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치환됨: {{18계 → {{십팔계 using AWB
Namobot (토론 | 기여)
봇: quote → ps
16번째 줄:
첫 번째는 문자 그대로는 '뜻한 바[意]를 지음[作]' 또는 '마음먹은 것[意]을 행함[作]'을 뜻하는데, 무언가를 결심하고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경각(警覺)을 의미한다.
 
'''첫 번째'''의 경우, 예를 들어, [[무상천]](無想天)이 [[번뇌]]를 벗어난 [[해탈]]의 경지라고 보아 [[번뇌]]에 속박된 현재 상태를 벗어나 [[무상천]]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생각, 의도 또는 의지를 가지는 것을 '[[무상천]]에 대해 [[출리상]]을 일으킨다[於無想天起出離想]'{{sfn|무착 조, 현장 한역|T.1602|loc=제1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02_p0484b01 T31n1602_p0484b01 - T31n1602_p0484b05]. 무상정(無想定)|quoteps=<br />"無想定者。謂已離遍淨欲。未離上地欲。觀想如病如癰如箭。唯無想天寂靜微妙。由於無想天起出離想。作意前方便故。不恒現行心心法滅性。"}}{{sfn|무착 지음, 현장 한역|K.571, T.1602|loc=제1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1361&startNum=36 36 / 293]. 무상정(無想定)|quoteps=<br />"무상정(無想定)<sup style="color: blue">178)</sup>은 이미 변정천(遍淨天)의 욕망은 여의었으나 아직 그 위의 경지[上地]<sup style="color: blue">179)</sup>의 욕망을 여의지 못했으며, 표상[想]을 관찰하되 병과 같고 부스럼과 같으며 화살과 같다고 하며, 오직 무상천은 고요하고 미묘하다고 하며, 무상천을 향하여 벗어남의 생각을 일으키고<sup style="color: blue">180)</sup> 이전의 방편을 작의(作意)하기 때문에, 심왕법과 심소법을 항상 현행하지 않고 멸하는 성품이다.
<br /><sup style="color: blue">178)</sup> 무상정(無想定, asaṁjñā-samāpatti)은 외도의 선정이다. 인도의 어떤 외도들은 인생이 고통을 받게 되는 원인은 마음에 번뇌가 있기 때문이고, 이 번뇌를 멸하는 데는 심왕(心王), 심소(心所)의 생기(生起)를 정지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해서 이 정(定)을 닦았으며, 그 수정(修定)의 결과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난다. 불교의 성자는 깊은 구덩이[深坑]처럼 생각해서 이 선정에 들기를 원하지 않는다.
<br /><sup style="color: blue">179)</sup> 변정천은 색계 제삼선천(第三禪天)에 속한다. 이 하늘의 상지(上地)는 제4선천에 속하는 아홉 하늘을 가리킨다.
<br /><sup style="color: blue">180)</sup> 무상정을 닦은 원인에 의해 무상천에 태어나게 된다."}}고 표현하는데, 이러한 생각, 의도 또는 의지를 일으키고 그에 따라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편]](수단 또는 수행)을 행하는 것을 '''출리상을 작의'''[出離想作意]한다{{sfn|세우 조, 현장 한역|T.1542|loc=제1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6n1542_p0694a19 T26n1542_p0694a19 - T26n1542_p0694a20]. 무상정(無想定)|quoteps=<br />"無想定云何。謂已離遍淨染未離上染出離想作意。為先心心所滅。"}}{{sfn|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949, T.1542|loc=제1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328&startNum=11 11 / 448]. 무상정(無想定)|quoteps=<br />"무상정(無想定)이란 무엇인가? 이미 변정천(邊淨天)의 번뇌[染]는 여의었으나, 아직 그 윗세계의 번뇌를 여의지 못하고서 벗어났다는 생각[出離想]을 마음으로 내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는 심·심소가 소멸한 것이다."}}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무상천]]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닦는 모든 [[방편]](특히, [[선정]])을 통칭하여 [[무상정]](無想定)이라 이름한다. 한편, 모든 [[번뇌]]를 벗어나 [[마음 (불교)|마음]]이 [[적정 (불교)|적정]]의 상태에 있는 [[멸진]](滅盡)의 상태에 도달하려는 생각, 의도 또는 의지를 가지고 그에 따라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편]]을 행하는 것을 '''지식상을 작의'''[止息想作意]한다{{sfn|세우 조, 현장 한역|T.1542|loc=제1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6n1542_p0694a20 T26n1542_p0694a20 - T26n1542_p0694a22]. 멸진정(滅盡定)|quoteps=<br />"滅定云何。謂已離無所有處染止息想作意。為先心心所滅。"}}{{sfn|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949, T.1542|loc=제1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328&startNum=11 11 / 448]. 멸진정(滅盡定)|quoteps=<br />"멸정(滅定)이란 무엇인가? 이미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의 번뇌[染]를 여의고 멈추어 쉰다는 생각[止息想]으로 마음을 내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는 심·심소가 소멸한 것이다."}}라고 표현하거나 '''식상을 작의'''[息想作意]한다{{sfn|무착 조, 현장 한역|T.1605|loc=제1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05_p0665c05 T31n1605_p0665c05 - T31n1605_p0665c08]. 멸진정(滅盡定)|quoteps=<br />"何等滅盡定。謂已離無所有處欲。超過有頂暫息想。作意為先故。於不恒行諸心心所及恒行一分心心所滅。假立滅盡定。"}}{{sfn|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loc=제1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1364&startNum=17 17 / 159]. 멸진정(滅盡定)|quoteps=<br />"어떠한 것이 멸진정 불상응행법입니까?
무소유처의 욕을 이미 여의고서 유정천을 초월하되 그 잠식상(暫息想)을 작의 심소법에 앞세우는 까닭이다. 모든 불항행의 심ㆍ심소와 항행(恒行)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심ㆍ심소가 소멸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멸진정이라 한다."}}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멸진]]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닦는 모든 [[방편]](특히, [[선정]])을 통칭하여 [[멸진정]](無想定)이라 이름한다.
 
