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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 original cover.jpg|섬네일|[[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시밀리안 카를 에밀 베버'''(Maximilian Carl Emil Weber) 또는 '''막스 베버''' (Max Weber, [[1864년]] [[4월 21일]] ~ [[1920년]] [[6월 14일]])는 [[독일]]의 [[법률가]], [[정치가]], [[정치학|정치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사회학자]]로, [[사회학]] 성립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며 그의 논문 프로테스탄트와 자본주의를 연결한 프로테탄스 윤리로 유명하다.<ref>"Max Weber." Encyclopædia Britannica. 2009. Encyclopædia Britannica Online. 20 Apr. 2009. [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638565/Max-Weber]</ref> 그는 사회학과 공공정책학 분야에서 [[근대]]적인 연구토대를 마련한 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베버는 [[베를린 대학교]]에서 처음 연구 활동을 시작했으며, 말년에는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빈 대학교]] 그리고 [[뮌헨 대학교]]에서 연구활동을 했다. 당대 [[정치]] 분야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베버는 [[베르사유 조약]]의 [[독일 제국]] 측 협상대표로 선임되기도 했으며, [[바이마르 헌법]]의 초안을 닦는 위원회의 일원으로도 활동하였다. 그는 [[카를 마르크스]]와 [[에밀 뒤르켐]]과 더불어 가장 영향력있는 [[사회학자]]로 평가된다. 막스 베버]]의 대표작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정신>에서 [[마르크스]]의 "토대-상부구조론"을 반박하며 "이윤을 적극 추구하는 신교도 윤리가 [[자본주의]]를 낳았다"고 했다.<ref>[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1997042402751]</ref>▼
▲'''막시밀리안 "막스" 카를 에밀 베버'''({{llang|de|Maximilian „Max“ Carl Emil Weber
== 생애 ==
베버는 [[독일]] [[튀링겐주]]의 [[에르푸르트]]에서 막스 베버 1세의 일곱 자녀 가운데 장남으로
어린 베버와 동생 [[알프레드 베버]](그 역시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가 되었다)는 이렇듯 지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 베버가 13살이던
[[파일:Max Weber 1894.jpg|섬네일|막스 베버(1894)]]
박사 논문과 하빌리타치온 논문을 쓰는 사이 몇 년 동안 베버는 당시 사회 정책에도 관심을
Mommsen|제목=Max Weber and German Politics, 1890–1920|연도=1984|출판사=University of Chicago
Press|id=0226533999|쪽=19}}</ref>
[https://web.archive.org/web/20040104162844/http://gunston.doit.gmu.edu/liannacc/Downloads/Iannaccone%20-%20Introduction%20to%20the%20Economics%20of%20Religion.pdf "Introduction to the Economics of Religion"]. ''Journal of Economic Literature'' '''36''', 1465–1496.</ref> 이 저작은 베버 생애에 출간된 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또 그 해에 그는 [[미국]]을 방문하여 [[세인트 루이스]]에서 [[세계 박람회]](루이지애나 만국 박람회)와 연계한 예술 및 과학 회의에 참가하였다. 그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베버는 자신이 그때 일반 강의를 다시 맡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으며, [[1907년]]에 유산을 받아 개인 학자로 계속 활동하였다.<ref name="Bendix3"/>
p. 327.]</ref>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베버는 하이델베르크의 군 병원에서 원장으로 잠시 복무하였다.<ref name="Bendix3"/><ref name="Kaesler">[[Dirk Kaesler|Kaesler, Dirk]] (1989). ''Max Weber: An Introduction to His Life and Work''.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 [http://books.google.com/books?vid=ISBN0226425606&id=shR9fsW9W8oC&pg=PA18&lpg=PA18&dq=Max+Weber+hospital&sig=38uV8JO6Z_TpXVF_FnjO9HdY3KE 18.] {{ISBN|0-226-42560-6}}</ref>
