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리앵 오프루아 드 라 메트리
쥘리앵 장 오프루아 드 라메트리(Julien Jean Offroy de La Mettrie, 1709년 12월 25일 ~ 1751년 11월 11일)은 프랑스의 의사, 철학자로 계몽주의 시대의 첫 유물론 작가로 꼽힌다. 이 시기의 프랑스 유물론자들이 그러하듯이, 사물의 존재 및 그에 내재하는 운동성만을 인정하고, 신의 존재, 신의 창조 사실, 신학 등을 부정하고, 심지어 관념론도 배격한다. 이러한 류의 유물론적 사고를 우리는 '기계론'이라 부를 수 있는데, 라메트리는 여기에 당대 최신의 생물학 지식을 도입하였으며, 이는 전통적인 기계론 속에 '생기론'을 도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인지과학의 창시자로도 알려져 있다.
브르타뉴 해안의 생말로에서 포목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처음에는 부친의 희망에 따라 신학을 배웠으나 중도에 의학으로 바꿔 랭스의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후에 라이든으로 가서 임상 의학 교수법의 창시자인 부르하베에게 사사받고, 1735년에 고향으로 돌아가 스승의 학설을 보급시키는 데 힘을 기울이다가 얼마 후 파리에 나와 근위연대의 군의(軍醫)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1745년에 그는 헤이그에서 《영혼의 자연지(自然誌)》(후에 《영혼론》)를 출판했으나 당시 파리의 대학과 의사계를 상대로 대논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분서(焚書)당하는 비운을 체험하고 실의 속에 라이든으로 갔으며, 그 곳에서 《인간기계론》을 저술했다. 그러나 이 책도 얼마 후에는 다시 종교계의 증오를 사게 되어, 그는 프로이센으로 피해 프리드리히 대왕의 궁정에 들어가 대왕의 전임 강사로서 죽을 때까지의 몇 해 동안은 비교적 평온한 생활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