이 문서의 이하의 내용은 '''두 번째'''의 경각(警覺)의 의미로서의 '''작의'''([[:zh:作意|<span style="color: black">作意</span>]], {{llang|sa|[[:en:manasikara|<span style="color: black">manasikara</span>]]}}, {{llang|pi|[[:en:manasikara|<span style="color: black">manasikara</span>]]}}, {{llang|en|[[:en:attention|<span style="color: black">attention</span>]]}}, [[:en:ego-centric demanding|<span style="color: black">ego-centric demanding</span>]])에 대해 다룬다. 작의는 다음의 분류, 그룹 또는 체계의 한 요소이다.
 
*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 중 [[대지법]](大地法: 10가지) 가운데 하나이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558|loc=제4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58_p0019a10 T29n1558_p0019a10 - T29n1558_p0019a17]. 대지법(大地法: 10가지)|quoteps=<br />"地謂行處。若此是彼所行處。即說此為彼法地。大法地故名為大地。此中若法大地所有名大地法。謂法恒於一切心有。彼法是何。頌曰。
 受想思觸欲  慧念與作意<br />
 勝解三摩地  遍於一切心<br />
論曰。傳說。如是所列十法。諸心剎那和合遍有。"}}{{sfn|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loc=제4권. p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161 161-162 / 1397]. 대지법(大地法: 10가지)|quoteps=<br />"이것이 이러저러한 것(즉 심소)의 행처가 될 경우 이것을 설하여 그러한 법의 '지'라고 하는 것이다.
곧 대법(大法)의 '지'가 되기 때문에 '대지(大地)'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법 가운데 만약 어떤 법이 '대지'에 소유되었다면, 이것을 대지법이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일체의 마음에 항상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37번째 줄:
논하여 말하겠다. 전(傳)하여 설(說)하기를, 이와 같이 열거한 열 가지의 법은 온갖 마음과 [동일] 찰나에 화합하여 두루 존재한다고 하였다."}}{{sfn|권오민|2003|pp=69-81}}
 