제2항. 라이히 대통령은 독일 리이히 내에서 공공의 안녕과 질서가 중대한 장애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에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병력을 사용할 수 있다. 이 목적을 위하여 라이히 대통령은 잠정적으로 제114조, 제115조, 제117조, 제118조, 제123조, 제124조 및 제153조에 규정된 기본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할 수 있다.<br />
제3항. 본조 제1항 또는 제2항에 의하여 실행한 조치에 대하여 라이히 대통령은 지체없이 라이히 의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라이히 의회의 요구가 있으면 그 조치는 효력을 상실한다.<br />
제4항. 급박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각 주정부는 그 영역내에서 임시로 제2항에 규정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 조치는 라이히 대통령이나 라이히 의회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그 효력을 상실한다.<br />
제5항. 상세한 것은 라이히 법률로 정한다.</ref>
베버는 이때 다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빈 대학교]]에서, 나중에 1919년에는 [[뮌헨 대학교]]에서 일하였다.<ref name="Bendix3"/> [[뮌헨]]에서 그는 독일 대학에서 최초인 사회학 학회의 회장이 되었으나, 결국에는 개인의 사회학 직위를 갖지는 않았다. 베버는 1919년과 1920년에 우파의 선동 때문에 정계를 떠났다. [[뮌헨]]의 여러 동료와 학생들은 1918년과 1919년 [[독일 11월 혁명|독일 혁명]] 당시 그의 연설과 좌파적 태도에 반대하였으며, 일부 우파 학생들은 그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ref name="TPaSToMW"/> 막스 베버는 [[에스파냐 독감]]에 걸렸으며,
== 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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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는 가치 문제를 3가지(가치 관련, 가치판단, 가치중립)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사물의 근본이나 기초가 되는 '''가치관련'''은 사회학자, 역사학자가 연구 시행 시 가치 설정을 가능하게 한다. 사회에 관계되거나 사회성이 있는 실재는 무한하고 문화의 세계는 가치의 영역이므로 연구자는 설정 없이는 연구를시작할 수 없게 된다. 베버는 연구에서 가치 관련의 예를 다음과 같이 든다. 첫째, 연구 주제의 선택, 결정 시 둘째, 본질적인 것을 부차적인 것들로부터 고르는 선택 시 셋째, 연구 작업 과정에서 여러 요소와 의미 사이의 인과관계 정립과 합리한 이유의 제공 넷째, 인과관계의 연쇄의 소급 적용 시. 즉, 인과적 소급의 진전의 상한 설정. 다섯째, 연구 내용 논증에서 개인에 국한된 경험과 모호한 감정성의 배제로써 연구 내용을 객관화하게 할 수 있다. 베버는 사회과학에서 해석이나 이론을 정책이나 실천과 구별한다. 이것을 이용해 가치 관련을 개입하게 해야 하고 좋고 나쁨을 결정하고 가치판단을 개입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에 대한 이유는, 해석 이론은 그 내용에서 명증적이어야 하는 것이지, '올바른' 등의 형용사적 용어로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과학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가치판단'''은 정책과 정치세계의 가치이다. 베버에 따르면, 과학적 지식에 기초하여 정책입안, 정책실천 시에는 가치판단이 요구된다. 베버는 당시 독일 정치가들이 분명한 가치판단을 결여한 상태로,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 하는 모습을 비판하였다. 베버는 '''가치중립'''을 강의실에서의 가치라고 주장했다. 베버는 대학강단에서의 개인적(사적)가치판단을 반대했다. 강의실에서 교수는 강의를 하고, 학생은 침묵상태에서 학습하고 있으므로 대등한 입장에서의 비판이 허용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교수의 일방적인 개인적 가치판단이나 개인적 신념의 주입강의는 불공평하다고 인식하였다. 교수의 개인적 가치판단의 주입강의는 학생을 자기보다 좁은 시야의 사고를 갖게 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사회와 같이 가치들의 적대성이 지배하고 다신교의 시대에는 개인적 가치판단은 객관성을 갖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베버는 가치중립의 입장을 교수들의 강의윤리라 설명하고, 교수의 성실성은 그가 얼마나 가치중립적 입장에서 강의하는가에 의해 증명된다고 강조하였다. 베버에 따르면, 교수가 해야 할 역할은 여러 가지 가치들과 그리고 목적에 대한
베버의 시대는 가치의 혼돈과 가치판단 범람의 시대였다. 당시 독일 대학들에서 대부분의 대학교수들은 황제를 찬양하는 소위 어용교수들이었다. 따라서 강의시간에도 황제를 찬양하고 강의 방식은 자신의 주장과 견해만을 강력히 설명하면서 타인의 견해는 부정, 비판하는 가치판단에 의거한 방식이었다. 베버는 이러한 방식을 비판하고, 엄격한 학문주의적 입장에서 모든 학설들을 공정하게 설명해주는 가치중립적 강의를 주장했다. 이를 통해 독일 민족의 꺼지지 않는 지적 심장을 대학 안에 잘 보존하고자 하였다.
