, 첫째는 세속지(世俗智)이며, 둘째는 법지(法智)이며, 셋째는 유지(類智)이며, 넷째는 고지(苦智)이며, 다섯째는 집지(集智)이며, 여섯째는 멸지(滅智)이며, 일곱째는 도지(道智)이며, 여덟째는 타심지(他心智)이며, 아홉째는 진지(盡智)이며, 열째는 무생지(無生智)이다.
이와 같은 10지는 전체적으로 말하면 오로지 두 가지 종류일 뿐이니, 유루성과 무루성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6)
이러한 두 가지 지는 다시 세 가지로 차별되니, 이를테면 세속지와 법지와 유지가 그것이다. 즉 앞의 유루지를 전체적으로 세속지라고 이름하니, 항아리 등의 다수의 세속의 경계를 취하기 때문이며,7) 뒤의 무루지를 법지와 유지로 나누어 구별한 것이다.8)
이러한 세 가지 지 중에서 세속지는 일체의 유위와 무위를 두루 소연의 경계로 삼으며, 법지와 유지의 두 종류는 순서대로 욕계와 상 2계의 4제를 소연의 경계로 삼는 것이다.
1) 앞의 「현성품」이 수행의 과보로서 현자와 성자에 대해 밝힌 것이라면, 본 품과 다음의 「분별정품(分 別定品)」은 그와 같은 성과(聖果)를 획득하게 되는 인연을 밝히는 것으로, 본품의 전반부는 온갖 유형의 지( 智)에 대해, 후반부는 '지'에 의해 성취되는 공덕에 대해 논설하고 있다.
2) 인(忍, ksanti)과 지(智, jnana)와 견(見, drsti)은 모두 혜(慧)의 다른 작용으로, '인'은 4제의 진리를 인가하면서도 아직 결단에 이르지 않은 것을 말하며, '지'는 그것을 확정하고 결단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그리고 '견'은 추리 판단[推度]의 작용을 말한다. 이하 「분별지품」의 총설로서, 이 세 가지 사이의 법상 적 의의를 밝히고 있다.
3) 8인은 그것에 의해 끊어지는 의(疑)와 구생하여 그것을 끊으려고 하는 단계로서, 아직 '의'의 득에 장 애되기 때문에 능히 결단(決斷)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인'은 일찍이 관찰한 적이 없었던 4제의 이치를 지 금 비로소 관찰하는 것으로, 아직 되풀이하여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지(智)는 아니 지만, 이 역시 추리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견(見)'의 성질이다.
4) 앞서 언급한 8인과 진지·무생지를 제외한 그 밖의 유학의 8지(智)와 무학의 정견은 모두 추리 판단의 '견'이자 결단의 '지'이다.
5) 다섯 가지 염오견이란 유신견·변집견·사견·견취·계금취로서, 이것이 '견'을 본질로 한다는 것에 대 해서는 본론 권제19 주22) 참조.
6) 참고로 유루지와 무루지의 차별은 다음과 같다. 무루지는 경계에 대한 행상이 명리(明利)하며, 유루지는 그렇지 않다. 예컨대 걸지라나무[地羅, khadira, 檐木, 아카시아나무의 일종]와 그 밖의 다른 나무의 숯은 화력이나 향내가 다르며, 시뻘건 쇠붙이[ 炎鐵]와 풀이 타는 것[草火]에도 뜨거운 세력의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혹은 세속지는 뒤에 증상만(增上慢) 을 일으키지만, 무루지는 그렇지 않으며, 또한 세속지는 일체의 유위와 무위를 두루 소연의 경계로 삼지만(이 를테면 계경에서 "제행은 비상(非常)이며, 일체법은 비아이며, 열반적정이다"고 설하고 있기 때문), 법지는 다만 욕계의 4제만을, 유지는 상 2계의 4제만을 소연으로 삼는 등의 광협의 차별이 있다.(『현종론』 권제35, 한글대장경201, p.460)
7) 세속지란 변괴성(變壞性)인 '항아리', '옷' 등의 세속의 경계를 대상으로 한 지식을 말한다.(본론 권제 22 주51 참조).