*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에서 [[심소법]](心所法: 51가지) 중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 가운데 하나이다.{{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3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11b16 T31n1585_p0011b16 - T31n1585_p0011b19].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quoteps=<br />"此識與幾心所相應。常與觸作意受想思相應。阿賴耶識無始時來乃至未轉。於一切位恒與此五心所相應。以是遍行心所攝故。"}}{{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3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118 118 / 583].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quoteps=<br />"이 식(識)은 몇몇 심소(心所와 상응하는가? 항상 촉(觸){{.cw}}작의(作意){{.cw}}수(受){{.cw}}상(想){{.cw}}사(思)와 상응한다. 아뢰야식은 아득한 옛적부터 전의(轉依)<sup style="color: blue">2)</sup>를 이루기 이전<sup style="color: blue">3)</sup>까지 모든 지위에서 항상 이 다섯 가지 심소와 상응한다. 이것은 두루 작용하는 심소[遍行心所]<sup style="color: blue">4)</sup>이기 때문이다.
<br /><sup style="color: blue">2)</sup> 전의(轉依, āśraya-parāvṛtti) 수행에 의해 ‘소의(所依:依他起)를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즉 자기 존재의 기체(基體:의타기성, 8식 혹은 持種依인 아뢰야식)를 허망한 상태(변계소집성)로부터 진실한 상태(원성실성)로 질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번뇌에 오염된 8식이 네 가지 지혜로 전환된다[轉識得智]. 곧 아뢰야식은 대원경지(大圓鏡智)로, 말나식은 평등성지(平等性智)로, 의식은 묘관찰지(妙觀察智)로, 5식은 성소작지(成所作智)로 전환된다.
<br /><sup style="color: blue">3)</sup> 금강무간도(金剛無間道)를 가리킨다.
<br /><sup style="color: blue">4)</sup> 변행심소(遍行心所)는 8식 모두에 언제나 상응해서 함께 작용하는 보편적인 심리작용이다. 이 심소는 선(善){{.cw}}악(惡){{.cw}}무기(無記)의 3성(性) 모두에 두루 일어나며[遍起], 3계(界){{.cw}}9지(地) 어디에서나 작용한다[一切地]. 유심무심(有心無心)의 모든 순간에 일어나고[一切時], 변행의 5심소는 언제나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一切俱]. 이에 촉(觸){{.cw}}작의(作意){{.cw}}수(受){{.cw}}상(想){{.cw}}사(思)의 다섯 가지 심소가 있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9696&DTITLE=%A7@%B7N 作意]". 2012년 9월 21일에 확인}}
 
작의(作意)는 '''유의'''(留意)라고도 하는데,{{sfn|중현 조, 현장 한역|T.1563|loc=제5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63_p0799c17 T29n1563_p0799c17 - T29n1563_p0799c18]. 작의(作意)|quoteps=<br>"引心心所令於所緣有所警覺。說名作意。此即世間說為留意"}}{{sfn|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7, T.1563|loc=제5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379&startNum=201 201 / 1762]. 작의(作意)|quoteps=<br>"심ㆍ심소를 인기(引起)하여 소연에 대해 경각(警覺)하게 하는 것을 일컬어 작의(作意)라고 한다.<sup style="color: blue">102)</sup> 이것을 세간에서는 ‘유의(留意)’라고도 말한다.
<br><sup style="color: blue">102)</sup> 작의(manaskāra)란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거나 경각(警覺)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마음 (불교)|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경각'''(警覺: 정신을 가다듬어 경계함<ref name="한자사전-경각심">"[http://hanja.naver.com/word?q=%E8%AD%A6%E8%A6%BA%E5%BF%83 警覺心]", 《네이버 한자사전》. 2012년 10월 18일에 확인.</ref>, 정신을 차리고 주의 깊게 살피어 경계함<ref name="국어사전-경각심">"[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2103600 경각심(警覺心)]", 《네이버 국어사전》. 2012년 10월 18일에 확인.</ref>)하게 하여서 [[인식대상]][所緣境]에 '''주의'''(注意: 관심을 집중하여 기울임<ref>"[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34931300 주의(注意)]", 《네이버 국어사전》. 2012년 10월 18일에 확인.</ref>)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558|loc=제4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58_p0019a21 T29n1558_p0019a21]}}{{sfn|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loc=제4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163 163 / 1397]}}{{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3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11c06 T31n1585_p0011c06]}}{{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3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122 122 / 583]}}
 
