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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발덴에서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흔적은 기원전 8천년의 돌칼이다. 그것은 브란트에서 룽게른에 의해 발견되었다. BC 4000년경의 2개의 [[호르겐 문화]] 유적지가 주에서 발견되었다. [[기스빌]]에서는 도끼 한 개와 뼈날 두 개, [[빌렌]]에서는 망치 도끼가 발견되었다. 옵발덴의 계곡에는 이 기간 동안 최소한 일시적으로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보이지만, 농업이나 영구 정착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컨즈케른즈]]의 포리바흐에 있는 초기 [[청동기 시대]] 무덤은 기원전 2000년에서 기원전 1700년 사이에 주변 지역에 정착지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같은 기간 동안 [[자르넨 호수]] 기슭을 따라 정착촌이 있었을 수도 있다. 기원전 1500년에서 1100년 사이에는 렝그 고개의 주거지와 고개 위의 고산 목축 캠프를 비롯한 여러 다른 정착지가 있었다. 주의 많은 지명이 켈트 또는 [[갈로로마인]]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1914-15년에 로마의 영지가 [[알프나흐]]에서 발굴되었다. 건축물은 1세기 후반에 지어졌으며 270년 화재로 본관이 파괴될 때까지 계속 운영되었다.
 
700년경에 [[알라마니]]가 옵발덴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갈로로마인]]이 고원에 살았던 동안 그들은 처음에 호수 주변에 정착했다. 알라마니의 영향은 [[자르넨 호수]]와 많은 지명이 -ingen, -wil 및 -hofen으로 끝나는 컨즈케른즈 고원 주변에서 두드러진다. 갈로로마인은 필라투스산, 기스빌러슈토크와 멜히 계곡 주변에 남아있었다. 8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두 집단은 서로 결혼했고, 결국 모두 독일화 되었다. 9세기경, 이곳은 부르고뉴 제2왕국의 일부였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콘라트 2세 (신성 로마 황제)|콘라트 2세]]의 1032-33년 겨울 군사 작전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옵발덴은 아르가우 출신의 렌츠부르크의 백작에게 주어졌다. 백작들은 [[란덴부르크]] 언덕에 성을 건설하여 땅을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중세 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