8) 법지는 욕계의 4제를 소연으로 하는 무루지로서, 최초로 제법의 참된 이치(16행상)를 깨달아 알았기 때 문에 '법지'라 이름한 것이며, 유지는 상 2계의 4제를 소연의 경계로 하는 무루지로서, 소연과 행상이 앞의 법지와 유사하기 때문에 '유지'라고 이름한 것이다." - ↑ 운허, "有漏智(유루지)". 2012년 11월 13일에 확인
"有漏智(유루지): ↔ 무루지(無漏智). 이 지혜는 유위(有爲)ㆍ무위(無爲)의 모든 법을 대상으로 하거니와, 흔히는 세속의 사물에 작용하는 지혜이므로 세속지라고도 함. 아무리 수련하여도 번뇌를 끊지 못하는 지혜. 여기에 생득혜(生得慧)ㆍ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의 구별이 있음." - ↑ 星雲, "三慧". 2012년 11월 13일에 확인"三慧: 梵語 tisrah prajñāh。指聞思修三慧。即簡擇事理之三種精神作用。即:(一)聞慧(梵 śrutamayī prajñā),即由三藏十二分教或善知識處聞知,能生無漏聖慧,故稱聞所成慧。此為聲聞所成就。(二)思慧(梵 cintāmayī prajñā),即由思惟所聞所見之道理而生之無漏聖慧,為緣覺所成就。(三)修慧(梵 bhāvanāmayī prajñā),乃依修習而生之無漏聖慧,為菩薩所成就。
其中,聞慧為三慧之因,眾生若受持轉讀,究竟流布諸經藏,則生慧;依此聞慧則生思慧;依思慧則有修慧。此乃斷煩惱、證得涅槃之過程,猶如依種生芽,依芽生莖,依莖轉生枝葉花果。故前二慧為散智,僅為發起修慧之助緣;修慧則為定智,具有斷惑證理之作用。若以大乘菩薩之階位而言,十住位得聞慧,十行位得思慧,十迴向位得修慧。另就毘曇之界繫而言,欲界有聞、思二慧,因欲界為不定界,非修地,亦非離染地,若欲修時則墮思慧中,故此界無修所成慧。色界有聞、修二慧,無色界唯有修所成慧;因色、無色界是定界,是修地,亦是離染地,若欲思時已墮修中,故此二界無思所成慧。又無色界不用耳根聽聞佛法,故無聞所成慧。〔優婆塞戒經卷一、瑜伽師地論卷二十八、成實論卷十六、集異門足論卷五、大毘婆沙論卷四十二、俱舍論卷二十二、佛地經論卷一〕"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6권. p. T29n1558_p0134b24 - T29n1558_p0134b25. 성(聖)
"慧有二種。有漏無漏。唯無漏慧立以聖名。"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6권. p. 1172 / 1397. 성(聖)
"혜(慧)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유루혜와 무루혜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오로지 무루혜에만 '성(聖)'이라는 명칭을 설정하는데," - ↑ 운허, "聖道(성도)". 2013년 2월 3일에 확인
"聖道(성도): [1] 성인의 지위에 이르는 수행. [2] 번뇌의 더러움이 없는 무루(無漏)의 지혜. [3] 부처님이 말씀하신 교법, 곧 불도를 말함. [4] 정토교에서 아미타불 타력의 본원력에 의하여, 왕생을 말하는 정토교에 대하여, 사바세계에서 수행하여 증득하려는 자력교(自力敎)를 말함." - ↑ 운허, "見道(견도)". 2013년 2월 4일에 확인
"見道(견도): ↔수도(修道). 견제도(見諦道)라고도 함. 온갖 지식으로 잘못 아는 소견을 여읜 자리. 소승에서는 3현(賢)ㆍ4선근(善根)의 수행을 마치고, 세제일위(世第一位)의 직후 무루(無漏)의 지혜를 일으켜 16심(心)으로써 욕계와 색계ㆍ무색계의 4제(諦)의 이치를 관찰하고, 지식으로 잘못된 소견을 여의어 처음으로 성자(聖者)라 칭하는 위(位). 16심 가운데 앞에 15심은 견도(見道), 제16심은 수도(修道)라 한다. 대승 유식종(唯識宗)에서는 5위 중 통달위(通達位)에 해당, 가행위(加行位)의 맨 나중인 세제일위의 직후 무루의 지혜를 일으켜 유식(唯識)의 성품인 진여의 이치를 체득하여 후천적으로 일어나는 번뇌장(煩惱障)ㆍ소지장(所知障)의 종자를 끊고, 선천적으로 갖춘 번뇌장의 활동을 아주 눌러버리는 자리. 10지(地)의 처음인 환희지에 해당. 이 종(宗)은 16심 전체를 견도라 함. ⇒진견도(眞見道)"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2권. p. T29n1558_p0116b29 - T29n1558_p0116c08. 3혜(三慧)와 성도(聖道)