=== 사회변동 ===
베버는 사회과학과 역사에서 [[마르크스]]의 경제결정론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베버는 마르크스의 경제환원주의를 다시
'''경제적 결정 부문'''은 경제적 목적을 위해 일부러 창출한 제도들을 뜻한다. 즉, 경제 제도 자체의 영역을 의미하며 은행, 주식의 사례를 들 수 있다.
'''경제적 연관 부문'''은 그 자체는 비경제적이면서도 경제적으로 연관된 행동과 제도의 영역을 의미한다. 가령, 정치,법률,종교 등을 꼽을 수 있다.
'''경제적 조건 부문'''은 그 자체로 분명히 비경제적 현상이면서 경제와 연관이 없지만, 간접적으로 시대의 경제제도의 영향을 받거나 영향주는 영역이다. 가령, 문학, 예술 사상 등이 예이다. 이처럼 사회는 경제적으로 연관되고, 경제적으로 조건지어진 영역이 매우 많으므로 각 부분이 상대적 자율성을 갖고
베버는 마르크스가 경제에 의해 결정되는 종속적인 반영물로 본 관념까지도 상대적 자율성이 있으며, 사회 변동의 원동력으로 작용할수도 있다고 논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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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스 베버의 칼 마르크스 비판 ===
베버는 과학적인 문제에서
▲베버는 과학적인 문제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논쟁한 최초의 인물인데, 왜냐하면 엄격한 경제적 환원주의는 바로 경제적인 현상에서조차도 결코 완벽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은 전혀 과학적 엄밀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단지 형이상학적 '사상'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자진해서 예언을 했지만, 과학은 어떤 예언의 타당성도 보장할 수 없다. 베버는 마르크스주의 교의를 또한 개인적인 선호도의 이유로 거부하였다.
그는 집단주의적인 사회주의 경제가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는데, 그것은 모든 활동과 같이 경제도 그 수단에 의해 제한되기 때문에 세계적 구원의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그것은 오히려 관료제적 기제하에서 인류에 대한 억압으로 이끈다. 어떤 경우에는, 완전히 집단화된 경제는 시장경제보다도 더 악화된 무정부를 이끌기도 하는데, 그것은 집단화된 경제에 의해 탄생하는 과도한 관료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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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
*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 《[[경제와 사회]]》 (Wirtschaft und Gesellschaft)
* 〈[[직업으로서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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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 [[천민 자본주의|천민자본주의]]({{llang|de|Paria-Kapitalismus}}, {{llang|en|pariah capitalism}})
* [[탈주술화]]
==
* [http://philinst.snu.ac.kr/bbs/download.php?bo_table=supplement&wr_id=84&no=0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강성화]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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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막스 베버| ]]
[[분류:1864년
[[분류:1920년
[[분류:독일의 철학자]]
[[분류:독일의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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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세기 사회학자]]
[[분류:상징적 상호작용론]]
[[분류:음악사회학자]]
[[분류:경제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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