66번째 줄:
|《성유식론》, 제3권.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11c06 한문본] &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122 한글본]}}
 
한편, [[미륵]]과 더불어 [[유식학]]의 시조 또는 주창자라고 할 수 있는 [[무착]]{{sfn|황욱|1999|pp=16-17|quoteps=<br />"유식학에서는 그 학설의 내용에 따라 인도의 유식학을 3기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제1기는 미륵과 무착의 유식학을 말하고, 제2기는 세친의 유식학을 말하며, 제3기는 護法[Dharmapāla]과 安慧[Sthitamati] 등 十大論師들의 유식학을 의미한다. 한편 제1기와 제2기를 합쳐서 初期唯識學이라고도 부른다.<sup style="color: blue">45)</sup>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처음으로 유식학의 이론적 체계를 세운 무착이 유식학에 끼친 공헌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그것은 미륵이 실존인물인지 아니면 무착 자신인가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그가 유식학의 주창자로 자리매김 되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식사상은 신앙적인 면에서 볼 때에는 미륵이 始祖이지만,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무착이 시조라 해도 틀림이 없는 것이다.
<br /><sup style="color: blue">45)</sup> 吳亨根, 「初期唯識의 心意識思想과 八識思想 硏究」, 《唯識과 心識思想 硏究》(서울: 佛敎思想社, 1989), pp.14~15 참조. 이에 의하면 “제1기의 유식학은 초창기의 유식학으로서 후세의 발달된 유식학에 비하여 원시적인 학설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유식학을 原始唯識期라고도 하며 이때의 주요 논서는 《유가사지론》과 《섭대승론》·《현양성교론》과 《대승아비달마집론》 등을 들 수가 있다. 다음 제2기의 유식학은 세친논사가 무착과 미륵의 유식학을 잘 정리하고 조직화한 것을 말하는데 이때의 유식학을 組織唯識學이라고도 한다. 이 組織唯識學의 대표적인 논서는 《대승백법명문론》과 《유식삼십론송》을 들 수가 있다. 그리고 다음 제3기의 유식학은 세친논사 이후에 호법과 안혜 등 십대논사들이 세친의 《唯識三十論》을 훌륭한 이론으로 주석하여 유식학을 크게 발달시킨 시기로 이때의 유식학을 發達唯識期라고 한다. 이때의 대표적인 저술로 《유식삼십론송》을 주석한 《成唯識論》을 들 수 있으며, 《성유식론》은 중국에서 번역되어 法相宗의 宗學에 크게 이바지한 논서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은 《[[대승아비달마집론]]》 에서, 작의(作意)는 [[마음 (불교)|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을 발동(發動)시키는 것을 그 본질적 성질[體]로 하고, [[인식대상]][所緣境]에 [[마음 (불교)|마음]]을 유지[持]시키는 것을 그 본질적 작용[業]으로 한다고 말하고 있다.
 