"已辯諸諦。應說云何方便勤修趣見諦道。頌曰。
將趣見諦道 應住戒勤修
聞思修所成 謂名俱義境
論曰。諸有發心將趣見諦。應先安住清淨尸羅然後勤修聞所成等。謂先攝受順見諦聞。聞已勤求所聞法義。聞法義已無倒思惟。思已方能依定修習。行者如是住戒勤修。依聞所成慧起思所成慧。"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2권. p. 1014 / 1397. 3혜(三慧)와 성도(聖道)
"이제 마땅히 어떠한 방편을 부지런히 닦아야 견도제(見道諦), 즉 진리를 관찰하는 도로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장차 진리를 관찰하는 도로 나아가려는 이는
마땅히 계(戒)에 머물면서 문(聞)·사(思)·수(修)로써
성취되는 바를 부지런히 닦아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말과, 말과 뜻과, 뜻이 그것의 경계이다.
將趣見諦道 應住戒勤修
聞思修所成 謂名俱義境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유정으로서 발심하여 장차 진리를 관찰하는 도로 나아가려는 자는 마땅히 먼저 청정한 시라(尸羅, 즉 계율)에 안주하고, 그런 연후에 문소성혜(聞所成慧) 등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이를테면 먼저 진리의 관찰에 수순하는 청문(聽聞)을 섭수하고, 듣고 나서는 들은 법의 뜻[法義]을 부지런히 추구하며, 법의 뜻을 듣고 나서 전도됨이 없이 사유해야 하니, 사유하고 나서야 비로소 능히 선정에 의지하여 수습(修習)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수행자는 이와 같이 계(戒)에 머물면서 부지런히 닦아 문소성혜(聞所成慧)에 의해 사소성혜(思所成慧)를 일으키고, 사소성혜에 의해 수소성혜(修所成慧)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 ↑ 실역인명(失譯人名) & T.1507, 제2권. p. T25n1507_p0036b23 - T25n1507_p0036b27. 속계(俗戒: 세간의 선법)와 도계(道戒: 출세간의 선법)
"夫戒有二。有俗戒有道戒。五戒十善為俗戒。三三昧為道戒。二百五十戒至五百戒。亦是俗戒。四諦妙慧為道戒也。但行安戒不出三界。以慧御戒。使成無漏乃合道戒。" - ↑ 실역인명(失譯人名), 이태승 번역 & K.973, T.1507, 제2권. p. 32 / 114. 속계(俗戒: 세간의 선법)와 도계(道戒: 출세간의 선법)
"대체로 계에 두 가지가 있다. 속계(俗戒)와 도계(道戒)이다. 5계와 10선(善)은 속계를 이루며, 3삼매는 도계를 이룬다. 250계에서 500에 이르는 이것도 속계이며, 4제(諦)의 묘혜는 도계를 이룬다. 단지 계를 행하는 데 안주해서는 삼계(三界)를 벗어나지 못한다. 혜로써 계를 제어하고 무루를 성취시켜야 곧 도계에 합치한다." - ↑ 가 나 운허, "無分別智(무분별지)". 2013년 2월 4일에 확인
"無分別智(무분별지): ↔유분별지(有分別智). 올바르게 진여를 체득하는 지혜, 진여의 모양은 우리들의 언어나 문자로서는 어떻게 형용할 수도 분별할 수도 없으므로, 분별심을 가지고는 그 체성에 계합할 수 없다. 그리하여 모든 생각과 분별을 여읜 모양 없는 참 지혜로만 비로소 알 수 있다. 이런 지혜를 무분별지라 한다." - ↑ 운허, "無漏智(무루지)". 2013년 2월 5일에 확인
"無漏智(무루지): 2지(智)의 하나. 진리를 증하고 모든 번뇌의 허물을 여읜 청정한 지혜. 소승에서는 4제(諦)의 이치를 증한 지혜라 하여 법지(法智)와 유지(類智)의 두 가지를 세우고, 대승 유식에서는 무루지에 근본지(根本智)ㆍ후득지(後得智)의 두 가지를 세운다. 근본지는 유식의 성(性)인 진여(眞如)의 이치를 증득한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말하고, 후득지는 그 근본지에서 나와 유식의 상(相)인 인연으로 일어난 모든 만상을 아는 지혜이다." - ↑ 星雲, "無漏智". 2013년 2월 5일에 확인
"無漏智: 梵語 anāsrava-jñāna。指證見真理,遠離一切煩惱過非之智慧。為「有漏智」之對稱。於小乘,證見四諦理之智,稱為無漏智。有法智、類智之分別。證得欲界四諦法理之智,稱為法智。證得色、無色等二界四諦法之智,稱為類智;蓋其境智與法智相似,故稱類智。若由境之差別則分為苦、集、滅、道等四智。於無學位又分盡智、無生智,此二智皆證見四諦之法理。小乘謂無漏智於見道始生起,而漸次修習。
於大乘唯識宗則分無漏智為根本、後得二智,根本智為唯識之性,即證得真如理性之無分別智;後得智由根本智所出,為唯識之相,即了知因緣現起之萬象。大乘謂無漏智於初地見道始生起,而漸次修習,遂證佛果。〔法華經方便品、大毘婆沙論卷九十七、俱舍論卷二十六、順正理論卷七十三〕(參閱「十智」 472)" - ↑ 세계사상 > 사 상 용 어 > 동양사상 관계 > 불교 관계 > 바라밀,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바라밀: 波羅蜜 범어 파라미타의 음을 딴 말로 도피안(到波岸)·도(度) 등으로 번역한다. 미망과 생사의 차안에서 해탈, 열반의 피안에 이르는 것. 또한 그 때문에 보살이 수(修)하는 행(行)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반야경전>에서 설법하는 6바라밀(六波羅蜜), 즉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여섯을 말하며, 마지막의 지혜 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라고도 하여 다른 다섯을 성립시키는 근거인 무분별지(無分別智)이다. 6바라밀에 방편(方便)·원(願)·역(力)·지(智)의 넷을 더한 10바라밀이나 그와는 별도로 4바라밀 등도 설법되고 있다." - ↑ 가 나 〈般若(반야)〉. 《같은 책》. 2016년 3월 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4월 4일에 확인함.
- ↑ 가 나 호법 등. 〈성유식론(成唯識論)〉. 현장 한역. 《대정신수대장경》. 제1권.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01a09(12) - T31n1585_p0001a12(10). 2011년 5월 1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4월 3일에 확인함.
"원문: 今造此論為於二空有迷謬者生正解故。生解為斷二重障故。由我法執二障具生。若證二空彼障隨斷。斷障為得二勝果故。由斷續生煩惱障故證真解脫。由斷礙解所知障故得大菩提。
편집자 번역: 지금 이 논서를 저술하는 이유는 이공(二空: 두 가지 공)에 대해서 미혹하고 오류가 있는 사람들이 이공(二空)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공(二空)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 무거운 장애(二重障: 번뇌장과 소지장)를 끊기 위한 때문이다.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의 (두 가지) 집착으로 인해 이 두 가지 장애가 함께 일어난다. 이공(二空)을 증득하게 되면 그에 따라 이들 (두 가지) 장애도 끊어진다. (이들 두 가지) 장애를 끊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 뛰어난 과보(二勝果: 열반과 보리, 또는 해탈과 보리)를 얻기 위한 때문이다. (이것을 더 자세히 말하자면) 윤회하는 삶(生)을 계속되게 만드는 원인인 번뇌장(煩惱障)을 끊음으로써 참다운 해탈(眞解脫: 유식학에서 해탈은 열반과 같은 것이다)을 증득하게 되기 때문이며, 지혜(解: 앎 · 이해 · 지식)를 장애하는 소지장(所知障)을 끊음으로써 대보리(大菩提: 큰 깨달음 · 완전한 깨달음 · 출세간의 무분별지혜 · 무상정등보리 ·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 가 나 호법(護法) 등. 현장(玄奘) 한역, 김묘주 번역, 편집. 《성유식론(成唯識論)》. 제1권,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동국역경원. 2쪽.