73번째 줄: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05_p0664a25 한문본]}}
 
즉, 작의(作意)라는 명칭은 이 [[마음작용]]이 [[인연]]이 갖추어져 마주하게 된 [[인식대상]]에 합당하게 일어나야 할 [[마음 (불교)|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종자 (불교)|종자]](種子, bīja)를 경각(警覺)시킨 후 해당 [[종자 (불교)|종자]]를 이끌어서 해당 [[인식대상]]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sfn|황욱|1999|p=49}}{{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3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11c07 T31n1585_p0011c07 - T31n1585_p0011c08]|quoteps=<br />"謂此警覺應起心種引令趣境故名作意。雖此亦能引起心所。心是主故但說引心。"}}{{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3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122 122 / 583]. 작의(作意)|quoteps=<br />"이것이 일으켜야 하는 심왕의 종자[果俱有]를 경각시키고 이끌어서 대상으로 향하게 만들기 때문에 작의라고 이름한다. 이것은 역시 심소도 능히 이끌어 일으키지만, 심왕이 주체이기 때문에 다만 심왕을 이끈다고 말한다."}}
 
작의(作意)는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있는 [[종자]](種子, bīja)로부터 생겨나는 [[마음작용]]으로, [[마음 (불교)|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에 의해 일어나 [[마음 (불교)|마음]]과 함께 [[전변]](轉變)하고 [[현행]](現行)하여 [[인식대상]]과 [[상응]](相應)하는 [[마음작용]]이다. 그리고 이 작의(作意)의 [[마음작용]]의 본질적 성질은 [[마음 (불교)|마음]]을 움직[發動, 警覺]이는 것이며 본질적 작용은 [[마음 (불교)|마음]]을 해당 [[인식대상]]으로 이끄는 것으로, 그 결과 [[마음 (불교)|마음]]과 더불어 동일한 [[인식대상]]을 [[반연]](攀緣)한다. 즉, [[마음 (불교)|마음]]과 작의(作意)의 [[마음작용]]이 동일한 [[인식대상]]을 각자의 활동의 [[연 (불교)|조건]][緣] 또는 [[대상]]으로 삼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마음 (불교)|마음]]은 새로운 [[선 (3성)|선]], [[불선 (3성)|불선]] 또는 [[무기 (3성)|무기]]의 [[업]]을 낳는 이후의 [[행 (불교)|활동]][行]을 펼치게 된다.{{sfn|황욱|1999|p=49}}
79번째 줄:
== 성질·작용: 경각 ==
 
[[유식학]]에 따르면, 작의(作意)의 [[본질적인 성질]]은 [[마음 (불교)|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경각(警覺: 정신을 가다듬어 경계함<ref name="한자사전-경각심"/>, 정신을 차리고 주의 깊게 살피어 경계함<ref name="국어사전-경각심"/>)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의(作意)에 말할 때면 주로 [[마음 (불교)|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에 대해서 경각시키는 것으로 말하지만, 사실 작의는 다른 [[마음작용]](심소법)도 경각시키는 작용을 한다. 다만, [[마음 (불교)|마음]]이 주체이기 때문에 주로 [[마음 (불교)|마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3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11c07 T31n1585_p0011c07 - T31n1585_p0011c08]|quoteps=<br />"謂此警覺應起心種引令趣境故名作意。雖此亦能引起心所。心是主故但說引心。"}}{{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3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122 122 / 583]. 작의(作意)|quoteps=<br />"이것이 일으켜야 하는 심왕의 종자[果俱有]를 경각시키고 이끌어서 대상으로 향하게 만들기 때문에 작의라고 이름한다. 이것은 역시 심소도 능히 이끌어 일으키지만, 심왕이 주체이기 때문에 다만 심왕을 이끈다고 말한다."}}
 
경각(警覺)은 다시 '''종자경각'''(種子警覺)과 '''현행경각'''(現行警覺)으로 나뉜다. 종자경각(種子警覺)은 작의(作意)의 [[종자 (불교)|종자]]가 다른 [[마음 (불교)|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과 [[마음작용]]의 [[종자 (불교)|종자]]를 경각시켜 [[현행]](現行)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경각(現行警覺)은 종자경각에 의해 [[현행]]하는 상태가 된 다른 [[마음 (불교)|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과 [[마음작용]]을 하여금 [[인식대상]][所緣境, 마음과 마음작용의 대상]에게로 나아가게 하는 것을 말한다.{{sfn|황욱|1999|p=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