"번역자 김묘주 주석: 아공의 도리를 깨쳐서 번뇌장을 끊으면 해탈, 즉 열반을 증득한다. 법공의 도리를 깨쳐서 소지장을 끊으면 곧 큰 깨달음[大菩提]을 성취해서 붓다가 된다." - ↑ 운허, "大圓鏡智(대원경지)". 2013년 2월 4일에 확인
"大圓鏡智(대원경지): 4지(智)의 하나. 유루(有漏)의 제8식을 뒤쳐서 얻는 무루(無漏)의 지혜. 이것은 거울에 한점의 티끌도 없이 삼라만상이 그대로 비추어 모자람이 없는 것과 같이,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므로 대원경지라 한다. 불과(佛果)에서 처음으로 얻는 지혜." - ↑ 운허, "平等性智(평등성지". 2013년 2월 4일에 확인
"平等性智(평등성지): 5지(智)의 하나. 제7식을 전(轉)하여 얻은 무루 지혜니, 통달위(通達位)에서 그 일부분을 증득하고, 불과(佛果)에 이르러 그 전체를 증득한다. 일체 모든 법과 자기나 다른 유정들을 반연하여 평등 일여한 이성(理性)을 관하고 너와 나의 차별심을 여의어 대자대비심을 일으키며, 보살을 위하여 여러 가지로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지혜." - ↑ 星雲, "四智心品". 2013년 2월 6일에 확인
"四智心品: 即佛果四智。謂至佛果轉捨有漏識蘊所依而得之四種無漏智。略稱四智。據成唯識論卷十、佛地經論卷三等載,唯識宗立大菩提之智品為四種無漏智相應心品,即:(一)大圓鏡智相應心品(梵 ādarśa-jñāna),又稱大圓鏡智、圓鏡智、鏡智,乃轉第八阿賴耶識所得之智。此智離諸分別,所緣行相微細難知,不妄不愚一切鏡相,性相清淨,離諸雜染,如大圓鏡之光明,遍映萬象事理,纖毫不遺。(二)平等性智相應心品(梵 samatā-jñāna),又稱平等性智、平等智,係轉第七末那識所得之智。此智觀一切法,自他有情,悉皆平等,與大慈悲等恆共相應,平等普度一切眾生。(三)妙觀察智相應心品(梵 pratyaveksanā-jñāna),又稱妙觀察智、觀察智,係轉第六意識所得之智。此智善觀諸法自相、共相,無礙而轉,依有情眾生不同根機,自在說法,教化眾生。(四)成所作智相應心品(梵 krtyānusthāna-jñāna),又稱成所作智、作事智,係轉眼、耳等前五識所得之智。此智欲利樂諸有情,故能於十方以身、口、意三業為眾生行善,成本願力所應作事。具此四智即可達於佛果。〔攝大乘論本卷下、大乘莊嚴經論卷三、成唯識論了義燈卷七末〕(參閱「四智」1769)" - ↑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초기 대승불교의 사상 > 6바라밀,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 〈대지도론(大智度論)〉. 《대정신수대장경》. 제33권. Vol. 25, No. 1509, CBETA, T25n1509_p0305c17(00) - T25n1509_p0305c19(01). 2010년 6월 2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4월 4일에 확인함.
【經】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欲得五眼者,當學般若波羅蜜!」 【論】 何等五?肉眼、天眼、慧眼、法眼、佛眼。
- ↑ 가 나 구마라습 한역 & T.245, 상권 〈3. 보살교화품(菩薩敎化品)〉. p. T08n0245_p0826b21 - T08n0245_p0826b25. 5인(五忍)
"白佛言:「世尊!護十地行菩薩云何行可行?云何行化眾生?以何相眾生可化?」佛言:「大王!五忍是菩薩法:伏忍上中下、信忍上中下、順忍上中下、無生忍上中下、寂滅忍上中下,名為諸佛菩薩修般若波羅蜜。" - ↑ 가 나 구마라습 한역, 번역자 미상 & K.19, T.245, 상권 〈3. 보살교화품(菩薩敎化品)〉. p. 14 / 50. 5인(五忍)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10지행(地行)을 수호하는 보살은 어떠한 행을 행하여야 하며, 어떠한 행으로 중생을 교화하며, 어떠한 모습의 중생을 교화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5인(忍)55)이 이 보살의 법이니, 복인(伏忍)의 상(上)ㆍ중(中)ㆍ하(下)와 신인(信忍)의 상중하와 순인(順忍)의 상중하와 무생인(無生忍)의 상중하와 적멸인(寂滅忍)의 상하를 이름하여 모든 불ㆍ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는다고 하느니라.
55) 보살의 수행을 다섯 단계로 나눈 것. 첫째 복인(伏忍)은 번뇌를 제복(制伏)하였으나 아직 끊지 못한 지(地) 이전의 3현(賢), 둘째 신인(信忍)은 무루(無漏)의 신(信)을 얻은 초지ㆍ2지(地)ㆍ3지(地), 셋째 순인(順忍)은 이치에 순종하여 무생(無生)의 깨달음에 향하는 4지ㆍ5지ㆍ6지, 넷째 무생인(無生忍)은 모든 법의 무생의 이치를 인정하고 안주한 7지ㆍ8지ㆍ9지, 다섯째 적멸인(寂滅忍)은 모든 미혹을 끊고 적정의 깨달음에 안주한 제10지 및 불과(佛果). 앞의 넷을 각각 상ㆍ중ㆍ하, 뒤의 하나를 상ㆍ하로 나누어 14인(忍)이라 한다." - ↑ 불공 한역 & T.246, 상권 〈3. 보살행품(菩薩行品)〉. p. T08n0246_p0836b11 - T08n0246_p0836b17. 5인(五忍)
"爾時,波斯匿王白佛言:「世尊!護十地行菩薩摩訶薩,應云何修行?云何化眾生?復以何相而住觀察?」佛告大王:「諸菩薩摩訶薩依五忍法以為修行,所謂:伏忍、信忍、順忍、無生忍——皆上中下,於寂滅忍而有上下,名為菩薩修行般若波羅蜜多。" - ↑ 불공 한역, 번역자 미상 & K.1340, T.246, 상권 〈3. 보살행품(菩薩行品)〉. pp. 8-9 / 47. 5인(五忍)
"그 때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십지의 행[十地行]을 보호하는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어떻게 수행하고 어떻게 중생을 교화하며 또 어떤 모양으로 머물러 관찰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5인(忍)의 법에 의해서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복인(伏忍)ㆍ신인(信忍)ㆍ순인(順忍)ㆍ무생인(無生忍)인데, 모두 상ㆍ중ㆍ하가 있고 적멸인(寂滅忍)에도 상ㆍ하가 있다.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한다고 한다." - ↑ 운허, "五忍(오인)". 2013년 4월 12일에 확인
"五忍(오인): 보살이 계단을 5종으로 나눈 것. (1) 복인(伏忍). 번뇌를 끊지 못하였으나, 관해(觀解)를 익혀 이를 굴복시키고,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지위. 곧 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廻向)의 보살. (2) 신인(信忍). 관하는 마음이 진전되어 증득(證得)할 법을 믿고 의심치 않는 지위. 곧 초지(初地)ㆍ이지(二地)ㆍ삼지(三地)의 보살. (3) 순인(順忍). 전의 믿음에 의하여 다시 나은(勝) 지혜를 연마하여 무생(無生)의 증과(證果)에 순하는 지위. 곧 4지(地)ㆍ5지ㆍ6지의 보살. (4) 무생인(無生忍). 제법무생의 진리를 깨달아 아는 지위. 곧 7지(地)ㆍ8지ㆍ9지의 보살. (5) 적멸인(寂滅忍). 갖가지 번뇌를 끊어버리고 청정무위잠연적정(淸淨無爲湛然寂靜)에 안주(安住)하는 지위. 곧 10지(地)ㆍ등각(等覺)ㆍ묘각(妙覺)의 지위." - ↑ 星雲, "五忍". 2013년 4월 12일에 확인
"五忍: 指伏、信、順、無生、寂滅五忍,前四忍各分上、中、下三品,後一忍分上、下二品,總稱為十四忍。(一)伏忍,地前三賢之人未得無漏,煩惱未斷,但能伏住煩惱令之不起。其中十住為下品,十行為中品,十回向為上品。(二)信忍,地上菩薩得無漏信,隨順不疑。其中初地為下品,二地為中品,三地為上品。(三)順忍,菩薩順菩提道,趣向無生之果。其中四地為下品,五地為中品,六地為上品。(四)無生忍,菩薩妄惑已盡,了知諸法悉皆不生。其中七地為下品,八地為中品,九地為上品。(五)寂滅忍,諸惑斷盡,清淨無為,湛然寂滅。其中十地為下品,佛為上品。〔仁王般若波羅蜜經卷上、法華經玄義卷五上、仁王護國般若經疏卷三、卷四(智顗)、大乘義章卷十二〕 p1097" - ↑ 운허, "薩婆若(살바야)". 2013년 4월 12일에 확인
"薩婆若(살바야): 【범】 sarvajña 줄여서는 살운(薩雲ㆍ薩云). 일체지(一切智)라 번역. 불과(佛果)에서 일체 법을 증득하는 지혜. 살바야해(薩婆若海)라 함은 이 지헤의 넓은 것을 바다에 비유한 것." - ↑ 구마라습 한역 & T.245, 상권 〈3. 보살교화품(菩薩敎化品)〉. p. T08n0245_p0826c21 - T08n0245_p0826c28. 적멸인(寂滅忍)
"「復次,寂滅忍,佛與菩薩同用此忍入金剛三昧。下忍中行名為菩薩,上忍中行名為薩婆若,共觀第一義諦,斷三界心習,無明盡相為金剛,盡相無相為薩婆若,超度世諦第一義諦之外,為第十一地薩婆若。覺非有非無,湛然清淨,常住不變,同真際,等法性,無緣大悲,教化一切眾生,乘薩婆若乘來化三界。" - ↑ 구마라습 한역, 번역자 미상 & K.19, T.245, 상권 〈3. 보살교화품(菩薩敎化品)〉. p. 14 / 50. 적멸인(寂滅忍)
"또 적멸인(寂滅忍)76)은 부처님과 보살이 같이 이 인(忍)으로써 금강삼매에 들어가느니라. 하인(下忍)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보살이라 하고, 상인(上忍)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살바야라 하느니라. 같이 제일의제(第一義諦)를 관하여 삼계의 마음의 습기[心習]와 무명(無明)을 끊어 모양이 다하면[盡相] 금강이라 하며, 모양과 모양이 없음[相無相]을 다하면 살바야라 하며, 세제(世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의 밖을 뛰어넘으면 제11지(地)의 살바야라 하느니라.
있지도 않고[非有] 없지도 않음[非無]을 깨달아 고요하고 청정하며 항상 머물러서 변하지 아니하며 진제(眞際)와 같고 법성과 같으며 무연대비(無緣大悲)77)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매 살바야의 수레를 타고 오셔서 삼계를 교화하시느니라.
76) 모든 혹(惑)을 끊어서 적정(寂靜)에 안주하는 제10지 및 불과(佛果). 여기에 상ㆍ하의 인(忍)을 나누어 하인은 보살, 상인은 일체지(一切智:佛智)라고 한다.
77) 분별할 대상이 없어진 대자비, 평등한 대자비를 말한다." - ↑ 운허. 〈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 《앞의 책》. 2016년 3월 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4월 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